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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파티마 제 3의 비밀: ‘신앙을 위협하는 위험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5-26



파티마 제 3의 비밀: ‘신앙을 위협하는 위험들’

Fatima Secret ‘Dangers Threatening the Faith.' 

May 19, 2016 District of the USA



파티마의 비밀은 겨우 일부만이 드러났으며 이 비밀은 아마도 오늘날 교회 내의 위기를 알리는 것이다.


 존 베나리(John Vennari) 허락으로, 그 작가가 제 3의 비밀 본질에 대해 토론한 기사(記事) 가운데서 발췌한 것을 여기에 게재하며, 2000년 당시에 파티마의 제 3의 비밀을 공개한 것은 일부분이고 잘못 해석되었다는 것을 밝혀두는 바이다.


*** *** ***


 비록 제 3의 비밀이 실제적으로는 미사와 공의회(의 문제점)를 언급한 것인가에 대해 질문한다 하더라도, 비밀이 언급하고 있는, ‘신앙을 위협하는 위험들’에 관한 빠뜨린 부분이 있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제 3비밀의 환시(幻視)에 관하여 2000년에 발표하기 이전에 수십 년간 파티마 센터의 그루너 신부(Father Gruner’s Fatima Center)는 파티마 전문가와 증인들로 부터 제 3의 비밀이 교회 내의 신앙의 커다란 위기를 예언한 것이라고 관련짓는 내용을 반복적으로 게재하였다.


 다음은 존 베나리(John Vennari)가 그 주제에 관한 최근의 그의 기사(his last article)에서 뽑아낸 몇 가지 사례의 일부이다..


 신앙교리성성 장관인 라칭거 추기경(주: 후일 베네딕토 16세)은 1984년 11월 11일 ‘예수’ 잡지(Jesus magazine)에서 한 인터뷰를 하였다, ‘왜 신앙이 위기에 처해있는가?’라는 제목이 붙은 이 유명한 대화에서 라칭거 추기경은 신앙의 위기와 파티마의 제 3의 비밀에 관해 언급하였다. 추기경은 제 3의 비밀은 ‘신앙과 그리스도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들, 그러므로 세상(생명)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추기경은 더 나아가 ‘제 3의 비밀 안에 담고 있는 일들’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이것은 성서에서 예고했던, 그리고 성모님의 수많은 다른 발현에서 반복하여 알려준 것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 *** ***


 2000년 아리조나주 피닉스에 있는 가톨릭 회복 회의(Catholic Restoration Conference)의 연설에서 존 베나리는 그의 제목 ‘제 3의 비밀 공개, 그것은 존중하는 것인가, 욕보이는 건가?’를 해설하였다.


상황 요약


나는 청중들이 제 3의 비밀에 대해 다음 사항을 알고 있다고 당연히 여긴다.


ㆍ루시아 수녀가 순명의 차원에서 1944년 최종적으로 그 발현을 적을 때, 그분은 훼방되는 내용으로 인하여 쓰는데 아주 큰 어려움을 겪었다. 루시아 수녀의 내부적 갈등은 너무나 큰 것이어서 1944년 1월2일 성모님은 루시아 수녀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시길, 하늘의 뜻은 그 비밀을 적는 것이라 하셨다.


1944년 1월 9일 루시아 수녀는 파티마의 다 실바 주교(Bishop da Silva)에게 봉인된 봉투에다가 그 비밀을 적었고 자신의 노트에도 적었다고 전했다.


그 비밀이 담긴 봉투는 1944년 6월 17일 다 실바 주교에게 전달되었다.


1957년 그 비밀은 바티칸의 성청(聖廳)에 전달되었다.


그 비밀은 1960년에 공개되기로 예정되었다.


 루시아 수녀가 “왜 1960년입니까?”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대답하길, “성모님이 그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또한 1955년 오타비아니 추기경(Cardinal Ottaviani)은 루시아 수녀를 방문하여 왜 그 비밀이 1960년 이전에는 개봉되어서는 안 되는지를 물었다. 루시아 수녀는 대답하길, “그때가 되면, 더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그 비밀이 드러나기를 온 세상이 1960년을 기다렸다. 그리고 1960년이 되자, 요한 23세 교황은 제 3의 비밀을 읽었고 그 비밀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도록 결정하였다. 보고에 의하면 그 교황은 제 3의 비밀에 관해, “이것은 내 교황직(敎皇職)에 관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청중들이 성삼위에 관한 프레레 미쉘(Frère Michel)의 탁월한 작품인 ‘파티마에 관한 모든 진실(The Whole Truth About Fatima)’을 잘 알고 있으리라 당연히 여기는데, 이 작품은 제 3의 비밀의 내용이 아마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우리 교회가 겪고 있는 현재의 신앙의 위기를 암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프레레 미셀은 그의 작품이 파티마 연구의 최고 학자인, 특히, 아마도 이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요아킨 알폰소 신부(Father Joaquin Alonso)의 작품을 많이 참고하고 있다.


공개 선언


그래서 2000년 5월 13일, 야친타와 프란치스코 마르토의 시복식에서 놀라운 발표가 있었다. 바티칸 국무장관인 소다노 추기경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이름으로 발표하기를, 바티칸은 제 3의 비밀의 내용을 공개할 것이라 하였다.

 
그날 소다노 추기경(Cardinal Sodano)은 비밀의 작은 부분으로 보이는 것을 공개하였다.


 추기경은 희생자의 시체들 가운데 길을 걷고 있는 도중에 “흰옷 입은 한 주교”가 “총탄의 폭발음 아래에서 갑자가 땅 위에 떨어져 죽는”(소다노 추기경의 말) 환시의 모습을 공개하였다.


 일주일 후, 5월 21일 바티칸 대변인 나바로 발(Navarro-Valls)은 제 3의 비밀을 공개하는 결정의 뒷이야기를 밝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예언을 공개한 것은 파티마 메시지의 어느 특정 부분, 실제로는 아니지만 이런 공개하지 않은 자료로 예상되는... 새 천년의 핵심(에큐메니즘)이라 생각하는 것을 부적절하게 쥐고 흔드는 반 에큐메니즘 전통주의에 대한 교황의 지지가 없음을 알려줄 것이다.


 그와 반면에 이를 공개하고자 하는 결정은 파티마가 파벌 위치(positione di parte)에 있어서 인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확신에서 나온 것이다. 파티마가 공개될 때, 파티마 메시지의 각 부분은 그 예언의 정당한 균형을 회복할 것이고, 전체적으로 모든 이들이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이다.“ 2


 그러면 그 예언을 공개하는 것이 (성교회의 위기를 언급하는 것을 금지하게 하려는) 1차 동기처럼 보인다. 그리고 결국, 파티마의 제 3의 비밀이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시대 이후로 교회가 겪고 있는 신앙의 위기를 말한다는 내용이라는 전통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가톨릭 신자들의 생각을 종식(終熄)시키려는 의도이다. 그리고 대변인 나바로 발(Navarro-Valls)은 일단 그 비밀이 공개되었으므로, 파티마 비밀은 ‘모든 이가 보다 알기 쉬운’ 것이 될 거라고 주장하였다.


그가 맞는지 살펴보자.


제 3의 비밀 공개


그러면 여기서 2000년 6월 26일에 바티칸에서 공개된 제 3의 비밀에 대한 환시를 보자.


 성모님 옆, 바로 약간 위쪽에 우리는 오른 손에 화염검을 쥐고 있는 한 천신을 보았다. 검은 빛나고 온 세상을 불태우려는 것처럼 보이는 불길을 뿜고 있었다. 그러나 오른 쪽에 있는 천신을 향해 성모님이 발산하는 광채를 접촉하니 그 불길이 꺼졌다. 천신의 오른 손은 지구를 가르키고 있고 큰 소리로 외쳤다. “보속하라, 보속하라, 보속하라.”

 

 그리고 우리는 천주님이신 거대한 빛 안에서 보았다. ‘사람들이 이 빛 앞에서 지나갈 때, 어떻게 그 사람들이 거울 속에 나타나는 것처럼 유사하게 보이는’것이었는데 흰 옷 입은 한 주교는 우리가 생각하건대 교황 성하인 것으로 보였다. 가파른 산, 그 산 위에 거친 코르크 나무로 만들어진 큰 십자가가 있는 곳으로 다른 주교들, 사제들, 남녀 수사, 수녀들은 올라가고 있고, 그 곳에 도착하기 전에 반쯤 황폐화 되고, 반은 요동치며 정지된 커다란 도시를 통과한 교황 성하는 고통과 슬픔으로 가면서 그 도중에 만난 시신(屍身)의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였다. 산 정상에 도착하고 나서 커다란 십자가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난 후, 교황은 그를 향해 총탄의 불을 뿜는 일단의 군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같은 방법으로 차례로 다른 주교들과 사제들, 그리고 남녀 수사 수녀들, 또한 다양한 계급과 지위에 있는 평신도들이 죽임을 당했다. 십자가의 양 팔 아래에는 손에 수정 성수반을 각각 들고 있는 두 천신이 있는 데 그것으로 순교자들의 피를 모으고 있고, 그것으로 천주님께 길을 가는 영혼을 흩뿌리고 있었다.“


 이에 대한 공식적인 바티칸의 해석은 1981년에 있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향한 암살시도를 예언한 것이라 하였고 또한 물론 여러분 대부분이 알고 있듯이 라칭거 추기경은 (나는 그가 실제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고 추측한다) 가톨릭인들은 이러한 해석을 받아드릴 의무는 없다고 말하였다.


 바티칸이 공개한 것에 관련하여 이것은 실제 제 3의 비밀의 일부라고 의심할 이유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부분에서 그 문제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공개에 있어서의 문제가 되는 불일치: 강요된 해석


 그 비밀이 우리에게 전달된 방식에 있다. 단계별로 전달되었는데, 전달된 방식은 비밀의 환시에 관한 바티칸의 해석에 억지로 꿰맞춘 시도처럼 보이게끔 전달된 것이다.
2000년 5월 13일 내가 말했던 것처럼, 소다노 추기경이 파티마의 제 3의 비밀을 공개하겠다고 할 적에, 추기경은 말하기를, 그 환시는 교황이 총의 굉음 하에서 분명히 쓰러지는 것이 담겨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르, 제 3의 비밀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겨냥한 암살시도로써 1981년에 실현된 것이다.


 그러면, 6월 26일 전 5~6주 동안, 제 3 비밀, 즉 교황 요한 비오로 2세를 겨냥한 암살시도가 실현되었다는 이 신화가 세워지고, 착수되어, 매스컴에 스며들은 것이었다.

 

 그래서 6월 26일쯤 왔을 때, 세상은 이미 제 3의 비밀을 1981년 암살 시도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으로서 받아드릴 전제 여건이 조성되어있었다.
 
 고맙게도, 모든 이가 이런 해석을 받아드린 것은 아니었다. 주로 비밀의 환시에 대해 진정으로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단지 가톨릭 작가만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안 맞는다고 생각하는 세상의 언론인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6월 1일자 워싱턴포스트지의 내용이다.


 “5월 13일 바티칸 고위 성직자인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은 조심스럽게 보호된 비밀을 갑작스럽게 공개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추기경은 말하기를, 파티마의 제 3의 비밀은 몇몇 사람이 추측한 것처럼 세상의 종말을 예언한 것이 아니고, 1981년 5월 13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발생한 요한 바오로 2세를 겨냥한 암살 시도라는 것이다.

 

 소다노는 원고(原稿)에서 말하기를 순교자의 시체 사이로 길을 가고 있는 ‘흰 옷 입은 주교’는 ‘총성이 울리는 가운데 땅에 쓰러지고 분명히 죽는’ 모습을 말하였다. 그러나 그 원고는 주교는 ‘그를 겨냥한 총을 쏘는 군인들의 무리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말하면서 그 운명에 대해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않고 (6월 26일) 월요일에 공개되었다. 교황과 함께 또한 죽는 모든 이들(주교들, 사제들, 수사들, 수녀들, 평신도들)이 있다. 교황은 단 한 명의 저격수, 마호멧 알리 아흐자의 손에 의한 총격에서 살아남았고, 군중 가운데 그 누구도 그 공격에서 해를 받은 이는 없었다.“ 3


 너무나 많은 언어 가운데, 이 세속 신문은 황달에 걸린 소다노 추기경이 말하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우리에게 아주 정직하지 않군요. 그대는 5월 13일 우리에게 말하길, 교황은 분명히 쓰러져 죽었다고 했어요. 그러나 6월 26일에 공개된 원고에는 교황이 쓰러져 분명히 죽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교황은 죽었다고 쓰여 있는데 말이죠. 그러므로 추기경 그대는 우리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은 겁니다. 제 3의 비밀이 실제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에 대한 거짓된 그림을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고, 그리고서 이에 대한 억지로 꿰어 맞춘 그대의 해석을 보여준 겁니다.”


 나는 워싱턴 포스트가 신문 기자의 요새인 것처럼 그 신문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단지 신문이 언급하는 것은 바티칸의 해석에 대해 상식적인 반응(모순)을 보이고 있음을 지적할 뿐이다.


 좀 더 깊이 드려다 보면, 워싱턴 포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비밀의 환시에서 돌아가는 모든 것에 관한한, 바티칸의 해석은 맞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아는 것이다.


비밀의 환시에서 흰 옷 입은 주교가 죽는다.
1981년, 요한 바오로 2세는 죽지 않았다. 그는 총격에서 살았다. 그러므로 일치하지 않는다.


환시에서는 총탄이 군인들의 무리에서 나온다.
1981년, 총탄은 군인들 여러 명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단 한명의 총잡이에게서 나왔다. 그러므로 일치하지 않는다.


환시에서는 교황이 죽고, 주교들, 사제들, 수사 및 수녀들과 평신도들이 죽는다.
1981년, 교황 외에, 그 누구도 총탄을 맞은 이들은 없다. 그러므로 일치하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은 길에 지나가는 평범한 사람이든, 가톨릭 신지든 아니든 바티칸의 해석에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 불일치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나는 이와 유사한 인용문을 인용할 수 있는데, 특히 유럽, 이태리 신문사들은 워싱턴 포스트가 제기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 비밀은 암살 시도에 관한 것이 아니다


 만약 1981년에 발생한 요한 비오로 2세의 암살 시도 사건이 제 3비밀의 실현이라고 한다면, 루시아 수녀가 1년 후인 1982년에 쓴 것에 진짜 문제가 있는 것이다. 1982년 5월 12일 교황 암살 시도 사건이 있은 지 1년 후 루시아 수녀는 교황에게 글을 썼다.


“..... 만약 우리가 파티마 제3 비밀 예언의 최종 부분의 완전한 성취를 보지 않았다면,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거대한 발걸음으로 그 예언을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죄, 증오, 복수의 길을 거부하지 않으면...그들은 자기 자신들의 징벌을 준비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암살 시도 후 1년, 루시아 수녀 비밀의 예언이 아직 완전히 성취되지 않았고, 세상은 죄로 인하여 훨씬 커다란 징벌을 향해 거대한 발걸음 속에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그리고 수녀는 친히 편지에서 1년 전에 시도된 암살과 군인들의 의해 총을 맞아 죽는 교황에 대한 환시는 아무런 연관이 없음을 밝힌다.


두 개의 원고(原稿): 오직 하나만 공개되다


원고 자체에 관련하여 어려움이 있다. 다음과 같은 면에서:


 1957년, 제 3의 비밀을 담고 있는 편지가 포르투갈에서 바티칸으로 이송되기 바로 전에, 포르투갈의 베난치오 보좌 주교(Auxiliary Bishop Venancio)는 자기 손에 그 비밀을 잠시 쥐고 있었다. 그는 밀봉된 봉투를 들어 불빛에 비추어 볼 기회를 가졌다.


 베난치오 주교는 이 봉투에는 작은 봉투가 있음을 보았다. 내부의 더 작은 봉투 안에는 그 위에 글을 쓴 종이가 접혀져 있었다. 베난치오 주교는 그리고 나서, 제 3의 비밀이 아마도 작은 여백 종이 위에 대략 20-25줄로 쓰여진 것임을 알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6월 26일 바티칸이 공개한 것은 종이 4장에 664줄이었다.


 2000년 여름에 발간한 책자 The Fatima Crusader의 기사 제목, “제 3의 비밀은 두 개의 원고가 있는가?”를 권하는 바이다. 그 기사(記事)는 두 개의 다른, 그러나 보완되는 제 3의 비밀에 관한 원본이 있을 수 있다는 실제적인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하나는 루시아 수녀의 노트에 쓰여져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느 종이쪽지에 쓰인 글이다. 이 논제는 6월 26일, 바티칸은 루시아 수녀의 4페이지에 달하는 노트를 공개했으나, 종이 단 한 장에 쓰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음을 담고 있는 것이다.


두 개의 자료: 하나는 묘사한 것이고, 하나는 설명한 것이다


그러면 왜 두 개의 원본이 있는가?  여기 니콜라스 그루너 신부(Father Nicholas Gruner)의 설명이 있다:


 파티마의 성모님이 아이들에게 환시를 주실 적 마다, 성모님은 항상 설명을 첨가했다고 신부는 지적한다.


 1917년 6월 13일 성모님은 지옥에 대한 환시를 아이들에게 보여 주셨다. 그리고 이 환시에 자체 설명이 있음에도, 성모님은 또한 설명을 추가하셨다:


 불쌍한 죄인들의 영혼들이 가고 있는 지옥을 너희가 보았다. 저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천주께서는 이 세상이 나의 하지 없는 성심에 봉헌하길 바라신다.


 “마찬가지로, 1917년 6월 13일, 성모님이 손을 펴시니 손에서 빛이 나왔다. 한 손에서 나온 빛은 야친따와 프란치스코에게로 떨어지고, 그리고 나서 천국을 향해 비추었지만, 다른 한 송에서 나온 빛은 루시아를 반사(反射)하고 나서 시골길로 쭉 퍼져 나갔다. 이 의미는 프란치스코와 야친타는 곧 천국으로 가게 됨을 의미하며, 그리고 루시아는 파티마의 메시지를 퍼뜨리기 위하야 지상에서 좀 더 머무를 것이라는 점을 이해했다. 비록 아이들이 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성모님은 그래도 그 환시를 설명하셨다: 성모님이 이르시길, ‘나는 야친따와 프란치스코는 곧 데려가겠다. 그러나 너(루시아)는 나의 티 없는 성심에 대해 신심을 퍼뜨리기 위해서 이 지상에 좀 더 머물러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제3 비밀은 같은 선상에 따라 구성되었음을 믿을 만한 좋은 근거가 있다. 6월 26일에 공개된 64줄에 달하는 글은 환시이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설명을 받은 바 없고, 이 설명은 아마도 23줄에 달하는 글 안에 담겨있을런지 모른다. 사실 그것은 아마도 우리 시대의 신앙의 위기를 언급하는 것일 것이다: 특히 만약 환시에서 언급된 반쯤 파괴된 도시가 천주님의 도성(都城)인 가톨릭교회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그렇다. (교황 레오 13세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이어, 가톨릭교회가 천주님의 도성이라고 반복 되풀이 하였다. 이것은 프리메이슨을 반대한 1884년 회칙인 인류 -Humanum Genus- 의 첫 단락에서 찾아볼 수 있다.)


The Fatima Crusader의 기사는 왜 원고가 실제적으로 두 개라는 10가지 총 목록을 싣고 있다. 4


논리 분석


 루시아 수녀의 회상록에는, 둘째 비밀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 “포르투갈에서는 신앙의 교리가 항상 보존될 것이다.” 등을 볼 수 있다. 많은 학자들은 이 글을 제 3 비밀로 들어가는 글로 보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생각, 새로운 요점을 안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제 3의 비밀이 아마도 신앙의 위기를 다루는 것을 보여주는 지시계(指示計)임을 보여주는데, 왜냐하면, ‘신앙의 교리’란 모든 곳에서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티칸에 의해 공개된 것은 저 구절이 고립되어 남겨져 있다. 다음에 이어지는 어떤 것과도 연결됨이 없이 횡하니 걸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문장은 무언가 빠져 있다는 뚜렷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1984년, 이상하게도 라칭거 추기경 (후일, 교황 베네딕토 16세)은 ‘신앙의 위기’에 관하여 제 3의 비밀의 예언에 대해 말하였다.


 그래도 금년 6월에 개봉된 환시에 대한 문맥에는 ‘신앙의 위험’에 대한 언급이 아무것도 없다.


 현재 우리들은 라칭거 추기경으로부터 심지어 다른 메시지를 얻고 있다. 왜 그런가에 대해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꽤나 첨가되지 않은 6월 26일자 문서에 대해 이러한 요점 가운데 또 다른 하나가 있음을 지적할 뿐이다.


 그리고 나바로 발(Navarro-Valls)이 바티칸이 공개한 것은 모든 것이 ‘좀 더 이해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음을 기억하자.


라칭거 추기경의 논평


 6월 26일 행한 라칭거 추기경의 (비밀 공개에 따른)Commentary (논평)에서 나온 호기심 어리고 실망스런 발언은 아마도 제 3의 비밀 자체의 진실성에 관해 의혹을 던져주는 시도로 보인다.


 제 3의 비밀의 공개와 더불어 나온 Commentary에서 라칭거 추기경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 ‘비밀’을 포함하는 부분은 루시아가 신앙 책자에서 보게 될 수 있는 모습, 그리고 옛  신앙의 기관에서 나오는 저들의 영감(靈感)을 그려낸 모습을 사용하고 있다.”

왜 그런 말을 할까?


 제 3 의 비밀 전체가 루시아의 상상력에서 나온 단지 허구에 불과하다고 알려주는 미묘한 방식이란 말인가? 제 3 비밀이란 하늘에서 그녀에게 말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녀가 신앙 책자에서 생각을 얻고 상상해낸 것에 불과하단 말인가?.


 라칭거 추기경으로부터 나온 이와 같은 발언은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독자들에게 제 3 비밀의 환시를 무너뜨리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Commentary에 있는 그것에 도움이 되지 않았고, 라칭거 추기경이 언급한 유일한 ‘파티마 전문가는 Edouard Dhanis 신부였다. 다니스(Dhanis) 신부는 예수회 소속으로 1940년대 50년대 기간에 파티마 예언을 밝히려는 노력을 한 신뢰(?)할만한 경력을 쌓았다. 그는 당시에 바티칸에서 영향력이 있었고 그의 저술은 널리 읽혀졌다.


 1940년대에 다니스 신부는 루시아 수녀가 파티마 비밀을 만들어냈다고 암시했다. 사실, 그 신부는 19176년 이후 루시아 수녀가 성모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그 당시의 다른 파티마 학자들은 때때로 다니스의 논제가 잘못됨을 증명해냈다. 그들은 심지어 전쟁 후에 다니스 신부를 파티마에 초대하여 그의 잘못된 견해를 바로 잡고자 하였다. 


  다니스 신부는 최초 문서를 조사하기 위해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가는 것을 거부하였고, 루시아 수녀를 인터뷰하려는 초대도 거부하였다. 그리고는 자기 논제에만 푹 빠졌다. 이 시기에, 다니스 신부의 주장을 반박하는 글을 쓰던 또 다른 파티마 학자 (제딘 신부 Father Jedin)는 질문을 던졌다. ”이것이 진정으로 건전한 비판적 정신에서 나오는 발언인가?”


물론, 그건 아니다.


 1976년, 다니스 신부가 악명 높은 네덜란드 교리문답(Dutch Catechism)의 으뜸 저자 중의 한 명임을 주목해야 한다.


 그래도 다니스 신부는 파티마에 관한 26일자 Commentary에서 이름이 언급된, 라칭거 추기경이 고른 유일한 ‘파티마 전문가’였다. 왜 지금까지 아마도 가장 뛰어난 파티마 학자인 알폰스 신부(Father Alonso)를 언급하지 않고 있는가? 이것이 다니스 신부의 흠이 있는 논제에 동의하고 있는 라칭거 추기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방식인 것인가?


 추기경의 발언은 우리로 하여금 이것을 믿게끔 유도할 수 있다.

더욱이, 파티마에 관한 6월 26일자 라칭거 추기경의 Commentary는 묵주기도와 갈색 스카플라 5회 연속 첫 토요일 신심 – 이 모든 것은 파티마 메시지의 요소를 구성하고 있다 - 의 필요성을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6월 27일자 로스엔젤러스 타임지가 파티마에 관한 라칭거의 취급에 관련하여 가시를 실은 것은 당연하다: “바티칸의 최고 신학자가 파티마의 열기(熱氣)를 파헤쳤다.”  5


비슷한 방법으로 AP뉴스(the Associated Press)는 헤드라인으로 이것을 게재하였다: “바티칸은 파티마 신비에 관한 책을 덮고 말았다.” 6


 주어진 인상(印象)은 ‘비밀’의 공개에 관련하여, 파티마가 종결되었고, 티 없으신 성모성심과 러시아의 회두를 위한 러시아 봉헌을 포함한 예언들은 모든 실현되었다는 것이다.


 러시아 봉헌에 관련하여 6월 26일 바티칸 문서는 진술하기를,요한 바오로 2세의 1984년에 행한 세상의 봉헌은 실제적으로 성모님의 요청을 실현했다고 루시아 수녀가 지금 주장한다는 것이다.


6월 26일자 바티칸 문서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루시아 수녀는 개인적으로 성모님이 원하셨던 것(‘Sim, esta feita, tal como Nossa      Senhora a pediu, desde o dia 25 de Marco de 1984’)에 대한 응답으로 된 이 엄숙하고 전 세계적인 봉헌행위는 “예, 성모님이 요청하셨던 바 대로, 1984년 3월 25일에 성취(Letter of 8 November 1989)되었어요,” 라고 단언하였다. 그래서 더 이상의 토론이나 요청은 기본적으로 없는 것이다.“  7


이 진술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특히, 이것은 루시아 수녀가 1984년 봉헌은 러시아 봉헌에 관련하여 성모님이 요청하신 것을 실현하지 못했다는 예전의 루시아 수녀의 증언과는 사뭇 모순된다.


실현되었다는 봉헌을 반박하는 세 가지 증거


첫째 1984년 봉헌 막 이전에, 교황 성하의 자료를 받고 읽었다. 마리아 유지나 페스타나(Mrs. Maria Eugenia Pestana)라는 옛 친구로부터 다가오는 봉헌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루시아는 부정적인 몸짓을 지으며 대답하기를, “이 봉헌행위는 결정적인 것이 될 수 없어요. 왜냐하면 러시아가 봉헌의 유일한 목적으로서 이 안에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8


물론 다른 문제는 세상의 주교들이 봉헌 하지도 않았거니와 봉헌에 참여하라는 명령이 표면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것도 있다.


둘째 1987년에 있었던 루시아 수녀의 80회 생일 축하에 참여한 수녀의 상대적인 증언이 있다. 그 당시에, 수녀는 러시아 봉헌에 관한 질문을 받았지만, 답변을 거부하였다. 그러면, 이것은 프레 프란치스코(Frère François)로 부터의 인용이다:


파티마에 살고 있는....특히 무엇이 요구되어야 하고, 어떤 조건 하에서 말이 행해져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어떤 사촌의 차례가 왔다. 그 사촌은 만약 하자 없으신 성모님께 러시아의 봉헌이 성모님의 구체적인 요구 사항에 따라 진정으로 이루어졌는지, 파티마의 루시아 수녀의 입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듣고자 했다. 그 대답은 명료하고 마치 대포알과 같은 그리고 갑작스런 방법으로 “아니오”라는 것이다. 9


셋째 1989년에 로 추기경(Cardinal Law)이 루시아 수녀를 방문하여 러시아 봉헌에 대하여 물었다. 수녀는 질문함으로써 응답하였고, 의문을 던지면서 대답하였다. 수녀가 말하길, “성모님이 요구하셨고 원하셨던 합의제인 단체봉헌의 좁은 길 위에서 이루어진 것인가요? 아니예요.” 라고 대답하였다. “그것은 이루어진 것이 아니에요.” 10


 그리고 1984년,1987년, 1989년과 다른 증언도 마찬가지이다. 루시아 수녀는 단언하기를, 1984년에 행한 봉헌은 성모님이 제시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었다고 하였다.


 그러면 루시아 수녀가 러시아 봉헌은 이루어졌다고 한 6월 26일자 바티칸 문서에 담긴 1989년 11월 8일자의 이 편지는 어떠한가?


루시아 수녀로부터 온 가짜 편지


 바티칸이 이 편지의 원천에 대해 주석(註釋)을 달지 않았음을 여러분은 알아차릴 것이다. 저들은 오직 날짜만 썼다. 누가 쓴 것인지 어떤 것을 한 것인지 우리는 듣질 못했다. 내가 확신하건대, 그들이 주석을 달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이 이것을 (가짜임을) 오래 전에 알았고, 루시아 수녀가 전혀 쓰지 않은 이 편지가 가짜로 불신 받았기 때문이었다. 바티칸 문서에서 인용된 것은 루시아 수녀가 월터 노엘커(Walter Noelker)라는 한 남성에게 보낸 것으로 추측되는 편지다. 만약 저 전체 편지가 전체를 인용한 것이라면, 독자들은 왜 파티마 전문가들이 그 편지를 진지하게 다루지 못하는가에 대해 이해의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11월 8일자 같은 편지에서, 그 작가 (루시아로 거짓 추정되는) 1967년에 파티마를 방문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이루어진 봉헌을 언급한다. 이것이 갖는 문제점은 그와 같은 봉헌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니, 당시에 그곳에 루시아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편지에서, 그 ‘작가’(가짜 루시아로 추정)는 러시아의 봉헌이 공의회 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다고 선언한다.  11


 이것은 루시아 수녀가 작성한 초기의 진술과 다른 파티마 전문가의 진술과는 완전히 모순되는데, 그들은 말하길, 하자 없는 성심께 러시아 봉헌을 드리기 위해 전 세계의 주교들이 한 곳에 모이는 것은 하나의 이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2


 사실, 여러 번 실패한 시도들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기간 동안에 바오로 6세로 하여금 단체 봉헌을 행하려고 했지만, 교황은 거절하였다.


 그래서, 서툰 가짜임이 완연히 드러나는 이 의심스런 편지는 러시아는 성공적으로 봉헌되었다고 한 바티칸 문서가 주는 유일한 ‘증거’이다. 이것이 6월 26일 바티칸 문서가 부당한 과장을 담아 진실하고 있는 ‘확고한 사실적 기반’인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의 토론이나 요청은 기본적으로 없는 것이다.”


Notes:

1) Fatima: Intimate Joy, World Event, Book IV, Ch. 2.

2) Quoted from “The Disclosure of the Third Secret of Fatima” by Frère François, Catholic Counter Reformations, August, 2000.

3) “Third Secret Spurs More Questions: Fatima Interpretation Departs from Vision”, Washington Post, July 1, 2000.

4) “Are There Two Manuscripts on the Third Secret?” The Fatima Crusader, Issue 64, Summer 2000. Also available on the web at www.fatima.org.

5) “Catholic Church Unveils ‘Third Secret of Fatima’”, Los Angeles Times, June 27, 2000.

6) “Vatican Closes its Book on Fatima Mystery”, Associated Press, July 5, 2000.

7) The Message of Fatima, op. cit., pp. 6-7.

8) Frère François, Fatima Intimate Joy, World Event, Book IV, pp. 167-168.

9) Fatima Intimate Joy, World Event, Book IV pp. 188-9.

10) Ibid.

11) See CRC May 1990, p. 2, and CRC August 1990, Fatima Inquest by David Boyce. (Cited from Fellows, CFN, September, 2000.)

12) See CRC May 1990, p. 2, and CRC No. 318, April, 1999, p. 12, (Cited from 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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