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Home > 커뮤니티 > Q&A

제목 잘못된 에큐메니즘(세계종교일치주의-교회일치주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2-28



가톨릭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
 
유일하신 참 천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구원될 자가 아무도 없으므로, 가톨릭교회 밖에서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 천주님이 한 분만 계시다면, 천주께서 세우신 참 교회는 오직 하나뿐이라고 해야 맞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임종 시에 성총지위에 있어야 한다. 천주께서는 당신의 자비로 혈세(순교), 명시적 화세(예비신자) 혹은 묵시적 화세(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전혀 들어본 적이 없으나, 자연법을 따르고 상선벌악(賞善罰惡)하시는 천주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선량한 믿음 안에 있는 이)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당신의 교회에 연결된 이교도에게도 그런 성총을 허락하시기도 한다. 개신교(프로테스탄)나 이교도가 그 같은 성총을 받는다 해도 그것은 항상 가톨릭교회를 통해서 그런 것인데, 왜냐하면 참된 교회밖에는 구원되기 위해서는 어찌 어찌 해야 한다는 규준이 없기 때문이다.
 
참된 에큐메니즘과 그릇된 에큐메니즘 
 진정한 에큐메니즘이란 영혼들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회두시켜 그들이 참된 양떼로 뭉친 울타리와 유일한 참된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게 하려고 애쓰는 참된 전교의 정신, 다시 말해서 가톨릭교회로 일치시키려는 정신을 말한다. 참된 일치란 일치된 신앙(세기를 통하여 이어져 내려오는 가톨릭교회의 똑같은 가르침과 교정권), 일치된 지배(교회의 우두머리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 대리자인 교황) 밑에서, 숭배의 일치(똑같은 신품권의 영향권 하에서 성총을 얻는 방법, 예를 들면 똑같은 성사, 똑같은 기도, 영원히,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똑같은 미사)를 의미한다. 참된 일치는 또 참된 사랑(천주를 사랑하되 똑같이 천주십계를 실천하는)과 참된 박애(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한 아버지로 인정하는)를 의미한다. 우리 주님은 성경에서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대저 너희가 나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못 함일새니라."

"나와 한가지로 아니하는 자는 나를 거스림이니라."

"아무도 능히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니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한 내 성부를 미워함이니라."

"성자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얻어 보지 못하고."


따라서 참된 에큐메니즘은 참된 사랑, 천주께 대한 참된 사랑, 천주께 대한 사랑으로 말미암은 이웃에 대한 참된 사랑을 의미한다. 75% 혹은 95% 만큼만 가톨릭일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사람이 가톨릭교회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가톨릭교회가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릇된 에큐메니즘은 모든 종교를 그릇된 인본주의의 사랑으로 결합시키려 하되 선을 가장한 유혹인즉, 그릇된 사랑, 단일세계교회 및 단일세계정부라는 새로운 질서 속에 있어야 모두가 다 안녕한 것처럼 느끼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자기가 담당하고 있는 환자가 아주 언짢아하지나 않을까 하고 신경이 쓰인다는 이유로 암을 앓고 있는 환자더러 병원에 가서 수술하지 않으면 곧 죽으리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는 의사의 그릇된 사랑과도 같다. 그릇된 에큐메니즘은 화세의 문이 활짝 열려 있어서 누구나 구원될 수 있다는, 순전한 광교회주의(혹은 자유주의-latitudinarianism)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성 비오 10세께서는 현대주의자인 세메리아(Semeria)에게 말하시기를, "당신은 밖에 있는 자들을 끌어들인답시고 교회문을 열어놓았다지만, 그렇게 해서 결국 얻은 것이라곤 교회 안에 있는 이들을 내보내 버렸습니다!"라고 하신 것이다.
 
마음이 아니라 머리로 판단하라 
마키아벨리는 "아주 많은 이가 실체가 있음에도 그 외양만을 보고 만족하는 까닭에 실제의 모습보다는 보이는 것에 의해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하였다. 그릇된 에큐메니즘과 인본주의의 사랑은 쉬운 길을 찾는, 소위 현대주의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대단히 매력적일지 모르나, 그 같은 오류는 수많은 영혼을 교회로부터 떼어내 지옥의 심연으로 이끌 것이 뻔하다. 우리 주님은 실과로써 나무를 알아보라고 말씀하시는 즉, 현대의 에큐메니즘이라는 나무는 분명 매우 썩어버린 열매를 맺었다. 혁명이 사용하는 말은 늘 자유, 평등, 박애이지만, 교회 안에서 일할 때에는 상식을 이용한 다른 어휘를 사용하는 식으로 그것들을 은폐함으로써 덜 위험한 것처럼 보이려 한다. 2차 바티칸은 자유 대신 종교의 자유를 말하고, 평등 대신 주교단체주의를 말하며, 박애 대신에 에큐메니즘을 말하지만, 아무리 그래봤자 프리메이슨과 우리 주님 및 당신 교회의 또 다른 원수의 것에 지나지 않는다. 1776년의 미국 혁명, 1789년의 프랑스 혁명, 1962-1965년의 2차 바티칸 혁명기의 행태를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뱀이 그 껍질 색깔을 제아무리 바꿔도 독액은 항상 똑같은 법이 아닌가!
 
'모르탈륨 아니모스(MORTALIUM ANIMOS)'

교황 비오 11세는 1928년 1월 6일, 종교의 일치에 관한 회칙 '모르탈륨 아니모스(Mortalium Animos)'에서 그 같은 주제에 관한 가르침을 폈는데, 직설적인 데다가 명쾌하기가 이를 데 없다.


"혹자는 종교 문제에 있어서 민족별로 차이가 있음에도, 교리를 고백할 때 마치 형제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별 어려움 없이 공통된 기반을 누리되 일치된 영신 생활의 모습이기를 바라는즉... 그런 시도는 모든 종교가 웬만큼 선량하여 권장할 만하다고 여기는 그릇된 의견에 바탕을 둔 것이므로, 가톨릭 신자라면 결단코 용납해서는 아니 되나니... 오류와 기만을 근간으로 하는 그같은 의견을 굳이 지키는 자뿐만 아니라 그런 자들이 극구 부인하는 참된 종교에 관한 관념을 왜곡시키는 자는 점차로 조금씩 길을 잘못 들어, 소위 자연주의 및 무신론의 방향으로 향하게 되며, 그로써 그렇듯 그릇된 이론을 지지하여 굳이 실현하려 드는 자를 지지하는 자는 결국 천주께서 계시해 주신 종교도 함께 버리게 되니라. 그런데 어떤 이는 그같은 이설의 겉모양이 그럴싸한 까닭에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꾀해야 한다는 문제에서 더 쉽게 속아넘어감이니라...


"거짓은 실제로 그런 감언이설 속에 가톨릭 신앙의 기반을 완전히 파괴시키는 아주 끔찍한 오류를 감추고 있나니. 주님의 양떼가 위험한 궤변에 속아넘어가는 것을 보고 그대로 놔두지 말아야 함이로다... 천주께서 계시해 주신 말씀 위에 세워진 종교 외에는 참된 종교란 있을 수 없음이니! 천주께서 직접 말씀해 주셨다면, 그 계시를 그 자체로 온전하게 믿어 당신의 명령에 묵묵히 순종하는 것이야말로 인간 모두의 의무임을 알아야 할진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칭하는 자들이라면 모름지기 교회가 하나이고, 그 하나인 교회를 그리스도께서 직접 세워 주셨다는 것을 믿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음을 짐은 믿고 있나니. 이 교회는 이제와 항상 존재할 뿐만 아니라 종도시대의 것과 아주 똑같은 것이니라."


"저들[그릇된 종교들]은 자기들을 대등한 관계로 대접해 줘야 로마 교회와 기꺼이 교섭하겠노라고 주장하는즉. 로마 교황청은 어떤 관계로든지 저들의 모임에 참여해서는 아니 되며, 가톨릭 신자가 그런 계획에 협조하는 뜻으로 일하거나 지지하는 것도 결단코 타당하지 않나니,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인 그리스도의 교회에 전혀 용납될 수 없는 그릇된 그리스도교 문화를 은근히 장려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니라. 참으로 부당한 것이 진리 그것도 천주께서 계시해 주신 진리를 타협을 위한 먹이로 삼게 그대로 내버려두려는가?


"교회를 일치시켜야 한다면서 그 쪽으로 마음을 돌리는 이들, 얼굴만 그리스도인인 자들[에큐메니스트-세계교회주의자들]은 모든 그리스도인 사이에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부추겨, 마치 가장 고상한 생각을 추구하고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사랑이 어떤 식으로 신앙을 해치는가? 일치는 오직 하나인 교정권, 신앙에 관하여 하나인 법, 가톨릭 신자들의 하나인 신앙으로부터 비롯되니라. 그래야만 참된 종교를 무시하는 행위나 신앙무차별주의 및 현대주의에 확실하게 대처하는 발판으로 삼을 수 있나니. 불행하게도 저 오류로써 오염된 자들은 교리상의 진리가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이라고 주장함에 따라, 교리상의 진리가 불변의 계시에 들어 있지 않은 까닭에 인본주의적인 생활에 적용될 수 있음으로 해서 시간과 장소의 필요에 따라 그리고 생각이 변하는 추세에 발맞춰야 한다고들 하는도다."


"저들이 말하는 것을 보면 기본이 되는 신덕도리는 모두 다 받아들여야 하지만 기본적이지 않은 신덕도리에 대해서는 자유로이 선택할 여지를 남겨줘야 한다고 하는즉, 그와 같이 혹자가 깨달았다고 둘러대되 기본 신덕도리와 기본적이지 않은 신덕도리 사이에 차이를 두는 것은 극히 부당한 일이니라."


"그러니 어째서 로마 교황청이 그런 것을 주제로 삼는 비가톨릭인들의 모임에 결코 가담해서는 아니 된다고 하는지, 그 이유가 명백하지 않은가. 그리스도인의 일치란, 갈라져 나간 이들이 불행하게도 오직 하나인 참된 그리스도교를 떠났던 것임으로 해서, 갈라져 나간 이들이 오직 하나인 참된 그리스도교로 회두하게 함으로써만 촉발될 수 있을 뿐이니라. 가톨릭 교회만이 진정한 흠숭지례를 보존하고 있나니. 아무라도 여기로 들어오지 않거나 이 곳에서 떨어져 나간다면, 그런 자는 영생에 대한 망덕과 구원에 관한 한 이방인에 지나지 않음이니라. 쉼 없이 경고하건대, 너 나 할 것 없이 스스로를 미혹 당하게 놔두어서는 아니 되는즉. 그 이유는 생명과 구원은 가톨릭 교회에 연결되어 있음으로 해서, 주도면밀한 관심을 내면에 보존하지 못한다면 생명과 구원에 이르기는커녕 완전히 파멸할 것이 뻔한 연고로다."
 
교황이 그릇된 종교와 회합을 열러 아씨시로 가기 전에 비오 11세의 이 회칙을 읽지 않은 것이 못내 애석하다! 다들 알다시피,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은 명쾌하다. 같은 신앙, 하나인 참된 교회 안에서 똑같이 숭배하지 않고서는, 일치란 도무지 불가능하다! 참된 사랑 없이는, 다시 말해서 천주님의 법안에 있으면서 천주십계를 지킴을 통하여 천주께로 향하는 참된 사랑 없이는 어떤 일치도 이루지 못할진저.
 
그릇된 에큐메니즘이 가톨릭 신자들에게 끼치는 위험성 
이상과 같은 그릇된 에큐메니즘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출된다.
 
1. 반전론을 통하여

반전론은 거의 교리처럼 되었으니, 평화주의라고들 한다(현세의 생활을 하는 인간은 극히 선량한 까닭에 이단을 두려워함으로 인한 공포심을 느낄 필요가 없으니, 이단자는 이제 모두 죽은 데다가 이웃에 대한 인간의 사랑이 순수한 상태에 도달했으므로, 현대 세계에는 더 이상 이단이란 게 없다). 이는 군사적인 측면의 평화주의일 수도 있다. 공산주의가 사라졌고, 고르바쵸프, 옐친, 셰바르드나제가 민주주의로 완전히 전향했음으로 해서 이제는 가장 좋은 동지가 되었으니, 우리에게는 더 이상 군대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태도는 둘 다 원죄를 부인하는 것으로, 일종의 자연주의에서 비롯된다. 게다가 공산주의와 협력하는 자들은 공산주의가 거짓을 바탕에 깔고 있는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2. 종교무차별주의를 통하여

공산주의에 맞서 싸운다지만, 어느 누구, 특히 가톨릭이 아닌 사람들의 감정이 상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착한 뜻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라도 받아들여 연합전선을 이루어 공산주의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하는즉, 서로의 차이점(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천주성과 당신 교회 안의 신앙)일랑 아예 고려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한다. 공산주의에 맞서 싸우더라도 주님의 도움이 없어도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부끄러워하면, 주님이 우리를 부끄러워하시리라. 공산주의는 천주님에 대적하는 유물론인즉, 천주님만이 혹은 천주님과 함께 하는 자만이 그것을 눌러 이길 수 있다.
 
3. 감상주의를 통하여

가톨릭 신자들은 낙태에 대항하여 싸운다지만, '선량한, 착한, 사랑하는, 친절한' 이단자들(그들 중 많은 이가 가톨릭 출신이다-'ex' Catholics)과 자주 우정 어린 접촉을 함으로써 자신의 신앙을 약화시키거나 잃도록 노출시킨다! 그런 자들은 프로테스탄트가 조직한 낙태 반대 모임에 가기도 하는데, 거기서는 이단자들 및 배교자들의 감정이 상하지 않게 하려고 묵주의 기도를 드리지 않는 것을 아무런 저항감 없이 받아들인다. 선거 기간 중 그들은 그럴싸해 보이는 사람이 '임신중절 합법화 반대(생명권, 즉 pro-life)'를 외친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세 번이나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정기적으로 프리메이슨 집회에 참석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버린 채, 그를 뽑아 주자는 캠페인을 벌인다!
 
결론 
1859년에 쓰인 비오(Pie) 추기경의 말을 인용하면서 끝을 맺을까 한다. "현대인의 의지에는 굳셈이 부족하고, 성품이 나약하며, 지성에는 명쾌함과 확신이 결여되어 있다. 천주께서 주시는 의로운 분별력을 사용하건대, 신앙을 잃으면 이성과 상식도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가톨릭 신앙에 대한 자부심과 정통 로마 가톨릭임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는 동시에 우리의 구세주를 도와 더 많은 영혼을 구하려는 전교의 정신을 지녀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당신의 티 없으신 모친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