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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톨릭인들이 실생활에서 가져야 할 덕행(2015-03-14)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3-16




가톨릭인들이 실생활에서 가져야 할 덕행(2015-03-14)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자비(사랑)을 보게 됩니다: 주님은 죄인을 책망하지 아니하고 용서를 주십니다. 예, 주님은 죄 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나 “더 이상 죄짓지 말라”고 요구하십니다! 진정한 사랑은 이 두 가지 측면이 필수적인데 특히 우리 시대에 몇몇 사악한 추기경들은 죄를 더 지어도 된다는 잘못된 자비를 주려 하고 있습니다.

“성 바오로의 도덕률”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 사례를 들어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바오로 성인은 놀라운 방식으로 도덕률에 대해 접근하고 있는데, (젊은이들에게 가르치는) 긴 훈화를 하면서... 그러면서도 실생활에서는 덕과 악에 대해서 불일치를 보여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이교도(異敎徒) 철학자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바오로 성인에게 있어서 덕행(德行)이란 추상적(抽象的)인 것이 아니고(실생활에서 이루어지는)매우 구체적인 것이며 개인적인 일입니다. 다음과 같은 한마디로 이 덕행에 대해 요약(要約)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아계시나니”(갈라타 2:20) “나에게 있어서 사는 것은 그리스도이시요. “(필립피1:21)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스스로 희생되신 천주의 아들께 대한 신앙 안에 사는 “(갈라타2:20)것이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가 원리이며 끝(목적)입니다. 주님은 우리 가톨릭인들의 알파이자 오메가입니다. 주님은 성총의 원천이며 우리의 사랑과 망덕의 목표입니다. 우리는 그 분에 의해 창조되었고 그 분께 돌아가야 합니다. 더욱이 주님은 원리이자 끝(목적)입니다. 주님은 성부께로 가는 길입니다:”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누구든지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성부께 가지 못하리라”(요왕14:6)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자면, 바오로 성인은 “그럼으로 너희는 천주의 사랑하시는 자식답게 저를 모범할지어다. 또한 너희는 그리스도 너희를 사랑하사 당신을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으로 삼아 우리를 위하여 천주께 드리셨음과 같이 사랑 안에 거닐을지어다.“(에페소 5:1-2) 라고 하십니다.


제가 번역을 살짝 고쳤습니다. 영어로는 대개 따르는 사람(followers)이지만 라틴어로는 모방자( imitatores = imitators )이고 그리스어로는 그 행동을 복제하라, 흉내내라 (μιμηταὶ = mimetai)뜻이니, 우리를 보는 사람들이 우리의 행동을 보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식하게끔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이와 같은 덕행은 말로만 하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몸으로 보여주는 구체적인 것입니다. 이것이 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며 진정한 가톨릭신자이자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토마스 아켐퍼스가 지은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아름다운 작은 책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이 책을 강력히 읽으라고 권고하는 바 입니다. 이 책은 성인들과 성서의 지혜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스스로 질문해 봐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 입장이 되었을 때 어떻게 하실까?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이 주님을 기쁘게 하는 걸까? 내 상황이라면 주께서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주께서 어떻게 하실까? 우리의 처신이 주님에게 상처 주는 일이라면 우리는 결코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천주님의 법규는 우리의 도움이 되는 것이니, 천주님의 뜻은 무엇이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뜻은 무엇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계명은 우리가 억지로 따라야 하는 맹목적인 의무나 강요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 받는 이들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니 (주님의 사랑을 받는)우리가 주님의 계명를 열심히 실현하도록 해야 합니다. 따라서 주님의 계명은 짐이 아니라, 친구이며 올바른 길에 있는 빛입니다.


이것이 바오로 성인께서 우리가 “법률 안에 있지 않고…“(로마6;14, 갈라5:18)라고 쓰신 의미였던 것입니다. 즉 우리는 계명에 짓눌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천주의 법률에 벗어나지 못하여 그리스도의 법률에 매여있는 “(코린토 전 9;21) 것입니다.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기쁘게 하고 그 분의 거룩한 뜻, 그 분의 법규를 즐겁게 준행함으로써, 이 사랑은 우리에게 놀라운 자유, 우리가 천주님의 진정한 자녀가 되는 자유를 줍니다.


성부의 거룩한 뜻에 따라 사랑으로 행하는 자유, 우리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에 힘입어 천주께서 주시는 계명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성인께서 이렇게 쓰십니다. “너희가 만일 영신으로 말미암아 격려되면 이미 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니니라. 성신의 열매란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자애, 인자, 충실함, 유화, 공순, 절제, 정결이니, 이러한 것을 거스르는 법률은 없느니라. (갈라타5:18, 22-23)

사랑으로 맺어진 이 아름답고 열매 있는 생활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참여할 때 성취됩니다. “만일 나를 따르고자 하거든 자기를 끊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지니,“(마테오16:24) 바오로 성인은 분명하게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자들은 자기 육체를 그 정욕과 육욕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라타5;24)


그들은 유혹에 맞서 싸우고 악마에게 조금도 빈틈을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육체의 행실을 모르는 자는 없으리니, 음행, 부정, 파렴치, 음욕, 우상숭배, 마법, 원한, 쟁투, 질투, 분노, 당파심, 소란, 분열, 시기, 살인, 주정, 폭식 등이니라. 나 이미 말한 바를 다시 이르노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천주의 나라를 얻지 못하느니라. “(갈라5:19-21)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에페소인들에게 강하고 분명히 말씀하시길, “음탕함과 또한 온갖 정결치 못한 것이나 탐욕은 너희에게 있어 말에라도 오르게 하지 말아, 마땅히 성도답게 할지라. 그리고 추한 행동이나 어리석은 말이나 점잖치 못한 희롱 같은 것도 행하지 말지니, 대개 이는 다 합당치 않은 것이니라. 너희는 이 대신으로 감사를 올리는 것이 더 마땅하니라. 대저 모든 음탕한 자와 정결치 못한 자와 탐욕 많은 자는 이 우상을 숭배하는 자와 같은 자로서, 그리스도와 천주의 왕국에 있어 상속을 받지 못하는 것은 너희가 잘 알고 또한 깨달는 바이니라. 누구나 헛된 말로써 너희를 미혹(迷惑)케하지 말지니, 대저 이와 같은 것으로 말미암아 천주의 의노(義怒)하심이 불순함의 자식들 위에 내림일새니라.“(에페소5:3-6)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상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도 죄에 죽음으로써 같은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오로 성인은 “그와 같이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었으나 천주를 위하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자들로 여길지라.“(로마6:11)


(우리를 자주 놀라게 하는) 변화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변화는 그 분의 부활 속에서 그 분 편에 우리가 속하게 되는 보증인 것입니다: “성신이 친히 우리가 천주의 의자(義子)임을 우리 정신과 한 가지로 증언하시는도다. 의자면 또한 상속자라, 곧 천주의 상속자요, 또한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니라. 다만 우리는 저와 함께 고난을 당할지니, 이에 우리는 저와 더불어 또한 영화롭게 되리라.“(로마8;16-18)

그래서 선하고 거룩한 가톨릭인들의 도덕은 사랑의 열매, 실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열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죽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불타는 사랑인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도움을 드리고자, 저는 여러분께 여러분 가정의 각방 곳곳에 십자고상이나 성화를 걸어놓으라고 강렬히 권고하는바, 그럼으로써 여러분의 쉽게 눈을 들어 성모님과 성인들과 함께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그 분들을 닮도록, 그래서 그 분들을 기쁘게 하시기 바랍니다. 심지어 여러분의 일터나 트럭 안에도 작은 성화를 쉽게 놓을 수 있고 사무실 책상 위에나 또는 다른 상황에서도 성화, 성물를 놓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억을 불러 일으키는 성화, 성물은 항상 기도하게끔 도와줍니다. “내 눈들은 항상 주께 향하오니“(성영24;15)

아울러 영적인 독서를 강하게 권고하는 바이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성모님 그리고 성인들의 탁월하신 모범을 여러분 마음 속에 남기게 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해서 안됩니다: 나쁜 생각(정결에 반대되는 것, 허영, 교만, 복수, 원한, 서운함 등)을 극복하는 방법은 그러한 생각을 좋은 생각으로 바꾸는 것 입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생각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정의의 거울’이라고 불립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완벽하게 모방하고 닮았으며 그 분 자신이 우리가 성모님의 어린 자녀가 되는 은총의 원천이 되는 성총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마리아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닮는 은총을 얻도록 합시다. 이는 천국으로 가는 황금길입니다. 

성 요셉 성월(聖月)인 이달에, 성인의 위대한 성화(聖化)의 모범을 들여다 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요셉 성인은 예수님과 마리아와 함께 사셨습니다. 그 분은 두 분의 가장 가까운 친구입니다. 요셉 성인을 닮는 것은 그 분께서 살아가신 것처럼 예수님과 마리아와 함께 사는 것이니 요셉 성인처럼 성인처럼 두 분을 기쁘게 하도록 노력합시다.

아울러 성 가정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가족에 대한 의무를 기억나게 해줍니다. 형제에 대한 사랑은 우리 가족 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내 부모, 친척 그리고 우리의 법률적인 가족, 즉, 내 배우자의 부모와 내 배우자의 친척들입니다. 가톨릭인의 결혼은 사회 속에서 사랑의 관계라는 놀라운 관계망으로 짜여져 있으니, 이는 상호 연관이 없는 개인들로 구성된 것이 아닌 가족의 관계망이며, 사랑의 관계로서 함께 묶여진 관계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크게 보아 이러한 자세는 가족 안에서 그리고 사회 안에서도 해당이 됩니다. 많은 인내와 용서가 필요합니다. 주세요 그러면 여러분도 받게 될 것이고, 용서하세요 그러면 여러분도 (주님으로부터) 용서 받게 됩니다. 성 가정의 모범을 확장한다는 마음으로, 천국에서 영원한 보상을 받는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성 요셉이여 이러한 은총을 얻도록 도와주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성비오10세회 아시아 관구 소속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