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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위의 신비와 함께- 천주성삼주일(2022-06-12)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6-13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위(聖三位)의 신비의 함께(2022-06-12)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위의 신비는 모든 영원, 지극히 아름답고, 가장 탁월하며, 최고의 신비로부터 오는 천주님의 내면의 생명이지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신비입니다.
 
 우리가 자연의 법칙, 물리의 법칙, 식물의 법칙, 동물 생명의 법칙, 인간의 법칙을 생각하고 고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인간의 본성을 동물의 본성과 비교했을 때, 우리는 어떤 동물들이 우리보다 더 나은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합니다. (예를 들어, 개들은 우리보다 더 나은 코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들은 그들의 냄새로 사람을 알 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개는 냄새로 사람을 추적할 수 있으나 우리는 그러질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성, 지능으로 모든 동물보다 더 나은 것을 성취합니다. 예를 들어, 인간이 달에 갈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인간의 가장 뛰어난 정신의 작용입니다. 어떤 동물도 그런 적이 없고, 분명히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이 동물을 길들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어떤 동물도 사람을 길들인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영(시편)의 저자는 노래합니다. "모든 것을 당신이 그의 발 밑에 굴복시키셨나이다. 저 모든 양떼와 소들 뿐더러 들판의 짐승들까지도 마찬가지이다." (성영 8:8)

 만약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인간 본성의 위대함과 존엄성을 만드는 우리의 최고의 능력이라면, 우리의 진정한 행복은 그 수준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사용하고 그것을 최고의 현실에 적용하면서 우리의 마음 속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진정한 행복,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천주님, 최고의 실체, 알파요 오메가, 모든 사물의 시작과 끝, 모든 사물의 으뜸의 원인이자 궁극적인 끝에 대한 사색과 사랑에 있어야 합니다. 심지어 이교도의 철학자들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지능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인간의 지능은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각 천신(天神, 천사)는 사다리로 볼 때 위의 더 높은 단계이고, 천주께서는 가장 높은 천신 위에 무한히 높히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로 천주님을 알 수 있을까요? 진실은 우리가 결코 천주님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천주님에 대한 어떤 진리를 여전히 알 수 있다는 것, 이를테면 그분 존재와 그분의 속성(屬性, 특성), 그리고 저 지식은 이미 큰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틀리지 않는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말하길, "최고 존재에 대한 약간의 지식은 세속에 대한 어떤 위대한 지식보다 더 큰 기쁨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본성만으로, 특히 죄의 상처 때문에, 천주님에 대한 지식을 얻기가 어렵고, 그리하여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영적인 사색을 포기하고 세상 것들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속적인 것들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마음과 인간의 본성에 가장 고귀한 것으로 채울 진정한 성취를 줄 수 없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인간이 자신의 영적 능력을 자신의 육신을 섬기는 도구로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인간의) 대단한 고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본성을 치유하고 능력을 높여서 그리하여 저 궁극적인 행복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오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총이 필요합니다. "만민이 너 하나이신 참 천주와, 너 보내신 바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이것이 곧 영생이로다."(요왕17:3) "아무도 천주를 보지 못하였으되, 성부의 품에 계신 독생성자는 친히 설명하시니라."(요왕 1:18)는 것입니다. "내 성부 내게 모든 것을 맡겨 주셨으니, 성부 외에는 아무도 성자를 알지 못하고, 또 성자와 성자 즐겨 지시하여 주는 자 외에는 아무도 성부를 아는 자 없느니라."(마테오 11:2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의 아버지를 드러내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것이 그분의 목적입니다.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죄를 제거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죄를 없애는 것은 그분의 아버지를 드러내고, 우리로 하여금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를 알게끔 하려는 그 목표를 향한 단지 수단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는 천주님에 의하여 그리고 천주님를 위해서 조성된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천주님 안에게서만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밖의 모든 것은 한정되어 있고, 그리고 천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무한쪽으로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어떤 것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무한히 선하신 오직 그분만이 그것을 채울 수 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고백록의 첫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말합니다. “오, 주님, 주께서 그대를 위하여 우리를 조성하셨지만, 우리의 마음은 주 안에서 쉴 수 있을 때까지 쉴 수 없나이다.”
 
 천주님을 찾는 첫 번째 성향은 그분을 향한 큰 갈증(渴症)입니다: "내 영혼은 천주를, 생활한 천주를 갈망하나이다. 나는 언제나 가서 천주의 얼굴을 뵈올 수 있으리요?"(성영 41:3) "가난한 자들이여, 보고 기뻐할지어다. 또 천주를 찾는 너희의 마음이 살게 될지어다."(성영 68:33절) “주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찾으라 그러면 너희는 살 것이다.”(아모스 5:4) "주님을 찾으라, 그리하면 힘을 얻으리라. 그의 얼굴을 항상 찾으라"(성영 104:4)고 합니다. "내 마음은 당신께 말씀 아뢰고, 내 얼굴은 당신을 찾나이다. 주님이시여, 나는 당신의 얼굴을 찾나이다.”(성영 26:8) "내가 천주를 찾았으매, 나의 청을 들어주셨도다. 또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모든 내가 모든 고난에서 나를 건져 주셨나이다."(성영 33:5)

 천주이시여, 당신은 나의 천주이시니, 내가 새벽녘에 주님의 모습을 지켜보나이다. 주님을 위하여 내 영혼이 목말라하오며, 내 육신이 당신을 기리옵기를 마치 물없이 메말라 갈증내는 땅같이 하나이다. 이렇게 나는 당신의 성소(聖所)에서 뵈오니, 이는 당신의 능력과 당신의 영광을 뵙고자 함이로소이다."(성영 62:2-3) 우리는 광야에 있는 것처럼 이 땅 위에 있고, 약속의 땅인 '이상(理想)의 땅'(창 22:2)을 향해서 천국으로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만일 목마르면 내게로 와서 마실지어다."(요왕 7:37) "나는 목말라하는 자에게 생명의 물의 샘에서 값을 받지 아니하고 마시게 하리라."(묵시록 21:6)고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고 또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 이 모든 것들은 외교인(外敎人, 이교도)의 힘쓰는 바이니라. 너희가 이 모든 것이 요긴한 줄을 너희 성부 알으시리니, 이러므로 먼저 천주의 나라와 그 의덕을 구하라. 이 모든 것은 너희에게 더음으로 주시리라.”(마테오 6:31-33) 이렇게 말씀하실 때에, 우리를 이러한 천국의 소망으로 나아가게끔 생각나게 하십니다. 사람은 동시에 오르고 내릴 수 없습니다. 사랑은 영혼의 움직임과 같습니다. 천국과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위를 뵙는 지복직관에 목말라하면서 그와 동시에 세속적인 것들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 요한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세속과 세속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만일 세속을 사랑한다면 성부께 대한 사랑이 그에게 있지 아니하라라."(요한1서 2:15)
  
 천주님에 대한 갈증과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위께 대한 지식을 발전시키기 위한 실용적인 수단은 이들 진리에 대한 묵상과 성경 읽기, 교부들의 저작, 교회박사들과 성인들의 글을 읽는 거룩한 독서입니다. 천주님에 대한 음미(吟味)를 맛볼 수있는 성인들의 글에는 대단한 것이 있는데, 이러한 성인들은 진정으로 천주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기에 성삼위의 진정한 성전이었습니다.

 우리가 혼자 있을 때, 침묵 속에서, 우리 모두는 종종 우리 자신과 내면의 대화를 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친구들과의 대화를 상상합니다. 그리스도인 생활에서, 저 내면의 대화는 천주님과의 대화가 되는 경향이 있으며, 그리고 그것은 지속되도록 성장해야 합니다. 성 바오로는 우리에게 우리의 영혼이 '성전'임을 가르칩니다: "너희는 너희가 천주의 성전이요, 천주 성신이 너희 안에 거처(居處)하심을 알지 못하느냐?"(코린토 전 3:16)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천주님을 사랑하는 영혼이 성부와 성자에 의해 살고 있음을 우리에게  친히 가르치시며 "만일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준행할 것이니, 성부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또 우리 등이 저에게 와 한가지로 거처하려니"(요왕 14:23)라고 하십니다.

 이 신성한 손님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이 얼마나 적은지요! 이것은 불교와는 절대적인 반대편입니다. 불교인들은 열반(해탈), 절대적인 공허(空虛)함을 추구합니다. 반면에 진정한 그리스도교인은 천주님으로 채워지고, 절대적인 충만(充滿)함을 추구합니다! 우리가 천주님의 현존,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위께 고마워하면 할 수록, 우리는 이 최상의 보물에서 우리를 빼앗아 가는 죄악, 죄의 드라마를 더욱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천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 최고의 선물, 천주께서 천주 자신을 우리에게 주신 이 최고의 선물에 대한 가치를 이해하면 할 수록 우리는 그러한 선물을 경멸하는 자, 천주님보다 피조물, 돈, 쾌락을 더 선호하는 자에 대한 지옥의 처벌이 얼마나 정당한지 더 잘 알게 됩니다.

 종도(사도) 성 요한의 첫 서간에서 들어봅시다: “성부 우리에게 어떠한 사랑을 주셨는지를 너희는 볼지니, 우리는 천주의 자식이라 일컬음을 받고 또한 사실로 그렇게 되었느니라. 이로 말미암아 세속은 우리를 모르니라. 대저 그는 천주를 모르는 연고니라. 친애하는 자들아, 우리는 이제 천주의 자식이로다. 우리가 장차 무엇이 될 것인지 아직 명백하지 않으니라. 그러나 이것이 명백하여질 때에는 우리는 천주와 비슷해질 것을 아노니, 대저 사실대로의 저(천주)를 뵈올 것임이니라. 무릇 이러한 희망을 저에게 대하여 가지고 있는 자는 저 거룩하심과 같이 자기를 또한 거룩하게 하느니라."(요한 1서 3장1-3절)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위와 아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복되신 동정 성모 마리아여! 우리가 천주님을 진정으로 목말라하고, 우리에게 약속된 그 복된 지복직관을 애타게 하며, 그리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생활로 우리 자신을 준비하여서, “천주님 현존 안에서 거닐며”(창세기 17장 1절), “육신으로써 천주의 현양(顯揚)하며 저를 모시게”(코린토 전 6:20). 6:20) 하소서. 아멘.

Father François Lais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