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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브라함 희생제사와 전통미사/The Sacrifices of Abraham and Traditional Mass (2014-03-14)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9-10



아브라함 희생제사와 전통미사(2014-03-14)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미사에 관한 법전에서는 성 교회가 구약시대의 세 가지 희생제사, 아벨, 아브라함 그리고 멜키세덱의 희생제사를 기념하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설명하시길, 미사에서 이러한 기념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를 드릴 때, 이들 구약의 위대한 성인들처럼, 똑같은 헌신을 천주께 간청하기 위해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 희생 그 자체는 이들 구약의 희생제사보다 더 완벽하지만 그들 구약시대 성인들의 헌신과 정성은 우리들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합니다.

 

그럼으로, 아브라함의 희생제사를 생각해봅시다. 이 분은 의로운 자이며, 천주님의 친구이며, 기도의 사람이며 천주께 동물로써 희생제사를 드렸는데, 천주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가 그의 자손들의 땅을 여행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 사라는 너무 늙어 아기를 낳을 수 없기에 그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사라가 85세이고 아브라함이 100세였을 때, 천주께서 이사악이란 아이를 주셨는데 이는 실로 기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악은 아브라함의 사랑스런 아들이요, 약속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천주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길, “네 사랑하는 너의 유일한 아들 이사악을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서 내가 네게 지시한 산 그곳에서 그를 번제(燔祭)로 내게 바치라”(창세기 22:2) 이는 지나친 요구사항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바오로 성인이 “신앙을 가져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 이사악을 제헌하려 하였으며, 언약을 받은 저 아브라함은 그 외아들을 제헌하려 하였으니, 대저 저 아브라함은 천주께서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라도 능히 부활하게 하시리라“(히브레아 11:17,19)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자기 나귀를 안장치고, 자기 하인 두 사람과 자기 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번제(燔祭)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일어나, 천주께서 일러주신 곳으로 가니라. 사흘째 되던 날 아브라함이 제 두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보고 자기 하인들에게 말하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 머물러 있거라. 나와 이 아이는 저기까지 가서 경배하고 돌아오겠노라 하며 아브라함은 번제에 쓸 나무를 집어 자기 아들 이사악에게 지우고, 자기 손에는 불과 환도(環刀)를 잡고 저희 둘이서 걸어가더라. 그때 이사악이 아버지에게 아뢰되, “아버지” 대답하길 “오냐, 내 아들아, 왜 그러느냐?” “여기 불도 있고 나무도 있사오나, 번제로 바칠 어린양을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대답하되, “나의 아들아, 천주께서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을 몸소 마련하시리라” 하고 둘이 걸어 가니라. 천주께서 아브라함에게 일러주신 곳에 저들이 이르러, 거기에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은 다음, 나무를 착착 가려놓고 자기 아들 이사악을 꼭 묶어 그를 제단 위의 나무더미 위에 올려 놓았다.“(창세기 22:3-10 )

 

나무를 지고 가는 이사악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이사악은 죽기 위해 요구된 모든 나무를 짊어질 만큼 힘센 어린 소년이 아니었던 것은 틀림없었습니다. 성서의 그 다음 페이지 보면 이사악이 37세 때 사라가 죽었으니, 나무를 지고 간 이사악의 나이는 그리스도처럼 아마 33세쯤 되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 말을 아들에게 전하였을 때, 그는 희생자여서 이사악은 도망갈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133세요, 이사악이 33세였으니 확실히 그는 도망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질 않았습니다. 그는 희생을 받아드렸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존경하고 이사악을 존경(尊敬)합니다. 아브라함은 사제(司祭)로서 그리스도의 모형이며, 이사악은 희생제물로써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그 때 야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그를 부르며 가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매, 그가 대답하되, 나 여기 있나이다 하니라. 이에 말하되, 너는 그 아이에게 너의 팔을 뻗치지 말라. 또 그에게 아무 짓도 하지 말라. 네가 천주를 두려워하여 너의 외아들인 네 자식 조차 나에게 바치길 아까워하지 않았음을 내가 이제는 알았음이니라 하시매, 아브라함이 제 눈을 들어보니 때 마침 숫양 한 마리가 서로 얽킨 나무 가지에 그 뿔이 걸려 있었음으로 아브라함이 그 숫양을 끌어다가 자기 아들 대신 그것을 번제로 바치고. “(창세기22:11-13) 이 숫양은, 즉 '아브라함의 아들', 완벽한 희생의 완벽한 제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구약시대의 모든 희생제물이 임시적이었다라는 신호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지극히 아름다운 이 과정은 인류역사에서 모든 순간 가운데 가장 위대한 모습인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왜 이 모습이 그리 중요합니까? 왜 천주께서 아브라함으로부터 이 같은 희생을 요구하시나요? 희생이란 무엇입니까? 희생이란 흠숭지례(欽崇之禮)의 행위입니다. 무엇이 '흠숭'입니까? 흠숭이란 신덕의 행위입니다. 수도생활의 덕이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천주님을 영예롭게 하는 덕행입니다. 어느 사람을 존경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 분께 그 분의 탁월한 덕행에 입증을 부여해 주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해를 더 잘하기 위해서 우리는 몇 가지 조성된 탁월성을 존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천주께서 말씀하십니다;”네 부모를 공경하라“(출애굽20:12) 성 바오로께서 “제왕을 존경할지라“(베드로 전2:17)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존경해야 할 만들어진 탁월성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는데, 첫째 학문 분야의 탁월성, 예를 들어 탁월한 학문 분야에 업적을 남기면 그들에게 '박사' '교수'와 같은 명칭을 부여합니다. 위대한 발견을 한 과학자들에게 노벨상을 줍니다. 이 상들은 탁월한 과학분야에 입증을 부여해 주는 것 입니다. 낮은 수준에 있어서는 학교에서 뛰어난 학생들에게 상장을 주어 이러한 사례가 되게 끔 합니다. 그래서 어느 학생이 “영어부분에서 1등상, 역사부문에서 2등상”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학문 분야의 탁월함에 대한 존경의 예를 표합니다. 성 교회에서 '교회박사'을 존경합니다. 그리스도 교리에 관한 그 분의 탁월한 지식에 입증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탁월성의 종류는 덕행의 탁월성(卓越性)입니다. 자연스런 수준에 있어서, 예를 들어 우리는 영웅들의 용기를 존경합니다. 어느 집이 불에 타고 있고 어머니는 밖에서 “내 아이가 집안에 있어요”하며 통곡하고 있는 경우에 있어서, 소방관이 그 집에 들어가 자신의 방화복 안에 그 아이를 넣고 구합니다. 그는 탁월한 그의 용기를 기릴만한 특별한 메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비슷한 것으로, 전쟁에서 영웅적인 용기에 대해 수여하는 군인 메달이 있으며, 성 교회에서는 성인들의 영웅적인 덕행을 기려 그 성인들을 존경합니다. 성 교회에서 인정받는, 전통적인 요구사항의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단지 훌륭한 생애뿐만 아니라, 영웅적인 덕행이 있어야 하는 데, 불행하게도 요즘 이루어지는 새로운 시성식(諡聖式)에는 이러한 점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세 번째 탁월성의 종류는 권위에 관한 탁월성입니다. 우리는 권위가 있는 인물들을 존경합니다. 성 바오로께서 말씀하신 대로, 왕, 대통령, 군대에서의 장군, 심지어 회사에서의 사장, 성 교회 내에서 교황, 주교, 사제들은 각자의 수준에 맞는 권위를 갖고 있습니다. “각 사람은 다 상관의 권력에 복종할지니라. 대저 천주로 조차 오지 아니한 권(權)이 없으니, 권리가 있는 곳 마다 그 권리는 천주의 지령대로 되었느니라.“(로마13:1)

네 번째 탁월함은 부모님의 탁월성입니다;”네 부모를 공경하라”(출애굽20;12) 부모들의 특별한 탁월성은 무엇입니까? 근원의 탁월성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많이 갖게 하는 근원, 특히 생명의 근원입니다. 만약 사람이 자기 부모에게 은혜 입은 것이 무엇인지 목록을 작성한다면, 매우 길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위해 부모께서 해 주신 것, 태어난 이후 해 주신 것, 심지어 그 이전 임신 이후 해 주신 모든 것을 생각해 보시오. 이들 다른 탁월함에 대한 존경의 표현은 칭찬, 몸에 존경을 표시하는 것(장군 앞에 군인들이 앞에 서있다 던지) 선물을 드리거나, 허락을 요청하는 것 등 많은 방식이 있습니다.

 

천주께서는 최고의 수준에서 이 모든 탁월함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 분은 분명히 모든 것을 아십니다. 천주께서는 심지어 가장 멀리 떨어진 것, 은하계와 같은 모든 물체뿐만 아니라 우주에 존재하는 가장 작은 모든 입자들과 그들의 모든 위치와 특성들을 시간의 시초부터 끝까지 아십니다.

 

그 분은 여러분의 머리카락 한 올까지 아십니다. 내가 머리카락이 얼마 없지만, 남은 머리카락의 숫자를 알 수는 없지만, 천주께서는 나와 여러분의, 모든 이들의 머리카락 수를 아시고 심지어 우리 몸의 각 세포까지도 아십니다. 모든 물질도 아시고 모든 영적인 일, 우리의 모든 생각, 아담 때부터 끝날까지 모든 이들의 모든 생각과 모든 천사들의 모든 생각까지도 아십니다.

 

천주님은 모든 영적인 일들을 아십니다! 모든 창조된 조물 위에 계시며 완벽하게 아십니다. 천주님의 덕은 최고요, 천주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지극히 지혜롭게, 아름답고, 공정하고, 조화롭고, 인내하고 권능 있고 완벽하게 이루어집니다. 말씀 한 마디로 모든 사물을 조성하셨습니다! 

 

복음서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 한 마디로 백인대장(百人隊長)의 아들이 나았습니다. 주님이 말씀 한 마디로 빵이 그 분의 몸으로, 포도주가 그 분의 성혈로 변화됩니다. 모든 조물을 능가하는 최고의 지배력을 갖습니다. 그 분은 모든 좋은 사물의 근원입니다: “모든 최상의 선물, 모든 완벽한 선물은 위로부터, 변함이 없으시고 대체의 그림자 조차 없으신 빛의 성부로부터 내려 오노니.“(Jac 1:17)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좋은 사물은 천주님으로부터 나옵니다. 이제까지 존재해 온 모든 좋은 사물과 앞으로 천주로부터 존재하게 될 모든 것 말입니다.

 

이 최고의 탁월성 때문에, 천주님은 최고의 경배를 받아야 하고 이 탁월함에 대한 입증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경신지례(敬神之禮)인 흠숭지례입니다. 흠숭이란 주님의 지극히 높으신 탁월함에 대한 입증을 하는, 천주님 만이 홀로 받으시는 최고의 영예입니다.

 

흠숭지례(欽崇之禮)에 대한 많은 행위가 있는 데, 즉 찬양(수도사, 수녀들은 밤낮으로 천주찬양에 대한 성가를 부르며, 사제들 역시 성무일도서(聖務日禱書)에서 주님을 찬양합니다)몸으로 하는 경배(성사 중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장궤하기). 예물(禮物) 드리기(전형적인 예가 헌금, 교무금) 서원(천주께 대한 약속인 종교적 서원) 맹서(증인으로서 천주님을 세우는 것, 즉 현대주의를 거부하겠다는 맹서)인데 흠숭의 가장 중요한 행위는 기도와 헌신입니다.

 

우리는 천주께 드리는 똑 같은 방식으로 조물에 대해 찬양과 기도를 드리지 않습니다. 피조물은 천주님으로부터 받은 그 탁월함에 대해 조성된 조물을 찬양합니다. 어느 다른 탁월성의 근원이 되는 천주님의 최고의 탁월성에 대해 조물주를 찬양합니다. 우리는 성인들에게 우리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천주님으로부터 우리가 은총을 얻게 해달라고 중재자(仲裁者)로서 성인들에게 기도하지만, 모든 성총의 근원에 대해 천주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천주님에게만 해당되는 흠숭지례 행위가 있으니, 그것은 희생제사입니다. 희생제사로써 천주께 대한 최고의 탁월성이 이 유일한 방법으로 입증됩니다. 홀로 천주님만이 생명의 저자요, 모든 다른 선물이 생명에 묶여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있지 않다면, 좋은 것을 누리지 못합니다)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쳤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 홀로 모든 지배 가운데 최고의 존엄성을 갖고 있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가 입증해 보여야 합니다. 참 천주가 아닌 다른 거짓 신에게 희생을 바치는 것은 매우 심대한 우상죄인 것입니다. 천주님을 경외함으로써 지극히 높은 흠숭지례를 지내는 것은 즉 우리가 천주님의 최고 탁월한 존엄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희생제사는 인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인류가 시작될 때부터, 천주께서는 인간들에게 희생제물 바칠 것을 지시하셨습니다. 아담, 아벨, 노에, 셈, 멜기세텍,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욥 등 그리고 천주께서는 모세에게 자세히 지시하여 구약시대의 사제인 아론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희생제사는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구약시대의 희생제사의 가치는 십자가상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사가 완벽한 희생제사라는 신호를 보내는 데에 있어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 거룩한 희생제사는 인류역사의 정점입니다. 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 희생제물은 구약시대의 수세기 동안 준비된 희생제물의 정점의 순간입니다.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시간”(요한 7:30,8:20)이요, 온 생애의 목적이었습니다. “이제 내 마음이 산란하오니, 무슨 말을 하리까? 성부여, 나를 이때에서 구하소서. 그러하오나, 나 이를 위하여 이때에 당하여 왔사오니,”(요왕12:27)

 

그 분은 구원하러 오셨고,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하십니다. “십자가의 성혈을 통하여”(콜로새1:12) 그때부터, 주님의 이 완벽한 희생제사는 구약시대의 희생제사에 종지부를 찍고(헤브레아10:5-9) 모든 이교도들의 제사에 종지부를 찍습니다. 가톨릭이 들어가는 곳 마다, 이교도들의 제사는 쇠퇴하였고 실제적으로 전적으로 종식되었습니다. 이 희생제사로부터 신약시대에 성총이 풍성히 흐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최고의 흠숭지례없이 성 교회를 놔두지 않았습니다. 개신교인들은 어떠한 희생제사도 없으며 최고의 경신지례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성 교회의 희생제사가 되도록 성 교회에 바로 자신의 희생제사, 즉 성체를 주셨습니다. 성모님, 성 요한, 십자가에 가까이 있었던 여인들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모든 신자들에게 세상 종말 때까지 십자가에 다가갈 수 있도록 자신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제대 아래 올 때, 우리는 십자가 아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같은 고위 사제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신약시대의 사제를 통하여 자신을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같은 희생, 몸 그리고 성혈이 제대의 성사 안에서 실제로 주어진 것입니다. 같은 희생제물, 몸으로부터 분리된 이 성혈은 분리 축성으로 인하여(예수 그리스도의 전체가 각각 지체아래 “공존으로 인해” 주어지는 것을 통하여) 조성된 선물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흠숭의 최고이자 가장 완벽한 경신지례에 참여할 수 있는 것으로 인하여, 그 분으로 인하여 천주께 대한 지극히 높으신 탁월성이 인정되고 존경받는 미사의 거룩한 희생제사로 인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 지극한 크신 축복과 성총, 천주님과의 크나큰 친밀감의 일치, 죄인들의 회두에 대한 은총 그리고 많은 종류의 다른 성총에 대해, 미사의 거룩한 희생에서 오는 엄청난 값진 보물에 대해 아주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실제로 성총의 근본적 근원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실제로 그 곳 성체 안에 계시며 우리의 구령을 위해 최고의 값을 치루고 계십니다. 성 바오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당신 친아들도 아끼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 모든 이를 위하여 붙여주신 자시니, 어찌 우리에게 다른 모든 것을 저와 함께 주시지 아니하리요?”(로마8:32)

 

우리의 영혼구령을 위해 주께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주셨기 때문에, 성체 안의 형상으로 자신을 모두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분께 남김없이 우리 자신을 드리고, 우리가 그 분과 함께 희생제물이 되어 우리의 모든 것을 돌려주는 것이 온당하며, 또 그래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관대한 사면, 죄에 대해 정말로 죽고, 성화(聖化)를 추구하고, 3가지 천사적인 서원을 통한 완벽한 생애를 추구하는 성소조차 이 제대 아래에서 옵니다.

 

주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도 그 분을 위해 일하는 있어서 남기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사랑이란 이런 것이니라. 곧 우리가 천주를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라 오직 천주  우리를 먼저사랑하사, 당신 아들을 우리 죄를 위한 속제(贖祭)로 보내신 것이라. 친애하는 자들아, 천주 우리를 사랑하심이 이와 같으신 즉, 우리도 마땅히 서로 사랑하여야 하리라. 어느 때를 물론하고 아무도 천주를 보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우리가 사로 사랑한다면, 천주 우리 안에 머무르실 것이요, 이에 저에게 대한 우리의 사랑이 우리 안에 완전하리라.”(요한 1서4:10-12)

 

십자가 밑에서 계신 성모께서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에게 십자가의 위대한 사랑과 성모님의 관대(寬大)하심을 얻을 수 있도록 간청(懇請)합시다.아벨, 멜기세덱과 함께 아브라함이여, 당신들의 희생제사를 드리심과 같은 지극한 헌신으로 우리가 미사에 참여하게 우리를 도우소서.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성비오 10세회 아시아 관구 소속 사제)


The Sacrifices of Abraham and Traditional Mass


My dear brethren,
In the Canon of the Mass the Church commemorates three sacrifices of the Old Testament: the sacrifices of Abel, Abraham and Melchisedech. St Thomas Aquinas explains that this commemoration is done in order to ask for the same devotion as these great Saints in our offering of the Sacrifice of Christ: the Sacrifice of Christ in itself is more perfect than the sacrifices of these Saints, but the devotion of these Saints is much greater than our devotion.


So let us consider the Sacrifice of Abraham: he was a just man, friend of God, man of prayer, used to offer some sacrifices of animals to God, Who had promised him to give the land in which he was travelling to his descendants, but he had not yet any children because his wife Sara was barren and getting very old. However, when she was 85 years old and Abraham was 100, God gave them a child, Isaac, great miracle indeed! Isaac was thus the child of the promise, beloved of Abraham. But one day God said to Abraham: “Take thy only begotten son Isaac, whom thou lovest, and go into the land of vision: and there thou shalt offer him for a holocaust upon one of the mountains which I will show thee” (Gen. 22:2). Now that is a tough request! But Abraham did not hesitate: he knew that God who was able to give him a child by miracle was also able to raise that child from the dead, as St Paul says: “By faith Abraham, when he was tried, offered Isaac: and he that had received the promises, offered up his only begotten son… accounting that God is able to raise up even from the dead” (Heb. 11:17, 19).

“So Abraham rising up in the night, saddled his donkey: and took with him two young men, and Isaac his son: and when he had cut wood for the holocaust he went his way to the place which God had commanded him. And on the third day, lifting up his eyes, he saw the place afar off. And he said to his young men: Stay you here with the donkey: I and the boy will go with speed as far as yonder, and after we have worshipped, will return to you. And he took the wood for the holocaust, and laid it upon Isaac his son: and he himself carried in his hands fire and a sword. And as they two went on together, Isaac said to his father: My father. And he answered: What wilt thou, son? Behold, saith he, fire and wood: where is the victim for the holocaust? And Abraham said: God will provide himself a victim for a holocaust, my son. So they went on together. And they came to the place which God had shown him, where he built an altar, and laid the wood in order upon it: and when he had bound Isaac his son, he laid him on the altar upon the pile of wood. And he put forth his hand and took the sword, to sacrifice his son”(Gen. 22:3-10). Isaac carrying the wood is the image of Christ carrying his cross. He must not have been such a young boy to have the strength to carry all the wood required for the holocaust: in the Scriptures the next passage is the death of Sara when Isaac was 37: so Isaac might have been… 33 when he carried that wood, as Christ! Now when Abraham broke the news to him, that he was the victim, he could very well have … run away! Abraham was 133, Isaac was 33; he sure could have escaped. Yet he did not; he accepted to be the victim. We admire Abraham; we should admire also Isaac! Abraham was image of Christ as priest; Isaac was image of Christ as victim.


“And behold an angel of the Lord from heaven called to him, saying: Abraham, Abraham. And he answered: Here I am. And he said to him: Lay not thy hand upon the boy, neither do thou any thing to him: now I know that thou fearest God, and hast not spared thy only begotten son for my sake. Abraham lifted up his eyes, and saw behind his back a ram amongst the briers sticking fast by the horns, which he took and offered for a holocaust instead of his son” (Gen. 22:11-13). This ram signifies all the sacrifices of the Old Testament which were temporary until the time the “Son of Abraham” would come, our Lord Jesus Christ, perfect Victim of the perfect Sacrifice.


This is a most beautiful passage of the Old Testament, that signifies the greatest of all moments in human history: the Sacrifice of our Lord Jesus Christ on the Cross. Why is this so important? Why would God ask such sacrifice from Abraham? What is a sacrifice? Sacrifice is an act of worship. What is “worship”? Worship is an act of the virtue of religion. What is the virtue of religion? It is the virtue by which we honour God. What is it, to honour someone? It is to give him a testimony to his excellence. St Thomas Aquinas explains all this.


To understand better, it is useful to consider that we may, we should, honour some created excellences: for instance, God says: “honour thy father and mother” (Ex. 20:12) and St Peter: “Honour the king” (1 Pet. 2:17). There are four kinds of created excellences which we honour: first, the excellence of science. For instance, we give titles such as “doctor, Professor” to people who have acquired an excellent science; we give Nobel prizes to scientists who made great discoveries: these are testimonies rendered to the excellence of their science. At a lower level, it used to be the practice in schools to give prizes to the best students: thus one would get the “first prize in English, the second prize in history, etc.” So we honour the excellence of science. In the Church we honour the “Doctors of the Church”, i.e. we give testimony to the excellence of their knowledge of the Doctrine of Christ.


Second kind of excellence, that of virtue: at the natural level, we honour for instance the courage of heroes. For instance if a house is burning, and a mother outside mourns: “my child, in the house…” and a firefighter goes into the house and puts the child under his cope and saves the child, he may get a special medal, to honour the excellence of his courage. Similarly there are military medals for heroic courage in wars. In the Church we honour the Saints for their heroic virtues. To be a canonised Saint, one needs not merely a good life, one needs the heroicity of virtues (traditional requirement, unfortunately no longer found in new canonisations).


A third kind of excellence is the excellence of authority: we honour those who have authority. We honour the kings, as St Peter said, the president of countries, the generals in the army, even the bosses in companies, and in the Church we honour the Pope, the bishops, the priests, each at his own level of authority. “Let every soul be subject to higher powers [=authority]: for there is no power but from God: and those that are, are ordained of God” (Rom. 13:1).


A fourth kind of excellence is that of parents: “honour thy father and mother” (Ex. 20:12). What is their particular excellence? It is the excellence of origin: they are at the origin of so many goods the children have, especially of life. If one would make a list of what he owes to his parents, it would be a very long list! Try to think of all what they have done for you and given you since your birth, and even before, since your conception!


There are many ways by which we honour these difference excellences, by praise, by bodily marks of respect (e.g. standing in their presence: think of soldiers before their general), by gifts, by asking permissions, etc.


Now God possesses ALL these excellences at the supreme degree! He knows absolutely everything: He knows not only all the big things like galaxies, even the remotest ones, but all the smallest particles in the whole universe, all their locations and properties since the very beginning of time till the end. He knows every single hair of your head: I don’t have many left, but I still don’t know how many are left! God knows, and mine and yours and everyone’s hair, and even each cells of our bodies. He knows everything material. He knows also all spiritual things, all our thoughts, all the thoughts of all men since Adam till the end of time, and all the thoughts of all the Angels! He knows everything spiritual. And above every created thing, He knows Himself perfectly! God’s virtue is supreme: all what God does is perfectly well done, perfectly wise, beautiful, just, merciful, harmonious, patient and powerful. God has the supreme authority over all things: He spoke one word and all things were made! In the Gospel, our Lord Jesus Christ says one word and the son of the Centurion is healed miles away; He says one word and the bread is changed into His Body and the wine into His Blood. He has thus supreme dominion over all things. And He is at the origin of all good things: “Every best gift, and every perfect gift, is from above, coming down from the Father of lights, with whom there is no change, nor shadow of alteration” (Jac. 1:17). Every good thing we have comes from God. Every good thing that has ever existed and shall ever exist comes from God.


 Because of this supreme excellence, God deserves supreme honour, testimony to this supreme excellence. This is worship: worship is the supreme honour, given to God alone to testify of His supreme excellence. There are many acts of worship: e.g. praise (monks and nuns singing the praises of God day and night, priests too in their breviary…), bodily adoration (e.g. kneeling down in front of our Lord Jesus Christ in the Blessed Sacrament), offering of gifts (typical: church collection), vows (=a promise to God: e.g. religious vows), oath (taking God as witness: e.g. anti-modernist oath); a very important act of worship is prayer and devotion. Now we do not give these praises or prayers to creatures the same way as to God: we praise creatures for the excellence that they have received from God; we praise the Creator for His supreme excellence from which comes any other excellence. We pray to the Saints as intercessors, asking them to pray for us, i.e. to obtain grace for us from God (“holy Mary, pray for us sinners now and at the hour of our death”) but we pray to God as to the source of all graces.


But there is one act of worship that is reserved to God alone, that is sacrifice; by sacrifice the supreme excellence of God is testified in a unique manner. Since God alone is the author of life, and since all other gifts are bound with life (we cannot enjoy any other good unless we live), by offering Him the immolation of a victim, we testify that He alone has supreme excellence in all domains. To offer sacrifice to any other one, who is not God, is the very grievous sin of idolatry. Being the supreme act of worship, by which we honour God, i.e. we acknowledge God’s supreme excellence, sacrifice has always had a very important place in human life. From the very beginning of mankind, God had instructed men to offer sacrifices: Adam, Abel, Noah, Sem, Melchisedech, Abraham, Isaac, Jacob, Job, etc. Then God gave very precise instructions to Moses, instituting the Old Testament priesthood of Aaron. But all these sacrifices were imperfect: their value came from the fact that they signified the Perfect Sacrifice, the sacrifice of our Lord Jesus Christ on the Cross! That Holy Sacrifice is the summit of the whole human history: it is the culminating point of the centuries of sacrifices of the Old Testament preparing it; it is the goal of the whole life of our Lord Jesus Christ, “his hour” (Jn. 7:30, 8:20…) “Now is my soul troubled. And what shall I say? Father, save me from this hour? But for this cause I came unto this hour” (Jn. 12:27). He came to save, and He saves through His Sacrifice, “through the Blood of His Cross” (Col. 1:20). And from then on, this Perfect Sacrifice put an end to the sacrifices of the Old Testament (Heb. 10:5-9); the Sacrifice of Christ also put an end to all the pagan sacrifices: wherever Christianity entered, these pagan sacrifices receded and practically entirely ceased. And from this Sacrifice grace flows in abundance in the New Testament.


Now our Lord Jesus Christ did not leave His Church without that supreme act of worship; Protestants don’t have any sacrifice, they don’t have the supreme act of worship. But Christ rather gave his very Sacrifice to His Church, to become the sacrifice of the Church : the holy Eucharist. He willed that not only Our Lady, St John and a few holy women be close to His Cross, but that every one of His faithful  all over the world until the end of time be able to come close to His Cross: when we come to the foot of the altar, we are as if we were at the foot of the Cross: it is the same High Priest, our Lord Jesus Christ, Who offers himself through the ministry of the New Testament priest; it is the same Victim, the Body and Blood of our Lord Jesus Christ, really present in the Sacrament of the altar; it is the same immolation, the separation of this Blood from the Body, sacramentally made present by the separate consecration (though the whole of Jesus is present “by concomitance” under each species).


Therefore we should greatly appreciate the immense value of the Holy Sacrifice of the Mass, by which we are able to attend the supreme and perfect act of worship, by which the supreme excellence of God is acknowledge and honoured as is due to Him, and by which we receive in return most excellent blessings and graces, the remission of sin, graces of sanctification and holiness, of greater and greater intimate union with God in Christ Jesus our Lord, graces of conversion for sinners, and many other graces of all kinds.


Indeed, the very source of grace, our Lord Jesus Christ is really present there, and offers the supreme price of our salvation. As St Paul says, “He that spared not even his own Son, but delivered him up for us all, how hath he not also, with him, given us all things?” (Rom. 8:32).


Since He gave His whole self for us, for our salvation, since He gives us Himself totally in Holy Communion, it is most just and due that we give Him back our whole self in return, that we offer ourselves without reserve, that we become one victim with Him. Thus from the foot of the altar comes all the generous resolutions, to really die to sin, to search for holiness, even vocations to pursue the life of perfection through the three evangelical vows. When we consider what He has done for us, we spare not ourselves in what we should do for Him! “In this is charity: not as though we had loved God, but because he hath first loved us, and sent his Son to be a propitiation for our sins. My dearest, if God hath so loved us; we also ought to love one another. No man hath seen God at any time. If we love one another, God abideth in us, and his charity is perfected in us” (1 Jn. 4:10-12).


May Our Lady at the foot of the Cross obtain for us her great love of the Cross and her generosity in responding to Christ’s love! And may Abraham, together with Abel and Melchisedech, help us to participate at Mass with the same devotion with which they offered their sacrifice! Amen.


Fr. F. Lais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