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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르페브르 대주교의 공개서한 09. 변화된 신학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9-18



르페브르 대주교 공개서한

9. 변화된 신학

9. The New Theology


 새 교리문답을 접한 세대를 가만히 살펴보자면, 교리문답으로 인한 폐해가 이미 드러나고 있다. 첫 강좌를 개설하던 1970년부터 연학성성(硏學聖省 - 모든 신학교와 가톨릭 대학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에서 요구한 대로 연간 영성(靈性)을 우리 신학생들의 학습 계획에 포함시켰었다. 영성에는 금욕주의, 신비주의, 묵상과 기도 속에 이루어지는 수련, 완덕, 초자연적인 성총, 성신의 존재에 관한 연구가 포함되어 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이를 다시 생각해야 했다. 진정한 사제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세속 생활을 버리고 내적 생활을 더욱 심화시키며 기도에 몰두하고자 하는 소망이 넘쳐 입학한 그 청년들에게는 이 프로그램이 우리 신앙에 관한 기본 관념조차도 충분히 담겨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청년들은 그런 것들을 전혀 배우지 않은 것이었다. 영성의 해 일년 내내 교리문답을 가르쳐야 했다!

 

 여러 차례 에콘(Ecône)의 기원에 관하여 이야기한 바 있다. 사제 지망생들은 맨 처음에는 스위스의 시온(Sion)과 마티니(Martigny) 사이에 위치한 발레(Valais)의 수련소에서 영성의 첫 해를 이수하게 되어 있었다. 그 후로는 프리부르(Fribourg)에서 대학 강좌를 이수할 계획이었다. 프리부르의 대학교에서는 참된 가톨릭 교육을 시켜 줄 수 없기에 (에콘)신학교가 그 모양새를 서둘러 완비했다. 교회가 교도 기관이나 최소한 강론하는 기관의 자격으로 신학, 교리법, 전례 및 교회법에 관한 대학 강좌를 고찰하는 것은 항상 있는 일이었다. 이제는 거의 모든 가톨릭 대학에서 가톨릭 전통 신앙을 가르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하다. 자유 유럽에서도, 미국에서도, 남아메리카에서도 제대로 가르치는 사람을 볼 수 없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관해서 언제나 신학적인 연구라는 명목으로 우리의 신앙에 맞서는 의견을 표명하는 교수 몇 사람이 있다.


  나는 일찍이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의 신학 교수단의 한 석좌 교수가 미사 중의 우리 주님을 바이로이트 페스티발(Bayreuth Festival)에서 연주되는 바그너의 작품에 비유했다는 것을 말한 적이 있다. 그에게는 더 이상 새 미사(Novus Ordo)에 관한 의문이 아닌 것이다. 세상이 그 같은 일은 대수롭지 않게 그냥 묻어둘 정도로 급변하고 있다. 그의 생각을 보면 집단에서 빠져 나올 성체를 예상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는 의미도 잘 모르면서 성체 신앙에 대한 시대적 조류 및 표현(Contemporary Thought and Expression of Eucharistic Faith)이라는 책에서, 한곳에 모여 무리를 이룬 구성원들이 그들 가운데 계실 그리스도,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면주(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계실 그리스도 안에서 친교의 기분을 창출하리라고 예측한다. 그는 성체를 일러 말하길, ‘유효한 표시’라고 하는 것을 ‘우스꽝스럽다’며 조롱하는데, “그런 종류의 일은 더 이상 이렇다 저렇다할 필요가 없다. 우리 시대에는 사리에 맞지 않는 얘기다”라고 한다.


  자기를 가르치는 교수, 그것도 석좌 교수에게서 그런 소리를 듣는 젊은 학생들과 수업을 듣는 젊은 신학생들이 조금씩 오류에 물들고 말 것이 뻔하지 않은가? 그들은 가톨릭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훈련을 받고 있는 것이다. 바로 얼마 전에 프리부르에서 도미니꼬회원인 교수가 혼전(婚前)의 성관계가 정상적이고 또한 바람직하며 이를 주입시키는 것을 들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가톨릭이 아닌 (엉뚱한)교육훈련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신학생들은 또 다른 도미니꼬회원을 알았었는데, 그가 미사 중의 전문(全文)에 관하여 새로운 해석을 내려 보라고 지도하면서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대들이 사제인 경우에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고 했단다. 그러한 표양을 따라가면 안 된다.


 암스테르담에서 신학 교수단에 속해 있는 스물더스(Smulders)라는 이는 성 바오로와 종도 성 요한이 예수께 대한 관념을 천주 성자라고 한 것은 고안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천주강생에 관한 교리를 거부한다.


 님야에겐(Nimjaegen) 대학의 쉴레벡스(Schillebeecks)는 지극히 터무니없는 생각을 늘어놓으면서, (성변화에 관한)신덕도리가 시대에 따른 역사적 조건에 좌우된다는 내용의 ‘의미 변화’를 생각해 냈다. 그리고 구원에 관한 교리에는 사리에 전혀 맞지 않는 사회적이고도 세속적인 설명을 덧붙인다.


 튀빙겐(Tbingen)에서 한스 큉(Kung)은 가톨릭 신학 강좌에서 교수 금지를 당하기 전에 성 삼위일체, 동정녀 마리아 그리고 성사의 신비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였고, 예수에 대해서는 ‘신학상의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대중적 이야기꾼이라고 묘사했다.


 뷔르쯔부르크(Wrtzburg) 대학의 슈나켄부르크(Snackenburg)는 성 마두(마태오)가 베드로의 수위권을 입증하려는 뜻에서 “그대는 그리스도라”는 고백을 꾸며낸 것이라고 비난하였다.


 최근에 세상을 뜬 칼 라너(Rahner)는 자신이 담당했던 뮈니히(Mnich) 대학의 강의에서 항상 우리 주님을 ‘자연적으로 잉태된’ 사람이라고 함으로써 천주강생을 실질적으로 부인하면서 원죄 및 성모 무염시잉모태(주: 성모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되심)를 부인하고 신학적인 다원론을 제기함에 따라 성전(聖傳)을 최대한 축소시켰다.


  저들은 모두 신 현대주의 대변자들을 인도함으로써 크나큰 칭송을 받는다. 여론에서 저들의 이론이 중요하다는 것이 확인되면, 세계 곳곳에 알리는 방식으로 그 이름을 언론이 지원해 준다. 그리하여 저들이 내세우는 것이 마치 신학 전부인 것처럼 교회가 변화되었다는 흐름에 찬동하는 지지를 얻어낸다. 저들은 가끔 가벼운 제재로 인하여 방해를 받기도 하지만, 그러는 중에도 파괴적인 가르침을 여러 해 동안 계속할 수 있었다.


 정기적으로 신학자 자격의 한계에 관한 주의사항을 교황들은 발표하게 되어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어이없게도 아주 최근에 “각자는 가톨릭다운 정체성을 잃지만 않는다면, 정의(定義)된 신덕도리, 기본적인 판단 기준을 외면한다고해서 이탈하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육신 부활을 부인(否認)하는 책에 자기 이름을 내준 쉴레벡스, 한스 큉과 포이에(Pohier)는 질책을 받기는 했지만 단죄(斷罪)을 받지 않았다. 또한 신학적 연구라는 명목으로 정교(政敎)의 관계, 이혼 그리고 다른 기본적인 의문들에 관하여 가장 믿지 못할 이론이 그레고리안(Gregorian)을 포함한 로마 대학에서 허가되리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었는가?


  교회가 늘 신앙의 재판소라고 밝힌 신앙교리성성(Holy Office)을 폐지한 것은 위에서 언급한 악폐에 지극히 좋은 조건이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때까지는 평신도이건, 사제이건 누구든지 어떤 조항에 대해서 신앙교리성성의 의견에 복종할 수 있었고, 저작물에 대해서도 가톨릭 교리에 일치하는가? 일치하지 않는가? 교회의 입장을 물어 볼 수 있었으며, 주교라면 더욱 그렇게 할 수 있었음은 두말할 것이 없다. 1개월 또는 6주 정도가 지나고 나서 신앙교리성성은 다음과 같이 “이는 옳고 저것은 그르다는 것이 명쾌해야 한다, 어느 부분은 참되고 어느 부분은 그르다 . ......”대답하였다.


  그렇게 해서 모든 문서가 철저히 조사되고 그에 따른 판결이 명쾌하게 내려졌었다. 다른 이의 저작물이 재판소에 제소된다는 것을 알고 쇼크를 받았는가? 그렇다면 문명사회에서는 어떤 일이 진행되는지를 살펴보자. 헌법에 일치하는 것은 무엇이고 일치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헌법재판소가 있지 않은가? 개인이나 집단에 영향을 주는 사건을 다루는 재판소가 있지 않은가? 출판물 표지의 그림이 윤리성에 위배되는 경우에, 최근 여러 나라에서 그 허용 범위가 상당히 완화되어 있기는 해도, 죄가 되는 포스터나 잡지가 공공연하게 판매되는 것에 반대하는 뜻으로서 재판관에게 윤리성 문제를 중재해 달라고 청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교회에서는 재판소가 더 이상 용납되지도 않았고 판결을 내리거나 징계할 수도 없었다. 현대주의자들은 개신교가 그랬던 것처럼, 자기들한테 유리한 단 한 구절인 “너희가 판단하지 말라”만을 발췌해 활용하였다. 그러나 저들은 우리 주님이 곧바로 이어 말씀하신 사실을 무시해 버리고 있다.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 ..... 그 열매로조차 저들을 알아볼지니.”


 가톨릭인이여, 자기 형제들의 허물과 개인적 행동에 대하여 경솔하게 판단해서는 안 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각자 개인의 신앙을 지킬 것도 명령하셨으니, 읽거나 듣도록 주어지는 것에 관하여 비판의 눈길을 던지지 않고서 어떻게 그리 할 수가 있겠는가? 결정하기 어려운 의견은 교정권의 소관이 될 수 있기에, 그것이 바로 신앙교리성성이 있는 목적이다. 그러나 (공의회)변혁이 있고 나서 신앙교리성성이 스스로를 고작 “신학 연구기관” 정도밖에 안 되는 것으로 정의(定議)해 버렸다. 엄청난 차이가 아니고 무엇인가.


  나는 이전에 도미니꼬회의 총 장상이었던 브라운(Browne) 추기경에게 질문했던 것을 기억하고있는데, 그는 오래 동안 신앙교리성성에 재직했었다, “예하, 이것이 근본적인 변화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단지 피상적인 변화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대답하기를 “오, 변화는 근본적입니다”.


  교회의 신앙을 위한 재판소가 위와 같은 이유로, 신학자 그리고 종교 문제에 관하여 저술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의무를 더 이상 다하지 못한다고 해서 거의 또는 전혀 비난받지 않는다 고 하더라도 그리 놀랄 만한 일이 못되는 것이다. 오류가 곳곳에 널려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저들은 대학 강좌로부터 시작하여 교리문답 및 제일 멀리 떨어져 있는 본당의 사제관에까지 널리 퍼져 있다. 이단의 독극물이 마침내 교회 전체를 오염시켜 버렸기에 성직자의 교정권이 매우 심각한 위기에 처한 것이다.


  가장 터무니없는 논조(論調)가 소위 이러한 신학자들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데 이용된다. 리용(Lyons)의 교수인 뒤꼭(Duquoc) 신부가 프랑스 전역을 돌아다니며, 여자 및 신자들에게 잠정 사제직을 부여할 수도 있다고 강의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양식 있는 여러 신자들이 여기저기서 반대하고 나섰으며, 주교 한 명은 프랑스 남부에서 그런 풍파를 일으키는 강론자를 반대하는 확고한 입장을 취했다.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 그러나 라발(Laval)에서 스캔들을 겪은 평신도는 자기를 담당하는 주교에게서 다음과 같은 답변을 들어야 했다. “이럴 경우 교회 안에서 언론의 자유를 지키는 것은 절대적인 우리 의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런 언론의 자유라는 생각을 도대체 어디서 그는 끌어냈을까? 성교규계(교회의 법규)에 관해 완전히 외계인임은 물론 그것을 변호하는 것이 주교의 절대적인 의무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는 주교의 책임이 완전히 뒤집힌 것에 해당되는데, 본디 주교의 책임이란 분명 신앙을 굳건히 지켜서 천주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신자들을 이단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공식적인 분야의 사례를 들어야겠다. 내가 개인을 비판하려고 이 책을 쓰는 것이 아님을 독자들이 믿어 주었으면 좋겠다. 이는 또한 신앙교리성성의 한결같은 자세이기도 했었다. 신앙교리성성은 해당되는 사람은 조사하지 않고 오직 저작물만을 조사할 뿐이었다. 징계를 받은 신학자는 신앙교리성성이 자기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자기 책 중의 하나를 단죄했다 하여 불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신앙교리성성은 저서만을 단죄한 것이지 저자를 단죄한 것이 아니었다. “이 책에는 교회의 전통 교리와는 다른 내용이 들어 있다”고 한 것이다. 바로 그거다! 그 저자에게까지 거슬러 올라 갈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의 의향 그리고 유죄 여부는 또 다른 재판소의 소관, 즉 고해성사의 소관인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