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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와 바오로 6세 교황과의 대화 (1976년) -1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12-12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와 바오로 6세 교황과의 대화 (1976년) -1
June 18, 2018/By fsspx.news
 

출처와 상태


2018년 5월 16일 사피엔자(Mgr. Sapienza)의 저서 출간으로 카스텔 간돌포(Castel Gandolfo)에서 1976년 9월 11일 교황 바오로 6세와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의 유명한 만남를 재현한 두 가지 자료가 있다.



이 사건에 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첫 번째 소식통은 1976년 9월 12일과 18일에 기록된 두 차례의 회의에서 에콘(Econe)의 신학생들에게 즉각 이야기를 전한 르페브르(Lefeebvre0 대주교 자신이었다. 그는 자신의 전기 작가인 티시에르 드 말레르(Bishop Tissier de Mallerais) 주교가 준 설명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역자 주: <마르셀 르페르브> 전기 661페이지에 더 자세히 나옵니다)


지금까지 비밀로 남아있었던 두 번째 소식통은 "가능한 한 충실하게" 작성한 만남의 필사자이다. 대담의 말은 교황청 국무부를 대신한 베넬리 추기경(Cardinal Benelli)이 서면으로 작성 것으로서 8페이지로 타이핑된 것이다.



르페브르(Lefebvre) 대주교의 두 차례의 만남은 회의 직후에 신학생들에게 즉각적이고 생동적인 반응이었지만, 대화의 모든 순간에 대한 모든 세부 사항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베넬리(Benelli) 추기경이 작성한 구어적인 설명은 사적인 대담의 사실적인 녹음으로, 교황과 그의 협력자들에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저자는 대화의 시작(10:27)과 끝(11:05)을 철저히 기록했다.

 

바오로 6세의 서론적인 비난(The Introductory Indictment of Paul VI)


두 소식통에 의해 보고된 만남의 시작은 성비오10세회의 창립자에 대한 분명한 비난이었다. 대주교는 나중에 교황의 비난을 "폭풍(a storm)"이라고 요약하였다: "당신은 나를 단죄하네요. 내가 현대주의자이고 개신교인이라고. 이는 참을 수 없어요! 당신은 사악한 일을 하고 있소“


베넬리(Benelli) 추기경의 언어적 설명은 이 비난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준다. "내 앞에서 나는 형제, 아들, 친구를 발견하기를 원했소."라고 바오로 6세(Paul VI)는 말했다. 그는 계속해서 "불행하게도, 그대가 취한 입장은 반(反) 교황의 입장이오. 그것은 모든 말과 행동, 그리고 일반적인 태도에 있어 모든 것을 뛰어 넘는 것이요."


"... 사람이 아니며, 교황이요, 그리고 그대는 최고의 수호자인 교황의 신앙이 불충실하다고 교황을 판단했소. 이것은 역사상 처음 발생한 일일 것이요. 당신은 전 세계에 교황이라는 자가 신앙이 없고, 그가 믿지 않는다고, 그가 현대주의자... 등등이라고 말했어요. 물론 나 자신도 겸손해야합니다. 하지만 그대는 세상 사람들 눈앞에서 지독히 끔찍한 행동을 했소.“


르페브로(Lefebvre) 대주교의 답변: 교회 상황에 의해 찢어진 주교


르페브르 대주교는 자신의 말이나 글들 중 몇 가지가 부적절했을지 몰라도 이를 인정하면서,  그가 교황을 공격하려고 의도한 적이 결코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다른 곳에서 있었다. 그것은 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로 교회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상황은 너무나 커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정도입니다. 이러한 모든 변화를 통해 우리는 신앙을 잃을 위험에 처하게 되거나, 또는 불순종하는 느낌을 주게 됩니다. 고위성직자는 덧붙이길, "무릎을 꿇고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그러나 제 양심에 거슬러서 갈 수는 없습니다.“


프랑스 주교는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저는 어느 운동을 만든 사람이 아니며, 찢어지고 어떤 상황을 받아드리지 않는 이들은 신자들입니다. 저는 '전통주의자들'의 지도자가 아닙니다. 저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로 인해 찢어진 일개 주교이며, 공의회 이전에 어느 주교가 했던 것처럼 사제를 양성하려고 시도한 일개 주교입니다. 저는 공의회 이전에 제가했던 것처럼 정확하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거룩한 교회의 건강한 전통에 순종하여 사제를 양성하는 이유 때문에 어떻게 갑자기 제가 비난을 받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교황은 계속해서 이야기하라 하였고, 그래서 르페브르(Lefebvre) 대주교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많은 사제들과 신자들은 에큐메니칼 공의회인 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에 시작된 경향인 전례; 종교적 자유; 사제양성; 교회와 가톨릭 정부 간의 관계; 개신교와 교회의 관계를 받아들이기가 어렵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이런 모든 것이 건강한 교회 전통에 어떻게 부합(符合)하고 촉진되어야 하는 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저는 이것을 생각하는 유일한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그룹이 형성되었고, 그룹을 형성한 그들은 저에게 자기들을 버리지 않을 것을 촉구합니다...


언론에 의해 불이 붙어서 생긴 분쟁과 중상(中傷)에 상관없이 르페브르 대주교는 항상 그가 처한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것은 2차 바티칸공의의 이름으로 개혁한 결과 일 뿐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교황 바오로 6세가 자신의 추기경들에게 4개월 전에 말했던 것처럼 그가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 바로 개혁이었다. 그것이 그 사안의 핵심이었다.


이러한 개혁 뒤에는, 바로 신앙이 위험에 처해있다는 것이었다. 9월 11일 대담으로부터의 보고서는 분명히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툴(Tulle)의 대주교(르페브르)는 설명했다.


“저는 신앙에 따라, 신앙 안에서 사제를 양성하려고합니다. 저는 다른 신학교 모습에서 끔찍한 고통을 겪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그들의 습관에 신실한 사제와 수도자들이 주교에 의해 비난을 받고 멸시받는 반면에,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은 받아들여집니다."


귀머거리 대화


교황은 "공의회와 전통의 법인 교회의 효과적인 법을 현행 상 지켜지지 않는 어떤 특정 학대“ 를 없애기 위해 고집스럽게 일한다고 주장했다"고 반응했다. 교황은 르페브르 대주교가 "현재와 미래의 필요에 부응하면서 과거에 대한 교회의 충성을 보장하기 위한" 교황의 말과 행동을 보고, 이해하려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음을 비난했다. 


성하는 계속하길, "우리는 이러한 과잉을 후회하는 첫 번째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그리고 단호한 결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구제책은 교회의 권위를 무시할 순 없습니다. 이것을 여러 번 그대에게 글을 썼는데, 그대는 주의를 전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르페브르(Lefebvre) 대주교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반항적 반응과 싸움에 동기를 부여하는 구체적인 어려움을 설명함으로써 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는 2차 바티칸공의회 에 의해 소개된 가장 중요한 변화인 종교의 자유에 관한 주제에 관해 꺼냈다: "공의회 자료에서 우리가 읽은 것은 전임 교황들이 말씀하신 모든 것에 반대됩니다."


그러나 바오로 6세는 세부 사항에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이 주제가 듣는 곳에서 다루어 질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대담자의 당혹감에 주목했다. 그러나 "나를 걱정하게 하는 것은 이런 당혹감이 아니오. 그것은 공의회에 대한 그대의 태도입니다.“


다시 한번 언급하건대 교황은 성비오10세회의 신앙과 그 단체의 공적인 선언에 관련된 교리 문제에 관해 듣고 싶지 않았다. 그는 르페브르(Lefebvre) 대주교의 반역적이고 불순종한 태도에 초점을 맞추기를 더 좋아했다. 1975년 6월 29일 바오로 6세가 대주교에게 쓴 것처럼, 결국 대주교는 "어떤 면에서는 니케아(Nicaea) 공의회보다 훨씬 더 중요한 권위를 가진 에큐메니칼 공의회"에 불순종했다.


뒤따라오는 대화는 가장 잘 설명이 된다.


르페브르(Lefebvre) 대주교: "저는 공의회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의회에서 담고 있는 일부 행동에 반대합니다."


바오로 6세(Paul VI): "그대가 공의회에 반대하지 않는다면, 그 모든 문서에 충실해야합니다."


르페브르(Lefebvre) 대주교: "그렇다면 공의회가 말하는 것과 성하의 전임 교황들이 말한 것 사이에서 선택해야만합니다."


바오로 6세(Paul VI): "내가 말했듯이, 나는 그대의 당혹감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분명히 합의에 도달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으며, 자기의 행동에 대해 진실한 동기를 설명하려고 애를 쓰려고 한 대주교와 심도 있는 토론을 하지 않고서 그저 그런 행동에 대해 대주교를 비난하는 교황과의 대화는 참으로 귀머거리의 대화였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르페브르(Lefebvre) 대주교가 실제적인 근거에 바탕을 둔 이유였을 것이다.


제출 요청서 및 제안


에콘(Econe)의 주교는 탈출구를 찾아 그리스도의 대리자(교황)와 함께하는 이 대담으로부터 교회의 상황에 의해 찢겨진 전통적인 가톨릭인들에게 최소한의 이점을 얻고자하였다.


"저는 성하께 한 가지 요청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공의회 이전처럼 기도 할 수 있는 성당을 주교들에게 주도록 명령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모든 것을 허용 받습니다. 우리 성비오10세회에게도 허락하지 않으시겠습니까? “


경직해진 바오로 6세: "우리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공동체의 다양한 구성 요소에서 행동의 독립을 허용할 수 없습니다.“


르폐브르 대주교: "공의회는 다원주의를 인정합니다. 우리는 이 원칙이 우리에게도 적용되도록 요청합니다. 만약성하께서 그렇게 하신다면, 모든 것이 해결 될 것입니다. 성소(聖召)의 증가가 있을 것입니다. 사제직을 갈망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경건에 이르도록 양성되기를 원합니다. 성하의 손 안에는 오늘날 많은 가톨릭 신자에게 문제가 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달려 있습니다. 저에게는 교회의 유익을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로마성청의 몇 분이 우리 신학교를 돌볼 수 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어떤 이야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신학교에 머물 것입니다. 약속드리건대, 나는 신학교를 다시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주교들과 협의하여 그들 각자의 교구들을 섬기면서 신학교를 둘 수 있습니다; 성하께서 원하신다면, 신학교위원회가 아담(Adam) 주교의 승인을 받아 명명(命名)될 수 있습니다.[1] "


주교의 결론은 그의 발언을 요약했다. "개인적으로, 저는 순명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황, 주교 그리고 고통 받는 신자들의 권위를 만족시킬 해결책을 찾아야합니다."


르페브르(Lefebvre) 대주교는 분명히 순명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는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시도에서 아주 멀리까지 나아갔다. 필요할 경우 성전(聖傳, 전통)이 교회에서의 권리를 회복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자기의 신학교 상황이 정상화될 수만 있다면 한발 물러날 준비를 갖추었다. 그러나 교황 바오로 6세는 전통적인 가톨릭 신자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동의를 하지 않으면서 대주교가 무조건적인 항복, 완전한 굴복하길 분명히 원했다.


그리고서 교황은 르페브르(Lefebvre) 대주교에게 스위스 주교회의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 프랑스 주교(르페브르)의 활동을 용인할 수 없다고 말한 아담(Adam) 주교의 말을 되풀이하면서 본연으로 그저 돌아가길 권고했다. “세상의 눈앞에서 우리를 향한 반대 입장을 그대가 취하면서, 나를 불충하다하고, 교회를 파괴시키려한다고 비난할 때, 어찌 그대가 우리와 함께 한다고 할 수 있나요?"


교황 바오로 6세는 못을 박았다. "그대가 말했고, 그대가 그것을 썼소. 내가 현대주의 교황이라고요. 에큐메니칼 공의회를 시행함으로써, 내가 교회를 배신하고 있다고.... 이런 경우라면, 나는 사임해야합니다. 그대가 내 자리를 차지하고, 그대가 교회를 인도해야함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요!“


새로 등장한 폭풍 앞에서 르페브르(Lefebvre) 대주교는 "교회의 위기가 있습니다." "진정으로 우리는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하면서 바오로 6세의 말을 막으면서 냉정한 사실을 가지고 동의를 찾고자 했다. "그대는 교황에 대해 공개적인 반항을 하면서 분명한 불순명으로 사태를 더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그 만남은 다시 긴장이 고조되었다.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섬기기


르페브르(Lefebvre) 대주교는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만큼의 판단을 받지 못했다고 섭섭해했다. "교회법이 성하를 심판합니다."라고 교황에게 즉시 반박했다. "성하께서 교회에 끼친 스캔들과 해를 아시는지요? 그것을 모르고 계십니까? 천주님 앞에서 이렇게 서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양심을 성찰하시고 천주님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대주교 르페브르는 전통 가톨릭을 지지하면서 자신의 요청을 되풀이하고는 대답했다. 그는 과거에 행해졌던 일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유익을 주장했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입니다" "제가 말했듯이, 저는 어느 운동의 지도자가 아닙니다. 저는 영원히 저의 신학교에 갇혀있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대주교는 진정한 사제직을 양성하면서 그곳 신학교에서 행해지는 훌륭한 사업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저의 사제들과 접촉하여 교화(敎化)를 받습니다. 그 사제들은 교회에 대한 감각을 가진 청년들입니다. 그들은 거리, 지하철, 모든 곳에서 존경받습니다. 다른 사제들은 더 이상 사제복장을 하지 않으며, 더 이상 고해성사를 듣지 않으며, 더 이상 강론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선택했습니다. 성비오10세회 사제들인 이들은 우리가 원하는 사제들입니다.[2]"


르페브르(Lefebvre) 대주교는 교회가 고통당하는 모든 악을 일으키는 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마지막으로 한 번 시도했다. 다원주의 논쟁이 실패했기 때문에, 대주교는 어떻게 전례가 고삐 풀린 창조의 대상이 되었는지에 대해 교황에게 설명했다. "프랑스에서는 성체기도에 사용된 적어도 14개의 다른 교회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교황은 즉각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 "아니오, 열 네 개가 아니요. 약 백 개나 되지요! ... " 교황은 대주교에게 자신이 상황을 완전히 알고 있으며 행동을 취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를 바랐다.


"잘못은 있지만, 그러나 공의회는 많은 것을 잘하고 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다 정당화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내가 말했듯이, 나는 시정할 것이 필요한 것을 바로 잡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공의회의 덕분에 청년들 사이에 강한 영적 갱신이 있음을 나타내는 표시가 있음을 인정해야합니다. 신자들과 사제들, 그리고 주교들 사이에서 책임감이 증가했습니다.“


르페브르(Lefebvre) 대주교는 분명히 긍정적인 측면이 있음을 인정할 의향이 있었다.


"저는 모든 것이 부정적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역시 저도 교회를 세우기 위해 협력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이런 방식으로는 그대가 교회를 돕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바오로 6세는 대답했다. "그대가 하고 있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까? 그대가 교회, 교황, 공의회에 반대하는 일을 직접하고 있다는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공의회를 심판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어떻게 주장 할 수 있습니까? 어쨌든 공의회의 대부분 사안들은 그대가 서명한 것입니다." 바로 그 때, 교황은 대담을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