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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르페브르 대주교의 공개서한 02 . 저들이 우리의 종교를 바꾸고 있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5-07



르페브르 대주교의 공개서한  

2. 저들이 우리의 종교를 바꾸고 있다!

2. "They Are Changing Our Religion!"


 

 출발점에서 맴돌지 않도록 먼저 오해를 없애야겠다. 나는 어떤 운동(movement)의 우두머리가 아니며 어느 특정한 교회의 지도자는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저들은 나를 두고, ‘성전주의자(聖傳主義者-전통주의자)들의 지도자’라고 자주 그러는데, 나는 그런 지도자가 절대 아니다. 마치 종파 내지는 학파에 해당되는 경우라도 되는 듯이, 어떤 이들에 대해서는 ‘르페브르파(Lefebvrists)'라고까지 묘사하고 있다. 이는 언어를 남용하는 것이지 달리 그 무엇이겠는가?


 종교 문제에 관한 한 나에게는 그 어떤 내 개인적인 교리도 없다. 일생동안 내가 로마의 프랑스 신학교에서 배웠던 것을, 즉 계시의 종지부를 찍은 마지막 종도가 천주님의 옆으로 간 그 이후에 대대로 교회의 치교권에 입각하여 그 해석에 따른 가톨릭교리를 굳건하게 지켜 왔을 뿐이다.


 내가 주장하는 교리 안에는 감각에 민감한 언론인과 그들을 통한 현대 여론의 입맛을 돌게 할 만한 것이 도무지 없었다. 그런데, 내가 릴(Lille)에서 미사를 드릴 거라는 소문(1976년 8월 29일)이 퍼지자 프랑스 전체는 온통 흥분의 도가니였다. 미사성제를 드리는 한 주교에 관하여 이토록 소란을 피울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나는 여러 마이크 앞에서 연설해야 했는데, 내 말 한마디 한마디는 마치 대단한 선언이라도 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허나, 옛날 다른 주교가 통상(通常)해왔던 말 이상으로 내가 말한 것이 또 무엇이었던가?


 여기에는 수수께끼의 열쇠가 있다. 다른 주교들은 여러 해 동안 이와 같은 (전통적으로 이어져온 교리)내용을 말하지 않은 것이다. 예를 들자면, 저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회 통치에 대해 말한 적이 몇 번이나 있는가?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 경악을 금치 못하는 사실이란 바로 그 주교들이 대부분 로마에서 나와 똑같이 양성(養成)되었고 나와 함께 지내던 동료 신학생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나만 혼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실, 그동안 내가 새로이 고안(考案)한 것이라곤 조금도 없었고 나는 꾸준히 (배운 그대로를)그저 실행해 나아가기만 했을 뿐이었다.


 언젠가 가론느(Garonne) 추기경은 나한테 다음과 같이 이런 말을 하기 까지 했다. “로마의 프랑스 신학교에서 우리를 기만(欺瞞)했습니다.” 어떤 것에서 우리를 속였다는 것일까? 공의회가 있기 전, 그 추기경은 직접 교리문답을 담당하면서 아이들에게 신덕송을 수천 번도 더 가르치지 않았던가? “우리 천주여, 너 온전히 진실하사 스스로 속지 못하시고 또한 우리를 속이지 못하심을 인하여, 너 밝히 뵈신바 모든 도리를, 성 교회의 전하여 가르치심을 따라 확실히 믿나이다.”라고........


 그 주교들이 어떻게 모두 그런 식으로 변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그 해답을 찾자니 내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곤 단 하나밖에 없다. 저들은 계속 프랑스에 있으면서 스스로 속지 않도록 단속하지 아니하고 그냥 자신을 내버려두어 점진적으로 오염됐던 것이나, 아프리카에 있었던 나는 보호받은 것이었다. 내가 귀환한 때는 이미 많은 주교들이 해악을 입은 시기, 즉 공의회가 열리던 바로 그해였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처참한 홍수를 막고 있던 문을 단지 열어준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이 대 이변이 일어난 것은 제 4회기가 끝나기 전이었다. 거의 대부분이 홍수에 휩쓸려가 버렸고, 그 무엇보다도 기도가 그렇게 망가져버렸다.


 천주께로 향하는 본능, 당신께 대한 효경심이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누구라도 요즘 기도드리는 방식을 보고 충격을 받고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은 예전과 같이 염경기도를 바치면 ‘앵무새 방식’이라고 모욕을 당하기 쉽다. 아이들에게 기도문을 가르치지도 않을 뿐더러 요즘의 교리문답에는 천주경(주의 기도)을 뺀 다른 기도문들은 아예 들어 있지도 않다. 프로테스탄트(개신교)식 발상인 신 개정판에는 천주경이 들어 있지만 어린이에게는 천주를 일컬어 ‘tu'라고 호칭하라고 한다.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은 존경심을 그다지 품지 않고 호칭하는 것이라, 장상을 호칭하느냐? 부모를 호칭하느냐? 혹은 친구를 호칭하는가에 따라서 그 호칭 방식을 달리 선택해야 하는 우리 프랑스인의 언어 감각으로 볼 때, 꽤나 이국적(異國的)이다.


 또한 같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의 천주경에서는 천주께 간청하기를... 아무리 잘 생각한다 하더라도 애매한 표현을 써 ‘우리를 유혹에 들지’ 않게 해 달라고 하는데, 한편 우리의 전통 프랑스어 판은 라틴어를 개선한 것으로서, 히브리어에 기초한 그 라틴어는 별로 세련되지 못한 상태라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바꾼 것이다. 어떤 내막이 숨어있는 것인가? 익숙한 연설문 형식은 또 자국어로 된 전례 전체에도 침투해 있다. 프랑스식 형식과 관습에 그다지도 반대가 되게 변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새 주일미사 경본에는 반드시 그것만을 싣고 있는 형편이다.


 가톨릭학교에서 열 두세 명의 어린이들에게 시험을 치게 한 적이 있었다. 극소수만이 (당연히 프랑스어로)천주경을 암송할 줄 알았고, 그 어린이들은 한 두 명만 빼고는 종도신경(사도신경), 고죄경, 신덕송, 망덕송, 애덕송 및 통회의 기도, 혹은 삼종경 혹은 죽은 모든 믿는 이를 위하여 외우는 축문을 알지 못했다. 그들 대부분이 그런 기도문을 들어 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아이들이 그것들을 알 수 있었겠는가? 저들은 기도란 ‘자발적’으로 마음에서 충분히 우러나서 바쳐야 하는 것이라면서 모든 기도문을 만들어 완성시킨 교회의 탁월한 교육제도를 업신여기지만, 위대한 성인 성녀들은 바로 그 기도문들로써 지탱하며 살아가시지 않았는가 말이다!


 가정에서 공동으로 조과(아침기도)와 만과(저녁기도)를 바치고 권장하며, 또 음식 전후의 기구를 드리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 과연 얼마나 될까? 많은 가톨릭 학교에서는 학생들 가운데 다만 몇 명이라도 비신자이거나 다른 종교에 속해 있음에 따라, 그들의 양심을 건드린다든지 아니면 승리자다운 정신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핑계로, 수업을 시작할 때에 드리는 기도를 바치는 것을 더 이상 반가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저들은 그 학교에서 비신자, 심지어는 외교인(外敎人)까지도 많이 입학하게 된 것을 자축하는데, 그들을 천주께로 인도(引導)하기 위해 하는 일이라곤 조금도 없는 실정이다. 한편으로는 가톨릭 신자인 청년은 자기 신앙을 감추어야 한다. 학우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구실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장궤(무릎 꿇는 예절)는 이제 소수의 신자만이 하고 있고,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대신하거나 아무런 예절도 행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성전에 들어가면 아무런 예도 표하지 않고 그냥 앉아버리는 것이다. 가구가 바뀌었고 기도대(祈禱臺)는 부수어져서 땔감으로 사용된 지 이미 오래다. 의자는 영화관에 있는 것과 비슷하게 설치되어 있어서 성전이 연주회장으로 이용되는 경우에는 청중이 더 편안하게 앉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나는 파리의 대성당에 있는 성체 경당(Blessed Sacrament Chapel)의 경우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는데, 근처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점심시간에 많이 방문하곤 하였다. 언젠가 내부 수리 때문에 폐쇄된 적이 있었는데, 다시 개방된 후에 가보니 기도대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푹신한 카펫 위에는 값비싸고, 큰 회사나 항공 회사의 만찬 홀에서나 볼 수 있는 스프링을 댄 깊숙한 안락의자가 있었다. 이를 대하는 신자들의 태도가 단번에 변했다.


 어떤 사람은 카펫 위에서 무릎을 꿇기도 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편안한 자세를 취했으며 감실 앞에서는 다리를 꼬고 앉아서 묵상하는 것이었다. 교구 성직자들의 심중에 모종의 의향(意向)이 있음이 역력했으니, 비용이 많이 드는 변화나 교체 작업에 착수할 모습이라면 꼭 이리 저리 재는 식으로 이것저것 꼼꼼하게 따진다.


 이로써 천주님을 마치 인간과 다름없는 존재로 취급하듯 하여, 천주께 대한 인간과의 관계를 친숙하고 격의 없음이라는 흐름으로 바꿔놓으려는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종교적인 덕’을 눈에 보이게 유형화(有形化)하는 몸짓을 나타내지 않고서야 어떻게 만물의 창조주이시면서 대주재자 앞에 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역시 감실 안에 들어 계신 실제현존에 대한 의식을 감소하게 만드는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아니고 그 무엇이란 말인가?


 경배를 드리는 장소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평범하고 무례한 방향으로 흐르는 경향으로 말미암아 가톨릭인들은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아름다운 건물과 웅장한 예식이 이루어지도록 기여하는 것이면 모두 ‘승리주의’라면서 공공연하게 비난한다. 장식은 이제 일상생활 속의 평범한 장식에 더 가까워져야 한단다.


 그런데 신앙이 있던 시절에는 각자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존귀한 것을 천주께 드렸다. 동네 교회에 가 봐도 일상적인 세속에 속하지 않은 것들을 볼 수 있었으니, 금붙이로 된 작품, 그림, 비단, 레이스, 수예품 그리고 보석으로 관을 만들어 씌운 성모상 등이 그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될 수 있는 대로 최선의 방법으로써 전능하신 천주께 영광을 드리고자 재정적 희생을 아끼지 않았다. 그 모두가 기도에 큰 도움이 됐고 영혼을 들어 올렸었다. 이상의 것들은 인간에게는 당연한 행동이었으니, 삼왕(동방박사들)은 베들레헴의 가난한 말구유를 방문하여 황금, 유향 그리고 몰약을 드리지 않았던가?

 

 가톨릭교회는 다른 공공장소와 전혀 다르지 않은 환경, 때로는 그 정도에도 미치지 못하는 다목적 홀, 즉 차별화되지 않은 범상한 환경에서 기도하는 분위기를 조장함으로서 그 품위가 격하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곳저곳에 장엄한 고딕 양식 혹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들이 살풍경하고 황량(荒涼)스럽고 휑하게 한 쪽에 버려진 것을 볼 수 있다.


 심지어는 식당이나 부엌에서 ‘집안(家內)성체성사’를 거행하기까지 한다. 그중 하나를 보면, 고인의 집에서 유가족과 친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예식을 거행하고 나서는 성작(聖爵)을 치우고 똑같은 식탁보를 덮은 바로 그 테이블에다가 뷔페식으로 식사를 차렸다고 들었다. 바로 그때 겨우 몇 백 야드 떨어진 거리에는, 장엄한 스탠드글라스로 장식된 13세기 때 지은 교회가 있었으니, 그 주위에서 주님을 향한 노래를 새들 만이 지저귀고 있었다 한다.


 전쟁 이전의 시대를 기억하는 독자들은 수많은 대소재(대재는 금식이며, 소재는 금육을 말한다), 성가, 향로, 깃발, 꽃다발, 종과 금으로 장식된 닫집(천개-天蓋)을 받쳐 든 아래로 사제가 햇빛 속에서 번쩍이는 성광을 운반하는 성체(Corpus Christi)거동 행렬의 열정을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경배를 드리는 감각을 볼 것 같으면 아이들의 영혼 안에 일찍 피어나야 일생을 지내면서 그 안에서 열매를 맺는 법이다. 기도의 그 같은 기본적인 측면이 몹시 무시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그래도 여전히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새로운 생활 풍조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는데.... 하지만 교통 문제가 걸린다고 해서 가두시위를 어떻게 하지 못함은 물론, 데모꾼들은 정당하건 정당하지 않건 방해 한 번 받지 않은 채 자신들의 정치적 의견이나 요구를 표명한다. 어째서 천주만이 홀로 제겨져야 하고, 어째서 그리스도인만이 천주께 마땅히 드려야 하는 공식적인 경배를 드리지 못해야 한다는 말인가?


  프랑스에서 행렬이 거의 사라진 것은 신자들의 흥미가 결여되어서 된 것이 아니다. 바로 백성의 적극적인 참여’를 끊임없이 외쳐대는 신 목자이론으로 말미암아 교회 성직자들이 금지한 것이다.  ‘하느님의. 1969년 프랑스의 와즈(Oise) 구역에서는 한 주교가 전통적인 성체거동 행렬을 준비하지 마라 명령하면서 행렬을 준비하던 본당 사제를 추방하였다. 이에 불구하고 행렬을 강행한 결과,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의 수보다도 10배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러하니, 어느 측면으로 보든지 거룩한 전례와는 정 반대의 정신이 함축되어 있는 2차 바티칸 공의회 규약에 입각한 신 목자 형식을 보고 경건한 형식을 굳이 지켰던 그리스도인의 열망에 합치된다고 말할 자 과연 누구일까?


 또한, 신 목자이론으로써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는가? 성무수행이 현격히 감소되었다기보다 거의 없어졌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게 되었다. 이제 사제들은 매일 드리던 미사성제를 드리지 않으며, 드린다 해도 공동으로 집전하여서 그로 인해 미사를 드리는 횟수가 현격히 줄어들었다. 시골 지역에서는 평일 미사에 참례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함은 물론, 주일에 ‘구역담당 사제’를 맞이하려면 미사드릴 차례가 된 장소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차가 필요할 지경이다.


 프랑스의 많은 교회들이 영구적으로 폐쇄되었으며, 다른 교회들도 일 년에 몇 번만 개방되는 형편이다. 성소의 위기, 아니 오히려 성소 위기에 덧붙여 신앙생활에 있어서의 수계범절이 해마다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대도시에서는 대체로 성무수행이 더 잘 이루어지는 편이지만 대부분 매월 첫 금요일 및 첫 토요일 영성체가 불가능하다. 자연히 매일 미사에서 영성체하는 일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해서 이제는 전혀 문제시하지도 않게 되었으며, 많은 도회지 본당에서는 주임 성직자만이 미사를 드리는데, 그것도 예약된 시간에 특별한 집단을 위해서이고 그 시간에 우연히 들른 타지방 사람은 집단 활동과 일상 예식에서 들러리를 서는 이방인(異邦人)과 같은 느낌을 갖는다. 공동체 예식과는 반대 성격을 지닌 개별 예식을 불신한다면서 실제로는 공동체가 소단위로 나뉘기도 했다. 연합 가톨릭 단체 혹은 다른 활동에 소속된 누군가의 집에서 단체 회원이 모인 가운데 사제가 미사를 드리는 것은 이제 지극히 평범한 일이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 언어권의 단체별로 나눈 주일용 시간표, 즉 포르투갈어 미사, 프랑스어 미사, 스페인어 미사들이 있다. 외국 여행이 일상화된 요즘 시대에 가톨릭인들은 ‘동참해야’ 기도를 바칠 수 있음에도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미사에 참례하게 된 것이다. 도대체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제는 미사가 아주 없어지거나 거의 없어졌으며 행렬도, 성체강복도, 만과(晩課)도 없어졌다. 공적인 기도문은 극히 짤막한 표현으로 줄어들었다. 신자로서 힘든 시기와 여행에 맞닥뜨리면 무엇을 가지고 영적인 목마름을 해갈(解渴)할 것인가? 교회가 겪고 있는 전례와 중대한 변혁에 관해 조금 더 말해야겠다. 공식적인 기도에 대해서 겉으로만 보기에도 분명한 현상 한 가지를 잠시 생각해 보자. ‘예식’의 분위기가 가톨릭다운 느낌을 손상시키는 경우가 너무나 빈번하다. 온갖 종류의 음향기기(音響器機), 기타(guitar)와 색소폰(saxophone)을 이용한 세속적인 리듬의 악기가 등장한다. 음악계에서 많은 지도층 인사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북 프랑스 교구(敎區)에서 성가를 책임지고 있었던 한 음악인이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적이 있다.


 널리 알려지기는 하지만 그런 노래들로 이루어진 음악은 현대적이지 않다. 이 음악 스타일은 낯익은 것인데, 가장 불경스런 장소와 환경 즉 이국적인 이름을 가진지고 다소 음탕한 춤을 추기 위한 카바레, 뮤직홀에서 연주되어 왔다. 사람들은 록 혹은 스윙에 이끌린다. 춤추고 싶은 충동만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몸짓을 통한 언어’는 확실히 우리 서구 문화에게는 외계인이며, 관상(觀想)에도 전혀 바람직하지 않고 그 기원(起源)이 수상쩍다. 이미 그 음악 스타일이 크로셰 뜨개질과 8분의 6박자로 된 소절의 8분 음표를 교란시키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우리의 회중은 대체로 그 리듬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그런 다음에는 더 이상 춤추고 싶어 하지 않으며, 기계적으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그 형편없는 선율, 엉망이 된 리듬에 맞춘 선율이 더욱 두드러질 뿐이다.


 그 같은 전례(典禮)의 기도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다행스럽게도 한 군데 이상의 장소에서 신자들이 조금 더 세련된 풍습으로 회귀한 현상이 나타난다. 그러자 노래를 부르고자 원하는 사람들은 교회 음악을 전공하는 공식 단체의 작품을 받아 들였다. 그들에게는 과거의 탄성을 자아내는 유산을 이용함에 관해서 아무런 의문점이 없다. 항상 같은 통상적인 멜로디들이 매우 다양한 영감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약간 더 공들여졌다는 합창 연주곡을 보면 오히려 세속적인 영향을 보여주며, 단선율 성가가 영혼 깊숙한 곳까지 파고드는 것에 비하면 이는 오히려 감성을 자극한다. 영감을 불러일으켰던 성가집을 살펴보면, 새로운 것을 만들려했던 개혁 성가집은 20년 전의 홍수로 옛 성가가 완전히 망가지듯, 신식 용어를 사용하는 바람에 용어가 온통 새로워졌고 또한 일시적인 형식을 채택함에 따라 시강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구식이 되고 시간이 조금 지나도 이해하기가 힘들어진다. 교구에 생기를 불어넣겠다는 의향으로 시도된 많은 음반이 말을 바꿔서 성영(시편)을 배포하는 데다 그것을 성영이랍시고 성의 없이 공개하는 바람에 신성한 영감이 담긴 성구(聖句)는 어디론가 떠밀려가고 만다. 도대체 왜 성영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노래하지 않는 것인가?


 새로운 현상이 얼마 전에 나타났다. 교회 현관에는 “박수를 쳐서 하느님을 찬미하라”는 내용의 포스터가 붙은 것이다. 그래서 의식이 이루어지는 동안에 지도자의 신호에 따라 회중은 (개신교처럼)머리 위로 손을 들어 큰 소리로 리드미컬하게 손뼉을 치면서 거룩해야 할 장소에서 낯선 소음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전례에 인위적인 행위를 심으려 하는 이러한 것은 세속의 관습과도 동떨어진 것으로서 앞으로도 그런 종류의 혁신은 계속될 것이 틀림없다. 이것은 가톨릭인을 절망하게 만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데 기여한다. 설령 ‘복음의 밤’에 참석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별로 남지 않은 주일 미사가 그런 식의 통탄할 행위로 오염되는 지경이 되었으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소위 ‘모임의 봉사자’(pastorale d'ensemble)라는 어떤 이는 아무런 은총도 없고 체질에도 맞지 않는 그런 새로운 몸짓을 신자들이 받아드려야 한다고 강요한다. 또한 (개신교처럼)복음을 근거로 한다는 간증, 견해 그리고 악수를 서로 나누면서 이러한 모든 것이 집회의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통계로써 알 수 있지만 다들 마지못해 어울린다. 최근의 자료에 의하면, 1977년부터 1983년까지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이들의 수는 훨씬 감소했음에 반하여 개인적인 기도는 극히 조금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Madame Figaro 설문조사-Sofres, 1983년 9월. 1번 질문: “영성체하러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더 자주 가는가? 아니면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는가?” 지금은 모든 사람이 영성체를 하므로, 이 질문은 미사참례의 빈도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는 응답은 16%에서 9%로 뚝 떨어졌다). 사정이 이러하니, 모임의 봉사자는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흡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파리 지역의 교구 잡지에서 읽었던 자료가 있다.


  자료: 지난 2년 동안 때때로 오전 9시 30분 미사는 특별한 형식을 가졌는데, 참석자는 약 10명 정도 되는 집단으로 구성된 나눔 모임이 있은 후에 복음 낭송이 있었다. 이런 종류의 예식을 처음 시도했을 적에는 69명의 사람들이 나눔의 집단에 참여하고 밖에는 138명이 남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리라 여겼다. 그 경우만이 아니었고 그 후, 교구 팀에서는 ‘함께 나눔이 있는 미사’를 계속하느냐 마느냐를 파악하기 위한 모임을 조직했다.


  공의회 이후에 일어난 혁신에 그토록 저항해 왔던 교구민 중 2/3가 미사 동안의 즉흥적인 주절거림에 얼마나 열의가 없는지를 알려주는 내용이다. 요즘에 가톨릭인이 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프랑스어로 하는 전례를 보면, ‘함께 나눔’이라는 것은 없지만 언어의 홍수 때문에 회중의 귀청이 아파 미사 중에는 도저히 기도를 못하겠다면서 많은 이가 불만을 토로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들은 언제 기도해야 하나?


 주교가 인정한 처방이 혼란스러워진 신자들에게 권장된다고 하지만, 그 처방이란 것을 살펴보면 신자들을 그리스도인다운 영성(靈性)에서 이탈시키려고 제공되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이 아니다. 요가와 선(禪)은 가장 괴상(怪狀)하고 불길한 동양풍으로서, 사람을 ‘건강한 영혼’이 되게 해 준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신심을 잘못된 길로 유도(流徒)한다. 다시 말하자면 천주께로 향하는 고상(高尙)함을 훼손시키는 가운데 신체를 공중부양(空中浮揚)시킴으로써 인격을 격하시키는, ‘몸짓으로 보여주는 언어’를 보고는 뭐라고 해야 할 것인가? 그런 새로운 유행이 다른 것들과 어우러져 관상 수도원에도 도입되는 바람에 수도원이 지극히 위태로워졌다. 이로써 우리는 저들이 우리의 종교를 바꾸고 있다는 말이 그 얼마나 맞는 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