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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비오10세회와 로마와의 관계- 총장 인터뷰(2016.03) 동영상(한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4-28







성비오10세회와 로마와의 관계는 어떠한가요?


베르나르 펠레 주교와의 인터뷰 (2016. 3. 4 멘징건, 스위스)

전통 소식지 발행(2016년 3월21일)


Interview with Bp. Bernard Fellay (March 4, 2016, Menzingen ,Switzerland ) Filed under From Tradition, News  (21-03-2016)

 

몇 주 동안 로마가 성비오10세회를 교회법적으로  인정할 것이라는 가능성에 대한 여러 소문들이 신문 방송[1]에서 돌고 있었지만 논평이 실린 이러한 복잡한 소문보다는 DICI(성비오10세회 공식 기관지)는 성비오10세회 총장상이신 베르나르 펠레 주교의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은 쟁점에 대한 평가를 알아보았습니다.


1. 성비오10세회와 로마와의 관계
2. 로마의 새로운 제안들
3.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받아드리도록’
4. 교황과 성비오10세회
5. 성비오10세회에 부여된 재치권
6. 로마당국이 보낸 고위 성직자의 방문
7. 교회의 현재 상태
8.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무엇을 요청해야하나?


1. 2000년 이후 성비오10세회와 로마와의 관계


 로마와의 관계는 – 실제로-  진행 중이지만, 그러나 이 말이  정확한 것은  아니고, 비록 그 빈도와 그 강도(强度)의 정도는 변화되었지만  결코 중단되거나,  결코  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00년 이후부터  우리는 여러 차례 로마와 접촉을 해왔다고 말씀드립니다. 로마당국은 결국 성비오10세회의 상황을 규계화(規戒化-교회법상의 정상화)할 목적으로 이 접촉을 요구했던 분들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대화의 부침(浮沈)이 있었지만 2000년에 카스틸리오 호요스 추기경과의 접촉을 시작으로 이 접촉은 – 잠시 동안 –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유명한 전제조건이 잘 조성된 이후[2] 우리의 관계가 좀....그런 적이 있었고, 계속 말하고 싶지만.....뭐 거의 그렇습니다. 2005년에 한 번 접촉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9년에 다시 말해서 철회가 있었던 당시에... 파문철회를 말합니다. 파문을 올바르게 바로 잡은 것은 좀 더 정상적인 접촉이라 하겠고, 특히 교리에 관한 토론 접촉이 있었는데 이 토론은 양쪽에서 요구한 것이었으며 2년 정도 지속되었습니다[3] 그리고서 다시 새로운 제안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번에는 제안된 해결책과 관련된 것인데... 이중적인 것이었는데, 하나는 교리 선언과, 다른 하나는 교회법상의 해결책입니다. 이것이 1년쯤 지속되었지만 실패하였습니다.

 

그리고서 2년 동안 로마와의 관계가 아주 소원(疎遠)해졌고 겨우 시작된 것은 제가 생각컨대 에클레시아 데이 위원장이신 몬시뇰 포조(Msgr. Pozzo)의 대주교의 귀환과 함께였습니다. 몬시뇰 디 노이아(Msgr. Di Noia) 당시에는 접촉이 사실 있었지만, 그러나 포조 대주교 아래에서는 새로운 제안이 있었는데 그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한쪽에서 교리에 관한 토론이 다시 시작되었고, 좀 더 유연한 형식을 갖추고....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공식적인 것이 아니고 오히려 비공식적이라 수 있는데, 로마에서 파견된 두 분의 주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토론이 지속되었습니다. 생각하자면 진통이라 하겠습니다. 그와 동시에, 다른 수준에서, 아니... 다소 평형(平衡)하다라고 하겠는데 지난 7월 새로운 제안이 있었으니, 이 교회법적 규계화(교회법상의 정상화)에 우리가 어떻게 다다를 수 있는가를 알기위해 생각해보자는 초대였습니다. 여기서도 역시 이러한 토론들, 반성할 점이 좀 더 진척이 되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서두를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가 진정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지만 그러나 천천히 나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2. 성비오10세회 주요 장상들에 의해 연구된 로마의 새로운 제안


로마의 새로운 제안에 대해 여러 장상(長上)들과 검토를 해보면서... 우리는 많은 동료가 포함될 원했습니다. 이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내부에 마찰과 불화를 일으켰던 지난 2012년에 있었던 일로 해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었는데, 그 중 하나가 우리 사이에 있어서 서로간의 의사소통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좀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가 많은 검토가 요구되는... 이러한 질문을 제기할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교회와 로마의 상황을 보자면, 확실히 우리는 무언가를 할 의욕이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대해 문제을 제기하기 때문에 로마가 우리를 초청 하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에큐메니즘을 위한 모든 노력을 하는 것을 볼 때 – 천주님만이 어떤 종류의 일치인지 아시겠지만–  그리고 교회 내에서 우리가 어떻게 취급되고 있는지를 알게 될 때 분명히 우리는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세상 전반에 퍼져있는 에큐메니즘 체제에서 (우리의  존재는) 커다란 가시관이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로마에 의해 제기된 대화 단계를) 그 어느 것도 설명할 수 있는 게 없군요. 겨우, 아니 여하간 – 저들의 동기가 무엇인지 직접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 로마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구나 하고 그냥 생각하는 바입니다.


 반면에, 교회 내부에서는 비극적 상황을 보게 되는데, 교회에는 실제로 앞으로 나아가려는 용기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므로 깊은 검토가 필요하며, 그리고 그것은 그냥 홀로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안팎으로 검토할, 올바르게 바라볼 여러 개의 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문제에 관하여 모든 장상들의 견해를 요청한 이유인 것입니다.


3.“우리가 있는 그대로 받아드려지는 것”, 여기에는 모호함이나 타협은 없다.

 

세상에서 말하는 ‘타협,’ 이 모든 타협을 우리는 절대적으로 피할 필요가 있습니다. 타협이란 각각 양쪽이 다른 것을 얻기 위해 무엇인가를 포기해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작부터 제가 로마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애매한 것을 원하지 결코 않는다. 만약 각각 양쪽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는 그 문서에 로마가 서명하길 원한다면, 그것은 우리더러 조만간 혼란을 담당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타협을 피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규준에서 벗어난 견해가 담겨진 현재의 상황의 그 문서는 모호성을 띠고 있다는 점은 처음부터 실제적으로 분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그걸 말하자면, 분명히 그 점에 있어서 우리를 ‘꼬장꼬장’하다 할 것입니다. 여하간 (우리가)엄격하다라기보다는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쉬운 해결책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예, 이론상 진리의 해결책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진리는 완전하고 완벽해야 됩니다.”

 

이것이 로마와 협상하는 데에 있어 중요하다 제가 생각한 첫 번째 접근입니다. 이미 첫 번째 문서에서 제가 이르기를, “이것은 애매하다. 이래서는 일이 안 될 것이다. 이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것이 2011년에 일어난 첫 번째 문서였습니다. 이번에는 훨씬 더 낫다고 여겨집니다. 실제로 모호함이 극복된 면에서 커다란 발전이 있었습니다. 모든 모호함이 다 제거되었다고....라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문서의 선명성(鮮明性)에 제기된 문제점 외에도 또 다른 많은 심층적인, 훨씬 더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규계화(정상화)가 있게 되면, 우리에게 있게 되는.....우리에게 주어지는 활동의 범위는 무엇이고, 자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 문맥에서 제가 한 구절을 지적할 적에, 르페브르 대주교의 실제적 요구사항을 제기했는데... 그 요구사항은 이것을 규계화(規戒化)를 위한 무조건적인 것, 즉, 말하자면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드려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로마에 있는 그들에게 분명히 확인시켰습니다.:“만일 당신들이 우리를 원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어떠한 입장인지 보여주고 것이고, 그대들은 우리를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가 그대들에게 뭔가를 숨긴 것 가지고 그대들은 나중에 우리에게 말을 못할 겁니다. 이것이 우리가 어떠한지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남아있게 될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현재 있는 그대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왜? 이것은 스스로의 의지 표시가 아닙니다. 우리가 최고다 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것들을 가르친 교회가 이런 것을 요구합니다. 신앙뿐만 아니라, 이 신앙과 완벽한 동의를 이루고 있는 전체적인 종규(宗規-종법)도 그러하고, 이  종규는 성 교회의 보물을 구성하며 이러한 가르침은 과거에 많은 성인들을 만들었기에 우리가 이를 그냥 놔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로마와 거래하면서 저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이를 많이 주장했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이것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이것입니다.”심지어 구체적인 사례를 거론하였고, 그리고 만약 로마가 이러한 생각과 이러한 자세가 교정되고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러면 지금 그걸 우리에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저는) 그들에게 설명하면서, 이 경우라면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4. 교황과 성비오10세회: 역설적인 시혜(施惠)


 역설적인 시혜라는 표현이 주어질 수 있겠다는... 최악의 의미에서 3차 바티칸 공의회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부족한감이 있는 역설이다라고 거의 할만한... “여기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하면서, 그와 반면에 성비오10세회를 이야기하는 데에 부족한감이 있는 ‘역설적인’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거의 반대되는 것을 섞으려 시도하는, 진정으로 역설이라 하겠습니다. 에큐메니즘 때문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에큐메니즘 때문이다라고 생각해볼까요? 에큐메니즘이라는 이 주제에 관하여 주교들의 일반적인 태도를 그저 보시기 바랍니다. (에큐메니즘을 옹호하는)그들은 우리만 빼고 모든 이들을 환영합니다! 아주 흔히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왜 우리가 추방되고 고립되었는지 설명해왔습니다:“그들은 성비오10세회를 다른 사람들처럼 대우해 주지 않아요. 왜냐하면 성비오10세회는 가톨릭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오. 그걸로 그대(성비오10세회)들은 우리 사이에서 분란(紛亂)을 일으키며, 그래서 저들이 그대들을 원하지 않아요.” 여러 차례 우리는 에큐메니즘을 배제하는 이 설명을 들어왔습니다. 자! 만약 이 접근법, “우리는 가족으로 모든 이들을 받아 드릴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우리에게 적용이 안 되는 거라면, 그러면, 남아 있는 것은? 제 생각에는 교황이 따로 남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베네딕토16세, 그리고 현재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제가 막 언급했던 이 에큐메니즘 관점과 다른 특별한 방법으로 성비오10세회를 보지 못했다면, 거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심지어 그 대신에 이미 처벌, 비난, 파문, 종교분열을 일으켰다는 선언, 게다가 성가신 그룹(성비오10세회)을 없애려는 모든 시도 아래에서 다시 애먹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왜 베네딕토16세와 프란치스 교황께서 우리 성비오10세회에게 시혜를 베풀려고 합니까? 생각건대 두 분의 교황이 반드시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베네딕토16세의 경우, 그분은 그분의 보수적인 성향에서, 그리고 그분은 옛 전례를 사랑하고 교회 내의 예전의 규율을 존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제가 의미하건대, 많은 사제들과 심지어 교회 내의 현대주의자들과 문제를 가지고 있는 단체는 그분이 추기경으로 있을 적에 – 처음에는 추기경으로서 나중에는 교황으로서 - 그분에게 의지했고, 그분은 그가 가능한 한 그들(보수파)을 보호하고 도와주려는 자비로운 존경심이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는 전례나 옛 규율에 대한 애착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심지어, 매우 반대되는, 많은 모순된 발언에서, 교황의 시혜를 이해하는 것이 점점 어렵고 더 복잡하게 만든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설명 가능한 것이 있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 주제에 관한 최종적인 답이 없음을 인정하는 바입니다. 설명 가운데 하나는, 무시되어지는 것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견해란 교황께서 주창하시는 ‘생활 주변’에 관한 것입니다. 교황께서 즐겨 말씀하시는 생활 주변의 이야기를 우리더러 생각하라 한다면 저는 놀라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 교황은 사물을 개선할 희망을 가지고서 생활주변의 화제(話題)로써 사람들과 ‘걸어 나아가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즉각 이어갈 고정된 결정은 아닙니다. 발전, 걸음걸이, 어디든 가는....그렇지만 최소한 여러분들은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진정 모르면서 오히려 평화롭고 정중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보다 깊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또 다른 이유: 또한 우리는 오히려 설립된 교회, 이른바 영국에서 설립한 교회를 계속해서 비판하는 교황의 모습을 봅니다. - 때때로 프랑스에서도 자기만족을 위해 교회를 질책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교회는 더 이상 잃어버린 양을 찾지 않는 교회이며, 모든 수준에서 고통에 빠져있는 교회, 가난하거나 신체적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프란시스 교황에게서 요란한 외양에도 불구하고 염려되는 것이 혼인에 관련된 걱정만이 아닙니다. 교황께서 ‘가난’을 말할 적에, 영적인 가난, 죄를 짓고 있는 영혼의 가난을 또한 포함하는데 이것은 그곳 죄에서 나와서 우리 주님에게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설령 분명하게 표현되고 있지 않다하더라도, 이 가난을 표현하는 많은 표현이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으로부터 비오10세회 공동체 안에서 이것이 매우 적극적으로, 특히 (우리의)설립시기의 상황과 비교해 볼 때 적극적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런 영혼을 찾고, 찾으러 나가는 것이고, 영혼의 영적인 복지를 염려하는 것이며 소매를 걷어부치고 그 일을 하고자 준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교황께서는 르페브르 대주교를 알고 있습니다: 티시에르 드 말레리에 주교께서 쓰신 대주님에 관한 전기(傳記)를 두 번이나 읽으셨는데, 이 책은 의문의 여지없이, 흥미로움을 주고 있으니, 제가 생각건대 교황께서 이 책을 좋아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교황께서 우리 동료와 아르헨티나에서 계약을 할 수 있었던 것, 그들인 우리 사제들이 절대적으로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교황은 어떤 자발적인 모습과 또한 솔직함을 보았습니다. 물론 그들은 아르헨티나를 위해 뭔가를 얻으려고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거주권 허가를 위해 국가와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성비오10세회 사제인 그들은 아무 것도 숨기지 않았습니다. 쟁점을 피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황께서 그 점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이 점이 우리 성비오10세회의 겸손한 측면이라고 하겠지만, 교황이 매우 인간적이고, 그와 같은 사려에 대해 중요성을 주고 있으며 이것은 그분이 갔고 있는 어떤 자비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저는 이 주제에 대해 최종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아니고 그리고 분명히 이 모든 것 뒤에는 천주섭리가 있다는 겁니다. 교황의 머리 속에 좋은 생각을 넣으시려는 천주섭리이며, 우리를 많은 요점에 대해 교황께서 하시는 반응은 굉장히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만이 아닙니다. 교회 내에서 다소 보수인 모든 사람들은 일어나고 있는 일에 의해서, 교황의 발언에 의해서 놀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주섭리는 매우 놀라운 방법으로 이러한 암초를 통하여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가 살아서 생존하길 원하십니다.


 교황께서는 성비오10세회에게 어떠한 해악을 끼치지 않겠다는 것을 듣고 싶어 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조차 말씀하셨습니다. 성비오10세회는 가톨릭이다라고 교황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후 심지어 다소 수수께끼 같은 표현을 사용했지만, 우리가 완전한 교류룰 향해 가는 도정에 있다 하시면서, “성비오10세회는 종교분열주의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가톨릭인이다라” 하시고 종교분열이라는 이유로 우리를 견책하는 걸 거부하셨습니다. “완전한 교류”리는 이 용어가 언젠가는 분명한 정의(定義)를 가길 원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도 이 용어가 분명한 어떤 것인지 와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이것이 진정 무엇인지 모르면... 어떠한 한 견해일 것입니다. 심지어 아주 최근에 우리 단체에 대한 포조(Msgr. Pozzo)대주교의 인터뷰에서 포조 대주교는 교황을 친히 언급하면서 그 인용문을 반복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에클레시아 데이에게 성비오10세회가 완전한 교류를 향해가고 있는 가톨릭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교황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간주합니다[4] 그리고서 포조 대주교는 어떻게 이 완전한 교류가 올 수 있는가에 대해 설명하길 교회법적 형식으로 올 수 있다는 놀랄만한 발언을 하였으니, 교류로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교회법적 정상화 형식이라는 생각입니다.

 

좀 더 말하자면, 같은 인터뷰에서, 그가 이르길, 이 완전한 교류는 주요한 가톨릭 원리를 받아드리는 것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세 가지 일치 수준, 신앙, 성사, 그리고 치교권의 원리입니다. 신앙을 말하는데 있어서 여기서 치교권을 대신하여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이 세 가지 요소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용사, ‘완전한’이란 말만 생략했을뿐이지, 결코 완전한 교류에 의구심을 나타내지 않았고 단순히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사용되는 고전적인 용어에 따라 교류 상태입니다. 우리는 가톨릭인입니다. 우리는 가톨릭인이며, 우리는 교회와 교류하고 있으니, 왜냐하면 교류의 파열은 분명히 종교분열이기 때문입니다.


5. 성비오10세회에 부여된 재치권: 교회법상에 관한 협의 결과


 우리가 교회법을 고려해 보면, 교회 상황이 완전히 정상화라면 그 누구도 교회의 일반적 재치권에 순응해야 합니다. 이것은 견책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로마는 항상 우리 비오10세회 사제들이 교적(敎籍)에 들어있지 않기에 성무정지라는 징계에 있다고 말해왔고 그 자세를 유지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성비오10세회가 교적에 들어있다고 말하며, 우리 회는 설립 당시에 정당한 교회법이 무시되면서 부당하고도 유효성이 없는 억압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는 오늘날까지 우리 사제들이 성무정지인 상태라고 주장합니다. 성무정지, 그것은 무얼 뜻합니까?


성무정지란 분명히 미사, 고해성사를 포함하여 다른 성사 등에 관한 사제직 수행이 금지된 것을 말합니다. 자, 일반 재치권은 예를 들어 죽음을 목전에 둔 예외적인 상황은 별도로, 고해를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6] 사실, 교회는 이러한 상황을 부여합니다: 만약 어떤 이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 교통사고로 죽어가고 있을 때, 사제는 그의 신부의 위치에 상관없이, 설령 그가 파문된 사제일지라도, 가톨릭이 아닌 정교회 사제라도 유효한 사제로서 그 순간에 죽어가는 유효하고도 적법하게 그 사람의 고해를 들을 수 있고 사면을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외적인 사례이고 ‘일반적인 권능’은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일반적인 권능을 말합니다. 일반적인 재치권의 권능을 가지고 행사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하건대 어떠한 재제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교황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일반적인 권능을 주신다고 선언했기에, 제재라는 억압의 취소되었다라는 바로 그 사실로 인하여 우리는 일반적인 권능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법에 따라 - 이 서한이나 저 교회법 그리고 교회법 정신에 의해 - 이 지시사항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6. 로마가 보낸 고위 성직자의 방문: 교리적 의문사항이 열리는가?


 이들의 방문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분명히 성비오10세회 몇 분들은 많은 불신을 가지고 있기에 불안하게 이들을 바라봅니다. “이곳에 와서 저 주교들이 뭐하려는지....? 그러나, 나의 생각은 다릅니다. 로마로부터 온 초대는 아마도 제가 제안했던 결과로서 보여 지는데, 그 제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대들은 우리를 모릅니다. 우리는 로마에 있는 사무실에서 토론 중이니, 현장에 있는 우리에게 오시오. 그대들이 우리를 보지 않으면 그대들은 정령 우리를 모를 것입니다.” 선언 - 인터넷에서 비난했던 안했던 간에 - 혹은 소식통으로는 그들이 우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이들 소식통들의 대부분 우리가 위치를 지킬 것이고, 심지어 가능하다면 오늘날 교회가 취한 어떤 행위를 비난할 것이라 하지만 그러나 가톨릭인으로서 우리는 단지 그런 방식으로 홀로 서기를 하지 않습니다. 본질적인 사안은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심지어 말하기도 합니다. 그 본질적인 일은 천주님의 계명에 따라서, 우리 자신을 성화(聖化)시키는 노력으로서, 죄를 피함으로서 훌륭한 가톨릭인으로 살아가려는 의도이고 교회의 전체적인 종규(宗規)규율에 따라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여러 차례, “그러니 와서 우리를 만나시오.”했습니다. 그들은 결코 만나고자 원하지 않았는데, 그러다가 갑자기 몇 분의 주교가 우리를 만나겠다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로마가 무슨 생각을 갖고 있던가에, 제 입장에서는 좋은 생각이다 싶어 동의하였습니다. 왜 동의했을까요? 그 방식, 사실, 그들은 우리의 있는 그 모습대로를 봐야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제가 그들이 어디를 방문하던 간에 전달했던 표어였습니다: “우리는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일을 포장하여 꾸미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입니다. 그러니 그 방식대로 우리를 보십시오.” 그리고, 사실, 추기경, 대주교 그리고 주교 두 분이 우리를 보러 오셨는데, 다른 환경에서 우리를 방문하셨는데, 신학교 몇 군데 그리고 수도원 한 곳을 보셨습니다. 토론 중에 이루어진, 그리고 그 이후 대담에서 한 말의 첫 인상은 매우 흥미로운 것입니다. 제가 이번 로마의 초대에 응한 것이 옳았다는 것을 그들이 확신한다고 생각하는 바 입니다

 

그들 모두가 제게 말씀하신 것 첫 번째는 그것이 일치된 견해인지 또는 저들의 개인적인 의견이냐 하는 겁니다.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우리에게 전한 것은:“이 토론들은 가톨릭인 사이에서 일어난 것이고, 에큐메니즘 토론과는 아주 관련이 없다. 우리는 가톨릭인 가운데에 있다.” 그러므로 시작부터 그들은, “그대들은 교회에 완전히 속해있지 않다. 그대들은 중간 어딘가에 속에 있고 교회 밖에, 교회분열 가운데 있다....” - 천주님만이 아십니다!- 와 같은 모든 생각들을 제쳐 놓았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요점인데, 이는 정말 흥미롭고 중요합니다. 오늘날 로마에서 행해지는 말과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두 번째 요점 –이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 토론에서 발언된 의문들은 항상 가로막던 고전적인 질문입니다. 종교의 자유, 주교단체주의, 에큐메니즘, 새미사, 심지어 성사(聖事)의 새로운 전례에 관한 의문이던 간에, 그들 모두는 우리에게 이러한 토론들은 (검토할 만한) 열린 의문 상황이었다고 하였습니다. 생각건대 이 생각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제까지 그들은 항상 이렇게 주장하였습니다.: “그대들은 공의회를 받아 드려야 한다.” 


“공의회를 받아드린다”라는 이 표현의 진정한 중요성을 정확하게 진술하기가 어렵습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사실은 공의회의 문서가 전적으로 불평등하기 때문입니다: 그 문서들은 단계화된 기준, 다른 등급에 따라 의무적으로 받아드려져야 합니다. 만약 문서가 신앙에 관한 문서라면 순수하고 단순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잘못된 방법으로 이 공의회가 무류임을 주장하는 이들은 공의회 전체에 대해 모든 복종을 요구합니다.

 

그러면 만약 ‘공의회를 받아드려야’ 한다라는 의미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 공의회를 받아드리지 않는다고 해야 합니다. 분명히 우리는 이 공의회의 무류성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예전에 무류성이 있는 방식으로 반복해서 주장했던 문서가 공의회 문서에 몇 군데 있다면, 그 구절은 무류성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걸 받아드릴 것이고 그러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공의회를 받아드려라”했를 때, 그런 의미로 인해서 분명히 구별해야할 이유가 그것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구분 말고도 지금까지 우리는 로마 측의 주장인, “당신들은 이런 것들을 받아드려야 한다. 이런 것(공의회 문서)들은 교회의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받아드려야 한다.”는 것에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 로마에서만이 아니라 대다수 주교들이 – 우리를 향한 이러한 태도, 심각한 질책인, “그대들은 공의회를 받아드리지 않는다.”라는 비난을 보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서 지금 갑작스레, 걸림돌이 되어왔던 이러한 문제에 관하여 로마에서 온 사자(使者)는 우리에게 이것들은 열린 문제라고 하였습니다. 열린 문제란 우리가 토론할 수 있다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위치에 집착하게 되는 이 의무 사항은 본질적으로 심지어 아마도 전적으로 완화되거나 또는 심지어 없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결정적인 요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확정된 것이지,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롭게, 더 나은 방법으로, 정직하게, 당국자로 인한 모든 측면에서 토론할 수 있는지는 나중에 알 것입니다. 너무나 혼란에 빠져 있는 교회 내의 현 상황을 더 더욱 악화시키지 않도록, 신앙에 대해서 분명히, 믿어야할 것에 대해서, 그리고 지금 우리가 이 선명성, 교회당국으로부터의 선명성을 요구해야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오랫동안 요구해왔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이 공의회 안에는 모호함이 있다. 그것들을 명쾌하게 밝혀야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지만, 그것들을 명쾌하게 해명해야할 권위가 있는 곳은 실제적으로 로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말하건대, 이 주교들이 우리에게 말한 바, 이것들은 토론할 수 있는 열린 문제이며, 토론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제가 생각건대... 중대합니다.

 

토론 자체는 우리 측 회담자의 특성에 따라 다소간 기쁘게 나타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또한 좋은 교환(우리 안에서)이 반드시 동의에 이르는 것은 아니기에....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한 회담자들 모두가 평가에 있어서 만장일치를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토론에 만족했습니다. 또한 방문에 대해서도 만족했습니다. 신학교의 질에 대해 칭찬을 하면서 “정상적으로 돌아가는군(다행이야! 그렇게 시작해야 해...)”라고 말했습니다. 이분들이 속 좁은 주교들도, 우둔한 분들도 아니며 활기차고 개방적이며 즐겁고 정상적인 개개인이며 꽤나 순수합니다. 모든 방문객들이 이 말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부인할 수없는 인간적 측면이지만 우리도 역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제게 있어서 이러한 토론, 또는 보다 분명히 토론의 이러한 쉬운 측면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문제점의 하나가 불신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우리는 이러한 불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하건대 로마는 분명히 우리와 관련하여 이 불신을 가지고 있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불신이 퍼지는 한, 무슨 말을 하던 간에 해결책이 제시될 때 그 자연스런 경향은 잘못된 방법을 택하거나, 또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하게 됩니다. 불신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나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의 비난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신뢰와 고요한 분위기에 도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불신의 모습은 아직도 우리 마음속에, 그리고 로마에도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저러한 모든 것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양쪽이 고마움을 표하는 사람들 주변에 다가가서 그들의 의중을 올바르게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간이 걸리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이것은 선의(善意)를 보여주는 행동라는 것과 우리를 파괴하려는 의도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마음 뒤 곁에는 이런 생각을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널리 퍼져 있는 인식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원한다는 것은, 그것은 그들이 우리를 질식시키고, 결국 우리를 파괴하고 우리를 전부 흡수하며 우리를 붕괴시키려하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가짐은 통합이 아니고 분열입니다! 분명히 이러한 생각을 널리 가지고 있는 한,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7. 교회의 현재 상태: 걱정과 희망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행위의 일련의 과정을 보는데 있어서 저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제가 보는 것은 커가는 혼란, 분명히 모순된 요소에서 결과로 나오는 혼란, 교리, 도덕 그리고 규율의 희석에서 오는 혼란입니다. 각 모든 사람의 체계에 달려있습니다. 주교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것, 그러면서 서로 모순되는 것을 원합니다. 질서가 잡힌 분명한 소리인 공식적인 것도 없고, 심지어 이쪽이나 저쪽이나 어느 선(線)에다 전하는 소리조차도 없습니다. 몇 년 전에는 그래도 어떤 선(線)이 있었습니다. 현대주의자들의 목소리였습니다. 이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악명 높은 정신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문제에 관하여 주교들 사이에 심지어 로마에서도 심각한 불일치가 있음을 봅니다. 어느 쪽이 승리할 것이며, 어느 쪽이 우세할 까요? 한동안 그 해답을 못 찾겠습니다.


분명히, 우리가 일을 진전시키면 시킬수록, 현대주의자들이 점점 더 약화된다는 점은 분명하다는 것을 말씀드리면서 어떤 생각, 어떤 징후에 의존할 수 있습니다. 저들의 신자가 적을수록, 저들의 성소자(聖召者)가 적을수록 저들의 교회는 죽어가는 교회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와 반면에, 젊은이들 가운데, 우리는 정확하게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관찰해보면 훨씬 더 진지하고 모든 면에서 특히 교리 수준에서 충직한 교회를 원하는 젊은이들이 꾸준한 늘고 있음을 봅니다. 젊은이들, 신학생들, 이들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신학)를 원하고, 건전한 철학으로 돌아가길 원하며, 분명하고도 건전한 신학인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콜라 철학을 원합니다. 우리는 이 젊은이들이 또한 전통전례를 원하는 모습을 봅니다. ‘갱신된’ 전례가 아니라, 전통전례로 돌아가는 것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이러한 숫자는 인상적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현대 신학교의 이러한 젊은이들과 함께 일하는 사제들의 말을 들어보면, 몇 분이 우리에게 말하는 걸 보면 프랑스와 영국의 새 신학생들의 50%가 전통미사로 가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제게는 이것이 사실처럼 들리고 이것이 진실이길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경향을 매우 분명하게 보고 있습니다. 도표 상에서 상승하는 선이고 몇 해가 지나면서 이 경향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보면, 지난 해 부터, 혼인과 가톨릭 가정에 관한 시노드의 문제점을 가지고, 우리는 예전보다 양쪽 캠프 사이에서 목소리를 높여 반대해왔습니다. 이것은 보수주의자들이 힘을 얻는데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들의 숫자가 아니더라도, 강도가 커진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와 반면에, 적어도 지배적이기는 하지만 힘을 잃고 있는 다수들은 더 이상 이 방향을 제기할 힘이 없고, 최소한 과거만큼 모든 것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두 가지 입장이 존재합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미래는 무엇인가요? 무엇보다도 강해지는 겁니다. 큰 혼란이 있습니다. 누가 승리할 까요? 그 누구도 모릅니다. 이것이 로마와의 관계를 극도로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다음날이 될지, 우리가 최종적으로 동의할 문서가 많은 토론이 있은 후, 사실, 명확한 문서가 될는지 전혀 알지 못하면서 대화자와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2년에 우리는 어느 간섭에 의해... 그러나 교황의 간섭이 아닌 어느 고위당국자로부터 어떻게 문서가 고쳐지고, 변형되었는지를 목격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를 통치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말하건대 이것은 답변을 못 듣는 상태로 된 매우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명확하지 않은 힘이랄까.....그런 것이 있습니다.


8. 복되신 마리아께 우리가 무엇을 요청해야 하나요?


 아! 많이 있습니다. 특히 영혼 구령입니다. 우리 영혼 구령을 위해, 각 개인의 영혼 구령을 위해, 자기 자신을 성비오10세회와 사제들에게 맡기고자 들어오는 각 영혼들의 구령을 위해, 그러므로 우리는 성비오10세회에 충직할 수 있도록 성모님께 요청합시다. 교회에 충직하도록 합시다. 우리 손 안에 있는 교회의 보물인 특별한 유산, 교회의 이러한 모든 보물에 충직하도록 합시다. -천주님은 이유와 방법을 아십니다. - 이 보물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란 이를 위해 제 자리에, 교회 내에 참된 자리에 다시 돌려놓는 것입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승리를 간청합시다. 성모님은 이 승리를 선언하셨습니다. 우리가 조금 더 기다릴 필요가 있습니다.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보게 될 때, 이와 모순된 것을 보게 될 때 조바심도 날 수 있겠지만 기다려야합니다. 그렇지만 이는 모순되는 게 아닙니다. 주님께서 허용하신, 놀랍고도 끔찍한 놀이인 이것이 단지 꽤나 발전된 모습일 것입니다. 인간의 자유 사이에, 심지어 그리스도인 사이에 소통의 부족일 것입니다 그리고 파티마에서 선언된 천국의 간섭, 천국이 요구하는 것, 다시 말해서, 마리아의 티 없는 성심께 드리는 그리스도인의 신심을 불러일으키는 천주님의 간섭을 퍼뜨리는 데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어려운 것이 아니고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위안이 되는 것입니다. 영혼을 둘러싼 전쟁터인 악마와 선하신 주님 사이에 벌어지는 이 주요 전쟁을 보게 되는데, 천주님이 계획하신 영혼이 자유를 누리도록, 승리를 얻도록, 그러나 무력으로 이기도록 계획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은 위엄 있는 놀라운 방식으로 그분의 뜻을 부여하여 모든 인간들이 굴복하게 될 것입니다. - 그것은 세상 종말 때에 일어나는 데 그러나 그때는 너무 늦을 것입니다. 전쟁은 지금 수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영혼을 구하며 이 사업에 도와달라는 은총을 보내달라고 주님에 간청합시다! 이 방법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주님께 요청할 것입니다. 영혼을 구하는 교회의 사명을 이루는 모든 요소를 교회가 재발견하도록 주님께 간청합니다. 교회에 맡겨진 단 한 가지, 으뜸인 한 가지 유일한 것은 영혼을 구하는 것입니다!
 

인터뷰라는 특성을 고려하여 구어체 스타일로 유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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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년 3월4일자 DICI 332호를 보시오. “기사 발췌: 발리에서의 갈레레타 회견의 여파”

 

[2] 전제조건은 다음과 같다: 전통미사가 모든 사제들에게 부여되고 성비오10세회에 대한 견책이 해제된다. DICI 74호 (2003년 4월 12일자)

 

[3] 2009년 10월부터 2011년 4월까지

 

[4] 에클레시아 데이 위원회 위원장 구이도 포조(Pozzo) 대주교가 2001년 2월 25일에 Zenit에게 행한 인터뷰에서의 답변이다:

 

질문: “각하. 2009년 베네딕토 16세께서 성비오10세회에 대한 파문을 해제하셨습니다. 그것은 로마와 다시 교류가 된다는 뜻인가요?

 

답변: SSPX의 주교들에 대한 파문이라는 견책을 베네딕토 16세께서 해제하셨기 때문에, 성비오10세회는 더 이상 교회의 엄중한 처벌(파문)에 예속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조치에도 불구하고 SSPX는 (교회 내에서 정상화가 되지 못한) 변칙적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성청에 의해 교회법상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SSPX가 교회에서 정상화 라는 신분의 변화가 없는 한, 소속 사제들은 합법적인 방법으로 사목과 성사 거행을 하지 못합니다. 에클레시아 데이에게 전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베르골리오 추기경 및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한 신앙선언에 따라, SSPX 일원들은 로마성청과 완전한 교류를 향한 길 위에 있는 가톨릭인들입니다. SSPX의 교회법상 규계화가 인정될 때 이 완전한 교류가 올 것입니다.“

 

[5] 포조 대주교:“결정적으로 중시되는 것이 로마와의 완전한 교류가 되기 위해 요구되는, 다시 말해서, 가톨릭 신경에 대한 충직, 성사의 연대 그리고 교회의 최고 치교권에 대한 가납에 있어서 완전한 일치를 찾는 것입니다.

 

[6] 성년(聖年)이 막 시작될 즈음의 2015년 9월 1일자 Rino Fisichella 대주교에게 보낸 프란치스코 교황의 서한: “나의 (치교권)처분으로, 자비의 성년 기간 동안에 화해의 성사를 거행하는 SSPX 사제들에게 오는 신자들은 그들의 죄에 대한 사면은 유효하고 합법적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