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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의 교서 “Traditionis custodes”에 대한 총장상 신부의 서한(2021.7.23)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8-03



자의교서 “Traditionis custodes”의 공표에 따른 성 비오 10세회 총장상 서한.
 
이 미사, 우리의 미사는 우리에게 반드시 복음서 속의 매우 귀중한 진주와 같아야 합니다. 미사를 위하여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팔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친애하는 성 비오 10세회의 회원과 친구 여러분,
 
 자의 교서 “전통의 수호자들”과 동반된 서한은 소위 전통주의 운동 안에서 깊은 요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우리는 논리적으로 지적할 수 있습니다. 연속성의 해석학 시기, 즉 황상과 불가능한 노력의 시기는 극단적으로 -한번에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식으로- 끝났습니다. 이 단절의 조치는 성 비오 10세회에 직접적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상황을 깊이 숙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숙고함으로써 우리는 누구나 한 발 물러나 질문해야 합니다. “왜 전통미사는 여전히 50년 후에도 불일치의 과실인가?”
 
 우선 우리는 미사성제가 천주의 왕국과 사탄의 왕국 사이의 싸움이라는 언제나 존재해 온 치열한 투쟁의 시간 가운데 계속되어 온 것임을 기억해야합니다. 이 전투는 갈바리아산의 복되신 우리 주님의 승리에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그 투쟁과 승리를 위하여 그분께서는 강생하셨습니다. 주님의 승리가 십자가와 그분의 귀중한 피를 통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에 십자가의 영속화가 갈등과 반대의 표지가 된다는 점은 이해 가능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 땅에 칼을 주러 왔다.”(마태 10:34)고 말씀하셨습니다. 속죄의 제사를 통하여 이루신 주님의 죄에 대한 결정적 승리를 완전하게 표현하는 미사가 반대받는 표지라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왜 미사가 교회 안에서 반대받는 표지가 되었습니까? 답은 간단하면서도 매우 명료합니다. (새 미사 제정) 50년 후, 다양한 요소들은 잘 전해들은 가톨릭 신자들에게 답을 분명하게 확증해 주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 생활의 개념을 -그리고 결과적으로 가톨릭 교회의 개념을- 표현하고 전달해주는 전통미사는 명백히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비롯된 교회론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단순히 전례적, 영성적 또는 순수 전문적이지 않습니다. 문제는 동시에 교리적, 윤리적, 영성적, 교회론적 그리고 전례적입니다. 껍질 안에서 교회의 생활 모든 영역에 예외없이 영향을 미치는 신앙의 문제입니다.

 

 한 쪽에는 모든 시대의 미사가 있습니다. 미사는 세속에 대항하고 승리를 확신하는 교회의 표준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주님께서 죄를 쳐부수시고 사탄의 왕국을 파괴하시고자 수행하신 전투의 계속이기 때문입니다. 미사에 의하여, 미사를 통하여 주님께서는 가톨릭 영혼들과 주님의 십자가와 승리를 함께 나누시고 그들을 그분 휘하에 받아들이십니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희생의 영과 확고한 초자연적 희망의 두 요소로 특징지어지는 근본적으로 전투적인 그리스도인 생활의 관념이 따라옵니다.
 
 다른 한편에는 바오로 6세의 미사가 있습니다. 이 미사는 세속과 조화롭게 살고 세속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는 교회의 확실한 표현입니다. 최종적 분석에서 이 표현은 세상의 권력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에 교회가 더 이상 세속과 투쟁할 필요가 없음을 나타냅니다. 교회는 더 이상 우리 복되신 주님의 희생이 필요 없습니다. 죄의 개념을 상실하여 대속할 것이 없어졌습니다. 이제 교회는 더 이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편적 왕권을 회복시킬 사명을 지니지 않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더 나은 세상, 즉 더 자유롭고, 더 평등하고, 더 환경 친화적인 세상을 모든 것을 오직 인간적 방법으로 만든다는 지상의 창조에 조력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인본주의적 사명에 교회의 사람들이 스스로 헌신한 이 인본주의적 사명에 전례는 반드시 인본주의적으로 맞춰져야만 했고, 신성함의 어떠한 개념들은 비워졌습니다.
 
 지난 50년간 계속되었고 7월 16일 중요 사건으로 벌어졌던 이 싸움은 두 전례양식 사이의 단순한 전쟁이 아닙니다. 이는 가톨릭 교회와 그리스도인 생활에 대한 상이한 두 개념 사이의 전쟁입니다. 이 개념들은 명백히 서로 환원불가능하며 양립불가능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처럼 표현하자면 두 미사가 두 도시를 지은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시대의 미사는 그리스도교 도시를 건설했고, 새 미사는 인본주의적이고 세속적인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전능하신 천주께서 이 모든 것을 허용하셨으므로, 분명 이것은 더 큰 선을 위함입니다. 먼저 전통미사를 알고 그 미사로부터 선익을 얻을 행운에 합당하지 않은 우리에게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늘 감사하지 않는 소중한 보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마 단순한 습관 정도로 간직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귀중한 어떤 것이 공격당하고 모욕당할 때, 우리는 그 가치에 더 나은 감사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7월 16일에 나온 공적 문서의 가혹함에서 비롯된 이 “충격”은 아마도 전통미사에 대한 애착을 쇄신하고 깊게 만들며 재발견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 미사, 우리의 미사는 우리에게 반드시 복음서 속의 매우 귀중한 진주와 같아야 합니다. 미사를 위하여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팔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 미사를 위하여 피를 흘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자들은 이 미사를 거행하기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미사를 수호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할 준비를 하지 않는 자들은 미사참례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톨릭 교회를 뒤흔든 최근의 사건들에 먼저 이와 같이 반응해야 합니다. 가톨릭 성직자 그리고 가톨릭 평신도로서 우리의 반응은 나약하고 때로는 희망없는 해석들보다 심오함과 긴 안목을 지녀야 합니다.
 
 우리 복되신 주님께서는 전통미사에 대한 이 새로운 공격을 허락하신 데 대하여 확실히 다른 목적을 갖고 계십니다. 최근 몇 년간 많은 사제들과 평신도들이 이 미사를 발견했고 이 미사를 통하여 영혼의 성화에 문을 여는 새로운 영성과 도덕적 지평을 만나게 되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 미사를 거스르는 최근의 조치는 이 영혼들이 그들이 발견한 것의 결과로 이끌려지게 만들 것입니다. 그들은 주어진 모든 식별의 요소들을 가지고 무엇이 각 가톨릭 양심에 필요한지 이제 선택해야만 합니다. 많은 영혼들은 그들의 신앙에 영향을 줄 중요한 선택에 직면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시 한 번 말하자면 미사성제는 교리적인 그리고 도덕적인 세계의 가장 지고한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결국 가톨릭 신앙을 온전하게 택하는 문제와 신앙을 통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와 희생 그리고 그분의 왕권을 선택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그분의 보배로운 피를 선택하는 문제,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을 본받아, 완전하고 단단하며 항구한 신앙으로 끝까지 그분을 따르는 문제입니다.
 
성 비오 10 세회는 최근 실망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모든 영혼들을 지탱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첫 번째 임무는 그들에게 전통미사가 지구상에서 절대로 사라질 수 없다는 확신을 주는 것입니다. 이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희망의 표지입니다. 게다가 우리 각자는 성직자건 평신도건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자신이 향유하고 있는 풍요로움을 나눌 생각이 없는 자는 사실 소유하기에 부적절한 사람입니다. 나눔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진정 영혼들을 사랑하며 교회에 대한 사랑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와 그분께서 당신 희생으로 드러내신 크나큰 사랑으로 얻는 모든 영혼들은 그분의 교회와 그 교회에 생기를 불어넣는 애덕을 위한 영혼들이 될 것입니다. 특별히 이 시대에 그렇습니다.
 
 통고의 성모님께 이 지향들을 맡겨드려야 합니다. 성모님께 우리 기도를 드립니다. 그 누구도 성모님만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십자가상의 승리에 대한 신비를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성모님보다 친밀하게 주님의 고통과 승리에 결합되지 못했습니다. 성모님의 손에 우리 복되신 주님께서는 온 가톨릭 교회를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모님께 교회의 가장 소중한 것이 의탁되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 - 바로 미사성제입니다.
 
 
2021. 7. 22., 멘징겐.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첨례날.

총장상 다비데 빠글리아라니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