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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견진성사 교재- 제7과 성사(성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11-21

 

 

견진성사 교재 

 

제7과 성사  

 

성체성사  


개요

1. 유형적 표지, 내적 은총, 그리스도께서 세우심(아래)

2. 실재: 증거로서, 1) 최후의 만찬에서 이루어진 약속(요한 6장)·2) 고린도전 11,22-26·3) 성전이 있으며, 성전의 일례를 들면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AD 107년에 선종)가 어느 이단에 관해 쓴 서한에 "...저들은 성체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살이심을 알지 못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3. 성변화(변체론): 정의·실체와 속성

4. 준비 및 감사


유형적 표지:

재료: 밀떡과 포도주

형상: 축성경

의향: 미사성제 중에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성변화)시키려는 의향

거행자: 사제


내적 은총:

성세성사 때 받아서 견진성사로써 강화된 초자연적 생명은 성체성사를 받음으로써 일상적으로 양육된다.


그리스도께서 세우심:

1. 구약에서 예표됨

2. 우리 주께서 약속하심(요한 6장)

3. 최후의 만찬에서 건립성체로써 이루어진 약속: 고린도전 2,23-25·마두·말구·루까복음


 

성체성사의 주요 효과


1. 상존성총의 증진

상존성총은 영적 생명의 기초인즉, 영적 생명의 증진은 모두 상존성총 그 자체의 증진을 반드시 수반하기 때문이다. 성체성사에서 받는 은총의 증진은 다른 성사로써 얻는 것과는 다른데, 왜냐하면 이 성사에서 성체는 우리 영혼의 양식이 되는 모든 은총의 근원이신 그리스도 자신이기 때문이다.


2. 특별한 조력성총

성체성사는 영적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조력성총을 준다. 조력성총은 영적 생활을 진보케 하는 여러 가지 덕을 실천할 은총을 준다.


3. 성체성사는 소죄를 사해준다.

성체성사는 영적 생명을 증진시키고 덕을 실천하도록 고무시키는 고로, 소죄가 사해지는 기도, 즉 애덕송 및 통회의 기도를 바칠 마음이 생기게 하고 또 행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4. 성체성사는 대죄를 예방해 준다.

성체성사는 대죄로 이끄는 해태에 대항하도록 우리를 강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성체성사로써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영혼의 생명과 양식이 되시고자 성체성사로써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다. "나를 먹는 사람은 나로 말미암아 살겠고",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리라."


그리스도께서 미소한 조각 하나만으로도 전체로 온전히 모셔지는가?

그리스도께서는 미소한 조각 하나만으로도 전체로 온전히 모셔진다.


거룩한 성사를 타당히 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룩한 성사를 타당히 영하기 위해서는 성총지위에 있을 것과, 자정부터 공심재를 지켜야 한다.


성총지위에 있다 함은 무엇인가?

성총지위에 있다는 것은 대죄가 없어 천주를 기쁘게 해 드림이다.


대죄 중에 영성체하는 것이 중죄인가?

대죄 중에 영성체하는 것은 중죄인즉,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그 먹고 마심으로써 천주의 심판을 스스로 당하게 하는 것임이니라."

 

그리스도께서 실재하심

이미 배웠듯이 우리는 천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해서 당신 자신의 몸과 피를 성체성사로써 우리에게 주시는지를 안다. 주께서는 정식으로 유효하게 신품성사를 받은 사제에 의해, 최후의 만찬 때 말씀하신 경문이 미사에서 반복되면 면주의 형상 안에 실재하시게 된다.  

 

그러한 경문의 힘으로 그리스도의 참 몸과 피가 실재하시게 되니, 이는 경문으로써 표현되는 연고이다. 천주이시요 사람이시면서 동시에 한 위격이신 그리스도께서 현재 천상에서 영광스럽게 생활하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의 몸과 피가 계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온전한 천주성과 인성이 그 자체로 살아 계심에 틀림없다.  


한 개체의 몸과 피가 있는 곳, 그 곳에는 그 개체의 당사자가 몸소 존재한다. 이미 배워 익혔듯이, 그리스도 안에는 어떤 인간적인 사람이 들어있는 게 아니다. 축성경을 힘입어 당신의 몸과 피가 면주의 형상 안에 실재하시게 될 때에는, 천주 성 삼위 중 제2위격이신 당신 자신께서 실재하시게 되는 것이다. 그런즉 우리는 트리덴티노공의회에서 정의한 교리대로, "만일 누가 성체성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그 영혼과 천주성과 함께, 그러니까 온전한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실제로, 실체적으로 계심을 부인하면... 파문를 받으리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 그리스도의 몸이 살아 계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당신의 피 또한 살아 계심이 틀림없으니, 그 몸과 피는 생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분리될 수 없는 연고이다. 성 바오로께서는 이를 이미 이해하셨으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합당치 않게 이 면병을 먹거나 주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의 죄인이 되리라."(고린도전 11,27)


그런즉 그리스도께서는 면병 및 포도주의 형상 안에 온전히 계시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성체가 쪼개지거나 부서졌을 때 각각의 쪼개진 조각 안에도 살아 계신다. 최후의 만찬 때 그리스도께서는 면병 한 쪽만을 축성하셔서 그것을 쪼개시고는 한 조각씩을 각 종도들에게 주셨으며, 종도들은 모두 한 컵의 포도주 잔을 돌려가며 마셨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Lauda Sion Salvatorem이라는 송가로써 이 진리를 표현하였다. "당신을 함께 영하는 이는 당신을 가르지도 못하고, 부수지도 못하며, 나누지도 못하나이다. 그는 온전하신 당신을 영하나이다. 한 사람이건 천 사람이건 당신을 영하며 한 사람이 당신을 영함은 천 사람이 당신을 영함과 한가지로소이다. 또한 당신이 영하여질 때 당신은 작아지지도 않나이다."


실체와 속성

이미 여러 번 면병과 포도주의 형상에 관하여 말하였다. 그리스도의 성체성사적 존재양식에 관한 확실한 진리를 명백히 하기 위해 이를 좀 더 설명해야 하겠다. 각자가 좋아하는 어떤 물건, 예를 들어 빵을 생각해 보라. 그 빵은 나름의 모양에다가 나름의 색깔과 크기 혹은 무게를 지니고 있을 터인즉, 그중 어느 것도 빵이 아님이 명백하다. 사실, 감각을 통해 접촉하는 것, 볼 수 있거나 느낄 수 있거나 인식할 수 있는 것 중 어느 것도 실제의 빵이 아니다. 빵은 위의 특징을 지니고는 있으나 그 특징 자체가 빵은 아니다. 그것들은 형상이다. 철학자들은 그것들을 속성이라 부른다. 물질 자체는 실체라 일컬어진다. 우리의 감각은 실제적인 실체와는 접촉하지 못한다. 실체는 변할 수 있지만 형상이 변하지 않으면 그것이 변화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변체론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면병 한 쪽을 손에 드시고는 "이는 내 몸이니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았다. 종도들은 어떤 변화도 못 봤으나, 그 순간에 빵의 형상은 그대로 남아있고 빵의 실체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실체로 나타났다는 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이다. 실체의 변화, 즉 성변화(변체)가 일어난 것이다. 진리 자체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므로 그런 일이 일어났음을 우리는 안다.


우리 주께서 사용하신 말씀은 "이는 내 몸이니라"였다. 주께서 손에 들고 계셨던 물건인 이것을 당신의 몸과 똑같은 것으로 공언하셨던 것인즉, 이 사실은 실체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도저히 참될 수 없는 것이었다. 트리덴티노공의회의 교리서가 이를 규정한 바에 따르면, "이 성사를 세우실 적에 우리 주님이신 당신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내 몸이니라'라고 하셨다. '이는'이라는 말은 존재하는 물질의 실체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며, 따라서 만일 면병의 실체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었다면 우리 주께서는 참으로 '이는 내 몸이니라'라고 말씀하실 수 없었으리라"고 한다.


이것이 항상 교회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성 암브로시오와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씀에서 비롯된 짧은 인용문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대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얼마나 위력이 있는지를 안다. 만일 주 예수의 말씀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인 세상더러 존재하라고 명하시어 그 세상이 존재하게 될 정도로 능하시다면, 이미 존재하는 것을 말씀 한 마디로 다른 것으로 변화시키는 데에는 얼마나 더 능하시겠는가?"(성 암브로시오, De Sacr. lib, iv, c.4)

 

"축성 전에 그것은 면병이지만 축성경이 외워지자마자 그것은 면병으로부터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ibid.)  

"눈에는 비록 면병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보일지라도 변화지례 후에는 그 면병과 포도주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만이 계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성 암브로시오, 'Gratian'에서 인용, p.3 dist. ii, 74)

"변화지례 전에는 자연의 산물인 빵과 포도주이나, 변화지례 후에는 축성에 의해 성변화된 그리스도의 몸과 피이심을 우리는 충성스럽게 고백하는 바이다."(성 아우구스티노 ibid, 41)

"트리덴티노공의회의 교리서는 계속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실체적으로 존재하시는 것이므로, 성체 안에 어느 한 지점에 계시듯 계시는 것이 아니다. 이는 물의 전체적인 특성이 호수에도 존재하여 그 특성이 호수의 물 한 방울에도 존재하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본성 전체가 가장 미소한 조각으로 있는 면병의 형상 안에 실재하시는 것이다. 천상에서 그리스도는 불변하신 채로 계신 반면, 그 몸의 실체는 성체 안에 실재하시게 된다. 이는 천주께서 계시해주신 것으로서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존재양식이므로 해명할 수 없는 신비이다.


우리는 감각으로는 느낄 수 없게, 인간의 일상 음식인 면병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천주의 지혜를 찬미하는 데 만족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식으로 실재하시는가

그리스도께서 성체성사적으로 실재하시는 방법은 다음 문답을 잘 생각해 봄으로써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1) 변화지례의 순간에 면병과 포도주의 실체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면병과 포도주가 소멸되는가? 면병과 포도주가 구성된 요소들로 되돌아가는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면병과 포도주의 실체를 더 작은 공간 속으로 밀어 넣음으로써가 아니라 변화를 통하여 실재하시게 된다. 소멸도 없고 구성 요소로 돌아감도 없으며 압착 현상도 없다. 오직 변화일 뿐이다. 우리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내 몸이니라"라고 하셨지, 여기에 내 몸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다.


2) 빵의 실체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실체로 변화될 수 있는가?

천주의 능력이 실체의 변화를 일으킨다.


그리스도께서 실재하시게 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있는가?

천주께서는 성체 안에 거하시기 위해 천국을 떠나시는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몸이 어디에든지 계시지도 않는다. 천주의 전능으로 면병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그리스도의 몸이 존재하시게 되는 것이다. 실험으로써 면병과 포도주의 형상이 그대로 남아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  

 

그에 대한 천주의 말씀이 있으니, 면병과 포도주의 실체는 그곳에 더 이상 없다. 결국 면병과 포도주의 형상은 그 자체의 실체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천주의 전능으로써 유지되는 것이다. 인간은 체셔 고양이의 얼굴에서 그 고양이가 히죽 웃는 웃음조차도 체셔 성의 돌담에 옮길 수 없다. 같은 식으로 면병과 포도주의 형상이 면병과 포도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로 옮겨지는 것이 아니다. 면병과 포도주의 형상은 그대로 남아있으나, 색깔, 맛과 기타 등등의 자연적 특성을 모두 간직한 채 천주의 직접 관여하심을 통하여 그 형상이 기적적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3) 이 성사 안에 그리스도께서 전체로 계시는가?

그렇다. 모든 면병 부스러기 안에 면병의 실체가 전체로 포함되어 있는 것과 같은 식이다.


4) 성체 조각 모두에 그리스도께서 전체로 계시는가?

그렇다. 아무리 미소하다 할지라도 모든 면병 조각 안에 면병의 실체가 전체로 포함되어 있는 것과 같은 식이다.  


5) 면병 속에 완전한 사람이 압착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리석지 않은가?

압착이라든지 수축이라는 것은 문제삼을 일이 못 된다. 축성경의 힘으로 그리스도의 몸의 실체가 실재하시는 것이다. 그 밖의 모든 것은 공간의 한계와는 무관하게,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게 실체가 존재하는 식으로 존재한다. 이런 식으로 실체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의 물리적인 몸이 모든 차원으로 존재하나, 오로지 실체를 보거나 만질 수 없기 때문에만 그것을 보거나 만질 수 없는 것이다.  

 

포도주의 실체는 가장 작은 방울이든지 큰 통에 있든지 간에 전체로 존재한다. 한 컵을 쏟아내서 외형상의 분리가 생기게 해도 그 실체는 손상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성체를 쪼갠다 해도 그리스도의 실체는 손상되지 않는다. 빵이 썩으면 그것은 더 이상 빵이 아니게 된다. 실체가 다른 어떤 것으로 변한 것이다. 축성된 면병이 썩어도 그리스도의 몸은 썩지 않는다. 면병의 형상이 그대로 남아있는 한, 면병이 화학적 실험에서 작용하듯 속성이 작용하는 한 그리스도의 몸은 그대로 남아있다.  

 

그러나 그런 속성이 더 이상 면병의 속성이 아닌 상태가 되기까지 부패가 진행되면, 그리스도의 실재는 정지되고 자연히 그 실체에 해당되는 새로운 속성이 유지된다. 이 성사에는 두 가지 기적이 있다. 첫 번째는 면병과 포도주의 실체가 그리스도의 실체로 변화되는 것과 두 번째는 천주께서 직접 관여하셔서 면병과 포도주의 속성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실재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스파리 추기경이 쓴 가톨릭 교리서에는 그리스도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신 것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돼 있다. 즉, (1) 우리 인간에 대한 크나큰 사랑으로 주께서는 우리 가운데 남기까지 하셔서 우리를 사랑으로 이끄시고 당신을 흠숭하도록 하기 위해서, (2) 영성체로써 우리와 결합해주시고, 우리 영혼의 천상 양식이 되시어 우리의 영적 생명을 보존시키시고, 마침내 생명이 끝날 때 영원으로 향한 여행에 대비하는 노자성체가 되어 주시기 위해서 성체성사를 세우셨다.


우리 영혼을 위한 양식


우리가 알게 되었듯이, 주께서는 당신의 몸을 먹고 당신의 피를 마실 것을 우리에게 촉구하신다. 그렇게 하기를 거부하는 자는 파멸의 위기에 직면할 것이나 당신의 초대에 응하는 자는 영생을 약속 받게 된다.


되풀이하건대, 성체는 모든 은총의 근원이신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다른 모든 성사는 그리스도(성체)께로부터 성사가 지니고 있는 좋은 것을 모두 이끌어낸다. 따라서 거룩한 성사인 이것이 우월한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노가 기본적인 진리를 잘 표현하였다. "나는 장성한 자의 음식이로다. 너는 커라. 이에 나를 맛보리라. 네 육체의 음식처럼 나를 네게 동화시키지 말라. 오히려 너를 내게 동화시킬 것이니라."(고백록 vii, c.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