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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약해천주교요리(略解天主敎要理) - 제2장 종도신경(제10요목)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11-21

 

 


약해천주교요리(略解天主敎要理)


제2장 종도신경해설 - 제10요목


 

110. 신경 중에서 제10요목은 무엇인가?   

신경 중에서 제10요목은 '죄의 사함'이다.


111. '죄의 사함'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죄의 사함'은 그리스도께서 당신 교회의 목자에게 죄를 사하는 권(權)을 맡기셨음을 의미한다.(요왕 20,23)  

 

죽은 자 가운데로조차 다시 살으시던 날 저녁에 우리 주께서는 당시의 종도들에게 나타나셨다. 당신께서 정말로 일어나셨음을 확신시켜 주시고자 당신의 손과 늑방의 상처를 보여 주셨다. 그리고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는 평안할지어다. 마치 성부 나를 보내심같이 나 또한 너희를 보내노라," 하시고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저들을 향하여 기운을 불어넣으시며 이르시되 "성신을 받으라. 너희들이 사람의 죄를 사한즉 사하여질 것이요 사람의 죄를 머무른즉 머물러 있으리라."(요왕 20,21-23) 주님의 말씀과 우리 주님의 행동을 주목하라. 당신께서는 종도들을 향하여 기운을 불어넣으시어, 성부께로부터 당신이 받으셨던 임무를 계속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성신의 능력을 주신다.  

 

주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해 주시려고 오셨다. 주께서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을 가지고 바리사이들이 트집을 잡자 주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 의인을 부르려 오지 아니하고 오직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려 왔노라."(루가 5,32) 그리고 복음을 통하여 살펴 볼 수 있듯이, 계속해서 죄를 사하시는 천주의 권능을 사용하셨다. 그리고는 다시 살아나신 후에 곧 하늘에 오르시고, 당신이 오셔서 행하고자 하신 인자하신 행적을 세세 대대로 전하도록 종도 및 그 후계자들을 남기시되, 인간의 죄를 그들의 보살핌 아래 두시어 사함 받을 가치가 있는지 혹은 그렇지 아니한지를 그들이 보는 바에 따라 인간의 죄를 사하든지 아니면 사하지 않든지 할 것을 준엄하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그 이후로부터 교회는 천주의 이름으로 그리고 당신의 권능 및 권위로 말미암아, 죄인들이 천주를 거슬러 범한 죄를 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종도 및 그 후계자들은 잘 생각하지 않고 사해 주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의 영혼을 판별하여 저들이 사죄받을 만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사람들이 천주를 거슬러 범죄하고 자기 죄에 대하여 회개한다고 말(역자 주: 고명행위를 말함)로써 표명할 경우에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보속과 고해의 성사를 받으러 갈 때는 거듭 그리스도의 말씀을 숙고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우리 주께서 정말로 종도들에게 당신의 이름으로 사해 줄(즉, 죄인을 용서할) 권한을 주셨음을 분명하게 알았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또 사죄해 주는 데 대한 필수적인 조건, 즉 죄인이 자신이 행한 대로 고명해야 하는 것과 범한 죄에 대한 통회를 명백히 밝혀야 할 것임을 정해 놓으셨다.  

 

교리문답은 여기서 요왕 복음 20장 23절을 가리킴으로써 교회가 고해성사를 통해서 죄를 사해 주어야 하는 권한에 대해 우선적으로 언급한다. 그러나 '죄의 사함',이라는 신경 중의 글귀는 용서해야 할 교회의 전체적인 권한을 포함하며, 그에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요왕 복음 20장 23절에서 말씀하실 때 세우고 계신 고해성사뿐만 아니라 앞으로 공부할 때 보게 될 것과 같이, 원죄 및 어떤 자범죄라도 용서할 수 있는 용서의 성사인 성세성사까지도 포함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신경은 교회가 죄를 용서해 주는 권한의 범위를 총망라한다.


112. 무슨 수로 죄가 사해지는가?

주로 성세성사 및 고해성사로써 죄가 사해진다.  

 

주로'라는 말을 주목하라. 성사를 샅샅이 공부해야 그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113. 죄란 무엇인가?

죄란 천주의 법에 어긋나는 생각, 말, 행위, 혹은 궐함으로써 천주를 거슬러 범죄하는 것이다.  

 

죄가 무엇인지를 참말로 이해하는 이가 적은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들은 일이 잘못된다든지 타락한다든지 행해지지 않는 것, 기타 등등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식의 표현은 그 어느 것도 죄의 진정한 악의(惡意)가 천주를 거슬리는 범죄임을 확신케 하지 못한다. 죄의 악의에 대한 몇 가지 관념을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죄가 이루어 놓은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상기해야 한다.  

 

천신들의 타락을 보자. 천신들은 단 한 가지 생각으로 죄를 범했으니, 그것은 바로 교만의 죄였다. 그 때문에 천주께서는 지옥을 만드셨고 기이한 영적인 존재, 수많은 천신들을 영원히 그 속에 던지셨다. 천신들이 그 죄를 범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당신과 더불어 영원토록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었다. 다시 인간이라는 종족이 아담의 죄 때문에 고통을 겪었고, 고통을 겪고 있으며, 시간이 끝날 때까지 고통을 겪을 것이다. 이번에는 십자가를 바라보라.  

 

거기서 누가 손과 발에 못 박힌 채 매달려 고통과 수치 속에 죽어 가고 있는가? 바로 천주 성자,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를 위해 당신이 겪으신 고통과 죽음은 천주 보시기에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우리 천주의 고통을 숙고함으로써 그 교훈을 배우기로 힘써야 한다. 그렇듯 진지한 생각이 있어야 우리는 심사숙고하여 다시는 대죄를 범치 않으리라는 굳은 결심을 확고히 할 것이다.  

 

교리문답에서는 죄가 천주의 법에 어긋나는 생각, 말, 행위 혹은 궐함이라고 말해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네 가지 방식으로 죄를 범할 수 있는 셈이다(이는 신경 중에서 제7요목을 거치면서 설명했다. 73번을 보라).  


114. 죄가 몇 가지 종류 있는가?

두 가지 종류의 죄가 있으니, 원죄와 본죄이다.


115. 원죄는 무엇인가?

원죄는 온 인류의 원조이면서 머리였던 아담으로부터 상속받은 죄의 얼룩 및 그 죄성(罪性)이다.

 

이 질문과 다음 질문은 질문 43번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다.  


116. 아담이 범한 죄는 무엇이었는가?

아담이 범한 죄는 금지된 실과를 먹은 불순종의 죄였다.


117. 온 인류가 원죄의 죄성과 얼룩에 물들었는가?

온 인류는 천주 성자의 공로를 힘입어 조금이라도 원죄의 죄성이나 얼룩이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녀를 제외하고는, 원죄의 죄성 및 얼룩에 물들었다.


118.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그런 특은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특은을 무염시잉모태(無染始孕母胎)라고 한다.

 

무염시잉모태는 어떤 사람들이 엉터리없이 추측했던 것처럼 복되신 동정녀께서 어떤 기적적인 방법으로 잉태되셨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녀에게는 다른 모든 평범한 인간과 마찬가지로 양친(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이 있었다. 무염시잉모태는 그녀의 자연적인 잉태 및 출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천주께서 그녀의 영혼을 창조하셨을 때 원죄로 오염되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음을 의미한다. 그 외에 우리는 영혼에 원죄를 지니고 잉태되어서, 성세성사를 받을 때까지는 원죄에서 해방되지도 못하고 천주의 성총 및 벗됨이라는 은혜를 받지도 못한다. 마리아께는 마리아가 그 모친의 복중에 존재하시던 바로 그 순간부터 그 성총과 벗됨이 있었으니, 천주께서 그녀를 당신의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이 되도록 예비하셨던 까닭에 특은을 받으신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속하셨다. 그리고 마리아도 구속하셨다. 당신의 죽음과 수난 공로가 아니었다면 마리아는 원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었다. 마리아의 구속과 우리의 구속 사이의 차이를 볼 것 같으면, 우리는 일단 원죄에 물든 이후에 원죄에서 씻겨지는 반면에 그녀는 원죄를 지니는 것조차 예방되었다는 것이다. 다음의 보기가 그 문제를 분명하게 밝히도록 도와 줄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빚 때문에 감옥에 가야 한다면, 그를 두 가지 방법으로 속량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이미 감옥에 간 이후에 그의 빚을 갚아 주든지, 아니면 감옥에 가기 전에 갚아 주어서 그가 감옥에 가는 것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두 가지 경우의 속량이 있는 것이다. 첫 번째 대안은 원죄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경우를 대변한다. 두 번째 대안은 마리아의 경우를 대변한다. '무염'이라는 말은 '얼룩이 없음'을 의미한다. 원죄로 인하여, 아담이 죄를 범하지 않았다면 천주께서 우리 모두에게 지니도록 해 주시려 했던 성총을 상실하게 되었다. 성총은 영혼의 장식품이다. 그것은 천주 보시기에 영혼을 아름답게 해 준다. 그러므로 성총이 없다는 것은 그 아름다운 장식품이 없는 것이어서 흠이 된다. 마리아는 당신이 잉태되신 첫 순간부터 성총이라는 장식품을 타고 나셨으므로, 그녀의 영혼은 흠이 없고 원죄가 없으시다.  

 

성모의 무염시잉모태는 1854년 12월 8일에 교황 비오 9세가 선포한 천주교 신앙의 신덕도리이다. 마리아가 모든 죄, 원죄 및 본죄에서 자유로워야 함은 마리아와 사람이 되신 천주 성자의 관계의 친밀함으로써 요구된다. 마리아는 천주 성자의 모친이셨다. 천주 성자는 마리아의 살에서 살을 취하셨고 마리아의 뼈에서 뼈를 취하셨다. 성 바오로는 우리가 모두 성신의 성전이라고 말한다. 천주 성자의 인성이 비롯된 정결하신 마리아의 복중에서는 얼마나 더 그러하셨을까. 마리아는 존재하시는 첫 순간부터 거룩하신, 그토록 극도로 거룩하신 직책으로 인해 거룩하신 사람이셔야 했다.  

 

여기에다가 천주 성자께서 지상에 오신 목적이 바로 죄의 파괴 및 사탄의 지배를 멸망시키는 것이었음을 덧붙여 보라. 그럴진대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당신을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모친으로 하여금 잠시 동안이나마 사탄의 지배 하에 있도록 내버려두실 수 있겠는가! 당신께서는 기적적으로 그녀의 동정성을 보호하셨다. 그리스도께서 마리아의 영혼의 절대적인 순결도 역시 보호하지 않았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성경의 첫 머리, 아담과 이브의 죄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 가 보면, 천주께서 사탄과 여인 사이에, 사탄의 자손과 여인의 자손 사이에 반목을 이루어 주시리라고 뱀(사탄)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창세기 3,15) 지적된 여인은 바로 이브이다. 그리고 그 구절은 타락한 천신과 인간 사이의 끝없는 적대감을 미리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여인의 자손은 승리할 것이다. 뱀의 머리가 짓밟혀져서 인간이 사탄을 패배케 할 것이다. 그 패배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임으로 해서, 그리고 인간의 사탄에 대한 저항력이 온통 그리스도로부터 비롯됨으로 해서, 천주께서 에덴에서 하신 말씀은 그리스도께 대한 예언적인 암시를 포함한다.  

 

성 바오로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옛 아담이 잃었던 것을 인류에게 회복시켜 주시는 새로운 아담이라고 한다. 처음부터 교회는 옛 이브가 옛 아담의 패배를 공유했듯이 사탄을 딛고 일어서신 새 아담의 승리를 새 이브와 공유하시되, 그 새 아담의 옆에 새 이브가 계시는 것을 보아 왔다. 새 이브는 마리아이다. 그리하여 교회는 에덴이라는 낙원에서 최초의 이브에게 주신 천주의 말씀에서 더 새롭고 더 위대한 예시된 이브, 즉 당신의 아드님 곁에 계시며 당신 아드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당신 아드님의 표양을 따라 죄로 손상되지 않은 마리아를 목격하였다.


119. 본죄는 무엇인가?

본죄는 스스로 범하는 모든 죄이다.


120. 본죄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본죄는 대죄와 소죄로 구분된다.


121. 대죄는 무엇인가?

대죄는 천주를 거슬리는 중대한 죄이다.  

 

이는 어떻게 해서라도 피해야 하는 죄이다. 그것은 천주를 직접 거슬리는 배반 행위이므로, 천주의 무한하신 주권과 착하심에 대한 직접적인 모욕이다. 대죄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1) 깨뜨리는 계명이 중대해야 한다. 예를 들면 살인을 범하는 것, 정말로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 사람의 인격을 파괴시키는 것, 몇 파운드를 훔치는 것은 중대하게 잘못하는 것이다. 

(2)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3) 곰곰이 생각한 후에 해야 한다. 만일 과실이 그 자체로는 중대하지 않다면, 혹은 중대하더라도 그 중대성을 깨닫지 못하거나 별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면 대죄가 아니고 소죄이다.  


122. 어째서 대죄(죽을 죄)라고 하는가?

영혼을 죽여서 마땅히 지옥에 가게 되므로 대죄라고 한다.  

 

'죽을'이라는 말의 뜻은 '죽게 된'이다. 예를 들어서, 죽을 정도의 부상자는 죽게 된 사람이다.


123. 대죄는 영혼을 어떻게 죽이는가?

대죄는 영혼의 초자연적인 생명인 상존성총을 빼앗음으로써 영혼을 죽인다.

 

교리문답 첫 머리에서 영혼이 불멸한다는 것을 알았다. 즉, 그것은 결코 죽을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는 대죄가 영혼을 죽인다고 말한다. 그러나 답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여기서 죽인다는 것은 영혼의 평범한 생명을 언급하는 게 아니다. 대죄 중에 있는 영혼은 계속해서 존재한다.  

 

그러나 성총으로 말미암아 영혼에는 그 자연적 생명에 덧붙여진 제2의 생명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초자연적 생명이라고 한다. 그것은 천주를 섬김에 있어서 단순히 자연적인 능력만으로는 발휘할 수 없는 생명력을 준다(138, 139번을 보라). 대죄는 영혼에게서 성총을 몰아낸다. 그에 따라서 그 초자연적 생명력이 파괴되며, 그런 의미에서 영혼을 죽인다고 하는 것이다.  


124. 대죄에 떨어지는 것은 중대한 악인가?

대죄에 떨어지는 것은 가장 중대한 악이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 중에 그 어느 것도 천주의 사랑과 우정에 비할 수 없다. 대죄로 말미암아 천주의 우정을 잃어버린다. 그러므로 대죄는 악 중에서도 가장 크다. 게다가 다음 질문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대죄 중에 죽는 이들은 영원히 지옥으로 갈 것이다. 그들은 결코 천당에서 천주와 함께 있지 못할 것이다. 천당을 잃음은 우리에게 닥칠 수 있었던 불행 중 최대의 불행이다.


125. 대죄 중에 죽는 이들은 어디로 가는가?

대죄 중에 죽는 이들은 영원히 지옥에 갈 것이다.  

 

대죄는 천주의 무한하신 주권에 대항하는 직접적인 배반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손상된 개인의 존엄성 및 사랑과 봉사를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범죄의 중대함을 측정한다. 그러므로 천주의 무한히 착하심을 직접 모욕하는 것은 그것에 대하여 무한한 죄를 범하는 것이다. 벌은 범죄에 걸맞은 것이어야 함에 따라, 무한한 죄의 벌은 정의 안에서 끝이 없어야 한다.  

 

대죄는 영혼의 초자연적인 생명을 죽인다. 그래서 죄인이 영적(靈的)으로 죽는 것이다. 만일 그가 회개의 성총을 거부하고 또 그것을 거부하면서 죽는다면, 그는 영적으로 죽은 채 죽는 것이니 천주께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된다. 결국 그에게는 이승의 생명을 마친 후에는 회개할 기회가 더 이상 없는 고로, 영원히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천주께로부터 영원히 떨어져 나가는 것은 반드시 지옥벌이다.  

 

그러므로 죄 중에 죽는 대죄인은 반드시 지옥에 간다. 회개치 않은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그는 당연히 스스로 지옥에 가는 것이다. 그는 영원히 천주를 거부하는 것 외에는 천주께 그 어떤 선택권도 드리지 않은 셈이다.  


126. 소죄는 무엇인가?

소죄는 영혼을 죽이지는 않지만, 천주를 불쾌하게 해 드리고 종종 대죄로 이끄는 범죄이다.


127. 왜 소죄라고 하는가?

대죄보다는 더 쉽게 용서받을 수 있기 때문에 소죄라고 한다.

 

'가벼운'이라는 말은 '용서하다'를 의미하는 베니아(venia)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대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우리는 고해소에 가서 사제로부터 사죄경을 받든지, 부득이한 경우에는 상등통회를 발함과 동시에 고해소에 가겠다는 소망과 의향을 가져야만 한다(294번을 보라).  

 

그러나 소죄에 대하여는 통회의 정을 발함이 족하다. 그러면 천주께서 즉시 용서해 주시며, 반드시 고해소에 가야 할 필요까지는 없다. 소죄를 꼭 고명하지 않아도 된다. 대죄에 대해서 살펴보는 중에, 어떤 죄가 대죄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요구된다고 말했었다. 문제가 중대하고, 그 중대성을 완전히 알았어야 하며, 그것에 대해 충분히 숙고해야 한다. 만일 문제가 중대하기는 해도 자신이 행하고 있는 것을 겨우 반만 알거나, 겨우 반만 숙고하든지 하면, 그 때에는 죄가 죽을 만한 것이 될 수 없어서 가벼울 것이다.  

 

다시 말해서, 행하고 있는 것을 완전히 잘 알고 그에 대해 꽤 숙고한다 해도 문제가 심각하지 않으면, 그 때에도 역시 죄가 가볍다. 누군가 사소한 거짓말을 하도록 유혹을 당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그것이 죄라는 것과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신중히 생각해서 말한다면 괴로움을 면할 것이다. 그런 것은 소죄이다. 그 거짓말이 어느 누군가의 인격을 파괴시키거나 혹은 그의 생계에 손해를 끼치기 위해 계산된 것이었다면 문제가 다르다. 그런 것은 매우 중대한 문제인 까닭에 그같은 종류의 신중한 거짓말은 대죄가 될 것이다.  

 

이전의 대답에서 소죄가 자주 대죄로 이끈다고 말했었다. 소죄는 우리의 신앙을 약화시키고 열정을 감소케 한다. 그것은 영혼 안에 있는 상처와 같다. 만일 누군가가 자기 몸의 상처에 주의를 제대로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는 쉽게 어떤 심한 질병에 감염되어서 죽을 수도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소죄에 대해 부주의하면, 유혹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져서 중대한 타락에 자신을 쉽사리 넘기게 된다. 그런 식으로 소죄들이 결국 대죄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 해도 특별히 습관적이라면, 그것들은 우리를 모종의 대죄에 떨어지기 쉽게 한다. 번개는 큰 화재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사소한 도덕적 실수가 도덕적인 파멸로 이끌 수 있다.  

 

사람들은 때때로 말하기를, "그것은 겨우 작은 죄일 뿐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다,"라고 한다. 그러나 소죄는 모두 천주를 거슬리는 범죄이므로, 대죄 다음으로 우리에게 가해질 수 있는 그 어떤 육체적인 악보다도 훨씬 더 큰, 가장 큰 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