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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약해천주교요리(略解天主敎要理) - 제2장 종도신경(제9요목)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11-21

 

 

약해천주교요리(略解天主敎要理)


제2장 종도신경해설 - 제9요목


83. 신경 중에서 제9요목은 무엇인가?

신경 중에서 제9요목은 '거룩하고 공번된 회와 모든 성인의 서로 통공함'이다.

 

즉, 나 거룩하고 공번된 회, 기타 등등을 믿는다.  


84. 공번된 회란 무엇인가?

공번된 회란 모든 신자가 하나의 머리 아래 일치하는 것이다.  

 

이제 신경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목에 이르렀다. '나 거룩하고 공번된 회를 믿는다'고 말할 때에는, "나는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 하나인 참된 교회이므로 내 영혼을 구하고 싶으면 그 교회에 속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극히 중요한 질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는 어떤 것인가?'이다. 어느 마을에서든지 숭배 장소를 많이 볼 수 있다. 천주교회, 성공회 교회, 감리교 예배당 그리고 기타 등등이 있다.  

 

우리 주께서 오늘날 이 땅에 돌아오신다면 그들 중에서 어떤 것을 당신의 것으로 인정하실까? 여러 비가톨릭 교도들은, 자기들만이 하나인 공번된 교회이므로 주께서 자기네만을 인정하실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오직 하나인 교회, 즉 우리 것을 인정하시리라고 단언하는 바이다. 우리가 그렇게 단언하는 이유는 교리문답의 이번 질문 및 다음 질문에 자세히 설명돼 있다.  

 

이번 질문에 대한 답에는 주의해야 할 요점이 세 가지 있다. 교회는 일치, 즉 볼 수 있는 회이다. 우리 주께서는 그것을 천국(마두 4,23·13,24), 산상에 세운 읍내(마두 5,14)라 이르셨다. 당신께서는 그것을 양떼(요왕 10:16)에 및 나무가 되는 겨자씨 한 알(마두 13,31·32)에 비유하셨다. 성 바오로는 교회를 한 몸(예를 들어, 코린토 전 12,13), 그리스도의 몸(예를 들어, 코린토 전 12,27)이라 하셨다. 우리 주께서는 종도들을 파견하시되 베드로를 저들의 머리, 즉 당신 교회의 지배자로 삼으시고, 저들을 강론하여 성세성사라는 외형적인 예식으로써 구성원들을 교회 안으로 모아 들이게 하셨다.  

 

이것이 모든 신자들, 즉 믿는 자들의 일치로, 믿는 자들이란 자기네 마음대로 그리스도의 몇 가지 교리만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당신께서 명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모두를 믿는 사람들을 말한다.(마두 28,20)

 

그것은 하나의 머리 아래에서 일치하는 것이다. 모든 사회에는 그것을 지배하고 인도하는 머리가 있으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회는 깨질 것인즉, 왜냐하면 모두가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을 취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상식이다. 우리 주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위해 머리를 주셨으니 그로써 그 안정성을 보장함과 동시에 다음 질문에서 분명히 밝혀 줄 것과 같이 당신의 참된 교회가 어떤 것인지를 알아보는 데 필요한 쉬운 방법을 주셨다.  


85. 천주교회의 머리는 누구인가?

천주교회의 머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직접 천주교를 세우셨으니 당연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천당에 계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볼 수 없고, 그리스도와 이야기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께 의논드릴 수도 없다. 그러므로 지상에서 볼 수 있는 당신의 교회에는 다른 모든 볼 수 있는 회와 마찬가지로 이 곳 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배 기능을 실행하기 위한 머리가 있어야 한다. 우리 주께서는 그런 볼 수 있는 머리를 정해 주셨다.


86. 교회에는 지상에서 볼 수 있는 머리가 있는가?

교회에는 지상에서 볼 수 있는 머리, 즉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로마의 주교가 있다.

 

대리자는 다른 이의 자리를 보충하여 그 다른 이를 위해 직책을 이행하는 사람이다. 답은 로마의 주교인 교황이 그리스도의 권위로 말미암아 및 당신의 이름으로 교회의 우두머리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교황이 교회의 볼 수 있는 머리라는 증거는 다음 두 질문에 주어져 있다.  


87. 어째서 로마의 주교가 교회의 머리인가?

로마의 주교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도록 지정하신 성 베드로의 후계자인고로 교회의 머리이다. 이 답은 다음 질문에서 함께 설명될 것이다.


88. 그리스도께서 성 베드로가 교회의 머리가 되도록 지정하셨음을 어떻게 아는가?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나 또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루라. 나 이 반석우에 내 성교회를 세울 것이매 지옥문이 처 이기지 못하리라. 나 또 네게 천국 열쇠를 주리니"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성 베드로가 교회의 머리가 되도록 지정하셨음을 안다.(마두 16:18·19)  

 

영문으로 된 것을 볼 것 같으면, 영어로는 '베드로'와 '반석'이 아주 다른 말인 것처럼 보이므로, 그리스도의 말씀의 위력을 온전하게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베드로'는 '반석'을 의미한다. 그러니 우리 주께서 진정으로 말씀하신 것은, "너는 반석이라. 이 반석우에"(즉, 그대, 베드로 위에)였다. "나 내 성교회를 세울 것이다". 우리 주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건물에 비유하시고, 그것은 반석(베드로) 위에 세워진다고 하셨다.  

 

다른 구절(마두 7,24·25)에서 우리 주께서는 반석 위에 집을 지어서, 폭풍우가 와도 그것이 반석 위에 세워졌으므로 집이 무너지지 않는 지혜로운 자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렇게 교회는 계속 서 있을 것이다. 지옥 문(다시 말해서, 그 세력)도 그것을 쳐 이기지 못할 것이다. 반석인 베드로로 인하여 어둠, 오류, 그르침들은 교회에 대해 아무런 힘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이미 보았듯이 교회는 사회이다. 그리고 어느 사회에든지 그것에 안정성과 힘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문한다면, 틀림없이 사회를 지탱하고 유지하는 지배 권위라고 대답할 것이다. 지배자가 없으면 사회는 분열하게 된다. 그러므로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으로 세우심으로써 우리 주께서는 실제적인 사실로써 그를 당신 교회의 최고 지배자로 삼으셨다.  

 

우리 주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천국에 비유하셨다. 그것은 하늘의 왕국이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그 천국의 열쇠를 성 베드로의 손에 맡기셨다. 신약에서 열쇠는 우리 주님과 성 베드로에게만 있도록 지정되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이제 어느 장소의 열쇠를 가진다는 것은 그 장소에 대하여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벽장이 있고 그 열쇠가 나에게 있다면, 나에게는 벽장에 대한 통제력이 있는 것이다. 그런 이치로 성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심으로써, 우리 주께서는 천국에 대한 완전한 통치권을 주신 것이다.  

 

우리 주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후에 우리는 성 베드로가 종도들 가운데서 최고의 권위를 실행하고 그에 따라서로 교회 위에서도 최고의 권위를 실행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 요점은 종도행전중 1장 15절을 읽는 자라면 누구나 분명하게 알 숭 있다. 성 베드로는 성 마티아의 선출을 관장했다. 그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의장으로서 말했다. 그는 유데아 공의회 전에 및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제형들에 대하여 대표자였다. 그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서 두드러졌다. 아나니아와 사피라에게 벌을 준 이는 바로 그였다. 그리고 성신강림일에 유데아인을 교회 안에 들어오게 해서 처음으로 개종시킨 이도 바로 그였으며, 그 개종자는 나중에 최초의 기독교인이 되었다(고르넬리오와 그의 아내).  

 

성 베드로는 로마에 정착했으며 거기서 서기 67년에 네로 황제에 의해 순교하셨다. 그러나 교회는 계속 존재하고 성장하였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실행한 수위권도 계속되어야 했다. 중앙의 권위가 있어야 했고 교회가 더 커질수록 그 필요성이 더욱 시급해졌다. 다른 식으로라면 교회는 다양한 인종 및 언어, 그리고 다양한 계층 및 생활에 따른 갖가지 견해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었으므로 분열로 향할 것이었다. 실제로 고대의 작가들은 초대 교회의 로마 주교 명단을 제공해 주는데, 모든 경우에 그들은 베드로와 함께 했던 때의 노선과 같은 노선을 걷고 있었다는 것을 전한다.  

 

그리고 고대의 작가들은 역시 로마의 주교들에게는 베드로가 우리 주님으로부터 받았던 권능이 있었기에 한치의 어김도 없이 그들이 교회에서 최고의 주교였다는 것도 말해 준다. 로마의 주교들의 노선은 성 베드로의 시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계속 진행돼 왔다. 그들 약 260위의 교황은 현재의 교황 비오 12세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서로 전해내려 오고 있다.  

 

그러므로 비오 12세가 지배하는 교회는 성 베드로의 교회, 그리스도께서 세우시고 당신께서 성 베드로를 최초의 머리로 삼으신 교회이다. 이것이 로마 가톨릭 교회이며 다른 것은 없다. 그것만이 교황의 그 오랜 깨어지지 않는 노선을 통하여 그리스도께로부터 직접 비롯된 기원을 보여줄 수 있음으로 해서 오직 하나인 참된 교회이다.  


89. 로마의 주교를 무엇이라 이르는가?

로마의 주교를 교황이라고 하니, 그 말은 '아버지'를 뜻한다.  

 

'교황'은 라틴어인 파파(Papa)를 영역(英譯)한 것이다. 다음 질문에서는 로마의 주교를 어째서 교황이라고 일컫는지를 말해 준다.


90. 교황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영적(靈的)인 아버지인가?

교황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아버지이다. 가족에 있어서 아버지는 머리이다.


91. 교황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목자이면서 교사인가?

교황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목자이면서 교사인즉, 그리스도께서는 "내 고양을 치라, 내 양을 치라"(요왕 21,15·16·17)고 말씀하시면서 성 베드로를 모든 양떼의 목자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당신께서는 또한 그의 '신앙'이 결코 패하지 않도록 기도하시고 그에게 제형들을 '견고케' 하도록 명하셨다.(루가 22,32)  성경에서 목자의 모상은 보통 왕을 의미하는 데 사용된다. 그래서 다윗도 "내가 한 목자를 세워 주겠다. 그는 나의 종 다윗이다. 그가 내 양떼를 돌보는 목자가 되리라"였던 것이다.(에제키엘 34,24) 천주 자신은 당신 백성의 지도자로서 그들의 목자라 불리신다. "보라! 주님 야훼께서 능력을 가지고 오시는도다. 그이의 팔이 그이를 위하여 지배하시는도다....그이는 마치 목자가 자기 짐승떼를 먹이고."(이사야 40,9-11) 따라서 우리 주께서 자신을 착한 목자라 이르실 때에는(요왕 10), 당신께서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왕이심을 의미하신 것이다.

 

그러니 우리 주께서 베드로에게 당신의 양떼를 치는 직책을 주셨다면, 그것은 주께서 베드로를 당신의 백성을 다스리는 자, 즉 왕과 같이 당신의 교회를 다스리는 대표자 혹은 대리자로 삼으셨을 것임이 분명하다. 성 베드로는 지상에 있는 교회의 최고 지배자가 되었다. 우리 주께서는 성 베드로를 머리로 삼으시리라는 것과 그에게 열쇠의 권능을 주시리라는 것을 약속하셨다.(마두 16장) 결국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그 약속을 채우신다.  

 

그리스도 착하신 목자께서 행하신 위대한 행적 중의 하나는 천주의 진리를 가르치시는 것이었다. "예수 나가사 많은 백성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심은 대저 저들이 목자 없는 양같음일새라, 비로소 많은 사정으로 교훈하시더니."(말구 6,34)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성 베드로를 최고의 목자로 삼으셨을 때에는 그로써 당신을 대신하여 그가 백성들의 최고의 교사가 되게 하신 것이다.  

 

이는 위의 답에서 인용된 성 루가에 의한 말씀으로써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을 때는 당신 수난에 대한 이야기로 막 들어갔을 때였다. 지옥문이 종도들을 공격할 것이었다. 사탄이 그들의 신앙을 시험할 것이었다('속임수'가 의미하는 것이 그것이다). 자신의 주인을 부인하면서 베드로의 신앙이 곧 흔들릴 것이었으며, 모든 종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죄수로 잡히시어 죽음에 부쳐지면 분개하고, 의심하며, 의기소침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주께서는 베드로의 신앙이 완전히 패배하게 되지는 않도록 기도하셨노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자신이 배반했다는 것에 대한 슬픔 속에서 그리스도께로 회두할 것이며, 회두하기가 무섭게 그는 자기 제형들의 신앙을 견고케 하는 직책을 맡는다. 베드로가 자신의 가르침과 표양으로써 그들을 신앙 안으로 인도하는 특별한 직책과 더불어 그들 모두의 머리라는 것을 의미할 수밖에 없는 말씀이다. 그러니 앞서 말한 본문으로 인해 성 베드로가 모든 이, 즉 종도 및 그리스도의 양떼 전체의 머리임이 분명하며, 그리스도에 의해 그리스도의 전 교회를 지배하고 가르치는 권능과 권위를 부여받았음이 분명하다.  


92. 교황은 그르칠 수 없는가?

교황은 그르칠 수 없다.


93. 교황이 그르칠 수 없노라고 말할 때에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교황이 그르칠 수 없노라고 말할 때에는 교황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목자 및 교사로서 교회 전체가 지켜야 할 신앙이나 도덕에 관한 교리를 설명할 때 틀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르칠 수 없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교황이 죄를 범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과학이나 역사에 대해서 쓰는 것은 무엇이든지 꼭 참되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내가 교회의 어떤 교리에 관하여 그의 의견을 구해야 하는 경우에, 그가 나를 잘못 인도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런 경우에 그는 교회의 여느 보통 주교와 같이 비공식적으로 자기 나름의 의견을 피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혹은 그가 어느 교회에 강론하러 왔다면, 그의 말에는 반드시 오류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그는 교회의 머리로서가 아니라, 실수할 수 있는 통상적인 강론자로서 설교를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리문답에 있듯이, 교황이 그리스도의 교회 전체의 머리되는 목자 및 교사로서 말할 때에만, 그리고 어느 주어진 교리의 요점에 관해서 꼭 믿어야만 하는 것을 자신에게 주어진 온전한 권위의 힘을 빌어 공언할 때에만 그런 것이며, 그런 때에만 신앙에 반하는 것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그리스도께서 그를 보호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 천주께서 교황에게 감도(感導)케 하신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교황이 잘못된 결정을 하지 않도록 막아주실 뿐이다.  

 

우리는 교황이 최고의 교사라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만일 그가 최고의 교사로서 행동하면서 계속해서 잘못 갈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그릇된 믿음으로 이끌릴 것이며 지옥문이 당신의 교회를 쳐 이기지 못하리라는 그리스도의 약속이 무효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천주이시므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성 베드로 및 그 후계자들이 교회가 흔들릴 수 없도록 세워진 바위 위에 있으리라는 것, 그리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양떼를 먹여 길러 그 제형들을 견고케 하리라는 것을 보여 주는 세 가지 구절-이 모든 구절이 교황이 그르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해 준다. 올바른 신앙은 교회에 있어서 필수 요소이다.  

 

사람이라면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가르치시건 믿어야 하니, 따라서 당신이 가르치시는 것에 대하여 일말의 의심도 품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반석으로서 및 그 제형들을 견고케 하는 자 및 목자로서의 베드로의 직책에는 그리스도의 참된 교리를 유지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다. 최고의 교사로서의 직책을 실행함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오류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시지 않는다면 성 베드로 및 그 후계자들은 직책을 수행할 수 없다. 정확히 말하건대 무류성이 뜻하는 것은 그런 오류로부터의 보호이다.  


94. 그리스도의 교회에는 알아 볼 수 있는 표시가 있는가?

그리스도의 교회에는 알아 볼 수 있는 네 가지 표시가 있다. 교회는 하나이고, 거룩하며, 공번되고, 종도로조차 전해내려 온다.

 

니체네 신경에서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의 네 가지 특징으로써 믿음을 단언한다. 그것들이 교회의 자격증이다. 그 네 가지 특징으로써 교회는 인간이 세운 것이고 자기네가 그리스도의 교회 혹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모든 분파와 구별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 그것들을 주셨다. 그래서 그 네 가지 특징이 없는 그리스도인의 지체는 우리 주님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가 아니다.  


95. 교회가 어떻게 하나인가?

교회는 그 모든 구성원들이 하나인 신앙 안에서 일치하여 오직 똑같은 희생 제물 및 성사를 지니고 하나의 머리 아래 모두 결합되어 있으므로 하나이다.  

 

우리 주께서는 당신의 교회가 하나라는 것을 분명하게 단언하셨다. "또 다른 양이 있어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하였으니 나 마땅히 저들을 인도하매 내 말소리를 들을 것이요 또한 한 우리 되고 한 목자 되리라."(요왕 10,16) 당신께서는 유데아인의 양떼에 덧붙여 다른 이들, 즉 이방인들이 있음을 뜻하고 계신다. 장차 유데아인 및 이방인들이 함께 한 목자 아래에서 한 양떼를 이룰 것이다. 우리 주께서는 수난을 당하시기 직전에 그런 일치를 위해 기도하셨으며(요왕 17), 당신은 천주의 아들이시므로 그 기도는 꼭 가납될 것이었다. 교리문답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그 일치가 세 겹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1) 신앙 안에서의 일치. 우리 주께서는 당신의 종도들을 보내시되 당신이 명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모두 모든 나라에 가르치도록 하셨다.(마두 28,20) 고르고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가르치심을 전체로--마음에 맞는 진리이건 마음에 맞지 않는 진리이건 두 가지 다 받아들여야 한다. 발길 닿는 대로 세상 어디든지 가보라. 그러면 천주교의 주교 및 사제들의 한결같은 가르침과 천주교의 하나인 믿음, 정확히 말해서 똑같은 교리를 발견하리라. 우리 사이에는 높은 교회도 없고, 넓은 교회 혹은 낮은 교회 분파도 없다. 그러나 예를 들면, 성공회에서는 얼마나 교리의 일치가 안 되는가! 어떤 성직자는 미사, 칠성사, 성모 및 성인들께 대한 신심, 연령(煉靈)을 위한 기도와 같은 천주교 교리를 거의 다 가르친다. 똑같은 교회의 다른 성직자는 그런 수계범절들을 영국 혁명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것이라 하여 거부한다. 정말로 공언된 영국 교회의 구성원들이면서도 그리스도께서 천주라는 것을 부인하기까지 하는 자들도 있다. 기본적인 교리에 대해서까지도 그런 불일치가 존재하는 교회는 참된 교회의 첫 번째 표시를 지닌다고 주장할 수 없음에 틀림없다.  

 

2) 공동체 안에서의 일치. 다시 말해서 하나인 미사성제 및 칠성사를 거행함으로써의 일치를 말한다. 나중에 우리 주께서 그리스도인의 흠숭행위로 미사를 세우셨음과 인류의 성화를 위해 칠성사를 세우셨음을 공부할 것이다. 세계 곳곳의 천주교회에서는 하나인 미사(비록 서유럽 및 동유럽에서 다른 예식으로 봉헌되기는 해도) 및 똑같은 칠성사를 발견할 수 있다.  

 

3) 지배의 일치. 우리 주께서는 묶고 푸는 권한을 열두 종도들에게 지정해 주심으로써, 그리고 성 베드로에게는 열쇠의 권한 및 묶고 푸는 고유의 권한을 주심으로써 그들의 머리로 삼으심을 통하여 당신의 교회에 지배의 일치를 세우셨다. 그런 지배의 일치는 그 머리로는 교황과 더불어 천주교계의 일치된 주교들 안에서 세기를 두고 계속 전해내려 왔으니, 그 결과 오늘날 4억 2천 5백만의 천주교신자가 온갖 인종을 망라하면서도 교황을 향한 공통된 충성심으로 결합돼 있는 현상, 인간적으로는 불가해한 사실을 보고 있는 것이다.


96. 교회가 어떻게 거룩한가?

교회는 거룩한 교리를 가르치고, 모든 거룩한 수단을 제공하며, 그 수 많은 자녀들의 탁월한 거룩함으로 말미암아 구별되므로 거룩하다.  

 

교회가 거룩한 교리를 가르친다는 것은 교리문답을 훑어 읽어보면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거룩한 수단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 가르침으로써 사람들 앞에 제시하는 이상적인 생활 외에도 교회에는 미사성제, 칠성사, 기도의 실천,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 영신 서적, 자신을 전적으로 천주를 섬기는 데 봉헌한 남녀 수도 공동체 및 그들과 결연돼 있음과 기타 등등이 있다. 그에 따라 그토록 많은 구성원들의 탁월한 거룩함이 있는 것이다. "그들의 열매로써 그들을 알아본다,"라고 우리 주께서 말씀하셨다. 이 시험을 교회에 적용시켜 보면 그 업적에서 교회가 성공했음을 발견한다.  

 

시대를 이어서 교회에는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 성인들, 정확히 말해서 그들이 천주교 신자로서의 완벽한 삶을 살았기에 완덕을 이룬 거룩한 영웅 및 성녀들이 있다. 물론 나쁜 천주교 신자들도 많이 있었다. 우리 주께서는 밀과 가라지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실 때 벌써 나쁜 천주교 신자들이 있으리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런 자들은 다른 것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인즉, 교회를 통하여 제공되는 거룩한 수단을 이용하거나 적절히 사용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악한 것이다.  


97. '가톨릭'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가톨릭'이라는 말은 공번되다는 것을 의미한다.


98. 교회가 어떻게 공번되거나 보편적인가?

교회는 모든 시대로 이루어져 있고, 모든 나라를 가르치며, 모든 이를 위한 구원의 방주이므로 공번되거나 보편적이다.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는 가톨릭 혹은 보편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시대에 있어서 보편적이어야 한다. 즉, 그리스도의 시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기를 통하여 존재해 왔어야 한다. 우리는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서기 597년에 성 아우구스티노를 영국에 파견하여 영국의 선조들 가운데 세운 것과 똑같은 바로 그 교회이다. 16세기의 혁명이 있기 전에 영국에 있는 모든 이는, 왕으로부터 그의 시종 중 가장 작은 자에 이르기까지 교황의 최고권을 인정하여 우리 교회에 속해 있었다.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는 또 장소에 있어서 보편적이어야 한다. 우리 주께서 당신의 종도들을 모든 나라에 파견하셨고(마두 28,19), 성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이에 유데아인이나 외교인의 (차이도) 없고 노예나 자유인의 (차이도) 없으며 남자나 여자의 (차이도) 없나니 대저 너희는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하나인 연고니라."(갈라타 3,28) 우리 교회 어디를 보아도 그리스도교의 다른 지체의 수를 모두 합한 것보다 숫자가 더 많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교회는 항상 스스로에 대해서 모든 종족의 사람들을 우리 안으로 데려 오기 위해서 애쓰는 전교(傳敎)의 교회로 여겨 왔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교리, 가르침, 즉 그리스도의 교리 전체에 있어서 보편적이어야 한다. 당신께서는 국가들에게 '당신이 명하신 바 모든 것을' 가르치도록 종도들을 보내셨다.(마두 28,20) 그러니 참된 교회라면 모름지기 신경에 포함돼 있는 모든 것 및 천주십계에 들어있는 것을 모두 숨김없이 가르쳐야 한다. 천주교야말로 실제로 그렇게 하는 오직 하나의 교회이다.  

 

그런즉 홍수를 당했을 적에 노아의 방주가 육체의 안전에 대한 하나의 수단이었듯이, 교회는 인류의 영혼 구원에 대한 하나의 원천이다. 때때로 우리는 천주교회 밖에서는 아무도 구원될 수 없노라고 말한다는 이유로 매우 편협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 의미는 하나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일부러 가톨릭이기를 거부하는 자는 어느 누구도 구원될 수 없다는 것이다. 교회가 주장하는 바의 힘을 느끼기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의문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반드시 가톨릭이면서 로마적인 교회가 오직 하나인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사실을 전제로 오는 것이다. 자기 탓이 아닌 상태에서 교회의 주장을 아주 모르는 이들에 대해서 말할 것 같으면, 교황 비오 9세가 교회의 교리를 분명하게 설명한 바 있다. "어쩔 수 없이 거룩한 우리 종교를 모르지만, 천주께서 모든 이의 마음 안에 새겨 주신 자연법의 가르침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벌써 당신께 순종하여 착하고 올곧은 생활을 꾸려 가는 자들은 당신의 빛과 성총의 도우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짐은 아는지라.  

 

왜냐하면 모든 사람의 마음, 의향, 생각 그리고 성향을 분명하게 보시고 점검하시며 이해하시는 천주께서, 당신의 지고의 착하심과 자비로우심 안에서 자신의 자유 의지로 죄를 범하려 하지 않는 자는 어느 누구도 영원한 벌을 당하도록 결코 허락지 않으실 것인 연고라."  


99. 교회가 어떻게 종도로조차 전해내려 오는가?

교회가 종도들의 교리 및 성전을 굳이 지키므로, 또 그 목자들의 깨지지 않는 계승을 통하여 그들로부터 그 성직 및 임무를 물려받으므로 종도로조차 전해내려 온다.  

 

우리 주께서는 종도들로 하여금 당신의 교회를 세우도록 파견하셨으므로, 오늘날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는 종도들이 세운 것과 똑같아야 한다. 그것은 그 성직에 있어서, 즉 미사를 드리는 영적인 힘과 성사를 거행하는 자에게 있어서 종도로조차 전해내려 오는 것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 임무에 있어서 종도로조차 전해내려 오는 것이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그것에는 종도들에게 인류를 가르치고 성화시키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명령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 어떤 교회가 있어서 그것이 종도로조차 전해내려 오는 것인지를 어떻게 아는가? 쉬운 표시가 있다. '베드로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 성 베드로 및 베드로의 후계자로서의 교황의 수위권에 대해서 말했을 때 밝혔듯이 교황과 일치해 있는 교회는 종도들의 교회이다.  


100. 교회가 가르치는 것에 있어서 그르칠 수 있는가?

교회는 신앙이나 도덕에 있어서 그르칠 수 없는 안내자이므로 교회가 신앙이나 도덕에 관해 가르치는 것에 있어서 그르칠 수 없다.  

 

교황이 최고 권위로써 믿고 행해야 하는 바를 가르칠 때 그르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살펴보았다. 그 답에서는 교회도 역시 그르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교회란 머리를 교황으로 하고 그 교황과 함께 있는 천주교계의 모든 주교를 의미한다. 우리 주께서는 당신의 종도들을 베드로 아래 한 몸이 되게 하셨으며, 그들에게 당신의 교회를 다스리고 가르치며 성화케 하는 특별한 힘을 주셨다. 종도들은 대대로 자기의 권한을 수행할 후계자들을 임명해야 했다.  

 

그 후계자들은 교황 아래 있는 주교들의 몸이다. 종도 및 그 후계자들을 당신의 교리를 가르치는 교사로 세우시면서 우리 주께서는, 그들이 당신께로부터 비롯된 권위에 대하여 온전히, 한 몸으로서 가르치는 것은 반드시 옳고 참되리라는 보증을 주셨다. 우리 주님의 보증을 다음 질문에서 볼 수 있다.  


101. 교회가 가르치는 것에 있어서 그르칠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그리스도께서 지옥문이 쳐이기지 못하리라는 것(마두 16,18)과, 성신께서 모든 것을 교회에 가르쳐 주시리라는 것(요왕 16,16-26), 그리고 당신 자신이 세상 마칠 때까지 항상 교회와 함께 있으리라는 것(마두 28,20)을 약속하셨으므로 교회가 가르치는 것에 있어서 그르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이상의 구절 중 첫째 것은 이미 고찰하였다. 둘째 구절에서는 우리 주께서 진리의 영이신 성신이 그들에게 오셔서 그들과 함께 머무르시고 진리를 전체로 가르쳐 주시리라고 종도들에게 약속하신다. 셋째 구절에서는 우리 주께서 당신이 가르쳐주신 모든 것을 종도 및 그 후계자들이 온 나라에 가서 가르칠 때, 세상 마칠 때까지 당신의 유력한 도우심(그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이다)을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그러므로 그들이 자신의 권위에 온전히 결합하여 가르친다는 조건 하에서 그들의 가르침의 정확성에 대해서까지도 보증해 주신 것이다. 이상의 구절들로 인하여 우리 주께서 가르치신 것을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는 교회는 그 어느 것도 당신의 참된 교회가 아님이 분명하다.  


102. 모든 성인의 통공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모든 성인의 통공으로써는 천당, 현세, 연옥에 있는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그리스도 안의 한 지체인 듯 서로 결합해 있음을 의미한다.  

 

성 바오로는 자주 교회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말한다.(예를 들어, 코린도 전 12,12·에페소 4,4) 또 인간의 몸의 각 지체가 몸 전체 및 그 각 부분에 유익하도록 함께 작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각 구성원도 역시 교회 전체 및 그 각 부분에 유익하도록 서로 돕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천주교에 속해 있는 모든 이 사이에 생활한 결합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구성원이 죽는다 하여 그들과의 통공을 모두 잃는 것이 아니다. 천당에 간 자들 및 아직 연옥에 있는 자들은 교리문답의 다음 몇 가지 질문에서 설명하는 방법으로 여전히 우리와 결합되어 있다.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의 구성원들인 천주교회와, 지금 천당이나 연옥에 있는 교회의 구성원들 사이에 조성된 결합을 성인들의 통공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통공을 이루는 세 집단은 천당에 있는 개선지회, 연옥에 있는 단련지회, 그리고 현세의 신전지회(아직도 죄악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으므로)라고 한다.  


103. 현세의 신자들은 서로 어떻게 통공을 이루는가?

현세의 신자들은 서로 똑같은 신앙을 고백하고, 똑같은 권위에 순종하며, 자신의 기도와 선행으로써 서로 도움으로써 통공을 이룬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모든 천주교 신자들은 똑같은 교리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선언하고 또 교황에게 순종한다. 그들은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여러 가지 종류의 선행으로써 서로 서로 돕는다. 이 모두가 그들 사이를 결합시키는 공동의 유대가 된다.


104. 천당에 있는 성인들과 어떻게 통공을 이루는가?

그들을 교회의 영광된 구성원으로서 공경함으로써 및 우리는 그들에게 기도를 청하고 그들은 우리를 위해 빌어줌으로써 천당에 있는 성인들과 통공을 이룬다.  

 

우리 주께서는 말씀해 주시기를, "한 죄인의 회개함에 대하야 천주의 천신들 앞에 즐거움이 있으리라"고 하셨다.(루가 15,10) 천신들에 대하여 참된 것은 천당의 영광 및 즐거움을 천신들과 함께 나누는 성인들에 대해서도 역시 참된 것임에 틀림없다. 천신들과 성인들은 현세에서 어떤 것이 지나치는 것이고, 어떤 것이 우리의 영원한 구원에 있어서 실질적인 이익을 흠뻑 빨아들이는 것인지를 안다.  

 

현세의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서로를 위해 기도해 온즉, 성 바오로는 로마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서한을 썼다.  "내 형제들아, 오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또 (성)신으로부터 조차 오는 사랑을 인하야 너희들에게 간청하노니 천주 대전에 너희 기구로써 나와 함께 싸우라."(로마 15,30) 그것은 구약에서도 똑같았다. 천주께서는 자주 모세의 기도에 따라 이스라엘인들을 치셨다. 천당에 계신 성인들께 기도를 청하는 것은 온전히 타당한 일이다. 그들은 천주의 법정에 계신 우리의 벗이므로, 기도의 힘에 있어서 현세에 계실 때보다 훨씬 강력하다.  

 

천신 및 성인들에게 기구하는 것을 반대하여 거론되는 잦은 반론을 볼진대, 인간과 천주 사이에 그들을 두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재자이심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그들을 중재자로 삼는 것이 틀렸다고 하는 자들이 있다. 성인들이 누리는 중재의 힘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공로로부터 온다. 그들은 그리스도께로부터 떨어진 상태로는 아무런 힘이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종도들에게 "나없이 너희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성인들께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중재자로서 그리스도의 지위는 결코 감소되지 않으며, 성인들의 중재는 오히려 그것을 향상시킨다. 당신의 중재력은 극도로 크기 때문에 당신께는 아무런 손실을 끼치지 않으면서 그 중재자이심을 다른 이에게 나눠주실 수 있다. 어쨌든 이미 보았듯이, 성인들의 중재는 본질적으로 현세에서 서로를 위한 중재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초대 교회로부터 신자들은 프로테스탄티즘(열교 혹은 개신교 정신)이 나타나서 "성인들의 간원에 관한 . . . . 천주교의 교리는 쓸데없이 고안된 것으로, 성경에 근거를 두지 않는, 오히려 천주의 말씀에 반대되는 우스운 짓이다"(39조, 22항)라고 가르치기 시작할 때까지는 이 교리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혁명가들에 대항하여 트리덴티노에서 개최된 가톨릭 주교들의 대 공의회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시는 성인들은 공경과 간구함을 받아 마땅하며, 그들은 우리를 위해 천주께 기도를 드린다"고 천명하였다. 이상의 설명 가운데 어느 것이 참된가?  


105. 우리는 어떻게 연옥에 있는 영혼들과 통공을 이루는가?

우리는 기도 및 선행으로써 그들을 도움으로써 연옥에 있는 영혼들과의 통공을 이룬다."죽은 자들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거룩하고 건전한 일이다."(마카베오 하 12,46)

 

천주교회는 당신의 자비로써 고통으로부터 그들을 풀어 주시도록 천주께 청함으로써, 또 그들을 위해 우리의 선행을 드림으로써도 연옥(즉, 단련지회)에 있는 영혼들을 도울 수 있다고 가르친다. 모든 기도 가운데 가장 유효한 것은 망자(亡者)를 위해 드리는 미사성제이다. 유다스 마카베우스는 각 사람에게서 모금을 하여 은 일만 이천 드라크마를 모아 그것을 망자의 속죄를 위한 비용으로 써 달라고 예루살렘으로 보냈다.(마카베오 하 12,43) 이후에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망자의 죄를 기워 갚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희생 제사, 즉 미사성제를 드린다.  

 

우리는 또 대사가 부여된 기도문(대사에 관해서는 300번을 보라)을 염하기도 한다. 천주의 성총 안에서 행한 우리의 선행에는 두 가지 속성이 있다. 그들은 성총을 얻어내며 또 죄에 대한 기워 갚음을 이룬다. 그 선행의 공로는 선행을 행한 자에게 속해 있어서, 선행을 행한 자가 아무리 원해도 선행 자체를 다른 이에게 넘겨주지 못한다. 그러나 죄에 대한 기워 갚음을 넘겨 줄 수는 있으니, 연옥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영혼들을 위해 천주께 퇴에 대한 기워 갚음을 드리는 것은 고귀한 애덕의 행위인즉, 왜냐하면 그 영혼들은 스스로를 도울 수 없기 때문이다.  


106. 연옥이란 무엇인가?

연옥이란 죽은 후에 영혼이 잠시 동안 자신의 죄로 인한 고통을 당하는 장소이다.

 

이것도 프로테스탄트(열교 혹은 개신교)의 혁명가들이 공격했던 교회의 교리 중 하나이다. 39조에(22항), 성인들의 간구와 더불어, 연옥에 대한 교리는 '쓸데없이 고안된 것으로, 성경에 근거를 두지 않는, 오히려 천주의 말씀에 반대되는 우스운 짓'이라고 되어 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모든 세기 동안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의 유데아인들 사이에서 믿어져 온 진리를 부인하는 프로테스탄티즘의 또 다른 예이다.(109번을 보라)  


107. 어떤 영혼이 연옥에 가는가?

소죄 상태로 이승의 생명을 다하거나 혹은 죄성이 용서받은 죄로 인한 잠벌의 빚을 다 갚지 못한 영혼들이 연옥에 간다. 소죄에 관한 설명에 대해서는 질문 126번, 127번을 보라.


108. 잠벌(潛罰)이란 무엇인가?

잠벌이란 현세 혹은 내세에 끝나게 될 벌이다.

 

그러니 두 부류의 영혼이 연옥에 간다.  

(1) 소죄로써 더럽혀진 채 천주대전에 가는 이들. 그런 영혼들은 지옥에는 가지 않을 것이다. 대죄 중에 죽는 자들만이 지옥에 간다. 그렇기는 해도 소죄로써 더럽혀진 채 천주대전에 가는 이들은 직접 천당에 가지는 못한다. 구원되기는 하겠지만 아직 용서받지 못한 죄로써 더럽혀져 있으며, 부정한 것은 그 어떤 것도 거룩하기만 하신 천주의 면전에 있는 천당에 들지 못한다.(묵시록 21,27) 그러니까 천주께서는 그들에게 내세의 어딘가에서 그 죄를 속죄하여서 언젠가는 천당에 이르게 될 기회를 주실 것이다. 그 내세의 어딘가가 깨끗이 씻는 장소를 의미하는 연옥이다.  

 

(2) 용서받은 죄로 인한 잠벌의 빚을 완전히 갚지 못한 이들. 죄에 관해서 두 가지, 즉 죄성(罪性)과 벌(罰)을 구별해야 한다. 성경에 죄의 두 가지 요소 사이의 차이를 나타내는 보기가 몇 가지 있다. 다윗 왕의 경우를 보자.(사무엘하 12,13·열왕하 12,13) 다윗이 간음과 살인이라는 큰 죄를 범함에 따라 천주께서는 그에게 예언자 나단을 보내셨다. 다음의 내용을 읽을 수 있다. " '내가 야훼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 나탄이 다위에게 이르기를, '예훼께서도 당신의 죄를 치워주시니, 당신은 죽지 않으리다. 그러나 다만 당신이 이 일로써 야훼를 능욕하였으니, 당신에게 난 아이도 꼭 죽겠나이다'."  

 

여기서 천주께서 다윗의 죄 중에서 죄성은 용서해 주셨지만 벌은 남아 있어서, 천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자식은 죽어야 했음을 알 수 있다. 죄는 모두 벌이라는 빚을 수반한다. 천주를 직접 거부하는(121-125번을 보라) 대죄는 그 보답으로 지옥 영벌을 받는다. 그러나 용서받은 대죄는 영벌을 받을 수 없다. 회개한 자가 지옥에서 벌을 받는다는 것은 부당할 것이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다윗의 경우에서와 같이, 용서받은 대죄에 대해서는 겪어야 할 잠벌이 남아 있다. 소죄에 대해서도 역시 일반적으로 사죄 후에 남는 약간의 잠벌이 있다.  

 

그러니 어딘가에서 죄에 대한 보속을 행해야 하는 것이 보통이다. 만일 현세에서 그것을 행하지 않는다면, 내세에서 행해야 한다. 천당에서는 그것을 행할 수 없으니, 왜냐하면 천당은 순전히 행복하기만 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만일 벌이 일시적인 것이면 지옥에서는 그것을 행할 수 없으니, 왜냐하면 지옥은 오로지 영벌만을 받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결국 일시적은 벌을 받을 곳은 연옥밖에 없다. 그리하여 연옥에서 용서받지 못한 소죄를 보상함에 덧붙여서 현세에서 갚지 못한 잠벌의 빚이 무엇이든지 그 잠벌을 견디는 것이다.  


109. 연옥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는가?

교회의 항구한 가르침으로부터, 그리고 천주께서 모든 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 주시리라(마두 16,27)는 것과, 부정한 것은 그 어느 것도 천당에 들지 못하리라는 것(묵시록 21,27), 또 "만일 이 불을 견디어 내면"(코린도전 3,15) 구원되리라고 단언하는 성경의 교리로 인해 연옥이 있음을 증명한다.  

 

이미 연옥에 대해서 말함으로써 연옥이 틀림없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하여 충분한 증거를 대었다. 천주께서 초대 교회로부터의 가르침에서 그리고 성경에서 말씀해 주신 것에서 비롯된 다른 더 강력한 증거들이 있다. 최초의 그리스도인 저술가에 의한 저서 및 로마의 땅 속 묘지(카타콤이라고 알려진)에 있는 비문을 보면 그들이 연령을 위해 기도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그들이 기도로써 도울 수 있는 어떤 장소에 망자(亡者)가 있다고 믿고 있었음을 보여 주었다.  

 

그 장소가 천당일 수는 없었다. 그 이유는 천당에 있는 영혼은 기도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옥일 수도 없다. 지옥의 영혼들은 영원히 그 곳에 있어서 기도의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장소는 영혼들이 일시적으로 묶여 있는 어떤 제3의 장소, 즉 연옥임이 틀림없다.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날 때까지도 그 장소에 대하여 연옥이라는 이름이 주어지지 않았었다.  

 

첫째로, 성경을 보면 우리 주께서 오시기 전에 유데아인의 믿음이 어땠는지를 알 수 있다. 마카베오하(12,39-46)에서 질문 105번에서 인용된 구절을 읽을 수 있다. "죽은 자들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거룩하고 건전한 일이다". 프로테스탄트 혁명가들은 마카베오서가 성경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망자를 위한 기도문을 가르쳤기에 그것을 거부했던 것이다.  

 

그것은 혁명가들에게는 내키지 않는 교리를 쉽게 제거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 성서가 감도된 성경의 일부가 아니라손 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역사적이다. 그것은 망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역사적인 사건으로서 유데아인의 풍습이었음을 알려 준다. 이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그들이 그런 기도의 가치를 믿었음에 틀림없다는 것, 그러므로 망자가 나중에 연옥이라고 불리는 장소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약에서 우리 주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다. "또 누구든지 인자를 거스려 말하는 자는 사하여 주시려니와 성신을 거스려 말하는 자는 금세와 후세에 도무지 사하지 아니시리라."(마두 12,32) 이 말씀에는 후세에 사해지는 죄가 있음이 분명하게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지옥에서는 어떤 죄도 사해질 수 없다. 지옥에서는 구속이란 것이 없다. 천당에서 용서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죄스러운 것은 그 어떤 것도 천당에 들지 못하는 연고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께서는 세 번째 해결의 실마리를 가리키신 것이니, 그것이 바로 연옥이다.  

 

우리 주께서는 또한 천주께서 모든 이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 주시리라고 말씀하셨다.(마두 16,27) 그리고 성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썼다. "대저 이는 [주의] 날(공심판날)에 이르러 밝히 알리어지리니 대저 그 날은 불에 나타날 것이요. . . . 누구의 것이든 그 우에 건축된 건물로서 만일 이 (불)을 견디어 내면 그 사람은 상을 받을 것이요 만일 어떤 이의 건물이든 타버리면 그는 손해를 보리라."(코린도전 3,13·15) 전후 관계로 보아서, 그 종도께서 기초, 즉, 그리스도의 교리를 놓았음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이들이 그 기초 위에다 건설할 것이다.  

 

만일 그들이 건전한 교리(금, 은과 보석이라고 일컫는)를 강론한다면, 그들의 업적은 천주께서 심판하시게 될 때 인정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무익하다든지 도움이 안 되는 교리(나무, 건초, 그루터기)를 강론한다면, 그들의 사업은 천주께서 심판하시게 될 때 불태워질 것이다. 강론자는 손해의 고통을 당할 것이나 구원은 받게 될 것이다. 이는 모든 인간이 다 천주의 심판 때에 인정받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가리킨다. 그렇다고는 해도 모두가 완전히 버려지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이는 벌을 치러야 하기는 하지만 구원은 받게 될 것이다. 이는 그들이 연옥에 가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모두가 혁명가들이 말한 바와 같이, 연옥에 대한 교리가 천주의 말씀에 반하는 것으로 보이는가? 오히려 교리가 천주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