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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성서 복음서 - 루까 복음의 입문 (위비 지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7-16


신약성서 복음서 - 루까 복음의 입문  (위비 지음)


 셋째 복음서는 루까의 저술로 되어 있으니, 이 루까는 바오로 종도의 동행(同行)이요 그한테 「친애한 의사」(꼴로 4장14절)라 불린 자이다. 종도 직후의 교부들은 자기 저서에서 이 복음서를 인용(引用)하였으나, 익명으로 하였고, 성 유스띠노도 이 복음을 인용하시며 종도들과 그들의 제자들이 지은 「종도의 추억」중의 하나라 하였다. 144년에 로마 교회에서 갈려진 열교인 마르치온은 루까 복음만을 보존하였으나 이것조차 변작(變作)하고 삭제(削除)하였다. 그 다음부터는 분명한 증거를 볼 수 있으니, 즉 불란서에는 성 이레네오, 아프리까에는 떼르뚤리아노, 에집트에는 글레멘스와 오리제네스 등이었고, 그 외에 200년경에 로마에서 용인된 성서의 목록의 일종인 무라또리의 경전 목록 등이다. 고대에 있어 이 점에 있어 조그마한 반대도 없었다.


  루까는, 무라또리 경전 목록에 의하면, 주 예수를 생존시에 뵈옵지 못하였다. 그는 예수의 즉제자(卽弟子)는 아니요 바오로 종도의 제자이오 협력자이었다.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3·4·6)와, 2세기 때에 쓰인 듯한 복음의 머리말에 의하면 루까는 시리아 지방의 안띠오키아 시의 출신이오, 출생과 교육으로 보아 희랍 문화권의 사람으로서, 어려서 그리스도교에 귀화하였다. 에프렘 성서의 한 사본(寫本) 중의 종도행전(11장28절)에는 루까가 42년경에 안띠오키아 교회의 한사람으로 되어 있다. 그가 바오로 종도와 같이 나타나는 것은 50년경에 종도의 둘째 전교 여행중 뜨로아스 항구에서 마체도니아 지방으로 떠날 때이니, 이때에 루까는 종도행전(16장10절)의 이야기 중에 「우리」라는 말로써 자기를 등장(登場)시킨다. 필립삐읍에 갔을 때(종도 16장12절) 거기에 잠시 머물러 있은 듯하다. 그동안 종도는 혼자 여행을 계속하였는데, 몇해 후 그레치아 나라에서 빨레스띠나로 가시는 도중 마체도니아를 지날 때 다시 루까와 함께 여행하게 되어, 필립삐에서 예루살렘까지 동행하였다. 바오로가 성전에서 피착되어 체사레아로 사로잡혀 와 2년 동안(57-59년) 머무시는 동안 루까는 그를 종시 떠나지 않았고, 그후 바오로가 로마 황제의 대법원에 상소하여 로마를 향하여 체사레아 읍을 떠나실 때, 루까도 같이 배에 올랐다. 거기서 이딸리아에 이르는 동안 가진 파란을 다 겪어가며 그를 따라갔고, 로마에서도 그에게 계속하여 협력하였다(꼴로 4장14절).


  루까는 자기 복음서 권두에 서문을 기록하여 자기의 뜻을 표명하니, 이는 곧 이 복음을 봉헌받는 고귀한 신자 테오필로에게 「그가 받은 가르침의 견고」함을 지적(指摘)하려는 것이었다. 루까는 바오로와 그의 협력자(그중에 말구도 있었다)들과 접촉하였고, 빨레스띠나와 예루살렘, 체사레아 등지에 머무르는 동안, 가장 처음 주의 제자들을 질문함으로써 「시초부터 된 모든 사정을 똑똑히」(루까 1장3절) 알게 되었다. 루까는 서술(敍述)부분에 있어 대부분 말구를 따랐고, 주의 말씀에 있어서는 마테오와 공통한 것이 많다. 그러나 자기 고유한 좋은 점(特點)도 많이 있으니, 특히 9장51절에서 18장14절에 이르는 사이에, 그 된 때는 똑똑히 말 아니하나, 복음 중에 가장 좋은 말씀을 전하여 주었으니, 비컨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잃은 양과 잃은 디드락마의 비유, 탕자의 비유, 라자로와 악한 부자의 비유, 바리세이와 아전의 비유 등이다. 이상 모든 곳에 자기의 특징을 남겼으니, 단순하고도 아름다운 글솜씨(文體) 뿐 아니라 자비로우신 주의 모상을 그리는데 있어 유쾌한 즐거움의 표, 감동할 양선의 표를 보이니, 이로써 시인 단떼는 그를 「그리스도의 양선을 기술하는 역사가」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