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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성서 복음서 - 마테오 복음 입문(위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2-13



신약성서 복음서  -마테오 복음 입문(위비)

 

마테오 성 복음은 전에 대부분의 성서 사본(聖書寫本)에 있어서와 같이, 지금도 신약 성서의 첫 자리에 박혀 있다. 이것으로써 그리스도교 초대 사람은 이 복음의 시간적 우선성을 뜻하였다. 현재 있는 그레까말로 된 마테오 복음이 말구나 루까 복음보다 먼저 되었다고 본 것이 아니라, 복음 중에서 제일 먼저 기록된 「셈」족 언어의 원문의 번역문으로 보는데 일치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저자(著者)로는 뿌블리까노(세리稅吏)로서 12 종도 중 한 사람이 된 마테오를 지목하였다.


이 전통의 견고함을 집중된 한 묶음의 증거가 밝혀 준다. 적어도 둘째 세기 중엽(中葉)부터 복음서의 시초에 쓰여 온 『마테오에 의하여』라는 제목이 그 시대의 교회의 이의 없는 일치한 신념을 증거한다.


그 후에도 이것은 둘째 세기 말엽의 불란서의 『에레네오』와 셋째 세기의 전반의 『떼르뚤리아노』, 아프리까의 성『치쁘리아노』,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 에집트의 『오리제네스』, 로마의 성『힙뽀리또』등, 가장 저명한 교회 작가들의 증거로 확증되어 있다.
 

그러나 이미 1백50년 전에 마테오의 복음은 벌써 교회에 있어서 종도의 권위하에 인정되어 있었다. 이름을 명시치 않고서 다만 종도의 저서이라는 제목하에 로마의 글레멘스, 디다케(12 종도의 도리), 안띠오키아의 이냐시오, 뽀리까르뽀, 바르나바의 서간 등 저서에 인용되어 있다. 이들 초대 교부(敎父) 중에 하나인 프리지아 지방 히에라뽀리스 읍의 주교 빠삐아스는 성 마테오의 저서에 대하여 유달리 관계되는 구절을 남겼다. 빠삐아스는 125-130년경에 「주의 말씀의 풀이」라는 다섯권 서적을 남겼다. 이 작품은 오날에 와서는 분실되고 말았으나, 에우세비오가 자기 저서 「교회사」(3·39)에 그 몇몇 단편을 보존하였다. 즉 빠삐아스의 말구 복음에 관한 교설을 베껴 옮긴 다음 에우세비오는 부언하기를 「마테오에 관하여 빠삐아스의 말을 들어보라. 『그러니 마테오로 말하면 「말씀」을 헤브레아 사람의 말로 차서있게 적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것을 제 능력대로 번역하였다』」하였다. 빠삐아스가 이것을 안 것은 말구 복음에 관한 것과 동일한 참고자료에서라고 믿어도 틀림없을 것이니, 즉 장로 혹은 원로 요왕의 말씀에 의한 것이다. 에우세비오는 성 이레네오와는 의견을 달리 하여 빠삐아스가 수집한 말의 주인공인 장로 요왕을 요왕 종도가 아니라 그리스도교 초대의 한 사람으로, 종도들과 친밀히 지내던 사람, 혹은 주의 즉제자일 수 있는 다른 요왕이라 하였다.
 

이 초대 그리스도교에까지 올라가는 이 증언에 의하면, 마테오 복음은 헤브레아 말로 적은 것이다. 이 말로 신약의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음 같이 (요복 5장11절, 19장13절, 17장20절, 20장16절, 종도 21장40절, 22장6절, 26장14절), 그 때에 빨레스띠나에 상용되고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시던 말을 가리키는 것이니, 그것은 참된 헤브레아말이 아니요 바빌론 공략 후 차차 헤브레아말을 대신하여온 아라메아말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보다도 미묘한 것은 빠삐아스가 성 마테오의 작품을 지시하기에 사용한 말 『말씀』(로기아)의 뜻을 확정하는 일이다.


『말씀』이란 말로써, 성 마테오가 이야기 풀이 없이 다만 주의 말씀만을 수집하였다고 믿을 것인가? 빠삐아스의 작품을 수중에 가지고 있던 에우세비오도 그 외 고대의 어떤 다른 증인도 이렇게 생각지 않았다. 빠삐아스가 『말씀』이라는 말을 쓸 때, 그가 생각하던 것은 성 마테오 작품 중에서 그가 주해하던 부분인 주의 『말씀』을 가리킨다고 할 것이다. 즉 이 말씀의 논리적 수집이 마테오 복음의 특징이니, 차서있게 저술되었다는 것이 『정확하게는 썼으나 질서 없이 주의 말씀과 행실을 생각 나는대로 모조리 기록한』 말구 성사와의 차이점이다.
 

이 아라메아말로 된 복음은 종도시대에 벌써 그레까말로 번역되었다. 빠삐아스는 이미 여러 사람이 이 번역을 시험하여본 것을 말하였다. 성 예로니모의 말씀에 의하면 이 번역 중에 하나가―그 번역자는 알 수 없으나―첫세기 말엽 전에 우세하게 되어 교회 안에서 정식 권위를 갖게 되었다. 교회는 이 번역을 마테오 복음이라 부름으로써, 그의 아라메아 원문과 본질적으로 동일함을 긍정하였다. 따라서 번역자가 어느 정도, 특히 이야기 풀이에 있어 말구 복음을 이용하였다고 하여도 무방하며, 『번역에 있어 어려운 표현을 몇몇 삽화적 구절과 함께 말구에게서 빌렸더라도 무방하다』(드 그랑매송). 이두 복음의 종속 관계를 자세히 규정하기는 곤란한 일이라 할지라도, 결국 번역자는 원문의 특징인 교의적, 문장적 단일성을 보존할 줄 알았다.
 

아라메아말로 저술된 이만큼 확실히 예루살렘이 멸망된 70년 이전에 ―10여년 전으로 올려도 틀리지 않을 것이나―빨레스띠나에 거주하는 자들을 위하여 저술된 것이다. 이것은 작품에 사용된 언어에서도 결론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뿐 아니라 이레네오, 오리제네스, 에우세비오, 성 예로니모 등이 명시한 바이다.
 

첫째 복음서의 내용과 그 특징은 그 복음을 직접 받아 읽을 사람들에게 적합하였다. 이 복음서는 다른 복음서보다도 빨레스띠나 다우니, 지방 색채라든가, 이스라엘의 전통적 표현을 사용함이라든가, 아무런 설명의 필요를 느끼지 않고서 유데아인들의 풍습을 암시하는 것이라든가는 다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저술의 목적도 유데아 출신인 독자에게 적합하니, 즉 나자렛의 예수께서, 예언이 그 자신에서 실현되는 메씨아, 다위의 아들이요 천주의 아들임을, 또 기대되던 천국의 창립자, 구약법을 파기치 않고 도리어 완성하는 새로운 법의 공포자심이 증명되어 있다. 다른 복음서와 같이, 마테오 복음도 구원의 보편성(普遍性)을 드러내나, 파리사이슴과, 『시나고가』에 대하여 대립적 태도를 더욱 드러내고 또 『교회』의 관념을 더 뚜렷이 나타내니, 이점은 이 복음의 기원과 목적에 잘 부합되는 바이다. 이 복음은 빨레스띠나 다움과 동시에 가톨릭적(공번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