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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주교요리문답(天主敎要理問答) - 성총을 얻는 방법(견진성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11-11

 


천주교요리문답(天主敎要理問答)  



3 편 성총을 얻는 방법

 

제2절 견진(堅振) 

 

224.  문 : 견진은 무엇이뇨?
        답 : 견진은 성신과 그 칠은(七恩)을 주는 성사니, 이 성사를 받는 자 예수의 군사 되어 말과 행실로 신덕을 증거하게 되느니라. 


225.  문 : 견진성사는 누가 행하느뇨?
        답 : 주교 행하느니, 교황(敎皇)의 특별히 윤허하심이 있어 사제가 이 성사를 행할  때에는 주교가 축성한 성유(聖油)를 쓰느니라.


226.  문 : 성신 칠은은 무엇이뇨?
        답 : 성신 칠은은 슬기와 통달(通達)함과 의견(意見)과 굳셈과 지식(智識)과 효경(孝敬)과 두려워함이니라.


227.  문 : 슬기의 효험은 무엇이뇨?
        답 : 슬기의 효험은 사주구령(事主救靈)하는 모든 사정을 궁구(窮究)함에 맛들이게 함이니라.


228.  문 : 통달함의 효험은 무엇이뇨?
        답 : 통달함의 효험은 우리 지력이 미치는 데까지 신덕의 오묘한 이치를 믿을 만한 것으로 판단하게 함이니라.


229.  문 : 의견의 효험은 무엇이뇨?
        답 : 의견의 효험은 우리가 마땅히 행할 선과 마땅히 피할 악을 분별하게 함이니라.


230.  문 : 굳셈의 효험은 무엇이뇨?
        답 : 굳셈의 효험은 우리의 신력(神力)을 더어 삼구를 용맹히 대적(對敵)하고 치명(致命)까지라도 하게 함이니라.


231.  문 : 지식의 효험은 무엇이뇨?
        답 : 지식의 효험은 우리가 영생(永生)을 얻기 위하여 믿을 것과 믿지 못할 것을 분별하게 함이니라.


232.  문 : 효경의 효험은 무엇이뇨?
        답 : 효경의 효험은 천주를 참 아버지로 알아 사랑하게 함이니라.


233.  문 : 두려워함의 효험은 무엇이뇨?
        답 : 두려워함의 효험은 죄를 범하여 천주께 불합할까 하여 두려워하게 함이니라.


234.  문 : 어떻게 예비하여 견진성사를 받느뇨?
        답 : 견진성사를 타당히 받기에 필요한 예비는, 교리의 상당한 지식을 가짐과 성총지위에 있음이니라.


235.  문 : 견진성사를 받은 자의 본분은 무엇이뇨?
        답 : 견진성사를 받은 자의 본분은 덕에 나아감과 천주를 위하여 세상 환난을 참아 받음과 남의 구령에 힘씀이니라.
  

 


펠레주교님 견진성사 후의 강론(성신강림 후 제19주일 2011. 10. 23)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사랑하올 형제 여러분!  

그리고 견진성사를 받으시는 여러분!  제가 수년이 지난 후에 다시 한국을 방문하여, 오늘 형제 여러분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은 나의 기쁨이오, 행복입니다. 제가 한국말을 할 수 없어서 미안합니다. 그러므로 오노다 신부님에게 통역을 부탁합니다.
  

사랑하올 형제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는 것처럼 오늘 미사 전에 견진성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견진성사가 얼마나 큰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견진성사는 전능하시고 위대하신 천주로부터 나온 선물임을 우리는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 성사를 받으면 천주로부터 은혜를, 칠은을 받습니다. 이 선물은 얼마나 높은 것인지 우리는 상상도 못할 정도입니다. 얼마나 크고 위대한 선물인지 말로도 표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이 위대하고 높은 선물을 견진성사로 통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견진성사에 대해서 잘 묵상하고 이해하도록 노력합시다.
 

성사는 천주께서 우리가 볼 수 없는 성총을, 볼 수 있는 표지로서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성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전하신 유형한 표징으로서 성총을 이루어서 주는 것입니다. 천주께서는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위대한 창조 사업을 보면서,저절로  천주를 찬미하게 됩니다.
 

그러나 저는 천주께서 볼 수 있는 대우주를 창조하신 것 보다 우리에게 성총을 주시는 것이 더 큰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주께서 오늘 견진성사를 받으시는 분들에게 창조 사업보다 더 큰 선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얼마나 위대한 선물을 주시는가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천주께 도움을 청합시다. 그리고 제가 형제 여러분에게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그리고 형제 여러분도 제 말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성총을 구합시다.
 

견지성사를 받으시는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 성신을 받을 겁니다. 천주삼위일체의 제3위 천주성신께서 개인적으로 형제 여러분 안에 오실 겁니다. 저는 성신께서 우리 영혼에 오시는 것을 두 가지 관점으로써 설명 하겠습니다. 하나는 외부적인 관점, 둘째는 내부적인 관점입니다.
 

제1관점인 외부적인 것을 본다면. 주교님이 성유를 신자의 이마에 붙이면서 견진성사를 주십니다. 그 때 그 순간, 천주께서 우리 영혼에 영적인 각인을 주십니다. 그 영적인 인호는 한번 받으면 영원히 지울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견진성사의 인호를 가지고 천당에까지 간다면 우리의 영혼에 있는 인호가 태양처럼 빛을 발하면서 천주께 큰 영광을 드리게 됩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받으면 천주의 자녀라는 인호를 받습니다. 견진성사를 받으면 또 견진성사의 특별한 인호를 받습니다. 그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말하자면 이것은 달과 태양 만큼의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인호를 가지고 불행히 지옥으로 가야 한다면 그 인호는 우리에게는 큰 부끄러움이 될 겁니다.
 

천주교회가 견진성사를 신자에게 주면서 동시에 굉장히 높은 주요한 사명을 줄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의 종도, 그리스의 병사, 그리스도의 군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천주교회는 종도의 교회, 싸우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천주교회에 속한 모든 이는 그리스도의 군인입니다. 천주교를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군으로서 이 싸움을 어둠으로써 지휘하시고 죽을 때까지 싸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은 죄와 마귀에 대해서 싸우는 것이요. 천주교회도 그 사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사명을 위하여 천주께서  천주 성자를, 천주의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세상에  우리를 구령하기 위하여 보내시고,  천주와 우리의 중재자가 되시고, 우리를 죄의 노예상태에서 해방시키기 위하여 죽을 때까지 싸우셨습니다. 그와 같은 똑같은 사명으로써 우리도 싸우라고 천주께서 우리에게 견진성사를 주십니다.견진성사를 주시면서 우리도 똑같은 싸움에 싸우라고, 마귀와 죄에 반대하여 싸우라고 부르십니다. 우리 주의 모든 공로는 우리 모든 이를 구령시키는데는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천주의 지혜로써 그 구령 사업에 참여하여 예수와 같이 구령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신 것 입니다. 영혼 구령 사업에 우리에게도 참여하도록 초대하신 것입니다. 천주께서 우리에게 어떤 몇 명으로 영혼을 구령해야 한다고 결정하셨습니다. 천주께서 어떤 영혼을 구령을 위하여 우리를 쓰겠다고 정하셨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천주교 신자로서 착한 생활을 한다면 천주께서 우리를 통하여 구령하기를 원하신 영혼들을 구령하게 되실 겁니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가 거룩하게 되지 않는다면 천주께서 우리를 통하여 구령하시기를 원하셨던 영혼들은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런 위대한 사명을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예수그리스도께서 수 천 년에 전에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보천하에 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믿고 세를 받는 자는 구령할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죄로 판단함을 받으리라.(말구 16:15-16)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본다면 우리는 믿는 것, 성사를 받는 것 두 가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이웃 사람들이 믿을 수 있도록 강론하는 것은 사제의 일이오, 성사를 주는 것도 사제의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 평신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영혼을 구령하기 위해 어떤 협력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을 말과 생활태도로써 선언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것을 외부적으로 선언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신앙에 대해서 질문을 받는다면, 또한 신앙이 공격을 받는다면 올바른 답을 해야 해요. 공격받는 신앙을 보호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생기는 일이 아닙니다. 일상생활에서는 좋은 모범과 좋은 일을 함으로써 신앙을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싸움입니다. 이것은 우리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도록,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좋은 모범을 보임으로써 그들을 성덕으로 이끌게 하는 것입니다. 좋은 모범, 좋은 일은 이것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좋은 일을 하기 쉽게 만듭니다. 이것은 성총의 샘이 되고, 성총의 움직임을 받아 사람들이 더욱더 거룩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주교회는 성인전 읽기를 강조합니다. 우리가 성인전을 읽으면 성인들이 어떻게 생활했는가를 잘 알게 되고 감동을 받아 생횔 태도를 배우고 우리도 똑같이 생활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런 좋은 모범을 양식으로써 더욱더 거룩하게 생활하게 합니다. 우리는 그런 참된 싸움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천주께서 우리를 초대하신 사명을 잘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만약에 천주로부터 온 이런 초대를 거부한다면 사람들은 우리에게 반대하여 우리 신앙을 거부하고 경멸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만약에 우리 성당에 있으면서 성호를 긋는 것은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식당에 가서 식전 기도할 때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부끄러워서 성호를 긋지 않을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만약에 성호를 긋고 식후기도를 바친다면 우리는 아 승리했다. 이겼다. 라는 기쁨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만약에 성호를 긋지 않고 식사를 했다면 맛이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용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외부적인 제1관점입니다.
 

제2관점은 내부적인 것입니다. 주교님께서 이마에 성호를 그으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인하여 너를 강하게 한다는 확인의 의식과 함께 견진성사를 줍니다. 그 순간에 천주성신께서 우리 영혼에 오십니다. 그런데 형제 여러분! 우리가 세례성사를 받으면 삼위일체 천주께서 우리 영혼에 거주하시죠, 그런데 어떻게 똑같은 성신께서 우리 영혼에 다시 올실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왜 이미 받은 것을 또 다시 받을 수 있다고 하겠습니까?
 

성 토마스 아퀴나스께서 “견진성사를 받을 때는 우리와 천주성신과의 관계가 새롭게 된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높은 신비요, 우리는 이해하기가 좀 어렵지만 비유로써 설명하겠습니다. 우리 영혼을 큰 비행기에 비유해 보겠습니다. 큰 비행기는 일반적으로 기장과 부기장이 이렇게 둘이 있습니다. 우리도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성이고, 이것은 내가 무엇을 하겠다는 때에 있는 나입니다. 둘은 우리가 세례 받을 때 오신 천주성신입니다. 천주성신께서 우리의 영혼 비행기에 부기장으로써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러나 오늘 견진성사를 받는다면 그 관계가 바뀌게 될 것입니다. 천주성신께서 ‘이제부터 네가 기장이 아니라 내가 기장이다. 너는 부기장이 되라’고 하실 겁니다. 이제부터 비행기를 운행하는 이는 내가 아니라 천주성신이십니다. 왜, 어떻게 이것은 성 바오로께서 로마서 제8장에서 “대저 천주의 성신께 격려되는 이는 다 천주의 자녀인 연고니라(로마8: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로만 천주의 자녀가 아니라 참된, 진짜 자녀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주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성신으로써 내부적인 움직임을 받아야 합니다. 성 바오로 종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내안에 살으심이니라(갈라2:20).”
 

물론 세례 받을 때 이미 우리는 천주의 자녀가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상존성총常存聖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천주의 생명, 천주성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으로 천주의 자녀입니다. 천주의 아들, 딸이 됩니다. 천주의 생명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부로부터 천주의 평화가 됩니다. 이것은 참된 새로운 생명입니다. 왜냐하면 세례을 받으면 우리 생명이 천주의 수준으로 올림 받기 때문입니다. 초자연적인 수준의 생활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 생명을 초월한,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천주처럼 생활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천주께서 신앙으로써 당신의 눈을 주시고, 우리는 천주의 마음을 받으면서 천주처럼 모든 것을 보고, 천주의 사랑으로써 모든 것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으로 보고. 인간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천주처럼 모든 것을 보고, 천주처럼 모든 것을 사랑하기를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행동하는 것은 말하자면 천주와 일치를 이루면서, 천주와 더불어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대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높은 것이오, 참으로 훌륭한 것이오, 참으로 거룩한 것이오. 이것이야말로 천주교 신자가 가지는 존엄(dignity)인 것입니다.
  

천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에게 당신 아들을 주시고, 그 아들은 죽음을 받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우리가 천주와 더불어 영원히 행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천주 속에서 천주의 생명으로 생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성 바오로께서 말씀하시기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들이 어찌 아직 죄 중에 살겠느냐(로마서6;2)?.”. 그러나 천주께서는 이것에 만족하시지 않으십니다. 초자연적인 생명, 초자연적인 성총, 초자연적인 덕행, 성총의 모든 충만을 주시면서 부족해 하셨습니다. 천주께서 더욱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황금잉크로 된 펜을 가지고 있는 어린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라면 황금잉크 펜으로 그림을 그려도 낙서가 됩니다. 그러나 천주께서는 그런 어린이로 하여금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어린이 손으로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를 잘  생각하셔서 최고한 예술가를 어린이에게 보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  어린이가  예술가를 잘 받아서 그림을 그린다면, 만약에  예술가의 움직임을 어린이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요?  이처럼 천주성신께서 우리를 움직여서. 우리로 하여금 최고한 그림을 그리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신께서 주시는 움직임을 그냥 따라하면 됩니다. 침묵으로 받아서 따라가면 됩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압바 곧 아버지라 부르게(로마8:25)" 하는 움직임을 주십니다. 천주성신의 움직임을 받지 않으면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냥 천주성신 영향하에 항상 그냥 있으면 됩니다. 이것이 성신칠은이요, 이것이야말로 성 바오로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제부터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으심.”인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천주께서 "영광으로부터 영광까지 우리를 바꾸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모든 성인성녀가  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성신께서 움직이시는 대로 따라 움직이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천주교회의 완덕입니다.
 

사랑하올 형제 여러분! 나는 더욱 더 많은 것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성모께로 갑시다. 성모께서는 성신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계십니다. 성신의 짝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모님께 항상 성신께 중심을 지킬 수 있도록 기도하고 그리고 우리가 성신으로부터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우리로 하여금 준비가 될 수 있도록 구합시다.
 

그리고 이미 견진 성사를 받으신 분들도 매일매일 성신칠은에 중심하여 성신께서 영감(inspiration)을 주신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성신의 열매를 즉, 애덕과 기쁨과 평화와 정결함, 이 모든 것을 우리가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성모께서 우리를 전달하사 천주께서 우리에게 마지막에 주시기를 원하신 천주의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성부와 성자와 성신과 더불어 영원한 행복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우리는 성모께 기도합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하나이다. 아멘.
 

2011년 10월 23일
성신강림 후 제19주일 견진성사 후의 미사강론 .

베르나르 펠레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