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비타스 제148호 Editorial

Ave Maria Immaculata!

사랑하올 형제 여러분,

프랑스 오라토리오회의 제2대 총장 샤를 드 콘드란(Charles De Condren, 1588-1641) 신부의《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제사의 개념 (IDÉE DU SACERDOCE ET DU SACRIFICE DE JÉSUS-CHRIST)》에 대해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겠습니다. 

희생

참된 창조주와 이성적(理性的)인 피조물을 연결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 있는 것이 희생입니다. 모든 지적(知的)인 피조물은(천신이든, 사람이든) 천주가 창조주이고 자신의 기원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천주를 흠숭(欽崇)하고 천주로부터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영광을 천주께로 돌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천주께서는 사랑을 받으시는 것에 의해서만 존경을 받으신다.” 고 합니다. 모든 희생의 핵심은 그것을 바치는 사랑에 있습니다. 

인간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흠숭(欽崇)과 감사 이외에 죄에 대한 보상을 바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인간은 천당에 갈 때까지 천주께 간청할 의무가 있습니다. 천당의 천신들은 사랑으로써 불타고 비물질적인 흠숭(欽崇)과 찬양을 천주께 바칩니다. 천신들은 천주의 최고의 무결점 앞에서, 말하자면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하면서 끊임없이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라고 흠숭(欽崇)하고 있습니다.

지상에 있는 우리 인간은 천주를 흠숭(欽崇)하기 위해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1) 우선 천주의 성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피조물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거룩한 천주의 위엄 앞에서 자신은 무와 같다는 것을 표명하는 것입니다. 

(2) 둘째, 천주께서 우리의 생사를 주관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존재하게 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천주의 최고의 주재(主宰)의 권능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모세의 율법에서는 희생이 먹히거나, 도축(屠畜)되거나, 태워지기도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기 전 원초의 상태에서는 제사의 죽음은 요구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죄에 의해 죽음이 이 세상에 들어와서 제사도 도축(屠畜)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카인이 바친 대지의 은혜, 노동의 열매는 주께서 받아들이시지 않았을 겁니다. 

(3) 셋째, 희생을 바치면 천주께 어떠한 피조물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구약에서 이를 보여주기 위해 제물을 태우는 번제 - 완전히 불태워 드리는 번제(燔祭)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사제

천주께서 아담의 죄를 예견하시고, 천주님과 인류와의 화해하는 것을 계획하셨는데, 이것은 중개자를 통해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중개자는 인간 중에서 죄가 없는 의인이 선택되어 죄인들이 받는 결과(벌)를 받는 것입니다. 천주께서 이 중개자가 사제로 되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사제는 천주의 정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천주께 최고한 헌물(oblatio)과 희생(sacrificium)을 바치며 중개하는 자입니다. 천주와 인류를 화목 시킬 수 있는 이러한 중개자는 천주의 아들이어야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대사제의 지위를 스스로 자진하여 취하시지 않으시고, 오직 저(=그리스도)에게 『너는 내 아들이니, 나 오늘 너를 낳았노라』(성영 2:7) 하신 이가 저를 대사제로 세우셨느니라. 그는 다른 곳에 또 『너 멜키세덱의 제도를 따라 영원토록 사제로다』(성영 109:4) 말씀하시니라”(헤브레아5:5~6).

성 바오로 종도에 따르면, 사제는 천주께 무언가를 바쳐야 합니다. “무릇 어떠한 대사제를 물론하고 그들은 다 사람들 중에서 간택되며, 또한 천주 대전에 저들의 사정에 있어 사람들을 위하여 저들의 대표자로 선정되느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사람의 죄악을 위하여 예물(dona)과 희생(sacrificia)을 봉헌하기 위함이니라”(헤브레아서 5:1). 

예물(dona)이란 바치는 헌물(oblatio)로 빵이나 포도주나 올리브유 등의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희생(sacrificia)은 희생된 동물, 희생제물(victimae)입니다. 인류가 죄를 범한 이래로 죄가 없는 동물이 도축(屠畜)되었습니다. 동물을 희생제물로써 사람은 이렇게 선언하는 것입니다. ‘죄를 범했기 때문에 사람이 죽을 자격이 되었다. 동시에 천주께 바쳐지기에는 어울리지 않다. 사람이 되실 천주가 인류를 위해 바치실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모세의 율법 전에도, 율법 하에서도 이것이 적응됩니다. 그러나 천주의 아들이 사람이 되셨을 때, 구약은 폐지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저(=그리스도) 세상에 들어오실 때에 말씀하시되 『(구약의) 유혈(有血)의 제사와 다못 무혈(無血)의 제사를 너 즐기지 않으시나, (그러나 )육신을 내게 조성하셨도다. (구약의)번제(燔祭)와 속제(贖祭)는 네게 의합하지 아니하도다. 이에 나 「천주여 보소서. 나 서책(書冊)에 내게 대하여 씌었음과 같이 당신의 뜻을 실행하기 위하여 왔나이다」하고 말하였느니라』하시도다”(헤브레아서 10:5~7).

아담의 죄에서 세상의 끝까지 죄를 보상할 수 있는 진정한 제사, 천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희생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장래에 걸쳐 단 하나만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사제로 바쳐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희생으로 바쳐지는 희생입니다. 아벨, 노에, 아브라함, 모세, 아론의 희생에서 그 전조(前兆)로 바쳐지고 희생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멜기세덱의 제도에 따른 사제직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중개자이시기 위해서는 사제이셔야 했습니다. 다만 아론의 제도를 따른 사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율법의 사제직은 레위족에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론의 사제직은 레위족에 속한 아론의 후손들에게만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레위의 사제족이 아니라 유다의 왕족 출신이셨습니다.

“그는 다른 곳에 또 『너 멜기세덱의 제도를 따라 영원토록 사제로다』 말씀하시니라.” (헤브레아서 5:6).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은 상위 사제직이었으며, 멜기세덱의 제도를 따른 사제직이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멜기세덱의 후손이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주님의 사제직은 아론의 사제직이 존재하기 전부터, 전임자도 후계자도 없이, 유일한 것으로서, 그 전조가 사제 멜기세덱에 의해 나타났습니다. 멜기세덱은 정의의 왕이라는 뜻으로 살렘(나중에 예루살렘)의 왕이었습니다. 살렘이란 평화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평화의 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멜기세덱에는 가계도가 표시되지 않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이 갑자기 나타납니다. (멜기세덱은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노아의 장남인 셈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살렘의 왕이요 지존하신 천주의 사제이신 멜기세덱은 제왕(諸王)들과의 싸움에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에게 마중 나가 저에게 축복하였느니라. 이 때문에 아브라함은 저에게 전리품(戰利品)의 십분지 일을 나누어 주었느니라. 그의 이름의 뜻은 번역하면 첫째로는 정의의 왕이며, 다음으로는 살렘의 왕, 곧 평화의 왕이니라. 그의 부모와 족보(族譜)와 생명의 시작과 생명의 마침 등이 성경에 기록되지 아니하였음으로써 저는 천주의 성자와 방불하여 영원토록 사제이니라” (헤브레아서 7:1~3).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정의와 평화의 왕이시며 그 사제직은 전임자도 후계자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천주가 사람이 됨으로써 직접 사제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또 사제인 것을 멈추고 다른 사람에게 양도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불사의 영광의 생명으로, 영원한 사제이시며, 이 사제직은 죽음으로 결코 중단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수난과 부활과 승천을 통해 사제직을 완성하셨습니다. 주님은 결코 죽지 않는 결과로, 완성된 사제이시며, 유일한 사제가 되셨습니다. 

성 바오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한 저 때(=구약)의 사제들[레위족 사제들]은 죽음으로 인하여 사제직에 머물러 있음이 방해되었기 때문에 사제된 자 더 많았으나, 그러나 지금(=신약)에는 예수 영원토록 생활하심을 인하여 영원한 사제직을 차지하시느니라”(헤브레아서 7:23~24). 또한 레위족의 사제직도 “그 약하고 유익됨이 없음을 인함이며”(헤브레아서 7:18) 폐지되었습니다. 

주님은 천당에 들어가사 멜기세덱의 사제를 완성하셨습니다. 성 바오로는 말씀합니다. “우리의 말한 것 중에 가장 중대한 사건이란 이것이니, 곧 우리들이 모신 대사제는 천상에서 엄위하신 천주의 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이시니라. 저는 성전, 곧 사람이 지은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 지으신 바 참된 장막에서 사제직을 이행하시는 자시로다” (헤브레아서 8:1~2).

율법 하에서 매년, 한 번 자신과 민족의 다양한 죄로 인해 수양을 희생시킨 후, 대사제만이 그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천상의 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희생으로써 피를 바치시고, 그 존귀하신 피를 가지시고 천당의 천주 앞, 진정한 지성소로 들어가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은 지상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지상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주님은 천당에서 희생을 바치시며 사제직을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구약의 전조의 완성

예수 그리스도는 희생과 사제직에 관한 구약의 전조를 모두 완성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성부께 바치시는 것이야말로 태조(太祖)로부터의 희생의 모든 것을 가장 완성시키는 형태로 바치는 것입니다.

구약의 희생은 육적이고 물질적이었다면, 우리의 희생은 영적이고 진리입니다. 구약의 희생은 검(칼)과 불꽃으로 도축되어 집행되었지만, 신약에서는 성신과 말씀(성변화지례)에 의해 집행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제직은 이제 이 땅에서 미사성제와 가톨릭 사제직에 의해 행사되고 있습니다. 이 희생과 사제직은 이 땅에서 시작되어 천당에서 영원히 계속됩니다.

오노다 토마스 신부

한국성비오10세회 주임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