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강림의 의미 - 성신강림주일(2025.6.8 )

오늘은 성신강림일로서, 교회 내 가장 큰 3가지 대첨례(성탄, 부활, 성신강림) 중 하나입니다. 성탄이나 부활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첨례(축일)들입니다만, 이에 비해 성신강림에 대해서는 그 참된 의미를 잘 모르고 지나가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오늘 강론을 통해 이 주제(인류 구원사에서의 성신강림의 의미)에 대해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인류 구원 역사에서 그 중심은 무엇일까요? 누가 그 핵심인물일까요? 

단연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강생, 십자가상 희생제사의 죽음, 부활과 승천에 이른 그분의 전 생애 모든 과정은 우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과정이었으며, 인류가 태초에 잃어버린 천주님의 생명을 공로로 다시 얻으신 과정이었습니다.

이 인류 구원사업은 예수님께서 사셨던 시대와 장소에 그치고 끝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인 가톨릭 교회를 통해서 오늘날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신자들은 매년 반복되어 거행되는 전례를 통해,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을 통해 이 그리스도의 생명에 신비적으로 참여합니다.

그렇다면 이 구원사에서 성신강림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예수님의 생애와 승천으로 모든 것이 완성된 게 아닌가요? 

왜 교회는 성신강림을 이처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일까요?

1. 성신강림의 의미

그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관련된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날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나 너희게 실상으로 이르노니, 내가 (성부께로) 가는 것이 너희게 유익한지라,  대저 나 가지 아니하면 위로자 성신께서 너희게 오시지 않으실 것이요,  가면 나 저를 너희게 보내리라.” (요왕 16:7)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 이로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언뜻 보아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두 발 자전거를 처음으로 타게 되는 경우를 상상해 볼까요.

자전거에 올라탄 상태에서, 좌우 그 어느 쪽으로도 쏠리지 않고 균형을 잘 잡으면서, 페달을 밟아 앞으로 전진하는 요령이 필요한데요.

처음에 시도할 때는 쉽게 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뒤에서 자전거를 잡아준다면, 한쪽으로 쏠려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를 타는 것이 가능합니다.자전거 초보자는 다른 사람의 이러한 도움에 의존할 수 밖에 없지만, 연습을 통해 익숙해지고 나면 혼자서도 균형을 잡으며 페달을 돌리는 것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자전거를 타는 요령을 완전히 습득한 것이죠. 자전거 타는 기술을 자신 안에 소유한 상태입니다.

즉, ‘자전거 타는 요령’은 완전히 그 사람의 소유물이 되어, 이를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된 것이라 표현할 수 있겠죠.

천주님의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인류가 잃었던) 천주 생명을 당신의 수난과 부활의 공로로써 다시 획득하셨습니다만, 이 천주 생명이 우리에게 직접 전해지고 또 우리가 이를 소유하여 누리기 위해서는 또 다른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이 바로 성신강림,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열흘 째 이루어졌던 성신강림입니다.

성신께서 우리 영혼 안에 오심으로써, 비로소 우리 영혼은 천주님의 생명을 지니게 되며, 천주님께서 머무르시는 집이 됩니다. 천주님의 생명을 우리 안에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신께서 오시지 않고서는 아무도 (천주님의 생명을 지닌) 천주님의 자녀가 될 수 없고, 천주님을 감히 아버지라 부를 수 없습니다.

  “대저 너희가 받은 영은 천주의 자녀의 영이니, 이 영으로 하여금 우리가 (천주를) 『압바, 곧 아버지』라 부르게 하는도다.”  (로마 8:15, 의역)

  “이리하여 너희는 이제 천주의 자녀들이매, 천주께서는 『압바, 아버지』라 부르짖으시는 당신 아들의 영(성신)을 우리 마음에 보내시니라.” (갈라 4:6)

다락방에 모여있던 제자들과 성모님에게, 즉 교회 공동체 신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영인 성신을 보내심으로써 그들을 천주님의 숨길로, 천주님의 생명으로 가득 채우셨습니다. 유대인들의 박해를 두려워하여 숨어있던 제자들은 성신강림 이후 사람들에게 대담히 말씀을 전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천주님께서 그들 안에 함께 하셨고, 천주님께서 친히 그들과 함께 활동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평범한 인간이 아닌, 천주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우리 각자의 영혼 안에서의 성신의 작용도 마찬가지입니다.성신께서는 우리를 천주성에 참여하도록 들어올려주시며,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 천주님께 대한 우리의 부족한 이해를 명료하게 일깨워주시고,영혼을 천주님의 사랑으로 채움으로써 지극한 위로를 가져다 주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여시어 천주님의 뜻에 유순하게 순종하게 하시며, 이를 통해 우리의 덕목이 더 자라나고, 죄에 대한 유혹을 쉽게 극복할 수 있게 되며, 천주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더욱 더 확장됩니다.

한 마디로, 성신의 작용을 통해 우리는 천주님의 자녀로 태어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어른으로까지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성신강림의 의미를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는 우리를 이끄시는 방식은 외적인 방식이었습니다. 그분께서 선포하신 말씀과 행하신 기적들은 사람들의 외부에서 행하여진 것들입니다. 외부에서 이 말씀과 기적들을 수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신강림을 통하여 성신의 현존을 누리기에, 예수님께서 직접 우리 안에서 일하십니다. 

성신은 예수 그리스도 천주 성자의 영이시고, 예수님께서 성부와 함께 우리에게 보내신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내 비록 성부께로 돌아가나,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아니하고 다시 너희게 오겠노라 (요왕 14:18)’ 하신 말씀은 바로 이 점과 연관된 말씀인 것이죠.

성신강림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과의 더 친밀한 현존, 내적 현존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떠나 성부께로 가는 것이 너희게 더 유익하노라’하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2. 일상생활을 성신과 함께

이 기쁜 성신강림일에 천주님께서 특별한 방식으로 여러분 각자 영혼 안에 오시고자 합니다. 

그분께서는 아무것도 모자랄 것이 없으신 전능하신 천주이심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생명과 지복을 우리와 나누기 위하여, 당신 자신을 친히 선물의 형태로 만드시어 이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고자 합니다.지존하신 천주의 선물이요, 최고의 선물이신 성신께서 여러분과 언제나 함께 하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많은 위기들과 어려움 속에서 걱정하며 의기소침하기 쉬운 오늘날의 상황입니다. 때로는 사소한 말다툼과 의견 차이로 시작한 것이, 수년 간을 한 가족처럼 몸담아온 공동체를 하루 아침에 떠나고 싶게 만들 수도 있고, 연거푸이어지는 시련으로 인해, 실의에 빠진 채 삶의 목적을 상실하고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게 만드는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들을 순전히 인간적인 방식으로 마주한다면 이 유혹들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천주님의 자녀인 우리는 천주님의 방식으로, 성신께서 함께 하는 우리는 성신의 능력으로써  매사를 대처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일상 생활 속에서의 각 활동들을 시작하기 전에, 성신께 항상 의탁하고 그분의 도우심을 청하십시오. 성신을 우리 생활에 초대하는  습관은 우리의 모든 활동을 신격화하고, 우리 영혼을 성화하는 단순하고도 훌륭한 방법입니다. 

‘일 시작 전에 바치는 기도문’이 성신께 대한 기도문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성신께서야말로 바로 성화의 주체이시며, 우리가 그분과 함께 있는 한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귀를 두려워해야 하겠습니까? 

  성신의 현존 앞에 감히 가까이 올 수 있는 마귀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죄를 두려워해야 할까요?

  성신의 안내하심을 따르기만 한다면 죄 지을 기회는 우리에게 가까이 올 수 없습니다. 

세상의 박해를 두려워해야 할까요?

  그 박해를 성신의 도우심으로 견뎌낸다면, 이는 도리어 우리의 천국행을 도와줄 뿐입니다.

성신과 함께 하는 생활의 중요성을 방금 말씀드렸습니다만,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당부 말씀을 드리면서 강론을 마치고자 합니다.

바로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성령쇄신운동, 성령부흥운동인데요.

이 운동들과 관련해서 우리의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 운동들은 성신의 활동에 대하여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구원사에 있어서의 그 위치와 의미를 고려하지 않은 채 진행되고 있는 운동들입니다. 이 운동들의 기원 역시 가톨릭 교회에 있지 않으며, 성공회와 루터교 등 개신교에서 시작된 운동들입니다.

이상한 방언들을 구사하는 신비한 체험을 위한 목적으로, 영적 또는 신체적 치유를 위한 목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들로 잘못 인도되고 있습니다.

신앙의 기본교리들과 교회 교계제도의 질서를 고려하지 않은 채, 천주님과의 직접적인 개인의 체험을 더 중시하게 하고, 이러한 체험을 마치 영성생활의 본질인 것처럼 여기는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성신께서는 평화의 영이십니다. 성부와 성자께서 보내시는 영이십니다. 단순한 인간의 혀로 불러내는 영이 아닙니다. 천주님 안에서 누리는 참된 평화는 위에서부터 내려옵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 너희게 평화함을 끼쳐주며 내 평화함을 너희게 주되, 내가 너희게 주기를 세속이 줌과 같이 아니하노니, 너희는 마음에 산란치 말며 겁내지 말지어다.” (요왕 14:27)

“임하소서 창조주 성신이여, 당신의 그 이름 위로자시니, 지존하신 천주의 선물, 생명의 샘이시라. 

 

원수 아주멀리 쫓아주시어, 속히 당신평화 내려주시고, 당신 이끄심 순히들어, 모든위험 면하리이다.” (Veni Creator Spiritus 기도문) 

아멘.

김민재 론지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