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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모기사회에 보내는 서한 제8호, 파티마 2017를 향해(1) 슈텔린 신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9-30

 


아시아 성모기사회 회원들에게  보내는 8번째 편지


친애하는 하자 없으신 마리아의 기사들이여!


 막시밀리안 성인께서 하자 없으신 성모기사회을 설립했을 때, 그는 이 기사회가 다른 경건한 협회나 단체, 제3회 마리아 운동 등과 비교되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이 후자의 단체들은 그 회원들에게 특정 양만큼의 기도와 경건한 수행과 구체적인 종도직의 의무를 부여합니다. 성모기사회는 이런 직분이 더 적으면서도 더 많기도 합니다.


 더 적다는 말은, 성모기사회가 그 회원들에게 거의 아무런 의무를 부여하지 않으며, 그저 하루에 한 가지 기도와 기적의 메달을 걸도록 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그 의무를 못 지킨다고 해서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 많다는 말은, 성모기사회가 그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삶의 법칙을 주고, 언제나 어디서나 따라야 할 위대한 이상(理想)을 주기 때문입니다. 구성원이 된 가톨릭 신자는 그가 정확히 누구인지, 또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하게 됩니다. 그 정체란 바로, 우리가 개인적으로 흠숭(경배)하는 자가 아니고, 자신의 구원에만 신경 쓰는 개인주의자도 아니며, 바로 현세의 악과 싸우는 교회의 일원이며, 우리 주님의 제자이고, 그 짧은 생애동안 이뤄야 할 매우 특별한 임무를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 임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을 확장하기 위해 일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어머니를 “그리스도인 군대의 최고 사령관”이자, 용과 짐승에 유일하게 대항하고 “그 머리를 부수고” “세상의 모든 이단을 격파하리라”는 약속을 받으셨던 “계시록의 여성”으로 임명하셨기 때문에, 따라서 가톨릭 신자는 오로지 그가 자신을 성모 마리아께 드리고, 그분을 위해 봉사하고, 그분의 의지를 실현하며 그분의 어린이이며 몸종, 도구, 군인, 종도(사도), 군단의 병사, 그리고 ‘기사’가 될 때에만 전투 중인 교회에서 그의 역할과 임무를 완수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아침에 일어나 “내가 누구지?”라고 스스로 자문할 때, 그 대답은 바로 ‘가톨릭 신자, 하자 없으신 마리아의 기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오늘 무엇을 할까?”라고 자문할 때, 그 대답은 바로 ‘하루의 모든 세세한 부분 속에서 나는 그분의 도구가 되며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우리 주님과 많은 영혼의 구원을 위해 싸운다’가 되어야 합니다.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이 위대한 ‘발상(發想)’을 내 삶의 새 법칙으로서 받아들일 의지를 갖고 (이것은 헌신의 행동입니다), (될 수 있으면) 적어도 하루 한번 그것을 기억하며, 성모님께서 영혼을 구하는 것을 돕는 그분의 도구로서, 작은 부르짖는 기도라도 하루에 한번 드리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적어도 하루에 한번은 무언가 정말로 가치 있고 영원하며, 천주님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적어도 하루에 한번 당신은 성모님께 새끼 손가락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막시밀리안 성인은 그러한 작은 제스처라도 성모님은 잊지 않으시며, 종종 그분이 이 행위를 사용해 불쌍한 죄인을 그분의 성심으로 이끌며 그가 조금씩 죄에서 그만두고  거룩해지도록 만드신다고 단언합니다.


 그러나, 하자 없으신 마리아께서 그분의 자녀와 기사에게 더 많이 주길 바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사실, 만일 제가 그분의 하자 없는 손에 들린 ‘도구’로서, 이 짧은 생애 동안의 제 역할을 더 잘 이해한다면,  전 그 역할에 대해 더욱 더 많이 생각하고, 성모님께서 사람들이 진정 행복해지고 사탄의 폭정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시는 일을 돕기 위해 더욱 더 많은 일을 할 것입니다.


 그분의 기사가 되려는 ‘발상’은 제 행동의 동기이자 원동력이 되며, 제 영혼에 숨겨진 가능성과 강점과 재능들이 조금씩 제 삶을 변화시키도록 깨울 것입니다. 시간이 얼마 지난 후엔 편협하고, 이기적이며, 태만하고, 권태로우며, 무관심한 그리스도인들이 이상으로 가득차고, 눈에는 사랑의 불길이 일고, 영혼을 구하는 사냥꾼으로 바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자 없으신 성모 기사회의 역사이며 그 기막힌 성공의 비밀입니다!


 1917년부터 1974년까지, 이 ‘새로운 삶의 법칙’에 영감 받은 수백만 명의 소박한 가톨릭 교인들이 완전히 변화됐고 성모님의 열렬한 군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복되고 공표된 성인들이 100명 넘게 나왔으며, 수천 명의 영웅적인 영혼들이 천주님의 권리를 위해서 무신론적인 공산주의 동유럽 국가들에서 싸우고 죽었으며, 셀 수 없는 많은 기사들이 전 세계의 사람들을 가톨릭의 진리로 회두시켰습니다.


 당신은 이 “새로운 삶의 법칙”을 단순히 당신의 “새로운 이름”, 즉 ‘하자 없으신 성모님의 기사’란 이름을 묵상함으로서 기억하면 됩니다. 이 이름이 모든 의미를 다 담고 있습니다.


1. 첫째 중심이 되는 단어는 ‘하자 없으신’입니다.

 

성모님 없이는 가톨릭 신자가 될 수 없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자 없으신 마리아여” 이 질문에 대해 1분간 묵상하는 것이 당신의 시야를 무한히 넓혀줄 것입니다. 천주님의 어머니,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는 그분의 첫 번째이자 주요한 특권, 천주께서 천국에서 지상으로 어떻게 오셨는지, 우리가 지상에서 천국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 묵상하는 것입니다.


 죄가 한 점도 없고, 가장 순수하며, 성총으로 가득한 하자 없으신 마리아는, 천주님의 완벽한 걸작이며, 그에 비교하면 모든 생물은 먼지와 같습니다. “오 하자 없으신 마리아여, 천국과 지상의 여왕이여”: 사탄의 머리를 부수고 종말의 때에 확실하고 완전하게 승리하는 성심을 가진 계시록의 여성. 그리고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는 어머니”, 우리의 피난처이자 천주님께로 우리를 이끄는 길이자 우리의 희망이며 기쁨인 분! 지구상에서 진실로 중요한 유일한 것. 하자 없으신 마리아의 성심 속에서 예수님의 성심이 빛나고 두 분의 성심을 관통하는 사랑의 불길이 주님의 충만함, 곧 성신으로 빛납니다! 하자 없으신 마리아께서는 가장 거룩한 성 삼위의 감실(성궤)이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완전히 주길 원하셨던 것 전부입니다. 모든 것은 성모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옵니다.


2. 두 번째 단어는 여러분에 관한 것으로 바로 ‘기사’입니다! 내가 기사라는 것,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로 이것은 군인에 대한 단어이며 투쟁과 위험한 적에 관한 현실을 암시하고, 우리에게 이 지구상에서의 삶이 두 가지 완전히 반대의 세력 간의 전쟁이라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그 두 세력은 ‘진실과 오류, 빛과 어둠, 사랑과 증오, 행복과 불행, 천국과 지옥, 진실한 교회와 가짜 종교들, 그리스도와 사탄’입니다.


 둘째로, 기사는 단순한 군인이 아닙니다. 기사의 심장은 그가 싸우고 있는 대의를 위해 불타고, 기사는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으며, 싸움에 대한 타당한 이유를 확신하고 있고, 제일 먼저 전장에 나가며 제일 나중에 휴식합니다. 기사는 숭고한 마음, 씩씩한 기상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위대한 일을 위해 싸우며 편협하지 않고, 게으르거나 비겁하지 않습니다. 중세 기사들의 역사가 좋은 예입니다.


셋째로, 기사는 스스로를 기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의 상관, 보통 왕에게 직접 작위를 받습니다. 기사직은 중요한 특권이었으며, 중세에는 그가 기사작위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걸 많은 노력과 증거를 통해 보여야 했습니다. 따라서 기사의 큰 미덕은 용기와 감사할 줄 아는 마음, 왕에 대한 완전한 헌신과 어떤 상황에서도 믿을 수 있는 신뢰성, 완전무결성, 진실성, 관대함, 너그러움이었습니다!


 나 자신이 종종 게으르며 태만하고 무관심하며, 목적과 이유없이, 환상과 제멋대로인 감정과 평판과 여론에 휘둘려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것을 볼 때 기사의 모습은 얼마나 대조가 되는지요. 또 나는 작은 즐거움과 재미있는 경험을 찾거나, 몸과 영혼을 파괴하거나, 내 마음이 많은 거짓 친구들에게 황폐화되도록 놔두면서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한 다른 관점을 배우고 동기부여를 하십시오! 즉 천주님께서 우리가 무엇이 되길 원하시는지, 천주님께서 성모 마리아를 통해 내가 무엇이 되길 요청하시는지 생각하십시오. 우리는 훌륭하고 고결하며 영웅적 행위를 하도록 영원히 운명지어졌습니다.


 3. 세 번째 단어는 앞의 두 단어의 합성으로, ‘하자 없으신 마리아의 기사’입니다!


우리는 성모님으로부터 왔습니다. 비록 우리가 성모님의 기사가 되는 데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성모님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우리의 개종을 준비하시고 그분의 부르심에 답하도록 우리 마음을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우리는 성모님을 위해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이란 대의를 위해 싸웁니다. 성모님은 우리를 그분의 하자 없으신 손에 들린 도구로서, 성모님께서 그분의 잃어버린 자녀들을 마귀의 속박과 영원한 저주로부터 구제하시기 위해, 그들을 오류와 죄의 감옥으로 부터 구하도록 이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우리의 짧은 삶 동안 성모님은 우리에게 거의 한계가 없는 임무를 주십니다. 모든 것은 우리에게 달렸습니다. 우리는 삶의 남은 귀중한 시간을 무한한 상을 받기 위하여, 성모님을 통해 세상을 정복하기 위하여 쓸 수 있습니다.(불멸의 영혼 각각은 물질적 세계 전체보다 훨씬 더 큰 존재입니다!)


 그분의 큰 소망은 우리의 소망이 돼야 합니다. “나의 자녀들을 돌려주어라! 내가 그들을 빛과 은총으로 되돌려 보내도록 하여라. 그러나 난 너희가 도구로서 필요하다. 너희는 작은 기도로서 그들에게 다가가고, 그들의 영혼을 네 보속을 통해 준비시키며, 내가 준 기적의 메달을 주고 내가 한 말과 충실한 종들이 한 말을 그들에게 들려줌으로써 그들에게 다가가고, 나의 기적과 사랑에 대해서 그들에게 전하라. 그리고 너희가 지어놓은 이 모든 다리들을 통해서 그들에게 건너가 그들을 바꾸고 내 아들에게로 돌이키리라!”


 만일 주님의 섭리(攝理)가 성모 기사회을 전통적 가톨릭교인들 사이에 다시금 설립되도록 허락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주거나 또는 우리의 정체성을 회복시키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우리 자신 속에 갇혀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받은 어마어마한 보물을 더 이상 감사히 여기지 않는 위험에 있지는 않은가요?


 젋은이들이 종교를 지루해하고 점점 더 쾌락과 영화와 게임과 재미로 가득 찬 세상에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까? ‘신앙의 보존’이라는 이름으로 오로지 자신의 개성과 독창성만을 숭배하는, 스스로를 ‘저항하는’ 사람이라고 자찬(自讚)하는 이들과 항상 싸우느라 우리의 영적 힘을 잃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자신만의 영감과 관점 이외의 어떤 법칙도 없이, 소소한 편한 삶 속에 우리 자신을 가두는 위험에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거의 대부분 “독립적”이 돼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 결과는 ‘정체성의 완전한 상실’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하자 없으신 성모님’이 직접 우리를 깨우러 오십니다. 내 사랑하는 아이야, 와서 나의 일을 하라! 넌 아직 내가 누군지 알고, 내게 기도하며, 신앙을 지키며 남아있는 바로 그 소수에 속한다. 오로지 네게만 내가 가서 이 최악의 시기에 영혼들을 구하는 걸 돕도록 요청할 수 있단다! 그러니 모든 사물과 모든 사람에 대해서 무익한 의견과 판단을 내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라. 인터넷에 나오는 유명한 인사들의 의견과 발언을 읽는 데에 네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라. 정치는 정치가들에게 남겨두고, 장상끼리의 토론은 장상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네 과업’을 하라!


 네 정체성을 회복해라. 그 정체성은 네 불멸하는 영혼을 구하고 다른 많은 영혼 구령을 돕는 것이다! 네가 내 아이이고 내가 네 어머니이니, 나만이 네게 정체성을 돌려주고 보호하며, 네가 스스로를 잃지 않도록 할 수 있다. 그러니 와서 내가 널 갈보리에 데려가게 하라. 그럼 네 차가운 마음이 널 위해 모든 피를 흘린 내 아들을 향해 더 많은 사랑으로 뛰게 될 것이다.

 

 오너라, 그러면 네가 받은 신앙의 놀라운 신비에 대해 묵상하게 할 것이다. 오너라, 그러면 내가 널 도구로 만들어 네 삶이 다시 위대해지고, 네 일상 업무의 가장 시시한 일들이 네가 지구상에서 최고의 일을 이루는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다. 그 최고의 일은 불멸하며 영원한 보물을 얻는 것이다! “너무나 많은 영혼들이 영원한 저주에 빠진다. 왜냐하면 그들을 위해 기도하거나 보속하는 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성모님의 기사’가 되려고 노력할수록, 여러분은 더욱더 마음에 기쁨을, 정신에 빛을, 영혼에 평화를 얻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정체성을 찾을 것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와, 목표가 무엇이 돼야 하는지를 말입니다.


 여러분의 새끼손가락을 성모님께 드리는 것으로, 대신에 그분께 매우 크게 돌려받을 것입니다. 만일 모든 신실한 이들이 스스로를 성모님께 기사로 드린다면, 성모님께서 그들을 더더욱 신실하게 만드시고, 우리 주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실현될 것입니다. “한 가지 것만이 필요하니 - 먼저 천주의 나라와 그 의덕을 구하라, 이 모든 것은 너희게 더음으로 주시리라!”


싱가포르에서, 2015년 9월 11일
칼 슈텔린(성비오10세회 아시아 관구장)



2017년 파티마를 향하여(1)


 우리 성모기사회는 마리아 군대 설립 100주년 기념과 파티마의 성모발현 100주년이 되는 대희년을 준비하고자 합니다. 가능한 한 많은 영혼들이 성모님의 발아래 오기를 원하며 묵시록에서 용과 짐승과 맞서서 싸우는 여인의 승리, 하자 없으신 성모성심의 승리를 위해 싸우는 성모님의 작은 군대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는 성모 기사회원으로서 성모님의 군대의 군율에 따라 살아야합니다. 이에 따라 성모님의 도구인 막시밀리안 콜베 성인을 통해 성모님이 우리가 무엇을 하길 원하시는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그럼으로 각 기사단은 “티 없으신 성모님의 이상”이라는 책을 읽고 묵상해야 하니, 이 책은 마리아 군대의  정신, 목적 그리고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파티마의 사도로서 우리는 성모님이 파티마에서 세 어린이에게 주신, 사람들이 저들의 영혼 구령을 확신하고 우리 주님께 오도록 우리가 가능한 한 많이 퍼트리라고 주신 성모님의 요청에 대답해야 합니다. 그럼으로 성모님의 위대한 메시지를 후대에 전달하도록 우리는 성모님에 의해 선택된 세 아이의 생애와 메시지뿐만 아니라 발현의 정확한 역사를, 성모님의 말씀과 행위를 알아야합니다.


 특히, 파티마의 발현이 무엇인지 규명해야합니다. 파티마는 1915년 서곡(序曲)으로써 시작됩니다(아래를 보시오) 1916년 루시아,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는 봄, 여름, 가을에 천신(천사)의 발현을 보게 됩니다. 1917년에 성모님은 1917년 8월을 제외하고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Cova da Iria 라는 장소에 6번 아이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아이들이 감옥에 들어갔던 그날은 발현장소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8월19일 성모님은 Valinhos 라는 곳에서 세 아이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7월 13일 성모님은 하자 없으신 성심에 대한 신심과 러시아 봉헌 요청을 하고자 두 번 더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925년 12월 10일 Pontevedra에서 서원을 하고 있는 루시아에게 나타나셨고, 1929년 5월 13일에는 Tuy에서 발현하셨습니다. 히야친따와 루시아 수녀는 성모님으로부터 여러 차례 계시를 받았고 성모님은 (환시가 아닌 내부음성으로)하자 없으신 성모성심에 대한 신심의 실천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주셨습니다.


 만일 어떤 이가 파티마에 대한 전체의 메시지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는 3번의 천신의 발현과 8번의 성모님의 발현에 대한 세부적인 모든 사항을 알아야만 합니다. 파티마에 관하여 세 어린이에 의해 구술된 주요 발언들, 성모님의 요청에 대한 진짜 답변으로서 저들의 생애와 행동을 생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주제를 모으는 것은 지극히 중요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세 아이들은 우리가 파티마의 메시지에 따라 살도록, 그리하여 파티마의 진정한 사도가 되도록 하는 지침서가 되었습니다.


그해 1915년


 파티마 역사에는 1915년에 일어난 흥미로운 서곡이 있습니다. 교구교회 안에 있는 로사라오 성모상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루시아의 첫 고해가 있던 그날, 그녀는 “내 영혼의 온 정성을 다해 성모께 간청하오며, 오직 천주만을 위하여 자신의 가난한 마음을 지키고자 기도했습니다. 눈을 성상(聖像)에 고정시킨 채, 이러한 겸손한 기도를 반복하고 반복했을 때, 성모님은 사랑스런 표정과 친절한 몸짓으로 미소 짓는 듯이 내게는 보였고 그 분이 그렇게 하고 계시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내 마음은 기쁨으로 넘쳤고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첫 영성체(당시 나이 8살)이후, 집에서 기르는 양들을 돌봤습니다. 어느 날 세 명의 다른 소녀와 함께 루시아는 양들이 풀 뜯어 먹도록 둘러싸인 들판으로 나갔습니다.: “정오쯤, 우리는 점심을 먹었어요. 점심을 먹고 난 후, 나와 함께 기도하자고 내 친구들을 불렀어요. 친구들은 기꺼이 동의했는데, 그때 기도를 시작할 수가 없었어요. 우리 눈앞에서, 우리는 나무 위 공중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는 한 형상을 보았어요. 눈(雪)으로 만들어진 성상처럼 보였는데 태양광선으로 투명해진 모습이었어요.” 내 동료가 꽤나 놀랜 상태에서 ”저게 뭐지?“ 물었지만  ”나도 모르겠어.“ 했습니다. 우리 앞에 있는 형상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기도를 계속하였습니다. 기도가 끝났을 때, 그 형상은 사라졌습니다.” 이 발현은 두 번 일어났는데 후일, 루시아가 설명하길, “이 발현은 나에게 어떤 인상을 주었지만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점점 이러한 인상은 사라지고 그 후속적인 사건이 없었다면, 완전히 잃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조용한 천국의 간섭은 무엇인가요?


 첫째, 만약 천주님이 인간 가운데 위대한 일들을 이루시고자 할 때, 그 분은 대개 선택된 사람을 준비시켜, 그 선택된 사람들이 주님의 알맞고도 적절한 도구가 되도록 하게 하십니다. 루시아는 상식이 가득한 어린 아이였고 매우 소박한 영혼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특이한 생애를 위해 선택되었으니, 그것은 엄청난 고통을 받아드리기 위한 영웅적인 겸손과 깊은 사랑이 요구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특별한 일은 특별한 은총이 필요합니다. 성모님의 미소는 초자연세계를 접촉하는 으뜸가는 깊고 압도적인 접촉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접촉”은 엄청나게 영혼을 성화시킵니다. 천신의 출현은 초자연세계의 위대성을 이해하도록 해줍니다.


 이는 영혼 안에서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데 그 인상은 너무나 커서 인간의 말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둘째: 이러한 발현 이후, 어린 루시아에게 닥친 첫 번째 몇 가지 고통은 가족에게서 왔습니다. 그녀가 소중한 “작은 영혼”이 되기 전이었습니다. 루시아는 “환시를 갖는 것”과 천국의 내밀한 비밀을 아는 막역한 친구가 되는 것이 무슨 대가를 치루어야 하는지를 배워야 했습니다. 이익을 보는 것도 아니고, 우월해지고 우쭐해지는 것과는 영 딴판으로 루시아는 어린 시절 당시 행복으로 이끌던 모든 것을 상실했습니다. 어머니나 언니들의 비난에 관해 루시아가 글을 쓰기를: “이 같은 경멸에 찬 말과 제스처들은 매우 날카롭게 지금까지도 내 안에 파고 들었으며 단지 포옹에만 묵묵히 익숙하게 받아드릴 뿐이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이미 이러한 침묵의 서곡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첫째 교훈: 만일, 위대한 사건들이 오려 한다면, 천주님은 준비하십니다. 그 분은 메신저와 천신들 그리고 성인들을 보내어 사람들이 미래의 은총을 열게 합니다. 루시아에게 있어서 이것은 거룩한 로사리오 여왕의 미소(아기 예수 데레사 성녀 역시 승리의 성모 미소로 인하여 치유를 받았습니다!)와 세 번이나 되는 천신의 침묵 발현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성모님의 기사(騎士)가 되는 은총인 것이며 우리에게 보내준 메신저는 특히 마리아를 공경하는 모든 위대한 성인들로 하여금 우리가 천상의 모친에게로 다가가게 합니다. 성 그리뇽 드 몽포르트는 우리가 성화(聖化)되기 위해서는 성모님이 얼마나 필요한지 이해하게 만들며 성 막시밀리안은 성모님의 깃발 아래로 우리를 불러 우리가 찬주님의 뜻을 실현하고 왕이신 그리스도의 요청에 응답하길 원합니다. 우리는 또한 성 미카엘 대천신과 우리의 호수천신에게 다가 가야하니, 이 천신들은 비슷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천국의 깊은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 교훈: 천국, 천신들과 성인들, 천주님은 우리의 경험을 초월하는 지극히 무한하시기에, 천주 친히 이 무한한 빛을 대하도록 우리를 준비시킵니다. 많은 다른 개신교인외에도 현대주의와 오늘날의 성령운동은 무한하신 존엄으로서의 천주님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파괴하는 서글픈 치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아이들이 자기 앞에 꽤 멀리 떨어져 나타난 천신 앞에서 떨고 있다면, 무수히 많은 천신들을 창조하신 천주님 그 앞에서는 어찌 되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동료처럼, 성모님을 훌륭하고 아름다운 어머니처럼 대하는 둣한  대화에 익숙합니다. 우리는 그 분들께 그 분들이 그저 우리와 비슷하거나 좀 더 나은 분인 것처럼 불평을 합니다. 만일 성 요한이 천신의 위엄으로 인해 그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면, 만일 성인들의 발현이 사람들로 하여금 성인들의 눈을 바라볼 수 없는 용기도 갖지 못한 채 무릎을 꿇게 한다면, 이는 그 얼마나 우리의 행동과는 다른 지극히 깊은 존경심에서 나오는 저들의 행동인가요. 그러므로 우리는 초자연적인 현실 앞에서 적절하게 처신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초자연적인 현실을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셋째 교훈:우리가 천주님께 다가가면 갈수록, 우리는 더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파티마의 어린이들은 성모님으로부터 엄청난 행복과 기쁨을 받겠지만, 그러나 그들은 “이에 대한 값을 치루어야”합니다. “파티마의 사도”인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우리가 천주님을 섬기면 섬길수록, 점점 더 세속적인 것이 우리를 거부합니다. 일반적으로 고통은 우리들이 가까이했던 사람들로부터 옵니다. 만약 우리가 성모님을 섬기고자 원한다면, 여러분은 이른바 친구라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흩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해, 굴욕, 조롱, 경멸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친구를 받아드릴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세요, 그러면 세상이 알지 못하는 위안을 받게 될 것입니다.


 친애하는 파티마의 사도들인 성모기사들이여! 우리는 2015년에 와 있습니다. 확실히, 이러한 사건 이후 정확히 100년, 천국은 다시 다가오는 2017년을 맞이하기 위해 위대한 사건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교훈을 배우고 우리 생활에 적용한다면, 성모님의 하자 없으신 손길 안에서 우리가 더 나은 도구가 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