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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모기사회에 보내는 서한 제13호, 파티마 2017을 향해(5) 슈텔린 신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4-15



아시아 성모기사회 회원들에게 보내는 13번째 편지


 친애하는 성모기사회 회원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위대한 신비가 다가옴에 따라, 1917년 5월13일에 있었던 파티마 성모님의 첫 번째 발현 사건과 이에 대한 논평을 여러분께 보내드리니, 이것은 여러분들이 성모님의 말씀과 요청에 대해 묵상하게끔 도와줄 것입니다. 여러분이 점점 더 파티마의 사도가 되고 있음을 명심하시길 빕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 사건과 깊은 의미를 잘 알아야하고 그리하여 여러분이 다른 영혼을 성모님께로 끌어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거룩한 수난절을 맞이하여 나의 사제 강복을 받으소서.


칼 슈텔린 신부



2017 파티마를 향하여(5)


파티마에서의 성모님의 첫 번째 발현.1917년 5월13일(Ⅰ)


 우리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성모님의 놀라운 간섭에 관한 성모님의 발현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반드시 무엇보다도 먼저 깨달아야 할 점은 우리가 영적 세계로 들어가는데 있어서 이 세계는 이루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거룩하고 순수하며 우아한 세계라는 것입니다.


 성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님은 지극히 깊은 언어로서 이것을 표현합니다. “여러분이 성모님에 관해 글을 읽을 준비가 되었을 때, 여러분들은 한 점도 티 없이 깨끗한, 순수하게 살아있는 존재와의 만남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읽는 그 단어로는 성모님이 누구신지 표현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또한 고려하십시오.


 왜냐하면 인간의 언어는 인간의 관념에서 나온 것이고, 이것은 오직 세속적인 방법에서 모든 것이 존재되며, 반면에 성모님은 천주님에게 전적으로 속한 존재이므로 여러분 주변의 모든 것보다 무한히 더 높은 차원에 속한 분입니다.....성모님 없이는 혼자서 성모님에 대해 알 능력이 없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십시오. 결과적으로 여러분은 진정으로 성모님을 사랑할 수 없으며, 사랑 가운데서 여러분 마음을 성모님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성모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점점 더 비추시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십시오.” 만약 이것이 성모님에 관해 우리가 읽는 것에 사실이라면, 우리가 성모님을 마주보기 시작할 때, 그리고 성모님의 말씀과 몸짓을 이해할 때 얼마나 더 많은 것이 성모님에게는 있을까요?


 두 번째 예비적인 생각: 우리는 마치 파티마가 천주의 모친과 세 어린이 사이의 단순한 만남인 것처럼, 단지 사실(史實)을 회상하는 것으로 그 발현 사건을 읽어서는 안 됩니다. 시현자들은 항상 성모님의 통로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성모님께 선택된 도구로서만 존재합니다. 또한 시현자들은 성모님께서 루치아에게 직접 전하시면서, 간접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을 대표합니다. 마치 우리가 1017년 코바 다 이리아(Cova da Iria)에 직접 있었던 것처럼 성모님의 말씀은 직접 우리에게 와 닿도록 해야 합니다.
 
루치아에 의해 쓰여진 첫 번째 발현의 역사가 여기 있습니다.

 

“코바 다 이리아 비틸길 높은 곳에서 야친타와 프란치스코와 함께 기도하고 있었요. 갑자기 우리는 번개 불 같은 것을 보았어요. “집에 가는 게 낫겠다.”라고 사촌에게 말했어요. “저건 번개야. 폭풍우가 있을 거야.” ‘정말 그래.“ 그들이 대답했어요.


 우리는 도로 쪽으로 양떼를 급히 몰며 비탈길로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비탈길 절반쯤 왔는데, 제법 커다란 참나무가 거기에 서 있었고, 그때 우리는 또 다른 번개 불을 봤어요. 우리는 겨우 몇 걸음 더 갈 수 있었는데, 거기에는 우리 앞에 작은 참나무가 있었어요. 하얀 옷을 차려입은 여인을 봤어요. 그분은 태양보다 더 빛났고 출렁이는 물방울로 가득 찬 수정 유리잔보다 깨끗하고 강렬한 빛을 반사하고 있었어요. 그때 빛나는 태양광이 이를 뚫고 빛났어요.


 우리는 놀라서 그 발현 앞에 섰어요. 매우 가까이, 그분과 몇 발자국 까지 다가갔고 그분을 둘러싸고 있는 빛을 우리도 뒤집어쓰고 있었으나 오히려 그분으로부터 오는 빛에 의해 빛나고 있었어요. 그러자 성모님이 말씀하셨어요:


두려워 마라. 해치지 않을 것이니.
부인은 어디서 오셨나요?
천국에서 왔단다.
부인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세요?
부탁하건대 너희가 연속해서 여섯 달 동안 13일에 이곳에 오길 바란다. 그때에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원하지는 말해주마. 앞으로 이곳에 7번 오겠다.


나도 천국에 갈 수 있나요?
그래. 너는 갈 것이다.
그러면 히야친타는요?
그 애도 갈 것이다.
그럼 프란치스코는요?
그도 갈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묵주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나는 최근에 죽은 두 소녀에 대해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났어요. 그들은 내 친구이고 우리 집에 와서 내 큰 언니와 함께 뜨개질을 배웠거든요.

마리아 다스 네베스(Maria das Neves)는 천국에 있나요?
그래. 그곳에 있단다.
아멜리아(Amelia)는요?
그 애는 세상 끝 날까지 연옥에 있을 것이다.
너희가 천주님께 봉헌하고자 한다면, 천주님을 상하게 한 죄에 대한 배상과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탄원으로써 천주님이 너희에게 보내는 모든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
예, 그렇게 하고 있어요.
자, 너희들은 많은 고통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천주님의 성총이 너희의 위안이 될 것이다.
 

 루시아가 “천주님의 성총이 너희의 위안이 될 것이다”라는 마지막 말씀을 발음했을 때, 성모님은 처음으로 손을 펴고 손에서 나오는 강렬한 빛을 전했는데, 이 빛은 우리의 마음과 우리 영혼 가장 깊은 곳을 뚫고 지나는 것이어서 천주님 안에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게 했어요. 그 빛은 우리가 누구인가를, 가장 좋은 거울로 우리를 보는 것 보다 훨씬 선명했어요. 또한 우리에게 전달된 내적 충동에 의해 감동이 되어 우리는 무릎을 꿇고 마음속으로 반복했어요. “오 지극히 거룩하신 성 삼위여, 당신을 현양하나이다. 오 나의 천주여, 지극히 복된 성사 안에서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잠시 후, 성모님은 다시 말씀하셨어요.
세상의 평화와 전쟁의 끝 날을 위해 매일 묵주기도 하여라.
전쟁이 오랫동안 지속되는지 또는 곧 끝날 것인지는 내가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바를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해 말할 수 없구나.

그리고서 성모님은 조용히 동쪽으로 올라가시면서 광대한 하늘 속에서 사라지셨어요. 성모님을 둘러쌌던 그 빛은 창공으로 가기 전의 길을 열어주는 것 같았어요. 때때로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우리가 천국이 열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어요.
 

자, 성모님의 말씀을 생각해봅시다.


1.“두려워 말라. 너희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첫 말씀이기에, 성모님의 이 첫 마디는 매우 중요합니다.
“두려워 말라. 너희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루시아는 설명합니다:“우리가 두려워했던 두려움은 성모님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생각했던 다가오는 폭풍우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성모님의 발현은 공포의 두려움이 아니라 단순한 놀라움이었습니다.”


 파티마에서의 성모님 발현 100년 후, 우리는 이 말씀, 두려움의 세상, 이보다 깊은 해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하는 너무나 많은 어둠은 해(害)를 끼칩니다. 처음이자 원리 선언:“너의 어머니인 나는 너희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이 의미는 나와 함께라면 너는 두려울 게 하나도 없고, 나의 말을 듣는다면, 나를 따른다면, 나를 받아드린다면 어떤 해(害)도 너를 끼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2.“나는 천국에서 왔단다.”

분명히 성신에 감화되어 루시아는 그 이상(異象)을 보고 물을 용기가 있었습니다.
“부인은 어디서 오셨나요?”
성모님은 첫 번째 답변을 주시고 그 이상 자세히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천국에서 왔단다.”는 분명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문학적으로 말했습니다.
“나는 천국에 속해있단다.”(1922년에 있었던 루시아가 직접 쓴 첫 번째 설명은 ‘나 자신은 천국에 속해 있단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성모님의 모든 신비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천신과 성인들과 함께 ‘당신은 누구신가요. 오 성모님?“ 성모 대답하시길, 나는 천국에 속해있단다.


/천국에 관하여: 이것은 우리 주님 기도의 메아리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곳은 성모님의 모든 존재와 인성이 함께 계시는 천국 안입니다.

지금 우리 모든 인간은 특히 인간 부모의 자녀로서 ‘지상에 속해’있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마리아는 ‘지상에 속한 존재’이기 이전에, 일반적인 규칙에 예외가 된 인간 혈통 안에 있는 유일한 분으로서 ‘천국에 속한’ 첫 번째이자 주된 분이십니다.


왜?
그것은 “야훼께서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 나는 영원으로부터 세움을 받았나니, 산 바다가 생기기 전에 나는 태어났나니, 내가 그분의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잠언8;23-30) 마리아의 ‘존재’ 이유는 천주님의 신비 안에 잠겨있습니다. 지상에서의 성모님의 생활은 성모님의 ‘천국의 신비’를 오직 가견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합니다. 성모님의 본질, 성모님의 기본, 성모님의 깊숙한 내적 친밀성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창조주이시고 시간이 아니라 영원이며 순수하게 천국입니다. 성모님은 천주님을 위한 것 외엔 다른 것을 위해 살지 않았습니다. 성모님의 모든 존재 안에서 그분은 오직 성부의 딸, 성자의 모친, 그리고 성신의 성전이자 정배가 될 것입니다.


 성모님은 “나는 ..에서 왔다”라 하지 않으시고 “나는 천국에 있는...”이라 하셨습니다. 이는 다소 성모님에 대한 자동적인 정의(定義)인 것 같습니다. 나의 존재, 나의 정체성, 나의 자아는 “천국에 존재”하는 것이다. 천국은 영원한 생활이요, 거룩함이며, 어둠이 없는 빛이며, 영원한 평화이고 완전함으로 충만하다. 모든 것이 지극히 깨끗한 immaculate!이다. 그러므로 이 자아를 드러냄은 벨라뎃트의 요청에 대한 성모님 답변의 충직한 메아리이다.


“누구신가요?”
“나는 하자 없는 무염시태이다.”
여기에는 생각할 또 다른 중요한 세부 사항이 있습니다. 오직 천주님만이 홀로 진정으로 ‘존재’하시기 때문에 오직 천주님만이 “나는 존재한다....나는...이다(I am!)”로 적절히 쓰십니다. 만약 피조물이 “나는 존재한다, 나는...이다” 말하면, 그것은 “나는 가지고 있다 (I have)”라는 의미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이성적으로; 나는 생명이요, 오직 나만이 생명을 가지고 있고, 나는 진리가 아니나, 그러나 나는 진리를 말한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이다“ 의미는 완전 소유를 말하며, 내가 가진 것의 원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주님만이, 그분이 천주이시기에,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다: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아브라함 이전에도 있었고.....존재한다.


 성모님이 루르드에서 “나는 하자 없는 무염시태이다”, 그리고 파티마에서 “나는 천국에 속해있는 자이다.”라고 했을 때, 이는 과장도 아니고 편의상 말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만약 성모님이 자신을 창조된 피조물로 말했으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만약 천주께서 성모님으로 하여금 그런 방식으로 현현(顯現)하게 허락하시면, 이는 분명히 성모님에게는 본질적으로 천주성을 뭔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성모님이 성총 충만함과 죄의 모든 오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그분은 ‘성부와 성자의 선물’을 완전하고도 풍성하게 받으시고 천주님에 의해 보내진 성신께서 뚫고 마음으로 들어와, 마리아는 ‘자신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천주께서 온통 충만하신, 성모님의 모든 생각, 말씀, 행동, 모든 것이 성모님 것이라기보다는 성신의 생각, 말씀, 그리고 행동인지라 온전히 성신께서 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모님은 “나는...존재이다(I AM)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님은 이 경이로운 신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성모님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방법으로 성신께 합쳐졌다. 왜냐하면 성신의 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용어가 피조물 가운데 표현될 수 있는 어느 것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완전한 측면에서 이것은 성모님에게 해당된다.


 이와 같은 것은 무슨 결합일까? 이는 특히 내적 결합이다. 성신의 존재와 함께하는 성모님 바로 그 존재와의 결합이다. 성신께서 성모님이 존재하던 바로 그때부터 성모님 안에 거하시고 그분 안에서 살으시며 항상 그렇게 행하시고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 성모님 안에 거하시는 성신의 생활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성신 친히 성모님 안에서 사랑이요, 성부, 성자의 사랑이며, 천주 친히 사랑에 의한 사랑이고, 지극히 거룩하신 성 삼위 전체의 사랑이고, 열매 맺는 잉태이시다.


 창조된 유사성 가운데 사랑의 결합은 가장 가까운 것이다. 성경은 “둘이 하나의 몸이 된다.”(창세기2:24) 확인하며 예수께서 주장하시길, “그래서 그들은 더 이상 둘이 아니라 한 몸이 되니라.”(마테오19;1)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보다 강력하고, 보다 내적이며, 보다 본질적인 방법으로 성신께서는 티 없으신 성모님 안에서, 성모님 그 존재 안에서 살으시고 성모님이 존재하신 바로 그 순간부터 그리고 온 생애를 통하여 즉 영원히 열매가 되게 하였다.“
 
3. 유일한 필요성: 영원한 것

 파티마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시작부터 무엇인가?

천신의 발현은 지극히 거룩하신 성 삼위의 영예, 천주님의 절대적인 수위권과 천주님을 거스르는 죄에 대한 배상(賠償)을 보여주었습니다. 성모님도 어린이들에게 같은 주제를 넣어줄 것인데, 성모께서 후일 천주님의 위엄과 무한하신 사랑 안에서 어린이들이 잠기도록 그들과 천주님의 빛을 소통하게 될 때입니다. 또한 성모님이 말씀하신 첫 마디로 사후(死後)의 현실, 으뜸이자 최고인 천국, 연옥에 대한 확실하게 상기시킵니다. 세 번의 방문 기간에 성모님은 지옥의 현실을 놀라운 방법으로 보여주실 것입니다.


 성신에 감화되어 다시 루시아는 그 세 가지 질문을 합니다:“나는 천국에 갈까요?”

모든 곳 대부분의 사람들이 완전히 세상을 향하여 있고, 그로인해 짧은 인생에만 몰입하는 가운데, 우리의 물질주의 및 무신론적 시대에 이 교훈은 무엇인가요? 요즈음 사람들의 마음 안에서 심지어 신자들조차 심지어 열성적인 가톨릭인들조차 이 질문이 얼마나 자주 일어납니까? 루시아의 이 작은 질문은 모든 성인들의 생애를 다소 요약하기도 하고 구원 사업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은 오직 한 가지 필요(UNUM NECESSARIUM),“내가 천국에 갈수 있을까요?”를 기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 내가 한 것이 천국에 갈만한가? 오 성모여, 당신은 이 질문에 대답하셨나이다. 그리고 파티마의 어린이들이 당신께 대답한 것처럼 당신의 요청에 대답하면 그것은 “그래”일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질문은 정말로 다음 세대의 우리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이웃에 대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참 사랑이라는 온전한 새로운 계명이 포함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우리에게 오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누가 끊임없이 오직 우리 주변의 물질적 복지만을 가지고 의논하고 있는가요? 그리고 우리가 가져야할 ‘우리 다음의 사랑’은 물질적인 물건이나 세속적인 기쁨을 얻는 데에 대부분 제한되어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가지고 세상 안을 들여다보는 것을 배워야합니다:“내 자녀, 내 친구들, 내 이웃, 네 가정, 나의 적, 나의 세속적 친구들, 다른 신자들은 어떨까? 무엇이 저들의 삶의 쟁점이 될 것인가? 그들은 천국에 갈까? 다시 말해서 그 해답은 성모님 손에 달려있고 만약 사람들이 자기들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 특히 그들이 ”묵주기도를 많이 한다면‘, 성모님의 답변은 ‘그래’일 것입니다.

“그래, 그들은 천국에 갈 것이다.”


 천상의 모친이신 성모님의 이러한 위안의 약속으로 인해 우리가 깊은 인상을 받아야합니다. 이 약속은 성모님을 따르고 세 명의 작은 어린이의 발자취를 걷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루시아의 친구 마리아 데 네베스가 이미 천국에 있다고 루시아에게 알려준 것은 주목할 만합니다. 보통 이와 같은 지식은 공인된 성인 외에는 전혀 주어진 것이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하늘에서 우리에게 오신 성모님 목적은 한 가지 커다란 목적이 있음을 단언합니다: 우리에게 이 유일한 필요성과 천국으로 가는 길에 있는 우리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 연옥

“그러면 아멜리아느요?”- 그 아이는 세상종말 때까지 연옥에 있게 될 것이다.

 성모님의 가르침은 “천국에 가는 것”이 무척 쉬운 일이 아니라는 중요한 사실을 동반합니다. 거룩하게 되는 길은 열정적인 노력과 영웅적인 관대함이 요구됩니다. 만약 ‘천주이신 빛’ 안에서 압도적인 행복을 만끽하는 “천국에 가는 것”-영혼구령-은 분명히 성모님 발현의 주요 목적이라면, 오로지 “온통 순수해야 만이 천주님을 뵐 것”이라는 것과 사람이 어둠(죄)에 오염되면 그 사람은 순수 빛이신 천주님과 일치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또한 중요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은 죽는 순간에 자기 자신이 아주 순수하지 않으며, 만약 천주님의 자비가 사람이 죽은 후에, ‘정화의 가능성’(연옥)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거의 대부분이 천국으로 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정화의 장소는 엄청난 고통을 통해 영혼을 정화시키는 영적인 불입니다. 성모님은 이와 같은 고통이 얼마나 강렬한지 루시아의 친구 아멜리아의 사례를 보여줍니다. “.....세상종말 때까지.”


 이것을 우리말로 어떻게 번역하여 의미를 전달할까요? 모든 가능한 한 끝까지 닿는 완전한 고통입니다. 만약 교회의 교부들에 따르면, 연옥에서의 1분이 이 지상에서의 극악한 고통 100년보다 더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세상 끝날 때까지”라는 의미가 무엇을 말하는지 우리는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짧은 이 지상생활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소규모 사람들과 아웅다웅하면서 세속적인 문제, 고통을 가득 안고 사는 우리들에게 주는 문제는 무엇인가요? 이 세상에서의 삶은 온통 화염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가득 차 있는 거대한 계곡(연옥의 불)을 벗어나 있는 작은 언덕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그들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조상, 친척, 친구들을 알아볼 수 있으며 그들 모두는 천국과 지상의 이 작은 언덕을 향해 눈을 고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은 커다란 안도를 내쉬며 고통을 온전히 감내하고 있으며 만약 그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고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면, 오히려 고통 가운데서 그들은 이웃을 도우려는 작은 사랑을 품고 있습니다.


 발현 초기부터 성모님은 수십억 영혼이 가득 찬 연옥의 이 거대한 세계에 대해 알려주시고 있으며, 연옥 영혼을 우리가 도울 수 있도록 (왜냐하면 그들 모두는 성모님의 사랑스런 자녀들이기에) 우리를 먼저 자극시키고 두 번째로는 만약 우리가 ‘천국 가는 것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이 지상 생활을 마치고 연옥의 생활에서는 너무나 많은 세월이 될 수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연옥에 대한 생각은 우리에게 이 터무니없는 작은 세상으로부터 분리되게, 그리고 본질적이고도 진정한 세계, 또한 진리 안에서 살도록 ‘다른 세상’을 살짝 보게끔 도와줍니다.
 

/ 마지막으로 성모님은 교회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성모님은 신전지회(神戰之會)의 자녀들과 함께 하려고 이 세상에 나타나십니다. 그러나 신전교회의 존재 이유는  ‘천국에서’의 승리에 찬 교회(개선지회-凱旋之會)를 오직 준비하는 데에만 있습니다. 이 사이에는 고통 받는 교회는 가엾은 죄인들에게 사후 영원한 복락을 그들 스스로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그리고 모든 이 세 가지는 하나의 교회이며, 그 교회들이 일치하는 것은 천주님의 은총이요, 천주님 은총의 도구이신 성모님이십니다.
 
4. 천국으로 가는 방법: 기도와 고통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성모님이 사용될 수단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 세상에서 행복을 약속하지 못하고 오직 다음 세상에서 행복을 약속하마.” 이렇게 성모님은 루르드에서 벨라뎃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파티마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세 아이들에게 천국을 약속한 후에, 성모님은 즉각 그들에게 ‘고통’이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이것이 빛(천주)으로 인도하는 십자가의 황금 길입니다. 1916년에 천신은 이미 그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희생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특히 주님이 너희들에게 보내는 고통을 겸손한 마음으로 감내하면서 받아 드리도록 하라.”


 오늘날 성모님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십니다: “너희는 천주님께 너희를 바치고 죄인들의 죄로 인하여 천주께서 받으신 상처를 배상하는 행위로서 그리고 죄인들의 회두를 위해 천주께서 너희에게 보내는 모든 고통을 참고 견디겠느냐?” 다시 우리 성모님은 천주님의 영광과 영혼의 구원을 위해 희생, 십자가 그리고 고통의 커다란 가치를 강조하십니다.


 어린이들에게 다가올 영원한 세계에 대해 보여주시고 난 후, 성모님은 그들에게 이것을 다른 이들에게, 사제들에게, 미사와 기도 및 다른 종도적인 행동을 하라고 전하게끔 하십니다. 


 첫 번째 수단은 심지어 기도가 아니라, 배상과 회개의 의도를 가지고 부여된 고통을 자발적으로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기꺼이 초자연적인 열매를 가져오도록 이와 같은 고통을 받아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고통들은 천주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행동이어야 되고 이러한 방법으로 고통들은 가장 커다란 계명을 완전히 실현하는 것이 됩니다. 고통을 자발적으로 받아드릴수록, 그 고통들은 더 사랑의 행위가 되며 더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모님은 아이들에게 자유로운 동의를 요구하시고 동의를 얻은 후에 --‘그러면 너희는 많은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하십니다. 이것은 성모님의 말씀이 결코 ’한가한 잡담‘이 아닌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온전히 응합니다. 여러분들이 ”예’라 한다면, 다음과 같은 결과와 함께 “예”가 될 것입니다.


- 희생과 고통 외에도 성모님은 발현할 때마다 사용될 다른 수단에 대해 말씀하십니다:“기도하라!” 기도 중 가장 으뜸인 것은 매일 묵주 기도하는 것입니다. 천신은 ‘천신의 기도’를 추가하는 작은 호소의 기도를 주장하면서, 이미 아이들에게 기도생활을 준비시켰습니다. 파티마에서의 각 발현은 우리가 규칙적이고 심오한 영적생활을 영위해야한다는 교육을 가르치고 있음을 봅니다. 파티마 어린이들이 사용한 것처럼 우리가 이러한 수단을 사용한다면, 저 어린이들의 마음처럼 우리의 마음 안에서 같은 효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기도와 희생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천주께서 친히 주신 가장 탁월한 수단입니다:
 -“천주의 성총이 너희의 위안이 될 것이다.”


 우리가 천국으로 가는 여정에서 분명히 끊임없이 노력해야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로부터 오는 것이 우리의 거룩함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심각한 오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노력이 비록 중요하기는 하지만, 주님이 우리에게 빛과 생명을 주실 적에. 우리 생활에서 천주님의 간섭에 있어서 우리를 단지 (도구로)배치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증거는 즉각 따라옵니다.


5. 천주 안에서의 환시

 “성모님이 마지막 말씀,”천주의 성총이 너희의 위안이 될 것이다.”라고 하셨을 때, 처음으로 성모님은 손을 펴고, 손에서 광선이 나올 적에, 우리에게 주신 그 빛은 너무나 강렬하여서 이 광선이 우리의 마음과 우리 영혼의 가장 안쪽 깊은 곳을 뚫으며 천주 안에서 저 빛은 누구일까, 가장 좋은 거울로 우리자신을 보는 것보다 더 우리 자신을 보게 하였어요.“


 신비롭고 놀라운 환시였으니, 왜냐하면 이것이 주어진 이들에게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방법으로서 천주님의 빛 안으로 영혼을 안내하면서 우주적인 마리아에 대한 묵상을 탁월한 방법으로 분명히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세 번이나 이 경이로운 광경을 묵상하는데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빛을 지닌  동정녀’의 발현을 생각나게 합니다.(1830년 루 드 벡에서의 기적의 메달)


그리고 루시아는 중요한 발언을 합니다:
“우리는 무릎을 꿇었어요. 이것은 우리에게 천주님에 관한 말로 쉽게 표할 할 수 없는 너무나 놀라운 지식을 주었어요.” 파티마의 가장 탁월한 전문가에 의하면, 모든 발현의 바로 그 핵심은 성모님을 통한 ‘천주님의 빛’에 관한 이 세 가지 소통 안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여기서 지극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첫째, 성모님의 바로 그 몸짓, “처음으로 성모님은 손을 펴고, 손에서 광선이 나올 적에, 우리에게 주신 그 빛은 너무나 강렬하여...”


 우리는 아이들처럼 무릎을 꿇어야하며, 그리고 성모님의 손을 바라보는데, 이 손은 아기 예수를 안았던 손이며, 일생동안 열심히 일했던 손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손들은 훨씬 더 많은 상징이 있는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손이 필요합니다. 손을 편다(open)는 것은 내 마음을 연다(open)는 것이고, 나 자신을 연다는 것이고 나의 친근감의 문을 연다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성총이 가득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손을 여는 것은 은총의 바다가 성모님 옆에 서 있는 모든 이들의 영혼 안으로 넘쳐흐르는 것입니다. 은총(빛)이 성모님의 손으로부터 비추어진다는 뜻은 천국의 문이 성모님에 의해 열리는 것뿐만 아니라, 성모님 자체가 바로 천국의 문이라고 루시아는 주장합니다.


/성모님이 무엇을 주십니까? “너무나 강렬한 빛...빛이신 천주님....그 빛 안에서 우리는 가장 좋은 거울로 우리를 볼 수 있는 것 보다 더 선명하게 우리를 볼 수 있는 빛”을 주십니다. 이 빛은 실체, 유일한 참 실체, 여분이 오직 그림자이고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이들은 가장 높은 가능한 신비적 은총 하나, ‘천주 그분에 대한 환시’를 받습니다. 그 순간에 아이들이 진정 보고 받은 것을 우리는 오직 이러한 결과로 정의 내릴 뿐입니다. 첫 번째 반응은 소리 내어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오 지극히 거룩하신 성 삼위시여, 당신을 경배하나이다;” 이 빛 안에서 그들은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성 삼위 신비이신, 삼위 위격 안에 계신 유일하신 참 천주님을 보았습니다.“나의 천주여, 나의 천주여, 지극히 복된 성사 안에서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이 빛 안에서 아이들은 세상에 계신 천주님의 현존, 거룩한 성체 안에 계신 우리 주님 현존의 절정을 이루는 구원의 신비체라는 요약을 보았음이 틀림없습니다.


 후일, 프란치스코는 말하길,-“나는 천신 보는 것을 좋아했어요. 성모님을 보는 것은 더 좋아했어요. 모든 것 중에 내가 가장 사랑했던 것은 우리 마음을 꿰뚫는, 성모님으로부터 나오는 그 빛 안에 계신 우리 주님을 뵙는 것이었어요. 나는 천주님을 너무 사랑해요!”
 
/천주님의 슬픔: 빛의 환시 속에서 프란치스코는 특히 한 가지 현실에 인상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많은 죄 때문에 천주님은 무척 슬퍼했어요! 우리는 결코 다시는 어떠한 죄도 지어서는 안돼요.” 사실 프란치스코는 특히 짧은 생애를 살아가면서 이 신비를 묵상하였습니다: “나는 천주님을 생각하고 있는데 천주님은 너무나 많은 죄 때문에 너무 슬퍼하셔요. 만약에 내가 그분을 위로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 특히 천신의 요청에 대한 대답, 191년 천신이 아이들에게 신비의 영성체를 줄 적에 한 말: “너의 천주님을 위로하거라!”


/알폰소 신부는 우리가 파티마의 메시지에서 오는 외적측면과 내적측면을 구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외적이고도 눈에 보이는 현상은 더 해명적인 것인데 이것은 세상 앞에 파티마의 진실성을 증명하여 신자들에게 성모님의 소망을 이루게끔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파티마의 ‘본질적인 현실’, 본질적인 메시지는 내적측면에 의해서 오직 주어집니다: “이것은 천주님에 속한, 천주님의 의지, 우리 성모님이 세상에 주신 천주님과의 소통이라는 특별한 경험‘인 것입니다. 마리아를 통하여 이 모든 세 가지 ’천주님 빛과의 소통‘을 묵상한 후에, 우리는 파티마의 이 핵심 측면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첫 번째 발현에 대한 요약
 

만약 여러분이 1917년 5월 13일에 일어난 이 사건에 대해 자주 묵상한다면, 여러분들은 파티마가 세속 및 심지어 오늘날 우리 시대의 교회 분위기, 가장 중요하고 유일하게 가치가 있는 것으로서 인간에 초점을 맞추고 세속생활에 중점을 두는 교회 분위기조차와도 동떨어져있음을 점점 더 깨달게 됩니다. 그리고 심지어 우리가 천주님을 믿고 있지만, 우리의 구체적인 생활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우리와는 별도로 떨어져있는, 다소 안전의 매체로서의 천주님은 중요한 요소는 아닙니다.


 만약에 성 비오10세 교황께서 “우리가 마치 천주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가고 행동하기 때문에 우리는 반 그리스도의 세상에 살고 있다“라고 주장한다면, 그러면 우리는 파티마, 천주님이 모든 곳에 계시는 곳에서 이 첫 번째 메시지의 중요성을 잘 이해할 것입니다. 천주님은 빛이시니, 천주님이 없으면 오직 어둠뿐입니다. 이 방법으로 파티마는 우리의 환상에서 우리를 깨우며,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통치자의 거짓말에 맞서 싸우도록 합니다. 중요한 것은 영원, 즉 천국과 지옥이며, 영원으로 가는 길은 기도와 희생, 그리고 죄와 싸우는 투쟁, 영혼구령, 특히 천주님 빛, 그분의 사랑이 주시는 놀라운 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