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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모기사회에 보내는 서한 제11호, 파티마 2017를 향해(4) 슈텔린 신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1-16



아시아 성모기사회 회원들에게 보내는 서한 제11호


친애하는 성모기사회  회원 여러분!


새해를 맞이하면서 기사회의 목적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매년, 매달, 매주, 매일, 매 시간, 매초, 매분은 단지 하나의 감각만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성모님을 통하여 우리 주님께 다가가는 것입니다. 성모님께 드리는 우리의 봉헌으로 인해, 우리 기사들은 첨가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금년에 내가 승리해야하며, 이전보다 더 많이, 더 많은 영혼들을 성모님께 바치고 저들이 성모님을 어머니로서, 여왕으로서 성모님을 인식하고 사랑하여 성모님의 아들인 우리 주님으로 인해 구원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매년은 각각 특수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중요한 기념일의 축일이나, 희년, 또는 다른 중요한 행사(성세, 첫 영성체, 결혼, 마지막 시험, 직장에서의 성취 등)들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같은 예외적인 행사들은 천주님의 영광과 영혼구령을 위해 이러한 행사를 축하하거나 참여한 이들에게 주는 천주섭리에 의해 부여된 매우 특별한 은총의 원천입니다. 우리 기사들은 천주님께서 사랑을 부어주시는 것에 감사해야 하며, 이로부터 보다 더 열심히 은혜를 받아 덕행과 종도적 열성이 성장하도록 해야 합니다. 

 

2016년은 두 가지 특별한 행사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천주자비의 해와 파티마 성모님 발현 100주년 기념과 성모 기사단 발족 기념에 대한 엄숙한 준비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묵상은 이러한 현실 주변을 자주 맴돌아야 하니, 즉 불쌍한 죄인들의 회개와 성화(聖化)를 위해 그들에게 제공된 무한하신 천주자비를 생각해야 합니다.
 

성 베르나르에 의하면, 우리 주님은 “당신의 모친에게 자비의 명령”을 위탁했다고 합니다. 논리적으로 금년은 성모께서는 특별한 방법으로 ‘자비의 모후’가 되실 것입니다. 성모님은 회두의 은총이라는 보물을 더 널리 확장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천주님의 자비로운 선하심은 어두움과 영원한 죽음의 그늘에서 살고 있는 많은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실 것입니다. 성모님은 은총의 폭포수가 불쌍한 죄인들에게 쉽게 쏟아지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기사들에게 있어서 우리 자신을 성모님의 헌신에 대해 보다 쉽게 드릴 수 있는 놀라운 동력입니다. 만약 평상시 때에, 우리의 작은 기도와 희생이 아마도 매일 한 두 명의 영혼을 구하게 된다면, ‘자비의 해’ 덕분으로, 주님께서 우리의 아무 것도 아닌 작은 일에 대한 응답으로 보다 더 훨씬 문을 여시어 같은 기도와 희생이 아마도 10 ~20명의 구원도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주님의 자비 덕분에 기사로서 우리의 작은 종도직은 훨씬 더 효과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열망을 증가시킵니다: 오 성모여, 당신은 저를 지극히 사랑하사, 저의 보잘 것 없는 신부가 수많은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놀라운 권능을 주시길 원하시니, 그 얼마나 이리도 관대하신지, 저 반드시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를 도와 영혼을 구해다오!”하시는 당신의 요청과 호소에 응답하리이다:


영원한 지옥불로부터 영혼을 구하고자 하시는 성모님의 자비의 도구가 되는 열정을 우리 안에서 증진시키는 최고의 수단은 2016년 금년에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두 번째 행사입니다: 아마도 인류 후반기에서 성모님의 모든 발현 가운데 가장 중요한 발현(파티마)에 대한 준비이며, 또한 그 당시에 성모님이 파티마에서 우리에게 하자 없으신 성심을 주셨을 때, 그것은 영혼 구령의 최후 수단으로서, 우리가 성인이 되는 쉽고도 확실한 방법으로서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파티마의 종도’가 되려고 진지하게 시작해야 합니다.


진정한 ‘파티마 종도’가 되기 위한 2016년의 결심


1. 지적인 면에서


a) 가능하면, 매일 몇 분씩 그리고 최소한 1주일에 한 시간씩, 파티마의 메시지와 영성에 대한 심오한 문장, 기사, 책을 읽으시오( www.fatima.org/resources/books.asp,에 풍부한 자료가 있습니다)


b) 이 편지에서 발행된 파티마에 관한 자료(“파티마를 향하여”)를 최소한 3번씩, 가능하면 매 토요일(성모의 날)에 읽고 묵상하시오.


2. 의지와 마음


 a) 가능하면 매일 죄인들의 회두를 위해 기도를 특히 “예수여, 마리아여, 나 당신을 사랑하오니 영혼들을 구하소서.” 소리 내어 화살기구를 하시오.
b) 가능하면 매일 최소한 세 번씩, 파티마 천신의 기도를 하시오.
c) 파티마 성모님의 의도를 지향하면서 매일 묵주기도를 하시오.
d)가능하면 매달 13일에 마리아의 티 없으신 성심을 지향하면서 금식하시오(만일 그날이 주일이거나 의무 축일이면 전날이나 그 다음 날에 하시오)
d) 모든 첫 토요일 헌신(성모성심을 거스르는 죄를 배상하는 정신으로 영성체, 매달 고해성사, 묵주기도, 묵주기도 15단에 대한 묵상)에 참여하시오.


3. 행동


 성모 기사회의 종도직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기(기적의 메달과 전단지를 전해주기)
만약 여러분이 이러한 결심을 실행하고자 하면, 성모성심께서 금년 2016년에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성모님의 약속, “나의 하자 없는 성심이 너의 피난처가 될 것이며 너를 천주님으로 이끄는 길이 되리라”는 약속을 여러분 안에서 성취시켜 주실 것입니다.


싱가폴, 2016년 1월 4일
 칼 슈텔린 신부






파티마 2107을 향하여(4)


1916년 가을 - 천신의 세 번째 발현


 이번에 3명의 목동들은 같은 장소에서 양떼들과 같이 있었다. 그곳에서 천신이 처음으로 아이들에게 나타났다(Loca de Cabeco)<우리가 그 곳에 도착하자마자, 머리를 땅에 대고 무릎을 꿇고 천신이 가르쳐준 기도를 반복했어요. 이 기도를 얼마나 많이 반복했는지 모릅니다. 그때 이상한 빛이 우리를 비추었고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보기 위해 벌떡 일어났으며 그때 천신을 보았어요.천신은 왼손에 성작을 쥐고 있었는데 성체가 성작 위에 떠 있었고 성체에서 성작 안으로 피가 몇 방울 떨어지고 있었어요. 공중에 성작이 떠 있으면서 천신은 우리 옆에서 무릎을 꿇었고 우리더러 세 번 반복하라 하였어요.>


-“지극히 거룩하신 성 삼위, 성부, 성자, 성신! 나 너희에게 그리스도 친히 제헌하심으로써 신성모독, 극악무도함, 무관심을 배상하고 세상의 모든 감실 안에 현존하시는 지극히 거룩하신 몸과 성혈과 천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칩니다.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성심과 하자 없는 마리아의 성심의 무한한 공로를 통하여 나 당신께 가엾은 죄인들의 회두를 간청하나이다.“


그리고 일어나면서 성작을 잡고 손에 성체를 쥐었어요. 천신은 거룩한 성체를 나에게 주었고,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성작에서 나오는 성혈을 야친따와 프린치스코에게 나눠주었어요.


-“불충한 인간들에게 끔찍이 모욕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성혈을 받아 마셔라! 저들의 범죄에 대해 배상하라 그러면 천주님을 위로하게 될 것이다.”


다시 한번 천신은 땅에 엎드려 같은 기도를 우리와 함께 세 번 반복하였어요. “지극히 거룩하신 성 삼위......” 하고나서 사라졌어요. 우리는 우리를 감쌌던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감동받았기에, 우리가 모든 면에서 천신을 따라했어요, 즉, 천신이 한 것처럼 우리도 엎드리고, 천신이 한 기도를 반복했어요. 우리는 오랫동안 이 자세로 있으면서 반복해서 같은 기도를 했어요> 


묵상


이 세 번째 발현의 중심이 되는 신비는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이다.
천신은 항상 우리에게 우리 주님,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극히 복되신 성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 간단한 설명에서 너무나 많은 빛과 진리를 볼 수 있다. 


1/천신은 왼손에 성작을 쥐고 있었는데 성체가 성작 위에 떠 있었고, 성체에서 성작 안으로 피가 몇 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언급된 적절한 신비에 들어가기 전, 이 문장 자체는 성체성사의 신비를 거부하는 모든 이들에게 치명적인 충격이 된다. 이것은 가톨릭 진리를 강조하는 것이며, 개신교인들과 현대주의자들에 의해 반복되고 있는 오류에 대해 강력한 반박이 된다. 사실 마지막 때에 적들이 가하는 최악의 공격은, 소위 ‘에큐메니적인 방법’을 도입함으로써 신자들 안에서 신앙을 줄이고(가능하다면 파괴하고), 보이지 않는 ‘신의 왕국’ 안에서 선택과 참여자로서 다른 종류의 그리스도 종교를 제시할 것이다. 그곳에서는 모든 이들이 각자 모두로부터 존중과 배움이 있게 된다. ‘형제간의 대화’와 같은 결과는 내부적 모순이 있다. 예수께서 실제로 성체 안에 계시냐, 아니냐! 에서 개신교인들은 부정하고 가톨릭 신자들은 인정한다. 만약 양쪽이 선택 사항이라면, 더 이상 객관적인 진리가 없는 것이고 단지 주관적인 ‘견해’에 불과한 것이며 이렇게 해서 모든 사람은 그가 원하는 것을 믿을 수 있다.


이러한 재앙에 반대하여 성체를 잡은 천신이 오직 유일한 진리로서 가톨릭 교리를 주장하면서 파티마에서 일어난다.


더욱이 다음과 같이 자세히 주장한다: 나 너희에게 세상의 모든 감실 안에 계시는 천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보배로운 몸, 성혈과 영혼을 주노니....


이것은 로마 가톨릭 경본과 트리덴틴 교리 교본에 나오는 언어의 반복과 거의 일치한다. 이것은 거룩한 성체성사에서 우리 주님의 바로 그 실제현존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세상의 모든 감실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실제현존은 주님이 모든 감실 안에 계시고 오직 그곳에만 계신다는 것은 또 다른 주장이니, 그러나 그 감실들은 어디에 잇는가? 오직 가톨릭교회 안에만 있다!! 이는 1916년에 일어난 이 믿기 어렵고 놀라운 진술인데, 후일 정확히 50년 후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혁은 가톨릭인 사이에서 감실 안에 계시는 우리 주님의 실제현존을 전체적으로 감소시키는 것을 촉발시켰다.


이 비전 자체 내용을 묵상해봅시다.
“성체로부터 나오는 성혈”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체는 주님의 영혼, 그분의 겸손과 천주성과 일치된 예수님의 진정한 몸이다. 만약 피가 몸에서 나오면, 그 몸은 정상적인 건강한 상태가 아니라, 아프거나, 상처받았다는 의미인데, 피를 더 흘리면 흘릴수록, 그의 생명은 더 위험에 처해진다. 그리고 상처란 고통을 의미한다! 주님이 수난을 겪었을 때, 갈보리에서 죽으셨을 때, 십자가 위에서 매달렸을 때 이러한 일이 주님께 일어났다.


만약 성체가 주님의 몸으로부터 나오는 같은 피의 홍수임을 보여주면, 이 의미는 거룩하신 주님의 몸이 거룩한 성체이고 특히 거룩한 미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갈보리의 현존, 이를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그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예언적인 다음과 같은 파티마의 놀라운 가르침을 보게 된다.
천신이 이렇게 말하듯이: “주의하라, 너희 천주님의 자녀들아, 성체, 거룩한 미사란 주님의 파스카를 기념하는 테이블 주변에 ”하느님의 사람들이 모여“하는 즐거운 만찬인 ”파스카의 신비“가 아니다.”

즐거운 만찬이라는 이것은 미사의 정의(定義)가 아니니, 이런 개념은 1969년에 있던 새미사(the Novus Ordo Missae) 첫 경본에서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미사는 십자가 위에서의 우리 주님의 희생이 이 제대 위에서 현재 제시되고 재생되는 것이다. 내가 아이들과 함께 “죄의 사함”을 위해 예수님의 거룩한 상처, 주님의 극도의 고통과 죽음을 현양하듯이, 여러분은 성체 앞에서 무름을 꿇어야 한다.

 
천주님은 모든 사물을 미리 보신다. 천주께서는 세상과 거룩한 모(母)교회로 들어오는 지극히 끔찍한 위기를 미리 보신다. 그러므로 천주님은 우리를 도우시고, 위로하시고, 어둠 속에서 빛을 주시고자 하신다. 이러한 차원에서 파티마의 발현을 봐야한다. 


마지막으로, 20세기 후반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보자. 
교회 안에서 누가 성체 안에 계신 우리 주님의 실제 현존이 현실을 옹호했던 사람은 누구인가?
누가 복된 성사에서 가톨릭 전통신앙을 지켰는가?
         


“그러므로 성비오10세회는 사제(직)을 지향해야 하며 사제로 하여금 일상생활에서 존재이유(raison d'etre)를 구체화해야 하니, 이 지향은 미사의 거룩한 희생제사이며 모든 수단이 되고 이로부터 흘러나오는 모든 것, 이를 완성하는 모든 것이다”(성비오10세회 법령2,2)


거의 20년 동안 성비오10세회는 거룩한 성체와 미사의 거룩한 희생제사에서 가톨릭 전통신앙을 방어하고, 선언하며, 증진시키는 거의 유일한 교회 단체이다. 전 세계에서 새미사가 가톨릭 신앙을 황폐화 시켰고, 제대를 파괴했으며, 성체에 대한 (예수님의 실제현존을 믿지 않는)개신교적인 개념을 도입하였을 때, 르페브르 대주교와 그분의 영적인 아들들은 거의 홀로 파티마 천신의 메시지를 지지하였고, 그리하여 그 사제들은 혹독히 탄압을 받았다. 천주님이 천신을 보냈고 그 후 성모님이 친히 충직한 자녀들을 위로하고자, 시련과 박해 속에서 저들에게 용기를 주시고자, 진리가 무엇인지보여주시고자, 그리고 저들로 하여금 최고위 성직자, 이들은 진리의 보호해야 할 유일한 종이지만 좋은 스승은 아닌 그들 성직자들에 의해 낙담하지 않도록 오신 때가 이 시대였다.
 

2/ “성작이 공중에 정지된 상태로, 천신이 우리 옆에서 무릎을 꿇었다.“


천신과 인간 사이의 차이는 거의 무한하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한 천신의 내적 가치는 눈에 보이는 온 세상보다 더 크다고 토마스 성인은 증명한다. 그러나 지극히 거룩한 성사 앞에서 천신은 아이들을 참여시키고 같은 경배 동작을 취한다. 만약 주님 앞에 천신이 직접 자기를 낮추고 자신을 먼지로,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모든 다른 피조물과 비슷하게  여긴다면, 누가 천주님이 틀림없을까? 


또 하나의 관점은 천신이 아이들을 참여시킨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사람들과 천신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세계, 한 합창단, 한 회중을 형성하여 천주님을 찬미하고 흠숭(欽崇)드리는 것은 천주님의 뜻이다. 신전지회(神戰之會-지상교회)의 신자들이 개선지회(凱旋之會-천국교회)의 회원(천신들과 성인들)과 일치되면 일치될수록, 우리의 흠숭지례는 천주께 더 동화(同和)되고 더욱 더 우리가 천주님을 흠숭드리는 올바른 환경에 있는 것이다. 천국에는 불행히도 이곳에서 가득한 죄도 없고, 분심도 없으며, 연약함이 남은 것도 없다. 그러므로 천국의 합창단(미사 서문을 보라)에 참여는 우리가 훨씬 더 참된 분위기에 흠뻑 빠지게 되고 우리 자신의 결핍으로부터 벗어난다.


마지막으로 천신(아이들과 함께)의 동작은 천주님을 기쁘게 하는 지세를 보여주는데, 왜냐하면 천국에서 오는 천신은 천주님을 최상으로 기쁘게 하지 않는 것은 그 어느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릎을 꿇는 행위는 우리가 존경하는 대상을 현양하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는 눈에 보이는 동작이다. 성사에서 예수님은 천주이시고, 그분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천주님이 우리의 첫째 원리이자 최종 목적이며, 우리의 왕이요, 모든 것의 원인이며, 우리가 무엇이고 우리가 소유한 것의 주인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주님께 완전히 의존하고 있으며 모든 사물 안에서 그분에게 속해있다. 피조물이 갖는 진정한 조건의 이러한 태도(나는 무가치하고 천주야 말로 모든 것이다)는 겸손의 본질이기도 하며, 천주님을 기쁘게 하는 유일한 태도다.
 

3/배상


아주 적게 알려진 또 하나의 신앙의 진리는 파티마의 천신이 일관되게 외치는 것은 죄의  극히 엄중함과 사랑을 통한 배상의 필요성이다.


천신의 기도시작은 배상 행위를 나타내는 기도이다: “나 당신께 믿지 아니하는 이들을 위해 용서를 청하오니,....” 이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천주님을 믿지 아니하고, 믿어도 경배를 통하여 주님께 굴복하기를 거부하며, 주님을 바라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이들이 천주님께 행한 엄청난 상처를 생각하게끔 한다. 이러한 모든 잘못을 위해 배상이 행해져야 한다.


어떻게?
죄인들의 이름으로 용서를 청함으로써, 저들을 대신하여 우리가 저들에게 주는 자비를 청해야 한다. 두 번째 발현 동안, 천신은 천주님을 상하게 만든 저들의 죄에 대해 천주님께 배상하는 것으로서 아이들에게 희생의 실천을 가르친다. 그러나 배상의 가장 완벽한 행위는 무엇인가? 세 번째 발현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천신이 우리로 하여금 배상을 하라는 죄의 대상은 천주를 상하게 만드는 신성모독죄, 무도(無道)한 죄와 무관심이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배상해야 할까? “고마워하지 않는 인간으로 인해 끔찍이 상처받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성혈을 받아 마셔라. 저들의 죄에 대해 배상하라.”


우리가 성신 안에 계신 성부께 드리고, 우리 주님은 친히 세상의 모든 감실 안에서 현존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많은 이들의 구원”을 위해 배상과 속죄의 희생제인 미사 때 자기 자신을 제헌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 자신을 영적으로 일치시킨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오신 주님의 몸을 드린다. 주님의 성혈이 쏟아지고, 끔찍한 고통 안의 주님의 영혼, 결국 그분의 천주성은 “용서와 자비”로 가득 찬다.(투이(Tuy)의 환시를 보라. 1929년. 6월 13일) 이와 같은 예수성심의 무한하신 공로에 대해, 우리는 그분의 모친이요, 우리의 중재자이며 공동 구속자이신 마리아의 하자 없는 성심의 무한한 공로에 참여하여 함께 하늘에 계신 성부께 저들을 드리며, 주님으로부터 죄인들의 회두를 얻는다.


이 배상행위는 거룩한 영성체 안에서 궁극적인 현실을 찾는다. 이 순간 천신은 아이들에게 그 유명한 배상의 영성체를 가르치는데, 이것이 하자없으신 성모성심께 드리는 신심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우리는 천신이 행한 그 격식을 마음으로 배워야하니, 그때는 천신이 아이들에게 신비의 영성체를 가르쳐준 때이다.


특히 이 격식은 탁월한 신학상의 정확성을 갖고 있다: 루시아는 성체를 받게 되고, 야친따와 프란치스코는 성작의 성혈을 받게 되는데, 이 세 어린이에게 천신이 이르길: 어떤 것이건 간에 영성체를 하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전부, 온전히 그분의 몸과 성혈을 받아 모시는 것임을 보여 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성체를 받아 마셔라.”


이는 또한 어떻게 예수께서 당신의 사랑의 성사 안에서 능욕 당하는가를 두드러진 방법으로 우리 마음에 다가온다. 우리가 저들의 “무관심, 태만, 무도함”에 대해 지극히 완벽한 속죄와 배상하는 것은 배상의 정신으로 성체를 받는 것이며, “우리 천주님을 위로”하는 것이다. 이 실천은 너무 중대하여 성모께서는 또 이를 요청하셨다.(폰테베드라에서. 1925년10월12일)


천신 발현에 대한 요약으로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이 발현들에 대한 설명을 읽을 동안 그 발현에서 우리는 아주 작은 상스러운(천한) 느낌도, 앞뒤가 안 맞는 것도, 유치하거나 진부한 것을 찾아볼 수 없다. 단호함도 없거니와 인공적인 것도 없다. 오직 심오한 진리와 단순하면서도 힘있는 표현만이 있을 뿐이다. 매우 단순한 언어와 태도로서 우리의 거룩한 신앙의 지극히 심오한 진리가 표현된다. 이러한 발현에 대해 자주 묵상하는 것은 우리에게 진정한 신적 분위기를 가져다 줄 것이고, 우리를 준비시키어(천신들이 어린이들을 준비시킨 것처럼) 성모님께 다가가게하고, -더 좋은 것은- 성모님이 우리에게 다가오게끔 하는 것이다. 더욱이 천신이 아이들에게 요청한 것을 우리가 실천한다면, 우리는 천주님을 향한 피조물의 진정한 자세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천주님의 현존, 특히 복된 (성체)성사 안에 계시는 천주님의 현존에 대한 진정한 고마움을 배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