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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모기사회에 보내는 서한 제10호, 파티마 2017를 향해(3) 슈텔린 신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1-13



아시아 성모기사회 회원들에게 보내는 10번째 편지


무염성모시잉모태와 자비의 해


친애하는 성모기사회 회원 여러분
매년 무염성모시잉모태 축일이 다가올 때, 성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는 그의 형제들과 교류하는 압도적인 영적 기쁨으로 충만하였습니다. 성인은 자주 형제 수사들에게 설명하기를, 이러한 위대한 교리는 성모님에 관련된 것이기도 하고 우리에게 있어서 탁월한 실천적인 결과다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기사회원들이 성모님께 드리는 봉헌을 분명히 갱신해야 하는 그날인 12월 8일이 다가옴에 따라 콜베 성인과 함께 이러한 신비에 들어가서 이를 묵상하도록 합시다.


금년 교황께서는 12월 8일에 장엄하게 시작되는 ‘천주 자비의 해’를 선포하였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천주님의 자비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데 우리 삶에 있어서 그 자비의 해가 완전히 남용되어서 이를 남용하는 많은 영혼에게는 철저한 불행으로 이끈다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저들이 회개와 성화의 자비로운 은총을 받아 드리게 하기 보다는 이러한 거짓 자비는 저들이 자신들의 죄를 정당화하고 관용하며 심지어 “하늘에게 보복을 호소하는”혐오스런 흉칙한 죄조차 정당화하고 있으니, 천주님의 바로 그 본질 “천주는 빛이시며, 그분에게는 도무지 어둠이 없으시도다.” 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전체적으로 갖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우리가 이러한 은총을 받고자 한다면, 우리는 교황의 의도나 개인적인 비전과, 그리고 성년(聖年)을 설정함으로써 천국으로부터 오는 은총의 홍수를 연 교황이라는 최고 권위를 구별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성지주일 사건이후, “사람들을 위해 한 사람이 죽는 게 낫다”한 고위사제의 말씀을 기억하도로 합시다. 그 당시 카이파의 의도는 분명히 사악한 것이었으나, 고위 사제로서 업무상 발언한 그의 발언은 예언적이고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는 결론을 내릴 수 있으니, “금년의 고위사제(교황)”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최고위 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대리자(교황)의 객관적이고 합법적인 올바른 결정을 존중하심으로써, 그러므로 주님은 당신의 무한하신 자비를 세상과 교회역사에 있어서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는 불쌍한 인류에게 쏟아주길 원하십니다. 천주님만이 홀로 악을 높은 선으로 바꾸고 그러므로 그분은 이 성년 기간에 심지어 많은 고위성직자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잘못된 자비의 관념을 바로잡아 천주님의 진정한 자비를 보여 주실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각 사제의 임무는 성 교회의 치교권, 교부들, 박사들과 진정한 성인들에 의해서 계시되고 가르쳐진 천주님의 진정한 자비를 충직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훌륭한 유산과 함께 하는 이 천주님의 사랑의 샘에 다가가는 모든 이를 위한 자비의 해는 거대한 은총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우연히” 일어나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곳에서, 그리고 항상 존재하시는 천주섭리의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교황에게 무염성모시잉태 축일에 자비의 해를 시작하게끔 영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사실, 성모님이 잉태됨으로써 마리아가 존재하기 시작되어 모든 피조물 가운데 홀로 죄에서 벗어난, 티 없이 깨끗하신 것 보다 천주자비의 신비에 대해 더 훨씬 분명하게 나타난 것은 없습니다. 무염시잉태 안에서 천주님은 천주 당신이야 말로 당신의 피조물에 관하여 주도적으로 행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그리고 어떻게 천주님이 천주님과 함께하는 이 기본적인 관계가 무한하신 자비가 되도록 원하시는 가를 세상에 보여주십니다.


천주자비는 단지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천주님의 전적인 자비로운 겸손입니다. 천주님은 전혀 아무 것도 보상을 바라는 것 없이 그저 당신의 사랑을 주십니다. 더욱이 이러한 시혜(施惠)는 우리의 관심 안에서 행하시는 천주님의 첫 번째 바로 그 행위이며, 이는 우리가 해야 할 어떠한 반응에 앞서서 선행(先行)되는 것입니다. 천주님은 아무것도 남김없이 그분의 사랑, 빛, 행복 그리고 내적인 기쁨을 풍성하게 주시기 위하여 당신의 전능과 지혜를 행하십니다. 우리가 이처럼 영원히 풍성하게 넘쳐흐르는 이 기반위에서 우리가 존재하길 천주님은 바라시고 우리가 그분의 생명으로 풍성하게 채워지길 바라십니다.


만약 우리가 받고자 한다면, 우리가 천주님의 선물에 우리가 전적으로 열기만 한다면, 천주님은 이를 행하실 수 있습니다. 죄로 인해 우리가 천주님의 이러한 사랑의 물줄기를 닫는 것이고, 또한 천주님이 우리에게 그분의 자비를 주시는 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마치 우리가 이러한 선물에 권리가 있는 것처럼 우리 스스로 이 은총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상상합니다. 이는 교만의 자세이니, 이런 자세는 천주님의 가장 안쪽의 본질과 우리 내부의 본질 양쪽을 부인하는 것이고 오히려 이를 서로 뒤바꾸는 것입니다. 즉 천주님이 인간의 종으로서 취급당하고 인간이 신처럼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주님은 당신의 자비를 보다 많이 드러내시기 위하여 우리의 연약함과 죄악조차 사용하시길 원하십니다. 천주님은 거의 다 죽어가는 인류인 우리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인 당신의 유일하신 성자를 보내시고 우리에게 용서와 성화(聖化)를 주십니다. 선한 목자는 자비롭게도 잃어버린 양을 찾으며,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달려 죽어가는 예수님은 천주님의 자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끝까지 서 계셔서” 주님은 가지고 계신 것 모든 것을 성혈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주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가장 커다란 비극은 지극히 높으신 천주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받아드리지 않고, 자신의 교만과 자기만족 안에서 적던 많던 자기 자신을 닫는 것입니다. 천주님의 은총에 마음을 여는 사람조차도 무한한 자기 사랑을 향한 저들의 태만, 무관심, 그리고 망각 때문에 천주님이 자기들에게 풍성히 자비를 쏟아주시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완전히 채워진 상태로 천주님의 자비를 받아드린 사람이 있다면, 그 누가 과연 풍성히 넘치는 은총에 장애를 놓칠리가 있는가요? 천주께서 그에게 설계하신대로, 그가 실제 예측되어진 것처럼 우리가 인간을 재발견할 어떤 가능성이 있는가요?  


예. 성모님입니다. 성모님의 존재에 대한 모든 하나 하나는 천주자비의 반영입니다. 성모님은 천주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받고, 받아드리며, 많이 받음으로 해서 이러한 천주님의 특성이 있게 되어 어느 면에 있어서 성모님 안에서 육화되었습니다. 성모님 홀로 영원하신 성부의 모든 선물을 받았습니다. 성모님은 전적으로 천주님의 겸손하신 선하심에 문을 열었습니다. 사랑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주고자 합니다. 천주님도 가진 것을 모두 주시길 원하시니, 단지 피조물은 받기만 하는 것입니다. 오직 단 하나의 피조물만이 진정으로 천주님의 모든 성총을 받았으니, 왜냐하면 성모님은 천주님의 사랑에 아무 장애도 놓지 않았고 항상, 어느 곳에서나 온전히 천주님의 의제에 “예”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주저함이나 질문이나 의문도 안하고 절대적인 충성으로 천주님의 사랑에 응답하였습니다. 천주님은 지상에 내려오시기 위해 더 나은 도구나 지성소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최고 성부의 섭리는 하자 없는 딸이 어떠한 가장 조그마한 악에 의해서도 오염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셨고 악마가 성모님의 영혼에 접근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성모님의 티 없으신 잉태입니다.


무염 성모시잉태에서 우리는 천주님의 자비의 진정한 정도를 발견합니다. 이는 순수히 믿기 어려운 것이고, 얼마나 천주님이 아무것도 아닌 피조물에 주시고자하는지, 얼마나 천주님의 성심이 우리의 불행에 눈길을 돌리시는지, 마치 자비를 나타내는 라틴어 Misericordia!를 뱔견하는 것은 놀랄만한 것입니다.


“보라, 사랑하는 나의 자녀들아, 나로 인해 창조된 ”무가치한 것‘이 나로 인해 구원된 죄인들이여! 너희에게 나의 자비를 주는데 있어 나의 무한한 자비의 크기를 보여주길 원한다. 성모님이 천주 사랑의 불타는 마음으로 얼마나 순수하고, 얼마나 아름답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 미덕으로 가득찼는지? 나의 영원한 생명으로 가득 찬 최고의 지혜, 꿰뚫는 지성, 성신의 정배이며, 내 아들의 모친이며, 나의 권능에 참여하는 나의 딸이 아니던가?


더욱이 성모님은 천주님의 자비 전부를 받으셨기에, 천주님은 성모님이 차례가 되어 모든 성모님의 자녀들에게 자비의 원천이 되길 원하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성모님께 “당신의 아들을 보시오”라고 말씀하셨으니, 성모님이 우리의 영적인 어머니가 되셨고 우리를 위해 성모님은 모든 은총의 중재자, 자비의 어머니 mater misericordiae! 즉 모든 은총을 자녀에게 나눠주시는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사람들은 어린이로서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어머니의 도움을 탄원하고 성모님이 사랑스런 어머니로서, 성모님이 모성의 자비로 충만한, 항상 사랑스런 모친이시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이해합니다.


천주님은 우리의 구원과 영원한 행복을 너무나 원하시고, 성자의 성심을 인간의 마음에 심으사, 이 지상에서 천주님의 자비를 눈으로 보게 되는 표지가 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분은 너무나 자비로운 티 없는 성심을 지닌 “자비의 모친”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자비의 해는 그 심오함에 있어서 “내가 자비를 베풀게 해 달라, 나로 하여금 네게 내 선물, 나의 빛, 나의 보물, 나의 사랑을 주고자 한다”하는 피조물을 향한 천주님의 부르심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유일한 것은 진정으로 우리마음을 확 열어서 우리가 천주님께로 향하고, 하자 없으신 성심을 모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받아드린 성모님의 자세에 들어가는 그 정도까지, 우리는 천주께서 우리 죄를 깨끗이 하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주시면서 다시금 우리에게 자비롭게 해달라고, 풍성한 선물을 주십사하고 해야 하니, 왜냐하면 천주님은 우리를 계속해서 용서하시는 것을 귀찮아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고집과 불충을 보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의 아주 작은 회개라도 쓰시어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의 선물 안으로 다시 빠져들게 합니다.


“하자 없는 기사”는 무엇이가요? 그것은 천주님의 자비가 사람의 영혼 안으로 부어질 때의  성모님 도구입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 희생, 종도적인 일들은 딱 하나의 목적이 있습니다:자비의 하자 없으신 모친께서 죄와 오류라는 무자비한 어둠 속에 앉아있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다가가, 저들의 마음을 감동주고 움직여서 천주님의 무한하신 자비로 향하고 천주께서 저들을 구원하시도록하며, 저들이 성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네곰보, 2015년 12월 3일 프란치스코 샤비에르 성인 축일에
슈텔린 신부



 2017년 파티마를 향하여 (3)


1916년 여름 -천신의 두 번째 발현


포르투갈의 여름은 항상 무덥고 그래서 정오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휴식을 취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흔히 그 시간에 나무 그늘에서 놀기 위해 루시아의 집에 있는 샘에 가까이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천신은 다음과 같이 말하여 아이들을 놀라게 했다.
<“너희들은  뭐하느냐? 기도하라, 기도하라, 많이 기도하여라.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은 너희에게 자비의 계획을 가지고 있단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 기도하고 희생을 바쳐라”>
“어떻게 우리가 희생을 바치나요?” 내가 물었다.



<“너희들이 행하는 것 모든 것이 희생이 될 수 있다. 천주님이 모욕당하시는 죄에 대한 배상의 행위로서 천주께 그걸 바쳐라.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탄원하여라. 너희들은 그래서 네 나라에 평화를 끌어올 수 있다. 나는 네 나라 포르투갈의 호수천신이다. 특히 주님께서 너희에게 보내는 고통을 겸손하게 받아드리고 참아라.”>  


I. 천신의 중요한 말씀에 대해 묵상해 봅시다.


1. 예수 성심과 마리아 성심


첫 번째 발현이 끝날 무렵, 이미 천신이 말했다: 예수 성심과 마리아 성심은 너희 탄원의 소리에 대해 귀를 기울이신다. 이때 천신이 선언하길: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은 너희들에게 자비의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 세 번째 발현동안(다음번 편지에 기술함)천신은 아이들에게 유명한 “천신의 기도”라고 하는 두 번째 기도를 가르치는 데 다음과 같은 기도로 끝을 맺는다: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과 티 없이 깨끗하신 마리아 성심의 무한한 공로를 통하여 나 너희에게 가엾은 죄인들의 회개를 간청한다.“


이러한 암시는 벌써 우리로 하여금 성모님의 위대한 메시지 중심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 분명히 아이들은 하늘로부터의 중대한 요청에 대해 준비되어야만 했다. 그러므르 매번 발현에서 천신은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을 언급한다. 첫 번째 발현 동안 아이들은 천주님께 기도하지만, 누가 그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고 그 기도를 끌어올릴까?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이다.


이와 같은 매우 단순한 방법으로 천주께로 가는 단 하나의 유일한 방법, 예수와 마리아 성심의 중재를 통한 길이 있음을 다시 배우게 된다. 이 발현에서 천신은 아이들을 향한 무한한 자비의 몸짓인 아이들의 미래 성소(聖召)에 대해 선언한다. 천주님은 우리가 우리 삶에서 이루어야 할 일, 즉 지극히 거룩하신 성 삼위의 “설계”, 천주님의 거룩하신 의지를 행하도록 우리에게 주시는 데, 우리는 이것을 오직 예수와 마리아의 성심을 통하여 받는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에 가엾은 죄인들에 대한 회두의 은총이 다시 온다. 이것 역시 “예수 성심과 마리아의 티 없으신 성심의 무한하신 공로로 인하여 온다.” 주목할 것은 맨 처음에 천신이 오직 “성심.....”이라하였고, 두 번째에는 구체적으로 “거룩하신 성심” 그리고 세 번째에는 이를 완전히 분명하게 하였다: “예수 성심과 마리아의 티 없으신 성심”이라 하였다. 이 방법으로 아이들이 (그리고 그들 뒤에 오는 우리 모두가) 우리 중재자 안으로 항상 깊숙이 초대된다.


첫째로, 우리는 “성심(마음)”이 무슨 뜻인지 물어야 한다.
마음은 우리 인성의 가장 중심지, 우리가 갖는 가장 귀중한 가치관, 친밀성, 우리 생명의 원천이며 사랑의 자리이다. 그래서 천신이 말했던 그 순간에 예수성심과 성모 성심이 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은 그분들이 우리에게 친근감을 열어놓고, 우리를 향해 그분들이 사랑을 직접 주시고 그와는 반대로, 우리가 그분들에게 무관심하지 않으며 우리가 그분들이 사랑의 관심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둘째로, 그분들의 성심이 특별하다는, 거룩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마음으로부터, 나쁜  것이 우리의 가장 내부적인 곳으로부터 나오며 죄가 여기에서 시작되고 여기에 온갖 불결한 것에 애착되어있다’ 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인간의 마음은 최선에서 최악 모든 것이 있다.


그러나 이분들의 성심은 거룩하고 어떠한 더러움이나 어둠이 없고, 오직 아름다움과 빛과 덕이 충만한 특히 사랑으로 가득한 완벽 자체이다. 이 중요한 세부 내용을 드러내면서 천신은 그분들의 “사랑의 설계”를 강조한다. 그건 무슨 뜻인가? 만일 그분들의 성심이 엄청난 사랑으로 우리에게 향해 있다면, 그분들은 거룩함으로 우리와 교통하길 원하시며, 이것이 정확히 그분의 “자비의 설계”인 것이다.


자비- 자비(misericordia)는 성심이다. 이 성심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에게 눈길을 돌리는 것이며 불쌍한 죄인들의 불행에 무한한 보물을 채워주시는 것이다. 이 보물은 무엇인가? 거룩함과 놀라운 사랑 그리고 영원한 행복인 것이다.


셋째로, 무한하신 자비를 지닌 예수 성심과 티 없으신 성모성심이다.

이는 무슨 뜻인가? 이 성심들은 추상적인 것도 아니요, 신학적인 은유도 아니고 신비가가 말하는 방식이 아니다.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은 매우 구체적이고 우리 세상에서 구체적이고도 눈에 보이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성심은 이미 성 요한 유드에게 설명하면서 역사에 이미 나타났는데, 복자 클라우드 드 라 콜롬비에레와 특히 성 마르구에르 마리아 알라코크는 이 “성심”이 정확히 무엇인지, 주님의 열망인 무엇인지, 우리에게 있어서 성심의 중요성이 무엇인지, 주님이 어떻게 경배 받으시길 원하시는지, 주님의 요청에 응답하는 이들에게 주님이 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마리아의 하지 없으신 성심은 파티마에서 정확히 똑같은 것을 드러내시고자 한다. 만일 우리가 천국에서 온 이 구체적인 호소에 우리가 들어가면, 우리는 진정 “불쌍한 죄인들을 구하는”것이며, 그리고 너무나 많은 은총을 받게 되는 것이다.


2. 평화의 천신, 호수천신, 포르투갈의 호수천신


천신의 발현은 우리가 이미 우리 생활에서 천신의 역할에 대해 말한 것에 대한 중요하고도 자세한 것을 주고 있다. 천신이 직접 전달한다는 제목은 천신이 매우 구체적인 역사상의 그리고 정치적인 현실에 관련 있음을 보여준다. 천신의 발현 순간에 우리는 세계 제1차 대전의 최악의 영향권에 있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평화를 갈망하고 있었고, 천신은 이 평화를 얻는 수단 즉 기도와 희생을 제시하면서 평화를 주마하고 정확히 약속했다. 사람의 죄악이 배상(賠償)되었을 때, 천주님의 정의가 완화되고, 징벌은 죄인들의 회두로 이끌고 그리고 나서 평화가 오게 된다!


더욱이, 우리 각자는 자기의 호수천신이 있고 심지어 지방과 국가에도 호수천신이 있음을 여기서 배운다. 호수천신의 역할은 우리를 모든 악에서 보호하고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영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모독적인 단체가 아니며 천주님과 우리 운명에 아무 관련을 가지고 있지 않다. 천주님은 천신들을 통해 저들을 보호하고자 하시며 저들이 적절한 임무를 이루길 원하신다. 천주님의 계명을 준행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국가의 왕이심을 선언함으로써 그리스도인 세상 질서를 보증하고 신장시키도록 한다.


이 “평화의 천신,” “포르투갈의 천신”은 어떤가?
그는 자기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9월 29일자의 성무일도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미카엘, 평화의 천신이여!


포르투갈은 항상 성 미카엘 대천신을 천상의 후원자로서 경배하였다. 심지어 성 미카엘 대천신 축일에서 조차 ”포르투갈의 호수천신“으로서 경배한다. 그러므로 파티마에 나타난 천신은 다름없이 천상의 모든 천신들의 대장이자 머리일 미카엘 대천신일 가능성이 있으며 이 천신이 매우 특별한 중대성이 있는 파티마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II. 우리에게 주는 교훈


1. 질문:“너희들은 무얼하고 있니?”


천주님이 호렙산에서 위대한 선지자 엘리아에게 나타나셨을 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면서 그를 놀라게 하셨다: “엘리아, 무얼 하고 있느냐?”


파티미의 어린이들에게도 똑같은 “무얼 하고 있느냐? 기도해라 아주 많이 기도하여라.” 말을 하면서 천신은 아이들이 놀고 있을 때, 갑자기 끼어들었다. 영적생활의 스승들은 우리더러 항상 ‘우리가 당장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자신들에게 물어보라고 권한다. 그분들은 우리 생활에서 현재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강조하고자 하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것은 어제도 내일도 아니고 오직 지금이기 때문이다. 오직 지금만이 천주님을 기쁘게 하거나, 천주님을 거스르거나 시간을 잘 사용하든, 낭비하든 등등 하는 것이다.


호수천신의 말에 기울여 보자. 천신은 매우 조용하게 우리에게 같은 것을 요구한다: “지금 너는 무엇을 하고 있니? 천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니? 천국으로 가는 길에 선 너를 돕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니? 아니면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


2.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모든 것이다!


심지어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것이 천주님께 우리의 사랑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도록 해야 한다. 큰 희생을 하는 것도 매우 어렵고, 우리 삶에서 중요한 변화를 모색하는 것도 어렵다면, “천주께서 모욕당하신 것에 대한 죄에 대한 배상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희생으로 삼을 수 있고, 이 희생을 천주님께 바치는 것”이 더 쉽다. 우리의 성모 기사단 운동, 일과 휴식, 밤과 낮, 모든 많은 사소한 일과 심지어 우리 모든 삶에 일어나는 환경은 믿기 어려울 종도의 위대함과 가치로 변화될 수 있다. “천주께 향한 하나의 행위가 온 자연의 우주보다 더 가치가 있다”라고 토마스 성인은 가르친다. 이런 삶을 살아간 프란치스코와 야친타가 겨우 2년 후에 성인이 된 것을 보면 정확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천신의 요청에 보다 관대하게 응답한다면, 어떻게 우리의 평범하고도 흔하며 시시한 일상적인 삶이 변화를 일으켜 많은 영혼들의 구원의 원천이 되고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지를 볼게 될 것이다!


3. 고통의 중요성


‘희생’을 자청하는 자가 ‘고통’을 기꺼이 담당한다.
천신은 “특히, 주님이 너희에게 보내시는 고통을 겸손함 마음으로 받아드리고 감당하라”고 강조한다. 후일 루시아는 천신의 다음과 같은 말을 회상한다.: “이러한 말씀은 우리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고 각인되었어요. 그 말씀은 천주님이 누구신지, 그분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사랑받고자 하시는지, 희생의 가치가 무엇인지, 우리가 희생을 즐겁게 받는 것이  그분에게 있어 얼마나 기쁘게 하는 것인지, 희생으로 인해 주님이 죄인에게 어떻게 회두의 은총을 주시는지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빛과 같았어요. 우리가 시작하여, 때때로 그로부터 우리를 굴복시킨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린 것이 이 이유 때문이었어요.” 후일 성모님은 “영혼의 구원자”로서 우리의 성화와 우리의 역할을 위한 이 지극히 좋은 교훈을 말씀하실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 하나가 우리 생활에 있어서 빛과 같은 이러한 천신의 말씀을 반복해서 마음으로 배우고 묵상하였다. 먼저 우리는 고통이 올 때, ‘받아드려’야 하며 이를 습관적으로 거절하거나 투덜대서는 안 된다. 그리고서 우리 생활에서 오는 고통은 ‘우연이든 혹은 우연이 아니든’ 다가오는 가해자로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니,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가 많은 공로를 세우시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주께서 십자가의 길, 고통의 길을 주님과 함께 가고자 하는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하신 보상이 그 얼마나 많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