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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모기사회에 보내는 서한 제9호, 파티마 2017를 향해(2) 슈텔린 신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2-23



아시아 성모기사회 회원들에게 보내는 9번째 편지


친애하는 성모기사회 회원 여러분!


막시밀리안 성인이 성모기사회의 도구들을 “기사(騎士)”라고 부르는 데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성모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분의 도구가 되어 어둠과 죽음의 그림자에 앉아있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구할 수 있도록 부르십니다. 우리는 성모님께서 영혼들에게 회두와 성화(聖化)의 큰 은총의 빛을 보내실 수 있도록 다리나 수로가 돼야 합니다. 그러나 성모님을 통한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는 이 진실한 실천은 단순한 의무나 영적 실행이나, 금욕적 노력을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쟁이며, 끊임없는 전투입니다! 따라서 막시밀리안 성인께서 기사라는 매우 군사적인 언어가 나온 것입니다. 은총이 영혼을 만날 때마다, 우리의 성모님은 영원한 철천지 원수를 만나시게 됩니다. 원죄를 통해 들어온 이 악마는 세상의 주인입니다. 성모 기사회의 역할은 사탄의 폭정으로부터 영혼을 탈취하고 구원하여 그 영혼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국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기사'라는 칭호를 가볍게 받아들여선 안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습관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첫째: 기사 칭호는 우리가 군사적 교회에 속하며 지구상의 우리 삶이 두 원수 사이에 일어나는 끊임없는 전투라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멸망으로 향하는 길은 매우 넓고, 구원으로 향하는 길은 매우 좁고 거칠다!” 주님에 대해서 성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루까 2:34) “무릇 나와 한가지로 아니 하는 자는 나를 거스름이요,”(마테오 12:30, 루까 11:23) 요한 성인은 말합니다. “세상에 계시고 또 세상이 저로 말미암아 되었으되, 세상이 저를 알지 아니하며, 본 땅에 오시되 그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고, (요왕 1:10-11)...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도 나를 먼저 미워했다는 것을 알아두어라. 너희가 만일 세상에 속한 사람이라면, 세상은 너희를 한 집안 식구로 여겨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내가 세상에서 가려낸 사람들이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요왕 15:18-19)” 그리고 그의 첫 번째 사도 서간에서, 그는 본질적인 원칙을 간결히 언급합니다. “여러분은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마음속에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체의 쾌락과 눈의 쾌락을 좇는 것이나 재산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세상에서 나온 것입니다.”(요안 1서 2:15-16)


바오로 성인과 교부들은 다른 교리를 알지 못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특히 구원의 역사를 천주님의 나라와 악마의 나라 사이에 일어나는 멈추지 않는 전투로서 요약했습니다. 이 그리스도교의 근본 아이디어는 모든 성인들에게 예외 없이 세워져 있습니다.


막시밀리안 성인은 프리메이슨의 신이 없는 운동의 증인으로서 기록합니다. “우리가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 우리, 성모기사회의 기사들이? … 오늘날 우리는 확고하고 단호하게 우리가 어느 편인지 선언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그의 하자 없으신 성모님의 연대에 속해 있다고 - 아니면 사탄의 깃발 아래, 반란과 타락, 천주님에 대한 증오의 깃발 아래라고. 여기에는 합의나 타협이 없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하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우리 성모기사회의 기사들은 우리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두 현대 시대의 영(靈)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오늘날 평화주의가 교회 안에서 지배합니다.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이며 더 이상 적이 없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평화가 선전문구입니다. 그들은 천주님이 전쟁을 원하지 않으며, 따라서 평화를 원하신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다르게 믿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그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들과 함께 일해야만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모든 인간은 어쨌든 선의의 사람들이며, 그래서 우리는 평화와 행복의 새 세상을 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슬로건이 몇 세기 동안 교회의 철천지 원수들에 의해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차치하고, 그러한 “선언”이란 헌신할 수 있는 영혼들에 있어서 최악의 범죄입니다. 전쟁이 진행 중이고, 적이 공격 중인데, 우리의 지휘관들은 팔을 내릴 뿐만 아니라, 심지어 적을 친구라 부르고, 포옹하고, 매우 정교한 방식으로 누군가가 그들을 뒤에서 찌르고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합니다. 이것이 교회 안의 위기이고, 그것은 영혼들을 어떠한 저항도 거의 없이 사탄의 속박상태로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사는 “모든 이단을 정복하고, 또한 현대 무신론 시대의 히드라를 맞서 싸우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인의 깃발아래 서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가톨릭 신자들은 이러한 전투정신으로 무장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할 것입니다. 분명 적은 너무나 위험하니, 왜냐하면 적은 보이지 않고 움직이며, 잡히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하며 속삭이는 바람처럼,”균형“이란 세련되고, 그럴듯한 말로 친근하고, 붙임성 있고 매력적이고 유쾌하며, 동정어린 감성으로 가장 강력한 벽을 통과하여 기어오르는 파장처럼 사람들을 둘러쌉니다. 이것은 적들이 오늘날 사용하는 독입니다. 이 처럼 모든 곳에 산재하고 보이지 않는 치명적인 적과 전쟁을 수행한다는 것은 위험하다고 알려진 분명한 공격자와 싸우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어렵습니다. 이 전쟁이 무엇으로 구성되고, 적의 책략과 무기가 무엇이고 우리가 써야할 전략은 무엇이어야 하냐를 생각하기 전에, 분명히 명심해야 되는 것은 이것은 전쟁이고 실제로 생명과 죽음에 관한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근신하고 깨어 있을지어다. 대저 이는 너희의 원수 마귀가 마치 표효하는 사자와 같이 잡아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님이니라.“(베드로 전5:8-9) 성모 기사회 법령 바로 첫 번째 문장이 이 전쟁을 강조합니다: ”여인이 너의 머리를 부술 것이다“(창세기3;15) 물론 이것은 지옥에 대한 천국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전쟁 선언이고 이 선언이 성모 기사회의 생명을 결정해야 합니다.


둘째: 마지막 때에는 이 전쟁이 점점 강도가 쎄질 것이고 “할 수만 있다면, 심지어 간선자 조차 속이기 위하여”(마테오24;24) 악마가 점점 더 승리를 구가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모두 의견의 이치를 보인다는 점이 또한 중요합니다. 천주의 모친께서 주요 발현 가운데, 특히 라 살렛트와 파티마에서 이 전쟁의 최종 구호를 설명하고 자녀들에게 성모님이 주시는  강력한 무기를 잡으라고 요청하신 것은 그리 놀랄만한 것이 아닙니다.


결국, 성모님은 이 전쟁에서 분명히 우리 편에 서시기 위해 그리고 승리를 이끄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보여주시기 위해 나타나셨습니다. “결정적인 전쟁”을 치루는 이 시대에서 이 “결정적인 전쟁”, 이것은 천주의 모친께서 루시아에게 말할 때 사용한 표현이고, 작은 군대를 불러 모으는 것이 하늘을 기쁘게 하는 것이고, 이 군대는 성모님의 깃발 아래에서 무기를 들어 마치 거대한 골리앗에게 어린 다윗이 대치하여 던지는 것과 같습니다. 분명히 이 전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기 때문에 주께서는 이 전쟁을 알고 의도적으로 군인 정신을 무장한 자녀들을 일으켜 세워, 전쟁터의 선봉대에 그들을 세우고, 적을 주시하고, 적의 가면을 벗기며, 맞서 싸우게 하십니다. 이것이 성모 기사회입니다.


셋째: 기사는 일반 보병이 아니라, 오히려 말하자면 엘리트 정예 군인입니다. 성인의 말씀을 들어 봅시다: “천주님의 적들이 저지른 이 같은 엄청난 악행을 보고, 우리가 가만히 있어야만 하는가? 단지 불평만 하고 눈물만 흘릴 것인가?  아니다. 마지막 심판 때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을 설명해야 되고, 또한 우리가 행할 수도 있지만 실패한 모든 좋은 행실도 천주님은 셈하신다는 것을 생각하라. 각 개인에게 할당된 것은 악과 싸우는 최전선에 서야 되는 진지한 의무이며, 적의 공격을 물리적으로 막아내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이런 소리를 듣게 된다. <그러나 내가 뭘 할 수 있어? 상대편은 잘 조직화되고 힘도 있고 부유한데...> 너무나 많은 개인들이 바오로 성인의 말씀을 잊고 있다. 나는 주님 안에서 능치 못할 일이 없나니, 그분은 날 강하게 하신다.>”


그래서 이런 표현들; 기사도, 전쟁, 공격, 승리하는 영혼, 적 파괴, 병기, 올바른 무기 배치 등.. 설립자의 저작에 지속적으로 돌라가서, 비록 설립자가 우리 시대의 위험을 선견(先見)하셨음에도 그리스도 문명은 잠들어있고 악마는 평화공세로 선언했었습니다. “기사, 기사도, 전쟁: 이 모든 것들이 전쟁 같은 소리를 내니, 왜냐하면 현실은 실제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총, 폭탄, 탱크나 독가스로 진행되는 전쟁이 아니지만, 그래도 영적인 실제 전쟁입니다. 우리의 전략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기도입니다. “완고함을 극복하고 방어적인 자세에서 빠져 나와야 됩니다.” 프리메이슨과 자유사상가들은 천주님과 신앙과 대적하여 싸우고, 사람들을 신성함을 파괴하는 보통 동물과 야만인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허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가지고 물론 싸워야 되지만, 우리와 내 이웃이 이교도화(異敎徒化) 되는 것을 막고 또한 그리스도 왕국이 저들에게 오도록 성모님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게끔 해야 합니다.


넷째: 그러나 이 싸움은 우리 생활의 흥미진진한 구호, 감상적인 영화나 컴퓨터 게임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싸움은 우리의 모든 힘을 요구합니다. 이 싸움은 적들이 정복되지 않는 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영역에 경계선도 없고 끝도 없이 영향을 줍니다. 다시 말해서, 이 싸움에서 중간 타협이란 없습니다. 기사들은 지속적으로 가장 높은 이상으로 영적인 무장을 해야 합니다: “성모님께서 가능한 한 빨리 온 세상의 여왕이 되고, 모든 개인의 영혼 안의 여왕이 되도록, 세상의 모든 나라의 여왕이 되도록,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의 마음이 성모님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커다란 이상이다.“


평범, 게으름, 냉담은 기사에게는 안 어울립니다: “그러므로 기사는 퍼져나가는 악에 대해 냉담해야되는 것이 아니라, 온 마음을 다하여 악을 증오하고, 모든 기회와 모든 장소 그리고 매 시간 영혼에 독을 퍼뜨리는 악을 근절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건대, 아침에 일어나시면, 스스로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누구지?” 전적으로 나는 성모님께 속하고 그분의 아이이며, 그분의 노예이며, 군인이며 더 말할 나위 없이 성모님의 기사다.“


2015년10월 27일 마닐라
칼 슈텔린 신부


2017년 파티마를 향하여(2)


1916년 봄-루시아, 프란치스코, 히야친따에게 나타난 천신의 최초발현


 파티마의 거대한 드라마는 1916년 천신의 세 번 발현으로 시작되었다.어떤 특이한 사건 이 우리 생애에 일어난다면, 우리는 특별히 이 사건의 시작과 끝을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 삶에서 시작(공부를 시작하거나, 신앙으로 회두하거나, 미래의 배우자를 처음 만나거나, 성소 신청에 처음으로 서명하는 것 등)은 중요한 변화를 일으키고, 끝은 사건(사제서품, 혼배성사, 오랜 공부 후에 치루는 최종시험 등)을 통하여 우리에게 일어나는 왕관이나 결산을 가져온다. 이처럼 천주님의 커다란 현시에서 특별한 관심은 시작과 끝에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시작은 전체 건물이 세워지는 기초에 비유되고, 끝은 건물의 완성과 같다.


1916년 프란치스코와 히야친따가 사촌인 루시아와 양가의 양떼를 돌보겠다는 약속을 부모로부터 허락을 얻었으니, 그때 루시아는 9살, 프란치스코는 8살, 히야친따는 6살이었다. 1916년 어느 봄날, 그들의 고향 알주스트렐 근처 올리브 숲에서 양들과 함께 있었다. 정오경 습관대로묵주기도하고 가벼운 점심을 먹고 노는 것은 그들의 습관이었다.


<겨우 잠시 게임하고 놀았어요. 그때 이상한 바람이 나무를 흔들었어요. 우리가 놀라서, 뭐가 있나 위를 쳐다보니, 그날은 특이하게 고요했어요. 그리고서 뭔가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올리브 나무위에는 일전에 내가 이야기 했던 어떤 사람이 있었어요. 그 이전까지는 프란치스코와 히야친따는 결코 보지 못했고 나 역시 동생들에게 말하지 않았어요, 그 사람이 다가옴에 따라, 특징을 구별할 수 있었어요. 14~15살 먹은 젊은이였고, 눈보다 더 희고, 햇빛이 투과될 때 수정처럼 투명했어요. 그리고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우리는 놀랐고, 놀라움에 거기에 몰입되어 말을 잃었어요. 우리에게 오자마자 그가 말하갈: “두려워마라! 나는 평화의 천사다! 나와 함께 기도하자!” 그가 땅에 무릎을 꿇고,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을 했어요. 초자연적인 충동에 이끌려, 우리도 동시에 했으며 그가 말하는 소리를 들으며 반복했어요. -“나의 천주여, 나는 믿나이다. 당신을 경배하고 바라며 사랑합니다! 당신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 경배하지 않는 자들, 소망도 없고 사랑도 하지 않는 이들을 위해 당신의 용서를 간청합니다!”


세 번 이 기도를 반복하고 나서, 일어나서 말하길: -“이렇게 기도하여라. 예수성심과 성모성심은 너희들의 탄원 목소리에 경청하신단다.” 그리고 나서 그가 사라졌어요.>


이러한 천국의 최초 간섭에 대해 묵상합시다.


1. 특이한 강한 바람(風)


 성서에서 나오는 천주님의 위대한 현현을 묵상한다면, 여기에는 흔히 갑작스럽고 신비로운 바람과 연관되어있다. 호렙산에서의 예언자 엘리아, 성신강림 날에 있었던 기도실에 있었던 종도들 등. 또한 성모님께서 루르드에 처음 발현하셨을 때, 성 벨라뎃트는 “돌풍과 같은 소음”에 놀랐다.


성영 103편에 이르길:“ 바람을 당신의 사자들로, 당신은 바람의 날개 위에서 걸으시나이다.”영에 대한 히브리 단어는 “강한 바람”으로 번역될 수 있다. 이 최초의 사실은 파티마 사건이 세상에서 천주님의 위대한 현현에 가까이 다가가게 한다. 바람을 통하여 천주님은 초자연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이 바람이 모든 어두움과 악을 몰아내고 빛과 천국의 평화를 가져온다.


2. 최초의 말 “두려워 말라! 나는 평화의 천사다”


이 말들은 복음에서 나오는 메아리와 같다. 천신이 성 세례자 요한의 잉태를 고지하기 위해 성전에 있던 즈카리아에 나타났을 때, 또는 수태고지 날 성모님이 인사한 후 천신이 이르길: “두려워 말라, 마리아여.”한 것처럼. 천신이 성 요셉이나 에수 부활 아침 예수님 무덤으로 오고 있는 여인들에게 말하길: “두려워 말라” 였다.
 

3. 천신의 출현


루시아가 천신의 출현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그녀는 자주 주장하길: “Era de luz – 그는 빛에 속한 자다.” 여기에도 복음서에 나오는 메아리가 있다. 주님의 부활을 알려준 천신은 빛을 발하는 인물이었고, 옷은 눈처럼 희다(마테오28:3) 그리고 복음사가들은 주님의 현성용 당시에 주님을 묘사하는데: 주님의 얼굴은 태양과 같이 빛나고, 의복은 눈처럼 희다(마테오17:12) “천주는 빛이시라. 그 안에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니”(요한1서1:5)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실 때(천신이나 주님의 모친으로 인해) 주님은 광채와 빛으로 치장된 옷으로 나타나신다. 이러한 빛의 신비는 파티마의 현현을 통하여 자주 언급되고 있다.


4. 압도적인 신성한 현현


루시아는 천신의 발현을 언급한다: “우리를 감싸고 있던 초자연적인 분위기는 너무나 강렬하여 오랫동안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거의 인식할 수 없었고 그가 떠나고 난 후에도 계속 계속 같은 기도를 반복하면서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어요. 천주님의 임재는 그 자체가 너무나 친근하고 강렬하여 우리는 감히 다른 이에게 말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천주님의 임재는 엄청나고도 심지어 우리 인간의 연약한 기능을 으깨버릴 정도의 뭔가가 있다. 그러나 이 “천주임재 앞에 오는 소멸감”은 세 어린이를 위한 진정한 겸손을 갖게 하는 최고의 학교였으니, 무엇보다도 천주님의 무한하신 거룩함에 대한 친근하고도 본질적인 지식과 피조물의 무가치를 보여준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들


1. 우리들 중의 천신들


파티마는 천신의 발현으로 시작된다. 천주님께서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존재와 그 중요성을 깊이 생각하고 인식하기를 바라신다. 순수한 영혼으로서의 천신들은 우리가 영원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천주님의 초월성, 위엄, 또 거룩함의 울림이다.


우리의 오감에 들어오는 것들만 인식하는 우리의 물질적 세계에서, 천신들의 존재는 중요한 해결책이다. 그들은 물질적 세계보다 영적 세계, 일시적 세계보다 영원의 세계의 우선권을 선포한다. 천신들은 또한 천주님의 무한한 아름다움의 반사된 모습이다. 역사적으로 천신들의 모든 발현에서 그들의 엄청난 아름다움과 빛의 가득함이 상기된다. “아름다움은 진리와 선함의 광채이자 영광의 현시이다”라고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이 말했듯이, 천신들은 우리가 선하고 진실한 것을 사랑하고 존경하게 만들며, 동시에 그들은 우리에게 모든 추하고 거짓되며 악한 것을 싫어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천주님의 전지전능한 힘의 반사된 모습이다.
미카엘 대천신 성인은 루시퍼와 그의 추종자를 천국에서 지옥으로 쫓아내었다.
가브리엘이란 이름을 번역하면 천주님의 힘이란 뜻이다.
라파엘은 토비트를 큰 악에서 보호하기 위해 큰 힘으로 인도하신다.


특히 지금 시대에 우리는 우리의 약함과 결핍을 느끼고 있다. 첫째로 우리의 양심을 각각 성찰해보면, 우리가 본질적으로 우리 조상들의 강한 세대와 비교할 때 완전히 퇴보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또한 도처의 ‘어둠의 힘’의 지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기준에서, 천신들의 존재와 보호 아래, 우리는 쉽게 모든 유혹을 극복할 수 있다.


천주님께서 천신들이 우리를 보호하고, 돌보고, 우리의 수호천신이 되도록 보내셨다는 걸 잊지 말자. 대체로 우리는 완전히 그들의 힘과 우리 삶의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를 도우려는 그들의 소망을 과소평가한다. 파티마에서 천신이 아이들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쳤고 또한 그들과 기도했다. 만일 우리가 각 미사에서의 천신들의 존재와, 각 감실 앞에서 하는 그 천신들의 기도와 흠숭, 그들의 성모님에 대한 거대한 경배와 사랑을 안다면, 우리의 영적인 삶은 즉시 변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천신들이 적절한 분위기를 만들 것이며, 그 안에서 우리의 영혼들이 천주님을 향해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2. 천주님의 위엄


이 장엄한 천신이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하고, 어떻게 행동할까요? 그는 땅에 무릎을 꿇고, 그의 이마를 땅에 대고, 천주님께 기도합니다. 만일 한 천사가 이미 매우 위엄이 있어서 아이들이 그의 존재 앞에서 숨도 쉬지 못할 때, 우리는 뭐라고 말할까요? 만일 수십억의 천신들이 천주님의 위엄 앞에서 함께 땅에 엎드린다면?! “그러자 모든 천신들이 어좌와 원로들과 네 생물 둘레에 서 있다가, 어좌 앞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천주님께 경배하며”(묵시록 7장 11절)


그리고 파티마의 위대한 시작이 무엇이었습니까?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이 기도는 어떻게 시작합니까?


“오 나의 천주님!” 입니다.
- 천주님의 무한한 위엄과 위대함에 대한 잃어버린 진실입니다. 무한한 대양! 창조물은 그 분의 앞에선 아무것도 아닙니다.
- 이것은 우리에게 처음과 끝, 필요한 유일한 한 가지, 이 세상과 우리 삶의 중심이 우리 자신이 아니라, 천주님이란 것을 의미합니다. 오, 나의 주님!
- 그리고 그 분 앞의 모든 피조물들은 먼지입니다. 따라서 엎드림, 장궤가 있는 것입니다. ― 그것은 우리가 진리를 인정하고 천주님의 통치와 우리의 순종을 인식한다는 가시적 표시입니다. 당신께서 처음이자 끝이요, 원칙이자 목표요, 주춧돌이자 지붕이십니다.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당신으로부터 나왔고, 당신 안에 있고, 당신을 위해 있기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3. 필수적 미덕: 신덕, 망덕, 애덕 - 우리 삶의 근본!


기도는 우리를 계속해서 천주님과 관계 맺게 해줍니다. 만일 천주님이 전부이시라면, 우리가 그 분께 대해 올바른 태도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태도는 바로 이것입니다. “저는 당신을 믿고, 흠숭하며, 바라고, 사랑합니다!”


나는 천주님의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고 받아들입니다. 나는 당신이 내게 드러내신 것을 나를 둘러싼 가시적 세상보다 더 확신합니다. 나는 천주님의 존재와 행동하심을 믿습니다. - 천주님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내 눈은 진리와 진실한 삶에 열려있습니다.


흠숭은 천주님의 계시에 대한 즉각적 반응입니다. 만일 천주님이 내 전부이고, 내가 그분께 완전히 의지한다는 것을 신앙을 통해 이해한다면, 난 그것을 보여야 합니다. 흠숭은 천주님이 내 첫째 원칙이자 내 마지막 목표이며, 내 전부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흠숭은 나 자신을 진정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께 완전히 의존하며 당신께 속합니다.


망덕은 천주님의 의지를 실천하며, 천주님께 닿고자 하는 소망입니다. 누구든 천주님의 위대함과 행복과 사랑을 본 사람이라면, 그런 무한한 기쁨을 쫓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망덕은 또한 천주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입니다. 우리는 오직 영원한 천국을 희망하고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천주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자녀가 되는 그러한 삶으로 초대하셨고, 그분이 우리를 위해 천국에 자리를 마련해두셨기 때문입니다.


애덕은 마음의 연합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만드시고 구원하셨으며, 우리에게 그 자신의 신성한 생명의 일부를 주길 원하시는 천주님의 사랑에 대한 완벽한 답변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정점이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고귀하고 최고의 것이며, 사실상 우리 삶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저녁때에 우리가 얼마만큼 사랑했는지에 대해 판단 받을 것이다”라고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와 십자가의 요한 성인이 말하셨습니다.


4. 죄의 미스터리 - 보속의 필요성


“저는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해 용서를 빕니다 … ” 우리 삶의 근본에 대한 묘사 직후에 (우리의 천주님과의 관계성) 천사가 그 정반대인 천주님의 현실의 부정, ‘죄’에 대해 아이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극히 흥미롭고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파티마의 맨 처음부터 오늘날 완전히 잊혀진 또 다른 주제가 나타납니다. 세상과 인간의 역사는 두 가지 대결하는 세력, 천주님의 왕국과 마귀의 폭정의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천주님께 “예”라고 하는 것과 “아니오”라고 하는 (믿거나 흠숭하거나 희망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세력 간의 싸움입니다.


만일 우리가 삶이 “멋진 신세계이자 지구상의 천국”에 있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보편적인 사랑과 우정으로 함께 할 것이라고 상상한다면 모든 것 중 최악의 착각이 될 것입니다.


아니오 - 진실한 천주님에 대한 “Yes"와 ”No" 사이의 전쟁이 있으며, 우리 주님이 직접 분명히 선언하신 바에 따르면 오직 최후까지 “Yes"의 태도를 유지하는 사람들만이 구원될 것입니다. 하지만 천주님의 적을 믿는 사람들, 루시퍼의 “섬기지 않겠다.”는 말을 따르는 자들을 향한 우리의 태도는 무엇이 돼야 할까요? 증오? 무관심? 화? 불행히도 이것이 우리 주변의 악을 향한 우리의 반응일 때가 많습니다.


천사는 또 다른 언어를 가르칩니다. “저는 용서를 빕니다...” 이 짧은 문장은 반복해서 묵상돼야 합니다.

첫째로 그것은 참회와 속죄의 바로 그 행위, 용서를 구하는 행동입니다. 죄인의 사랑의 첫째 행위는 그의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죄인이기에, 우리는 모두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나도 또한 “그 사람들”에 속합니다. 내 삶 속에서 신앙과 순종 (흠숭), 천주님께 대한 신뢰, 진정한 소망, 천주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결핍돼 있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나 자신이 지금 “빛” 속에 있다는 사실은 내 능력과 관용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천주님의 무한한 자비 덕분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때 그런 모습이었던 사람들 (어쩌면 바로 얼마 전에), 그리고 지금 그런 모습인 모든 사람들과 합하여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우리의 모든 “차선의 호의”를 원하기에, 이런 연대는 이웃 사랑의 진실한 실천이 됩니다. 그리고 첫 번째 호의는 “죄의 용서”입니다. 왜냐하면 용서 없이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이 기도는 진짜 지상의 선과 지상의 악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만일 파티마의 맨 처음에서 “저는 용서를 빕니다”라는 말이 나타난다면, 우리는 “천주님을 믿지 않고, … 사랑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이것에 대해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가올 천신의 발현이 증거할 것입니다.


※중요※  새 웹사이트 www.militia-immaculatae.asia


우리는 성모 기사단 아시아 지부의 새 웹사이트가 만들어질 예정이라는 걸 알리게 돼 기쁩니다. 모든 아시아 국가의 기사들이 자신의 조국에서 성모 기사단이 알려지게 하기 위해 이 사도직을 협동하여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여러분 자신만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알리도록 요청드립니다. 성모님을 알리고 최대한 많은 영혼들이 성모님을 사랑하도록 하는 것은 하자 없으신 성모님의 도구로서 우리의 거룩한 임무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누군가를 사이트로 초대하여 글을 읽고 묵상하도록 하려 한다면, 그 전에 성모님께 보내는 절규하는 기도를 하십시오. 성모님께서 당신이 사이트 링크를 보내는 그들의 마음을 만져주시도록.


그러나 무엇보다도, 당신이 성모님께 이 중요한 사도직을 위해 그분의 축복과 은총을 구하는 9일 기도(성모호칭기도)를 하길 요청합니다.


여러분의 지인들에게, 누구든지 다음의 이메일을 이용하여 성모기사단에 대해 연락할 수 있다고 알려주십시오.


 info@militia-immaculatae.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