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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모기사회 지도자 신부의 편지 제 8호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10-19



성모기사회 지도 신부의 편지 제 8호


친애하는 성모기사회 여러분


정확히 100년 전, 성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는 장상의 허락을 받아 성모기사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설립자이신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이 기념적인 사건을 회상하는데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많은 물들이 다리 밑을 지나갔다. 거의 1년이나 걸렸기에 많은 세부사항을 거의 잃어버렸다. 그러나 가디안 신부 (Fr. Guardian [Kornel Czupryk])가 내게 성모기사회의 시작에 대한 설명을 해볼 것을 명령하기에, 내 기억이 생각나도록 그것을 설명하려한다.


내가 우리 형제 수사들과 우리 종단의 붕괴된 상태 그리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 나눈 것을 기억한다. 이러한 기억 가운데 떠오르는 생각이 내 마음 속에 강렬히 남아있었다. 다시 재건 할 것이냐. 파괴할 것이냐.... 이런 문제를 가지고 내게 자주 다가오는 젊은이들에 대해 깊은 슬픔을 느꼈다. 이들 젊은이들은 수도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훌륭한 지향과 거룩한 이상을 잃어버리는 상태로 끝을 맺고 마는 이들이었다. 그래도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시간을 좀 더 과거로 되돌려보자.

 

어린이로서 나는 어떻게 5코펙(러시아 화폐단위)으로 작은 성모상을 샀던가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리고 소신학교 그곳에서 성가대원으로서 미사에 참례했었는데, 나는 바닥에 얼굴을 대고 제대를 굽어보는 모습의 성모님께 당신을 위해 싸우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어떻게?? 나는 몰랐다. 그래도 물질적인 무기를 가지고 싸운다는 걸 상상하였다.
 

그런 이유로 인하여 내가 초보자로서 들어갈 때가 왔다. 주임 신부인 Fr. Dionizy (Sowiak)께 이런 좋은 기억과 그리고 수도생활에 들어가는데 어려움이 있음을 털어놓았다. 그분은 나의 결정을 매일 “Sub tuum praesidium”을 암송하게끔 하셨다. 심지어 성모님의 전쟁이 무엇인지 마음속으로 알고 있던 지금조차도, 오늘날까지 그 기도를 계속하였다.  


비록 내가 우쭐하는 경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성모님께로 강렬하게 끌려감을 느꼈다. 무릎 꿇고 있는 상태에서 내 작은 기억 세포 안에는 성모님이 발현하셨던 어느 성인의 모습을 항상 간직하였다. 그리고 기도하는 가운데 성모님께 자주 의지하였다. 나의 그 모습을 본 순간, 수사 한분이 내게 이르시길, 내가 저 성인에 매우 푹 빠져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하였다.


내가 로마에 있을 때, 바티칸의 창가 아래에서 프리메이슨들은 지오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범신론자로서 화형당한 이) 추종자들이 지닌 검은 깃발을 휘날리며 감히 공개적으로 나오기 시작하였는데, 그 모습은 성 미카엘 대천신은 루시퍼의 발아래 짓이겨진 모습이었고 저들의 전단지에는 교황 성하를 매질하는 모습을 공개적으로 그려 놓았다. 그때에 나는 프리메이슨과 다른 사탄의 종들과 맞서 싸워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분명히 성모님으로부터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에 대학시절 학생들의 고해 신부인 영적인 지도자 신부, 예수회 소속의 알렉산드로 바실(Fr. Alessandro Basile)를 찾았다. 거룩한 순종으로부터 확신을 얻고 난 후에, 그 일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그러는 와중에 우리는 비나(Vigna) 수도원으로 이동했다. 수도원은 대학으로부터 대략 20-30분 걸음의 거리에 있으며 휴일기간을 위한 곳이다. 풋볼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내 입 밖으로 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옆으로 잔디 위에 누웠다. 좋은 기억으로 남던 Girolamo Biasi  수사가 나를 보살펴 주셨다. 나는 잠시 동안 피를  닦고 곧 이어 의사에게 갔다. 나는 내 삶의 끝에 거의 가까웠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뻤다. 의사는 내게 대학으로 다시 돌아가도록 명령했다. 의자에서 쉬거나 잠을 자라고 했다, 치료는 피가 계속 나오는 걸 멈추게 하질 못했다. 피가 계속 나오면서. 근 몇 일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젊고 경건한 성직자인 Girolamo Biasi 수사가 나를 보러 오곤 했다.


2주가 지난 후, 의사는 마침내 처음으로 내가 나가도록 허락했다. “Vigna,” 수도원에 도착해서 어려움이 있지만 또 다른 성직자인 BGiovanni Ossanna 수사를 알게 되었다. 성직자들이 나를 봤을 때, 나를 격려했는데 그들은 고결한 정신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신선한 무화과,, 와인 그리고 빵을 주었다. 무언가를 먹고 마시고 나니, 통증과 고통이 그쳤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는 성직자인 Girolamo Biasi 수사와 Iosif Pal 수사에게 어느 단체를 설립할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이분들은 같은 해 같이 신학공부를 했어도 나보다 먼저 사제 서품을 받았던 분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중 한명에게 그들의 영적 지도자에게 알아보고 그것이 천주님의 뜻인지 알아보라고 부탁하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 몇 개를 알고 난 후, 나는 내 동료인 Antoni Glowinski 수사와 함께 추가된 성소기간을 위해 Viterdo로 보내졌다, 그 경우에 있어서 Antoni Głowiński 수사는 얼마 안 있어 성모기사회에 합류하였고,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 나폴리 지역의 두 성직자인 Antonio Mansi 수사와 Enrico Granata 수사 역시 성모기사회에 등록하였다.


성모기사회에 속한 이들 몇 명 제외하고는 대학의 그 누구도 이 단체의 존재를 몰랐다. 오직 학장이신 Fr. Stefano Ignudi 신부님만이 장상으로서 성모기사회의 존재를 알았다. 우리 측에서는 그분의 허락 없이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순명이 표시였기 때문이니 즉, 성모님의 뜻이었다. 그래서 학장 신부님의 허락으로 1917년 10월 16일 최초의 명 회원이 첫모임을 갖게 되었으니, 즉:

 
 (1) 로마 지역의 젊은 사제인 Fr. Iosif Pal
 (2) 로마 지역의 부제인 Br. Antoni Głowiński
 (3) 파두아 지역 출신의 Br. Girolamo Biasi
 (4) 로마 지역 소속의 Br. Quirico Pignalberi
 (5) 나폴리 지역 소속의 Br. Antonio Mansi
 (6) 나폴리 지역 소속의 Br. Enrico Granata
 (7) 나


그 모임은 밤에, 비밀리 그리고 임시 벽으로 세워진 칸막이로 된 잠긴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우리 앞에는 두 개의 불 켜진 초 사이에 작은 성모상이 있었다. Girolamo Biasi 수사가 비서로서 일했다. 이 첫 모임의 목적은 “성모기사회의 계획”(MI 증명)에 관한 토론이었다. 특히 Alessandro Basile 신부는 교황(베네딕토 15세)의 고해자였기 때문에 교황성하께 성모기사회에 대한 강복을 요청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바실 신부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는 우리 대학의 교회역사 교수이자 주교이신 몬시뇰 Dominique Jaquet를 통하여 교황성하의 첫 구두(口頭) 강복을 받았다.


첫 모임이 있은 후 1년이 더 지나서, 성모기사회(MI)는 진전이 없었다. 사실 모든 종류의 어려움이 쌓여있고, 회원들은 불편했으며, 회원들 가운데에서조차 이 문제를 언급하는 것조차 어려운 지경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은 성모기사회는 쓸모없는 것이라고 다른 이에게 확신을 심어주려고하기까지 하였다. 놀라운 선거의 표시가 있었던 때는 바로 그때였으니, 성모님은 Fr. Antoni Głowiński 신부와 그리고 열흘 후 안토니오 만시(Br. Antonio Mansi)수사를 스페인 독감희생자로서 성모님 옆으로 소환하셨다. 나에게는 폐의 상태가 더 악화되었다. 매번 독감을 앓았다. 피를 흘렸다. 모든 것이 변화되기 시작한 때가 그때였다. 학교 일에서 면제를 받고난 후에, “성모기사회(MI) 프로그램”에 관한 것을 복사할 기회를 얻어 서면(書面)으로 강복을 얻을 요량으로 존경하올 제네널 신부님(Rev. Fr. General)과 도메니코 타바니 신부님(Vicar General, Fr. Domenico Tavani)께 드렸다. “만약 최소 12명이 된다면....” 이렇게 제너럴 신부님은 말씀하셨다. 신부님은 강복 내용을 쓰시고 성모기사회(MI)가 우리 젊은 수사(사제) 사이에서 전파되어야 함을 (그 경우가 바로 그런 섭리라고 나는 믿었다) 그분의 소망을 말씀하셨다.


회원들은 증가하기 시작하였고 예전 보다 훨씬 더 증가하였다. 성모기사회 초창기 시절에 -개인기도 외에 – 우리의 활동은 ‘기적의 메달“이라 불리는 성모님의 메달을 나눠주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어떤 경우, 존경하는 제네럴 신부님께서는 기적의 메달을 구매할 돈을 주셨다.”


참으로 단순하고, 겸손하며 진정으로 이러한 초자연적인 설명을 언급하는 것은 거의 신성모독에 가까울 것이다. 최초의 성모기사회원들의 관대함과 모든 덕행을 이러한 귀중한 발언으로부터 우리가 배우도록 하여야 하니 특히:


1/우리 주님과 슬픔에 잠긴 성모님의 시련과 고통에 일치된 우리들의 모든 시련과 고통에 대한 초자연적인 이해와 평가


2/성모님의 군대 효율성은 장상들에 대한 초자연적인 순명을 통하여 분명하게 드러난 성모님의 뜻에 전적으로 완전한 복종이 이루어질 때 이루어진다는 절대적인 확신


3/자신이 전적으로 무가치함을 깊이 확신하여 자신의 이름을 맨 마지막에 놓은 설립자의 겸손
 
4/성모님 그리고 오직 성모님만이 교회 안에서 거룩한 이상을 구하실 수 있고 냉담함과 미지근함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실 수 있다는 점을 이해


5/ 우리 주님 눈에 가장 크고 기쁜 모든 것은 시련, 모순 그리고 분명한 격퇴 속에서 태어나고 성장해야 한다는 체험


6/개선지회인 “천국에 있는 친구들”의 중요성: 우리가 그들에게 도움을 청할수록, 우리의 성공을 저들의 중재로 덕분으로 돌릴수록, 더욱 더 많은 복이 있을 것이란 점
 
또한 기억할 것은, 성모기사회 100주년 기념일에 각 기사들은 천국 축복의 다른 표시인 전대사를 얻을 수 있습니다.

 


굳건한 희망을 가지고 거룩하신 설립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성모기사회의 두 번째 세기를 시작합시다. 효과적으로 항상 성모님을 찾고 사랑하며 모든 곳에서 성모님을 기쁘게 하고 성모님의 뜻을 실현하도록 합시다. 


사제 강복을 받으소서.


2017년 10월 16일 마닐라,

칼 슈텔린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