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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톨릭 극단파 성비오10세회, 교황에 반기들고 나치전범 지지한 이유??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1-31





가톨릭 극단파 성비오10세회, 교황에 반기들고 나치전범 지지한 이유??

 

부탁의 말씀 인터넷에서 아직도 일부 사람들이 성비오10세회(SSPX)를 극단파, 르페브르파, 이단, 교황을 거부하는 자들, 또는 멜 깁슨이 성비오10세회 소속이라고 주장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곳 웹싸이트에 있는 글들을 읽어 보시고 정확하게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질문  인터넷에서 성비오10세회를 비난하는 것 중  하나는 가톨릭 극단파 성비오10세회가 교황에 반기들고 나치전범 지지한 이유? 라는 글로 성비오10세회가 나치 전범의 장례식을 치루려  했다고 합니다. 2014년 11월, 넬리 신부님이 한국 성당을 방문하셨을 적에 이에 대한 질문을 받으시고  답하시길, 그 소동을 직접 목격했고 그 항의자들이 “우리는 공산주자이다” 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장례식을 막았다고 합니다. 그는 오래전에 가톨릭으로 개종하였고 죄를 뉘우쳤다는데.... (그의 변호사가 몰래 언론에 정보를 흘려 그런 사태를 유도했다는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고...넬리 신부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연유로 어떤 이들은 성비오10세회가 극단주의파라고 하는데 이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답변 그 사람 이름을 찾는데 철자 때문에 시간이 걸렸습니다. (역자 주: 저 자신도 철자를 몰라서 그 사람 이름을 한글로 썼습니다) 그러나 다음 싸이트 도움으로 마침내 찾았습니다. (thanks to http://www.korean.go.kr/nkview/foreign/gp_index.html): Erich Priebke.

 

무슨 일이 있었는지 희미하게 기억납니다. 다행히도 재무담당이신 수아레스 신부(Father Suarez)님이 이곳에 (역자 주: 레네 신부님이 현재 인도에 계시네요) 저랑 같이 계시기에 더 기억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성비오10세회는 거의 관련이 없습니다. 이 남자에게 일어난 일은 전쟁 후 (전쟁 패배는 영원한 가치를 고려할 때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가톨릭으로 개종하였고, 거의 50년 가까이 아르헨티나에서 살았으며 자기를 체포했던 사람들이 용서를 안 함으로써 쫓겨 다니다가 이태리로 추방당하는데, 첫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항소를 했고 최종적으로 종신형을 언도받았습니다. 이 사람이 죽었을 때 (100살이 넘었습니다!) 정치적인 압력이 두려운 바티칸은 가톨릭 장례미사를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장례미사 부탁이 성비오10세회로 들어왔습니다. 모든 증거로 보면, 이 남자는 자신의 죄를 수십 년 전에 회개하였고 가톨릭 매장 거부를 정당화하는 그런 환경에서 죽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장례식을 해 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수아레스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장례식을 우리가 마무리했는지.... 또는 예전에 성비오10세회 사제였다가 우리 회를 떠난 사제(Fr Abrahamovicz?)가 했는지 분명하지 않다고 합니다.

 

마치 그 사람이 가톨릭 신자가 되기 이전에 행한 모든 과오를 우리 성비오10세회가 찬동하고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주는 듯이... 그리고 연로한 가톨릭 신자에 대한 장례식을 제공한다고 해서 성비오10세회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상식적이지 못합니다. 그는 개종하기 전에는 나치소속이었습니다. 개종한 후에는 더 이상 과거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에 관한 자료를 찾는 중에 위키페디아에서 최초의 기사를 찾았는데, 그 기사란 그가 사망하기 전에 그를 간략히 인터뷰한 내용이었습니다.

From: https://en.wikipedia.org/wiki/Erich_Priebke

 

한 지역의 사제로부터1948년 9월 13일 (두 번째) 성세를  받은 에리히 프리프케 [전쟁 이후 그가 티롤(Tyrol-오스트리아)에 있었을 때]는 50년간 자유인으로서 아르헨티나의 인구 10만 정도 되는 상대적으로 작은 도시인 산 카를로스 데 바리로체(San Carlos de Bariloche)에서 살았다. 첫  재판에서 “프리프케는 명령 수행에 대한 그 이유에 대해서 무죄였다...1996년 8월 1일, 법원의 명령은 프리프케를 즉각 방면하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항소가 있었고 새로 열린 재판에서는 종신형이 선고되었다. (모종의 압력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프리프케는 2013년 10월 11일 로마에서 100살로 자연사하였다. 바티칸은 정치적 압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로마의 가톨릭교회에서 그에 대한 장례식 거행에 대해 ‘유례없는 금지’를 조치하였다.


“성비오10세회는 교회법상 비정상화된 단체인데, Albano Laziale 시에서 그에 대한 장례식을 행하였다. 과거에 성비오10세회 소속 사제였고 유대인 소속인 Don Florian Abrahamowicz 는 ‘이태리 라디오 24’에서 말하길, ”프리프케는 나의 친구이자, 그리스도인이고 충직한 군인이다“라 하였다.”


“장례식 중에 파시스트 동조자와 반 파시스트 항의자들 사이에 격렬한 충돌이 발생하였다. 성비오10세회는 그 사람의 가족들이 폭동으로 인해 장례식으로 인해 들어올 수 없었기에 결국 마지못해 이를 하였는데...”

 

그의 마지막인터뷰입니다: https://carolynyeager.net/final-interview-erich-priebke-july-2013
From: https://en.wikipedia.org/wiki/Erich_Priebke

 


질문: " 모든 이러한 일들이 반 유대주의를 정당화하는가?"


답변 "유대인의 고리대금업이 유대인이 올바르지도, 명예롭지 않은 유대인이라는 뜻은 아니다. 반유대주의란 무조건적인 증오를 품는다는 라고 한 방금 말한 내 말을 반복한다. 심지어 나를 박해한 오랜 세월 동안 나는 나의 자유를 박탈당한 늙은이로서 항상 증오를 거부하였다. 나를 증오하는 그런 사람조차도 나는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이 마지막 인터뷰를 보면 이 남자는 반유대주의를 거부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초창기에 죄를 저지른 이후에 수십 년간 그를 추적한 사람들조차 용서함으로써 그는 그리스도인의 덕행의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비오10세회는 정치와 결부되고 있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영혼구령에 관심을 기울이고 교회와 관련하여 평화 가운데 죽은 가톨릭 신자들에 대한 매장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저 남자의 이야기로부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가톨릭의 자비입니다. 특히 아르헨티나는 (독점적으로 한건 아니지만) 히틀러 정권 당시에 박해받는 유대인들을 받아들였고, 교회는 이들 유대인들을 도와주는데 탁월했습니다. 여권 발급과 회개한 과거의 나치범죄자를 도와주었는데... 아르헨티나로 간 많은 유대인과 나치 관련자들이 상당히 있습니다. 그들 중 상당히 많은 이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였고 (복음서에 나온 간통한 여인의 회개처럼) ‘더 이상 죄를 지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프리프케를 박해한 사람들은 아르헨티나에 사는 유대인들이 아니라 몇몇 미국인이라는 것은 상당히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가톨릭 국가인 아르헨티나에서는 다 같이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이런 바닥에는 용서라는 덕행과 힘이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악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진정한 회개와 용서로서,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하고 그러고야 비로소 함께 갈 수 있고 평화 속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Sincerely yours in Jesus and Mary,
Father François Laisney
 


Q   In the Internet, one of the criticisms against SSPX is to reproach SSPX's favor of the funernal of 에리히 프리프케? (former NAZI military officer) in 2013.

A few years ago, when Father Nely visited our chapel, he was asked concerning his funeral. He said that at that time Father Nely saw the disturbances in naked eyes. And the protestants were exclaiming "we are communists..."

The father said that he(에리히 프리프케) had converted into the Catholic Church...he was very regretful of his past sins....

 

So, concerning this case, some people say that SSPX is a Extreme Group, supporting NAZI.
 
  It took me some time to find the name of the person, because of spelling. But I finally found it (thanks to http://www.korean.go.kr/nkview/foreign/gp_index.html): Erich Priebke.

I vaguely remember what happened. Fortunately Father Suarez, our bursar general, is here (in India) with me and remembered more. Basically, the SSPX was very little involved. What happened is that this man, convert to the Catholic faith after the war (defeat can be useful to think of eternal values…), who had been living for close to 50 years peacefully in Argentina, had been sought after by unforgiving people who had him arrested, deported to Italy, tried – he was acquitted at the first trial – then they made an appeal, and had him finally condemned to life-sentence. When that man died (passed 100 years of age!), out of fear of political pressures, the Vatican refused any Catholic funeral Mass. Then the SSPX was approached to offer the requiem Mass. From all evidence, he had repented from his crimes years ago and had not died under circumstances that would justify refusing a Catholic burial. I do not know who exactly asked us to do the funeral; from Fr Suarez, it is not even clear whether we ended up doing it, or whether it was a priest who WAS before in the SSPX but who had left us who did it (Fr Abrahamovicz?)

 

It does not make sense that people who criticize the SSPX for offering a funeral for an elderly Catholic man, as if it implied that we would approve all he had done BEFORE he became Catholic! He had been a Nazi, before his conversion; he was no longer one after his conversion! In searching about him, I found first the article in Wikipedia, that gives a few facts and then an interesting interview of him shortly before his death.

 

Erich Priebke “received on 13 September 1948 a (second) baptism by a local priest”, [when he was in Tyrol after the war]. Then Priebke lived in Argentina as a free man for 50 years, in San Carlos de Bariloche, a relatively small city of about 100,000 inhabitants.


At the first trial, “Priebke was found not guilty, for the reason of acting under orders… On 1 August 1996, orders were given for the immediate release of Priebke.” Then there was appeal, new trial, condemnation to life sentence. Priebke died in Rome on 11 October 2013 at the age of 100, from natural causes.


The Vatican issued an "unprecedented ban" on holding the funeral in any Catholic church in Rome.
“The Society of St Pius X, a canonically irregular Catholic group, offered to hold the ceremony in the city of Albano Laziale. Don Florian Abrahamowicz, an ex-SSPX priest and of Jewish origin, told Italy's Radio 24: "Priebke was a friend of mine, a Christian, a faithful soldier."”


“During the funeral service, violent clashes broke out between fascist sympathizers and anti-fascist protesters. The SSPX ceremony eventually took place, albeit without the presence of any relative, since the family was unable to enter due to the rioting.”
 

From his last interview: https://carolynyeager.net/final-interview-erich-priebke-july-2013

From: https://en.wikipedia.org/wiki/Erich_Priebke

 

https://carolynyeager.net/final-interview-erich-priebke-july-2013
From: https://en.wikipedia.org/wiki/Erich_Priebke

 

Q  Do all these things justify anti Semitism?
A No, Jewish usury does not mean that there are no upright and honourable Jews. I repeat what I just said: anti-Semitism implies unconditional hatred. Even during the long years of my persecution I, an old man deprived of my freedom, always rejected hatred. I choose not to hate even those who hate me.

 

From this last quote, it is evident that this man rejects anti-Semitism, and by forgiving those who have been pursuing him even years after his early crimes shows quite a good display of Christian virtue.

 

The SSPX is not involved in politics. We care for the salvation of soul of all people, and refuse not Catholic burial to Catholics who died in peace with the Church.

 

From the story of that man, there is one thing that is clear: Catholic charity. Argentina in particular (not exclusively) has been quite open to receive BOTH persecuted Jews during Hitler’s regime, and the Church was prominent in her help to these Jews, obtaining passports, etc. and to past, repentant former Nazi criminals: there is a good number of them who went to Argentina! There is a good number of them who converted to Catholicism, and “sinned no more” (like the repentant adulteress of the Gospel). It is quite worthy of notice that it was not Argentinian Jews who pursued Priebke, but some Americans. In Catholic Argentina these people lived peacefully together! At the bottom of this, there is the value and power of FORGIVENESS: one does not deny the evil of the past, but with true conversion and forgiveness, one overcomes evil by good, and then can go on and live in peace together.

 

Sincerely yours in Jesus and Mary,
Father François Lais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