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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현대주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2-10



현대주의


현대주의의 정의(定義)

현대주의를 정의(定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교황 성 비오 10세께서 성 바오로 출판사에서 간행한 회칙 'Pascendi' 중 제39문단에서 정의한 바를 보면 다음과 같다. "현대주의는 이단을 모조리 합쳐 놓은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신앙에 어긋나는 오류란 오류는 있는 대로 다 모아서는 그 내용을 응집시켜 사람들 가운데 주입시키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것을 현대주의자보다 더 잘 해내는 사람이 없었느니라."


또 다른 정의는 1864년에 교황 비오 9세가 '오류에 관한 교서요목(The Syllabus of errors)'에서 마지막 명제를 사용하여 견책한 것에서 발견할 수 있다. "현대주의는 가톨릭교회를 진보주의, 자유주의 그리고 현대문명과 타협 절충시키려고 하는 이단이니라."
 
요약하면, 현대주의가 교회를 세속의 정신으로 변화시키려 애쓰는 반면, 가톨릭교회는 세상을 우리 주님의 가르침으로 변화시키려 애쓴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대주의는 철학과 지성에 감염된 질병인 셈이다. 즉, 가톨릭 신앙의 모든 신덕도리를 자연스럽게 바꾸다 보면 지성과 도덕성이 자멸하게 된다. 신앙이 전반적으로 파괴되고 나면, 종교적인 감정을 애매하게 표현하는 것밖에 남지 않게 된다. "현대주의는 무신론으로 인도함은 물론 종교라면 무조건 모두 없애 버리도록 유인하는 것이니라."(Pascendi, 39).
 
현대주의의 큰 위험은 이단적 도당이 다른 곳이 아닌 가톨릭교회의 내부에서부터 공격한다는 사실에 있다. "현대주의 도당은 교회의 드러난 적 가운데서 뿐만 아니라 그 중심부에서도 발견할 수 있으니, 유해한 것일수록 드러나지 않는 까닭에 그 같은 사실을 가톨릭 평신도에 속한 많은 이, 더 애석하게는 사제단 계층에 속한 많은 이에게 전언함이로다."(Pascendi, 2 )... "위험은 교회의 바로 핵심에 존재하는 즉, 그 피해는 교회에 관하여 저들이 더욱 근본적으로 인식한다는 바로 그 사실에서 기인하니라."(Pascendi, 3).

 
교회의 비난

현대주의의 뿌리가 되는 관념은 바로 다름 아닌 프랑스 혁명과 미국 혁명의 '자유-평등-박애'라는 프리메이슨의 관념으로, 로마 교황은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서 견책 어린 선언문을 여러 차례 발표했었다. 교황 성 비오 10세는 1907년 7월 3일, 교령 '라멘타빌리 사네(Lamentabili Sane)'로써 처음으로 현대주의를 견책했고, 다음 1907년 9월 8일에는 로마 교황의 무류한 진술이라고 할 만한 회칙 서한 '파셴디 도미니치 그레지스(Pascendi Dominici Gregis)'로써 견책했다.
 
현대주의의 근원

성 비오 10세께서 말하시기를, "치료의 가능성마저 결정적으로 꺾어버리는 사실이 있으니, 현대주의자의 이론으로 말미암아 권위란 권위는 모조리 멸시하는 까닭에 속박을 도무지 참지 못하는 정신적인 성향을 지니게 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 또한 실제로는 교만과 고집의 결과에 불과한 그릇된 양심에 의지하면서도 진리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하는 듯이 보이게 함이라."(Pascendi, 3). "현대주의의 가장 가깝고도 즉각적인 원인은 정신의 오류로다. 멀리 있는 원인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으니, 호기심과 교오가 바로 그것이니라."(Pascendi, 40). 따라서 교오함으로 인하여 현대주의를 향해 문을 열어주는 완고함, 고집, 불순종, 호기심 그리고 영적인 맹목이 초래된다.
 
정확히 말해서 현대주의는 둘째가라면 서럽다 할 지성에 감염된 질병으로, 다시 말해서 거의 회복시킬 수 없는 두뇌 손상의 유형에 속한다. 현대주의자는 자신의 뇌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 지성이 사라지면 인간은 벌써 감각을 따르기 쉽게 됨으로 해서 그 노예가 되기 마련이다. 그런 질병의 이름은 현대주의의 참된 뿌리인 주관론이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르침에 의한 몇 마디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우리의 영혼에는 두 가지 힘이 있으니, 바로 지성과 의지이다. 지성의 객체는 진리인즉, 이는 천주께서 우리에게 지성을 주셔서 진리를 찾도록 하셨음을 뜻한다. 의지의 객체는 선(善)인즉, 천주께서 우리에게 의지를 주셔서 진리를 얻고 그것을 소유할 수 있는 최상의 길을 찾도록 하셨음을 뜻한다.


지성과 의지를 사용할 것에 대비하여 항시 대기 중인 객체는 우리 자신의 밖에서, 단독으로, 독립하여 존재하고 있으니 그 중에서 객체가 우선하고, 지성과 의지는 그 객체에 종속돼야 한다. 언제나 가톨릭교회의 전통교리인 이 같은 철학 이론은 객체가 우선하는 까닭에 객관론이라 한다.


지성과 의지가 제 각각인 여러 사람에게 있어서, 객체가 우선하므로 객체는 언제나 같다. 우리가 추구하는 그 객체가 천주님이라면 각자는 천주님이라는 똑같은 인식 대상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즉, 진리는 개념에서 독립하여 단독으로 존재한다.
 
현대주의자는 이상과 같은 식으로 두뇌를 쓸 줄을 모른다. 그런 자에게는 주체가 우선한다. 지성과 의지를 가진 인간이 객체로부터 독립하여 우선한다고 하는 까닭에 객체가 주체에 종속된다. 주체가 우선하는 그릇된 그 같은 이론을 주관론이라 한다.


지성과 의지가 제 각각인 여러 사람에게 있어서, 각자에게는 주체가 우선하는 까닭에 객체에 관하여 다양하고도 개별적인 시각을 가질 게 뻔하다. 그에 따라서 인간은 진리란 다름 아닌 독립적이 아닌 의존적인 존재로,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주관론은 우리 영혼 안에서, 진리 및 온갖 인식의 객관성을 말살시킨다. 그런 그릇된 철학은 데카르트(1596-1650), 나아가 특히 에마누엘 칸트(1724-1804)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위험한 철학이 현대주의자를 감염시켜서 우리 신앙의 기반을 완전히 갉아먹어 버렸다. 만일 진리가 천주께로부터 비롯되지 않고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라면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그 어떤 초자연성도, 계시도, 천주님도, 초자연적인 영혼도, 어떤 법규도 필요 없게 되는 셈이니, 이로써 지성(知性)의 혁명이 완결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천주를 흠숭하지 않고 자신을 숭배하는 것이다!


그런 주관론은 세 가지 주요 이단으로 유인한다. 불가지론, 우주 내재주의, 진화론이다.
 
불가지론

만일 진리가 존재하지 않거나 객체와 독립해 있어서 개인의 마음속에만 존재한다면, 우리의 지성은 진리를 이해 납득할 수 없음으로 해서 확신할 수 있는 것이란 게 도무지 없다. 따라서 객관적인 진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셈인즉, 누구든 천주의 존재를 확신하지 못함을 넘어서 천주님이란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함으로 해서 천주님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그저 각자의 마음속에 상상화로 있을 뿐이게 된다.
 
"불가지론이라는 이론에 따르면, 인간 이성은 스스로를 천주께로 들어올려 당신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다고 하는지라. 천주께서는 결코 과학의 직접적인 대상이 될 수 없는 데다가 역사의 주체로 여겨져서도 아니 된다고 하는도다... 과학과 역사는 무신론이어야 함에 따라 그 범위 안에서는 현상 외에 그 어느 것에 대한 여지도 남겨 두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니라."(Pascendi, 6).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1870년 제1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만일 누구든지 우리의 창조자이시고 주님이신 하나이신 참 천주를, 그 지으신 바로써 인간 이성의 당연한 빛에 의해 확실히 알 수 없노라고 말한다면, 그는 파문을 받을진저."
 
"만일 누구든지 천주 및 천주께 드리는 흠숭에 관하여, 인간이 천주께서 주신 계시를 중재로 하여 알 수 없다거나 마땅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는 파문을 받을진저."
 
"만일 누구든지 천주께서 주시는 계시가 외적인 표시로는 확실치 않아서, 인간이 신앙에 이끌리는 것은 개인의 내적인 경험이나 사적인 영감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고 말한다면, 그는 파문을 받을진저."(Pascendi, 6에서 인용됨)
 
우주내재주의

만일 진리가 객관적이 아니고 오직 주관적인 것일 뿐이라면, 그것은 인간이 마음 안에 자신만의 진리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우주내재주의 이론이다(라틴어의 '인(in)'과 '마네레(manere)', 즉 '내부에 남아있음'에서 유래함).
 
성 비오 10세의 말씀에 의하면, 현대주의자의 우주내재주의에 관한 이론은 다음과 같다. "치명적인 우주내재주의에 따르면, 모든 종교의 바탕이면서 기초가 되는 신앙은 신성함을 요구하는 데 근원이 되는 확실한 내적인 감각으로써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니라."(Pascendi, 7)... "이러한 종교적 자각이 계시와 대등한 발판 위에 놓여야 한다는 것이로다."(Pascendi, 8)...


"치명적이라 할 우주 내재주의의 작용을 통하여 잠재의식의 은신처에서 빠져 나온 종교 감각이 모든 종교의 근원인즉, 어떤 종교에든지 이상과 같은 모든 것에 대한 설명이 그 해결책이라고 하는지라. 종교는 이런 종교 감각의 발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니, 가톨릭교는 그리스도를 의식함에 있어서 치명적인 우주내재주의라는 과정을 통해서 발생되었다고 하는도다."(Pascendi, 10).
 
이상과 같은 우주 내재주의의 전형적인 예는 성령강림(Pentecostal) 운동과 카리스마파(Charismatic) 운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진화론

이상과 같은 주관론으로 인하여 진리가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로써 환경에 따라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진화론자는 영원한 원칙을 이해하는 데 자신의 지성을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고 할 수 있다.
 
"현대주의자들은 신덕도리라고 하는 신앙 고백문이 시간의 변천에 대해 주체적이어야 함에 따라 쉽사리 변해야 한다고 하는 도다."(Pascendi, 12)... "신덕도리가 진화되어 바뀌어야 한다고 하고, 종교적 신앙 고백문은 종교 감각에 의한 삶을 살고 있고 또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하며, 이들 신앙 고백문이 살아있는 것이려면 신앙과 신자에게 적응되어야 함은 물론 또 적응된 대로의 상태여야 한다고 하나니. 만일 어떤 이유로든지 그 적응된 대로의 상태를 중지해야 한다면, 우선적인 의미를 잃게 된 까닭에 결국에는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로다."(Pascendi, 13).


진화론이라는 이론를 받아들이는 경우,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이 변한다면 영원하시고 불변하시는 천주님을 도무지 용납할 수 없게 되고 만다. 따라서 천주님 안에 진화가 존재한다면 진리란 더 이상 존재치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모든 게 다 진화하는 꼴이니 어저께는 진짜였던 것이 오늘에 이르러서는 진짜가 아니고, 오늘 참된 것이 내일이면 참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현대주의자의 정신

"현대주의자에게 있어서 크나큰 열망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교회의 권위와 신자의 자유 사이에 타협책을 찾는 것이니라... 권위가 교회와 같아짐으로써 그 근원이 종교적 양심에 있게 되고, 그렇게 해야 권위에 대하여 주체적이라는 것인즉... 인류의 양심 안에 내적인 갈등을 일으키기를 원치 않는다면, 교회 조직의 권위가 민주주의의 틀을 채택해야 한다고 하니라"(Pascendi, 23). "현대주의자 집단에 속한 이 모두, 자기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믿을 수도 있고, 믿지 않으려 거부할 수도 있다고 하는 도다."(Pascendi, 36).
 
몇 가지 표시로써 현대주의자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 있다.
 - 어떤 형태로건 신성함 혹은 교회 조직의 권위에 대하여 엄청나게 교만하거나 경멸하는 빛을 보임. "교만이 마치 자기 집이라도 되는 듯이, 현대주의 안에 자리를 틀고 있나니. 저들이 스스로를 모든 것의 규범으로 여기고, 짐짓 그런 체하는 자신감으로써 현대주의자를 채워주는 것은 교만이로다. 저들이 스스로를 유일하게 지식 있는 자로 여기게 하여 주제넘게도 "우리는 다른 인간과는 다르다"고 말하게 하고, 의기양양하게 하며, 우쭐거리게 만드는 허영심으로 득의양양해하는 것은 교만이니라. 저들 안에 불순종의 정신이 생기게 하여 권위와 자유 사이의 타협을 요구하게 하는 것은 교만이로다. 저들이 자기 자신을 개혁해야 할 것을 망각한 채, 다른 것의 개혁자이기를 추구함은 교만에서 기인하니라. 실로 교만처럼 그토록 직접적으로 그리고 그토록 빨리 현대주의로 인도하는 길은 없음이로다."(Pascendi, 40).


- 색다른 것,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 정신에 대하여 다스리지 않아서 마구 발산하는 열정.


-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 및 신학에 대한 무시와 혐오. "현대주의자들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학문을 무시함으로 해서 스스로 사고(思考)의 혼란을 느낌은 물론 자신의 궤변을 논박할 수단을 스스로 없애 버렸나니. 인간이 현대주의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표시는 스콜라 철학에 의한 방책을 싫어함이니라."(Pascendi, 41, 42).


- 성경을 교회 교부들의 해석을 모델로 삼아 전통적인 방법으로 해석하기를 싫어함 및 성전(聖傳)이라면 어떤 것도 싫어함.


-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을 노골적으로 싫어함.
 
현대주의자는 독자를 기만하는 모순의 주인이다. "저들의 책을 보면, 가톨릭 신자들이 용인할 만한 것도 좀 읽을 수 있지만, 종잇장을 넘겨보면 합리론자가 조종하는 또 다른 것에 맞닥뜨리게 되니라."(Pascendi, 18).


현대주의자는 역사 속의 그리스도(성금요일에 죽으신)와 신앙적인 측면의 그리스도(상존성총으로써 우리 영혼 안에서 생활하시는)를 구분하려 한다. 현대주의자는 가톨릭 교회에 대하여, 양심의 집합체에 해당되는 열매 및 순전한 상징에 지나지 않는 성사로 보려 한다.


현대주의자는 교회와 정치의 분리를 주장하고, 평신도를 교회 발전의 필수요소로 만들며, 도덕률에 관해서는 적극적인 덕이 소극적인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는 미국중심주의자들의 원칙을 채택한다.
 
세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위한 구제책

첫째는, 연례적인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 미사성제, 고백성사와 성체성사를 규칙적으로 이용하는 강력하고도 영적인 생활이다.


둘째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 및 신학을 통해서 바르게 생각하는 법을 다시 배우는 것이다. 최근에 안젤루스사(The Angelus Press)에서 발행한 서적, 캐롤 로빈슨(Carol Robinson)의 <토마스 아퀴나스와 함께 하는 나의 생활(My life with Thomas Aquinas)>을 읽어라.


셋째는, 전통을 지키는 가톨릭 사제의 충고를 유순하게 따름으로써 순종과 겸손지덕을 실천하는 것이다.


넷째는, 가톨릭적인 신념에 따라 사는 것이다. 생각하는 방식대로 살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사는 방식에 맞추어 생각하게 되리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당신의 티 없으신 모친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