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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텔레비전(컴퓨터, 스마트폰)에 관하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2-04




텔레비전(컴퓨터, 스마트폰)에 관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누 만일 완전한 자 되고저(나를 따르고저) 하거든, 자기를 끊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지니,"라고 하셨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기에 가톨릭교회는 마음을 끄는 부분이 없는 것 같지만, 곰곰이 생각할수록 매력적이다. 좀 더 쉬운 길이 없나 하고 두리번거리게 함으로써 서서히 갈바리아의 십자가에서 우리를 떼어내고자 하여 마귀는 기를 쓰고 유혹한다. 마귀는 보는 순간 즉시 마음이 끌리는 그러면서도 조금씩 마음을 사로잡는 것을 주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텔레비전(컴퓨터, 스마트폰)이다. 전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한 텔레비전(컴퓨터, 스마트폰)은 매력 덩어리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텔레비전, 컴퓨터, 스마트폰으로 인한 정신의 동공화가 점점 심해지는 까닭에 칠천마귀가 지옥으로부터 풀려 나와 정신 속으로 마구 헤집고 들어온다. 이상의 이유만으로도 온 힘을 다해서 가공할 발명품을 물리칠 명분이 충분히 서고도 남지 않겠는가. 그러니 “텔레비젼, 컴퓨터 스마트폰에서 빠져나와야 할 수밖에."
 
텔레비전(컴퓨터, 스마트폰)의 위험성:이들이 어째서 그토록 위험하다는 것인가?
 
1. 텔레비전(컴퓨터, 스마트폰)은 지성 중에서도 추상력을 파괴시킨다.

우리의 영혼은 지성 및 의지를 이용하여 천주를 알고 소유할 수 있는 은혜를 받은 정신적 주체다. 지성의 객체는 진리인즉, 지성 속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과 허상으로 존재하는 것 사이의 균형을 이루기만 한다면, 우리는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지성에는 오감을 통하여 가치 있는 정보를 받아들이고 걸러내며 기억 속에 저장된 내적인 형상을 보존하려는 속성이 있다. 이를 '추상작용에 의한' 개념 지식이라고 한다.


이것들은 그런 추상작용을 두 가지 방법으로 파괴시킨다. 첫째, 마음을 통한 영상의 흐름이 너무 빨라서 지성이 그것들을 걸러낼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것과, 둘째는 영상의 속도감으로 인하여 사실상 사고력이 일시 중지된다는 것이다. TV, 컴퓨터, 스마트폰은 광범위하고 또 통제가 불가능한 오락이다. 따라서  아편으로 작용하는데, 육체보다도 인간의 정신에 강력하게 작용하는 마취성이 있음을 어렵지 않게 증명할 수 있다. 그것은 진통제다. 어떤 진통제는 상처를 마비시키거나 완화시키고, 어떤 것은 뇌의 신경 중추에 고통이 전달되는 것을 차단한다. 일반적으로 마취제의 효과는 뇌에 작용함으로써 발생한다. 인사불성, 일종의 수면, 뇌의 둔화를 가져옴으로써 고통이 머무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TV, 컴퓨터, 스마트폰은 대해서 말하건대, 그와 똑같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불행한 결혼을 행복하게 바꿔주거나 지루한 일을 창의적이게 해주지 못한다. 희망 대신에 건망증 내지는 몽상을 불러일으킨다. 실제의 세상은 TV, 컴퓨터, 스마트폰 화면과는 달리 끝없이 지루해 보인다. 보통 TV, 컴퓨터, 스마트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 화면에 매일 이끌리는 것은 마약 상용자가 피하주사 바늘에 이끌리는 것과 같다. 느리기는 해도 TV(컴퓨터, 스마트폰)이 사람을 식물인간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들은 앉아서 불교신자가 그 '열반'이라는 것에 사로잡히는 것과 같이 무념무상이라는 상태에서 아무 것도 생각지 않는 채로 그저 멍하니 앉아서 끝없이 시청할 뿐이다.


TV, 컴퓨터, 스마트폰이 아편이라면, 화면이 있는 그런 상자 역시 본질적으로 악한 것이다(때때로 고무적인 성격을 지닌 좋은 프로그램이 있다 해도). 본질적으로 악하다는 것은 완전히 악하다는 것하고는 다르다. 완전히 악한 것은 하나도 없다. 악한 것은 항상 착한 무엇인가로 될 필요가 있다. 마귀조차도 그 자체로는 완전히 악하지 않다. 다시 말해서 그의 천사적인 본성은 선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비인간화된 사회에서 각성제가 필요하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사람들에게 작용하는 TV, 컴퓨터, 스마트폰의 최면 효과는 일부 비인간화된 천주님을 무시하는 노동 생활의 결과다. TV, 컴퓨터, 스마트폰에 의한 영혼의 추상력 파괴, TV, 컴퓨터, 스마트폰의 선정성, 화려함과 유치함은 자제심과 분별력의 온전한 발달을 저해한다. TV, 컴퓨터, 스마트폰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게 하면서, 즐겁고 편안한 현실 도피처를 제공한다.


추상력의 파괴는 어리석음과 나태로 이끈다. 오래 전에 체스터톤이 당시의 사람들에 대해 지적하기를, 알려야 할 것과 알려야 할 것을 전파하는 능력 사이에는 반비례 관계가 있다고 했다. 훌륭하거나 중요한 생산품에 관한 소식은 주부에게서 주부에게로 재빨리 퍼져나가는 반면, 악하고 불필요한 정보는 일부러 널리 퍼뜨리는 것을 필요로 한다. 크게 외쳐 격려해야 하는 경우는 알릴 만한 것이 거의 없거나 아주 없을 때뿐이다. TV, 컴퓨터, 스마트폰은 세상의 덧없음을 증명해 준다. 두뇌를 사용하기를 거부하는 게으른 사람을 위한 고안품이다. 두뇌를 사용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죄에 해당된다. 혼자서 생각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 있는 경우, 다른 이가 그를 대신해서 생각해 주는 한 편으로,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위험하고도 사악한 생각들을 집어넣는다.


영혼에 손해를 끼치지 않게 하면서 현대의 기술을 잘 활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덕이 요구되는지 모른다! 인간이 기술을 소유하는 것 자체를 악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즉, 기술이 인간의 정신 세계에 최면을 걸어 인간을 소유하고 그 정신 기능을 둔화시키는 동시에 한 가지 혹은 여타의 방법을 이용해 노예로 만드는 것이 악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원죄의 굴레 아래 있지만 않다면, TV, 컴퓨터, 스마트폰은 받아들일 만하다. 그러나 원죄에서 비롯된 나약함, 악의(惡意), 색욕과 무지 때문에 버려져야 한다.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몇 시간이고 이것을 시청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자연론의 결과인 동시에 원죄 및 그 결과를 부인하는 것으로, 의견(분별)에 있어서 중대한 오류에 속한다. 우리 마음은 너무도 나약한 까닭에 TV, 컴퓨터, 스마트폰의 프로그램을 조종하는 방송망의 세뇌 기술을 당해내지 못한다.
 
2. TV, 컴퓨터, 스마트폰은 추한 것을 정상적이고 타당한 것으로 여기도록 몰아 부친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짜는 데 있어서, 지성작용의 결여는 만화 영화에서 특히 뚜렷하다. 추악한 영화에 많이 노출된 어린이는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을 잃게 된다. 영혼은 지혜라는 선물을 이용하여 아름다움을 사랑하게 돼야 하는데, 아름다움의 근원이신 분은 오로지 천주뿐이시다. 대죄 중에 사는 이들은 천주님의 신성한 자비를 잃은 상태이므로 결국 성신의 은혜마저 잃은 상태다. 지혜가 사라지면 추악한 것들 및 온갖 추악함의 뿌리인 마귀에게로 이끌리게 된다. 추한 것을 사랑하는 이는 뇌를 올바로 사용하지 못한다. 얼이 빠져 있거나 대죄의 상태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3. TV, 컴퓨터, 스마트폰은 불경스러움, 불순함과 폭력을 유발한다.

가톨리시즘의 원수는 미디어를 통제하여 우리의 뇌 속에 세속의 정신(육신, 육안, 자만심을 충족시키는 정욕)이라는 독극물을 조금씩 쏟아 넣는다. '이스라엘 기성 지식인의 의정서(Protocols of the Learned Elders of Zion)'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우리는 이방인(기독교도)의 젊음을 속여 빼앗았고, 곤혹케 하였으며 타락시켰도다!" 속고 기만당하며 타락하고 싶은데, 그 가장 좋은 방법을 찾으라면 그것은 TV, 컴퓨터, 스마트폰 앞에서 몇 시간이고 앉아 있는 것이다. 
 
4. TV, 컴퓨터, 스마트폰은 가정생활을 파괴시킨다.

예를 들어 집안에 TV를 두면, 기도할 시간이나 서로 간에 이야기할 시간을 더 이상 확보할 수 없다. TV가 가정의 중심, 누구든지 숭배해야 할 새로운 신이 되고 만 것이다. 성가정은 모름지기 천주님을 중심으로 삼아야 하는 즉, 십자가가 온 가족의 생활을 비추는 중심이 되어야 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TV, 컴퓨터, 스마트폰에 푹 빠져 생활하는 가정에 항구한 수도성소가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거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반론 
계속해서 TV(컴퓨터, 스마트폰)은 세트를 둘 핑계를 찾고 있는, 자유주의 가톨릭인들이 제기하는 반론 중 TV에 대해 가장 빈번하게 듣게 되는 몇 가지에 답해야겠다.
 
1. TV는 선용되거나 혹은 악용될 수 있는, 이용하기 나름인 훌륭한 기계로 교황 비오 12세도 TV를 좋게 평가했다.

답: 그 자체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를 보면 그 상황으로 보건대, 이제는 틀린 말이 되었다. 오늘날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원수가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TV야말로 가장 가까이 놓여 있는 자발적인 대죄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기회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은 본질적으로 주제넘음이라는 대죄인즉, 우리는 구세주의 성혈 공로를 힘입어 활동하기 때문이다. 이는 가정에 어린 자녀들이 있는 경우에 더 그렇다.
 
2.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하고 또 은수자로 산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므로, 뉴스를 본다.

답: 그렇다면 가장 악한 것을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뉴스 매체는 원수의 통제를 받고 있으며, 뉴스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거의 다 거짓이다. 다른 자료를 통해서 정보를 얻을 일이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든 것(바로 지금 보르네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와 같은 것)을 다 알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각자의 위치 및 의무 상태에 따라 정말로 알아야 할 것만을 알면 된다. 실질적인 면에서 부차적인 것에 노심초사하지 말고, 정말로 중요한 문제를 걱정하라.


현대인은 보르네오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는 잘 알면서 가톨릭 교리는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뉴스의 세뇌를 피할 수 있다 해도 광고가 그대들을 그냥 놓아두지 않는다. TV 세트를 가정에 둠으로써 다른 쇼를 보고 받아들여도 괜찮다고 하거나,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해야 하는 경우 그 한계를 넓히려는 유혹 또한 그냥 내버려두기 쉽다. 그렇게 하는 것은 자신을 극히 위험한 비탈길에 두는 것과 같다. 선의 탈을 쓴 유혹을 경계하라. 마귀나 세속이 양의 탈을 쓴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것이다.인간은 모든 것을 다 알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천주를 찬미하고 흠숭하며 섬기고 그럼으로써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3. TV가 없다면, 사람들이 조롱할 것이다. 게다가 심리학자들은 TV 세트가 이웃 아이들에게는 있는데 내 아이에게만 없다면, 내 아이가 고통을 당하리라고 하지 않는가.

답: 그런 도전에 자발적으로 맞서 싸운다면, 그로써 세상을 현재의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는 청년을 교육시키는 데 필요한 열매를 얻을 것이다. 그런 노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실체는 바로 성사다. 가정생활은 일치되어 있고 건전해야 하며 자녀의 마음을 끌어들여야 하고, 그렇게 해서 천주의 도우심을 힘입어 선이 악을 압도하게 되는 법이다. 다음으로 그런 교육사업을 통해야만 장차 세상에서 악마를 몰아내려는 의지를 성총에 합할 수 있는 세대가 양성될 수 있다. 우리 주님을 부끄러워하면, 심판의 날에는 주께서 그대들을 부끄러이 여기시리라. 평화주의의 유혹은 능수 능란하다. 우리는 온 사회를 지배하시는 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우려는 싸움에 있어서 싫증을 내기 쉽다. 싸우기를 두려워하고 자녀에게 좋은 표양을 보이기를 두려워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보속을 행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너희가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아 미지근하니 내 입에서 너희를 뱉어 버리리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회와 그 가르치심을 정말로 사랑하는가?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걱정하지 말고, 천주님이 나를 어떻게 보실까 하여 두려워하라. 신앙을 잘 간직하고 싶은가?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천주님의 법에는 도통 관심이 없으니, 신앙을 간직할 수 있는 최상의 방책은 대부분의 경우, 그런 사람들이 가르치는 것과는 정반대로 하는 것이다.
 
4. 나는 신앙이 강해서 유혹에 빠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답: "그러므로 스스로 서있다고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할지어다"(고린도전 10, 12).

솔로몬 왕이 늙어서 간음에 빠지는 바람에 천주님의 은총을 잃고 말지 않았던가.

진짜 가톨릭인들이 TV를 거부하여 좋은 표양을 보여야 한다. 처음부터 단호했더라면, 오늘날 자유주의에 그토록 깊숙이 빠지지는 않았을 것을.
 
5. 자녀를 지나치게 보호하는 것은 좋지 않다. 과잉 보호한다면, 18세가 되자마자 가정을 떠나버리고 말 것이다.

답: 자녀를 죄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그대 의무다. 그대들이 행하는 모든 것의 뒤에서 천주께서 활동하시고 있음을 깨닫는 날, 그대들을 신뢰하게 되는 날, 그대 안에 항구하게 완전함의 모델인 바윗돌 같은 굳셈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날, 부모의 뜻을 통하여 천주의 뜻이 내비치어진다는 것을 자녀가 이해할 것이므로, 가족들을 한 곳으로 모아줄 것이 틀림없다. 반드시 TV를 치우고 그 자리를 사랑과 가족으로 채워야 할것이니.


죄는 죄에 지나지 않으니, 성가정에서는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자녀에게 강력한 가톨릭다운 소신을 보여준다면, 그리고 천주의 성총을 힘입어 인격적인 표양을 도구로 삼아 설교한다면, 그들은 성총지위를 보존할 것이다. 프랑스의 블랑슈 드 까스띨 여왕이 매일같이 그 아들 성 루이에게 말한 것을 명심할진저. "나는 네가 대죄 하나를 범하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네가 내 발치에서 죽는 것을 보겠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참지 못하심으로 해서 성금요일에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하지 않으셨느냐 말이다.
 
6. TV에서는 때때로 좋은 것을 방영한다. 그런 좋은 프로그램 때문에 TV를 그대로 놔두는 것이다.

답: 이는 선의 탈을 쓴 유혹에 지나지 않는다. 어부가 물고기를 잡으려면, 낚시바늘에 좋은 먹이를 끼워 작은 물고기를 속인다. 물고기가 덫을 미처 보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어부의 튀김냄비 속에서 생을 마감할 게 뻔하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선의 탈에 속은 영혼은 마귀의 튀김냄비 속에서 인생을 끝낼 것이다.
 
7. 나는 TV를 좋은 비디오를 보는 스크린으로만 활용하니까 괜찮다.

답: 마귀는 사람들이 TV를 그대로 두는 핑계를 대게 하려고 비디오를 이용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는 VCR을 그대로 놔둔다는 것이 사악하고도 외설적인 영화를 너무나도 쉽사리 접할 수 있게 하고 또 지속적으로 시청하게 만드는 유혹거리를 남겨 두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VCR이라는 기계는 TV로 다시 활용하는 기회가 되기 쉬움은 물론 이른바 '좋은' 비디오라는 것의 범위를 느슨하게 풀어주는 기회가 된다. 아무라도 일상 생활에서 자발적인 대죄의 기회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도록 지속시킬 권한이 없다.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다. 어느 것이 더 완전하겠는가? 천국으로 가는 가장 손쉬운 길을 찾으려 함으로써 신성한 주님을 놀리는 일을 그만둬야 할진저.
 
8. TV는 탁월한 베이비시터다.

답: 자기 의무를 다하라.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베이비시터(보모)라는 마귀가 자녀의 순결한 영혼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결론 
TV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오직 하나의 길은 그것을 완전히 싹 치워버리는 것이다. 천주께서 그대의 희생에 걸맞는 성총으로써 보상해 주시리라. 그러나 우리의 신앙과 의지는 약한 까닭에 성인이 되는 것을 너무 겁낸다. 우리는 너무나 겁쟁이여서 "강포한 자가 천주의 나라를 차지하리라,"고 하신 우리 주님의 뒤에 처져 용감하게 싸우지를 못한다. 


천주대전에서, 천주께서 기록하신 것이 하나같이 다 틀렸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면, 내가 일러준 경고를 무시하고도 안전할 수 있다고 정말로 믿는다면, TV를 그대로 놔두어라. 그러나 내 추론에 부분적으로라도 동의한다면, 그대에게는 TV를 그대로 지니고 있을 권한이 없다. TV가 그대에게나 자녀에게 있어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자발적인 대죄의 기회라는 것을 인식하는 상태에서 그것을 집에 계속 놓아두면 중죄를 범하는 것이 된다.


부수어라, 너무 늦기 전에 치워버려라. TV를 반대하는 정도에 따라, 즉 TV를 반대할수록 종도다운 열정이 훨씬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이들에게 TV를 반대하도록 설득할수록, 그러는 만큼 복음을 더 납득시킬 수 있으리라. 술을 절제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TV를 없애야 한다는 점에는 반박할 여지가 없다. 오히려 구원이라는 어휘를 긍정적으로 적용할 수 있게 하는 조건에 더 가까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TV는 세속 정신의 표상이나, 가정에 TV를 두지 않음은 가톨릭 신앙의 표상이요, 천주님의 원수인 세속을 거부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정말로 성가정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서는 세 가지만 보면 된다.

매일같이 묵주의 기도 5단을 드리는지, 예수성심을 가정의 왕으로 모시고 있는지, 그리고 TV가 없는지를 보면 된다. 매일 로사리오를 바치지 않으면서 TV가 있는 가정은 진정한 성가정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 가정은 실제로는 자유주의자이고, 나약하며, 미지근한 이들이며, 우리 주께서 입에서 뱉어내실 부류에 속한다. 천주님이 언명하셨듯이, 자기를 정복하지 못하고는 세상을 이기고 정복할 수 없음으로 해서 세상을 소유하지 못한다. 사랑의 요구하심에 따르건대, 모든 것을 재건함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일할 수 없는 것이다. '인스타우라레 옴니아 인 크리스토-Instaurare omnia in Christo',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이 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신 우리 주보 성 비오 10세의 아름다운 금언에 따라서 말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당신의 티없으신 모친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