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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성교제에 대한 가톨릭의 입장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2-04




이성교제에 대한 가톨릭의 입장



문제제기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서조차 혼배의 지위에서 천주의 성총을 누리며 행복하게 생활하는 기혼자들이 너무 적은 것에 대해 늘 염려하고 있다. 때때로 배우자에 대한 불평이나 자녀, 싸움, 눈물, 별거, '결혼무효 선언' 혹은 '이혼'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곤 하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젊은 가톨릭 신자들이 이성교제나 데이트에 관하여 어떤 생각이 있는지를 살펴보건대, 마찬가지로 매우 슬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거듭 말하는데, 이성교제 시 정결의 덕을 실천하고 천주의 법을 따르며 또 그것을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수가 극소수인 것 같아 보이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세속적이고 죄가 되는 데이트)가 첫 번째 문제(불행한 결혼)의 근원임을 말해야겠다! 따라서 미국에서 이혼율이 약 60%나 된다는 소리를 듣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이 못된다.
 
문제의 근원

솔직히 말해서 이번 주제에 관해서 우리가 지니고 있는 온갖 문제의 원인은 신앙의 결핍에 있다. 우리의 신앙은 나약하고, 자유주의, 물질주의, 세속주의에 물들어 있으며, 순종과 보속의 정신이 부족함은 물론 천주님과 세속을 동시에 만족시키려 함에 따라, 급기야 천주께서 떠나시고 만다. 우리 주님의 신성함에 기초하지 않고 지은 집은 곧 무너질 것이 뻔하다. 이상과 같은 신앙의 부족은 두 번째 뿌리로 유인하는데, 무지가 그것이다.
 
1. 신앙의 결핍과 혼배의 지위에 관한 무지:
혼배성사의 첫 번째 목적은 천주께서 각 가정에 허락하시는 자녀수만큼의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이다(교회법 조항을 보라, Canon 1012, #1: "혼인의 최우선적인 목적은 자녀출산 및 자녀양육이다" )


따라서 자녀를 낳고 싶지 않으면,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 천주께서 허락하시는 대로의 자녀수를 원하지 않는다면, 심각한 영적인 문제에 봉착해 있는 것이므로 역시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 시련, 보속, 청빈, 순직함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가기를 원치 않는다면,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에는 어쩌면 모든 생활조건 중에서 뭐니뭐니 해도 혼배의 지위가 가장 어려운 것 같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맞는 말이다. 그렇더라도 그것이야말로 우리 구세주의 십자가에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으니, 그런 생활조건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도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2. 신앙의 결핍과 이성교제에 관한 무지: 이성교제란 혼배를 위하여 직접적으로 준비하는 것을 말한다. 다들 결혼하고 싶기 때문에 데이트한다. 물론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와 결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언젠가는 결혼해야겠다는 맘을 먹고 그 누군가를 알고자 하여 데이트하는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성교제는 영혼에 위험한 일이다. 그것이 대죄로 유인하는 강력한 기회이라는 것이 사실이기는 해도, 정말로 결혼하려는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기회이기도 하다.


죄의 기회란 천주를 거슬러 죄를 짓도록 유인하는 장소, 사람 혹은 대상이다. 죄의 기회는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예컨대 궐하면 아니 되는 직무상의 조건, 병원에서 일상적인 일을 해야 함으로 인해, 간호사는 환자의 알몸을 볼 수도 있다),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면, 그 같은 죄의 기회는 자발적인 것이 된다. 주제넘게도 불을 가지고 놀면서 천주의 성총이라는 고민을 해결하려 헤매는 것이다(이를테면 젊은이가 나이트클럽에 가는 것). 똑같은 기회가 어떤 이(해변에서 목숨을 지키는 의무를 가진 사람)에게는 필요한 죄의 기회가 될 수 있고, 다른 이(악하고 정결하지 못한 생각을 많이 일으키는 원인이 될 것을 뻔히 알면서 그런 해변에 가는 사람)에게는 자발적인 죄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두 번째 차이를 보면, 유혹의 정도가 매우 강력한 경우에는(젊은이가 추잡한 영화를 보는 것), 죄의 기회가 가장 가까이 있다고 할 수 있거나, 혹은 유혹에 맞서 싸우기가 쉬운 경우에는(거의 장님인 95세 된 남자가 그런 영화를 보는 것), 멀리 있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차이는, 죄의 기회는 여러 상황에 따라 대죄 혹은 소죄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자발적이고도 가장 가까이 있는 대죄의 기회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은 항상 대죄를 면치 못한다. 사제는 그런 죄의 기회에서 떠나기를 머뭇거리는 자에게는 사죄를 허락해 줄 수 없다.


따라서 데이트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죄가 되기도 하고 죄가 되지 않기도 한다. 데이트하고 있는 사람이 자기 영혼을 보호하기 나름인 것이다. 이성교제가 당장 해결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라면, 그 같은 죄의 기회는 필요한 것인즉, 성총지위에 있기 위한 건전한 방책만 준비된다면 죄가 아니다. 그러나 만일 구혼이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면, 다시 말해서 그 한쌍에게 결혼할 계획이 없다면 그런 데이트는 그들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자발적인 대죄의 기회가 되므로, 데이트할 자격이 없다.


가까운 장래에 결혼으로까지 끌고 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면서 데이트한다면, 그것은 항상 주제넘음이라는 죄가 된다. 또 부모로서 조만간 결혼으로까지 이끌지 못하리라는 것을 확실히 알면서 자녀에게 그런 데이트를 하도록 내버려둔다면, 간접 스캔들이라는 중대한 죄가 된다. 결혼을 위한 이성교제는 오락이나 게임이 아닌 연고이다!


약혼하거나 혼인한 가톨릭 교우들에게 오늘날 그렇게나 많은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다소나마 천주님의 법을 계속 기만하려 들기 때문이다. 천주, 천주님의 법 그리고 양심을 속이는 일을 멈추어라, 그러면 구혼이나 혼인에 있어서 각자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거의 다 사라지리라.
 
가톨릭 결혼을 전제로 하는 이성교제에 관한 규범


규범 1. 결혼할 만큼 충분히 자라지 못했다는 것은 데이트할 정도로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성숙한 사람이란 마음을 정하기 전에 감정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두뇌를 이용하여 천주법의 빛에 정신을 기꺼이 굴복시킬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대부분의 여성은 적어도 20세, 대부분의 남성은 적어도 23-25세가 되어야 결혼할 정도로 충분히 성숙된다. 결혼하려면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정서적으로 그리고 영신적으로 성숙해야 한다.


결혼하기 전에 데이트 상대를 잘 알아봐야 한다. 네 번 혹은 다섯 번 정도 값비싼 레스토랑에서 감상적인 식사를 함께 했다 해서, 좀 어두운 영화관에서 정결의 덕을 몇 시간 동안만 떠보았다 해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는 상대 여자를 알지 못하는 것은 물론 완전히 꾸며진 상황에서 상대(그녀)를 판단하게 될 것이 뻔한 연고이다. 겉으로 보이는 대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 것이며, 진솔한 됨됨이가 어떤지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데이트 상대를 알려면,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지를 알기 위해 10배는 더 지혜로워져야 하는데, 이를테면 가족이 한데 모여 있는 동안에 한 20명쯤 되는 개구쟁이 아이들을 돌보고 함께 노는 것을 봄으로써 일할 때, 스트레스를 받을 때, 어려움 중에 있을 때, 다른 젊은 여자들과 있을 때, 자신을 누군가 관찰하고 있음을 알지 못할 때 어떻게 행동하는 지를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


일정한 직업이 없는 남자는 가족을 부양할 수단이 없음에 해당되므로 결혼할 자격이 없다고 할 수 있으니, 그런 사람은 데이트할 자격이 없다. 직업이 없음에도 데이트를 한다면, 그가 성숙하지 못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의견(분별)은 덕이다. 교회는 적어도 24세가 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6년간의 훈련을 받은 사람에게만 사제 서품을 준다. 따라서 성숙하지 못하였음으로 해서 그리고 마땅한 준비가 부족함으로 해서 10대에게는 '한 사람의 상대하고만 데이트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현대와 같이 관대한 사회에서는 널리 용납되는 일이라지만, 이는 가톨릭에 맞는 풍습이 아니다. 부모가 10대인 자녀에게 데이트라든지, 무도회라든지, 화장이라든지, 보석, 하이 힐(굽 높은 구두), 세속적이고 단정치 못한 의상을 허락해 주는 것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셈'이다. 부모와 불행한 자녀 둘 다를 지옥으로 인도하는 간접 스캔들이라는 끔찍한 죄를 범하는 것이다.
 
규범 2. 데이트 상대가 소신에 있어서건 행위에 있어서건 반드시 확고한 전통 가톨릭 신자여야 한다.

가톨릭이 아닌 사람과는 절대로 데이트하거나 결혼하지 말라. 이는 영적인 자멸행위다. 일생을 배우자와 함께 살되 그를 이용하여 천국에 갈 수 있어야 한다. 반드시 부부가 함께 영원히 성총지위에 머물러 있을진저. 부모가 어떠하며 가정교육이 어떤 지를 꼭 알아 봐야 한다.


회두한 시기가 언제인지 알아 봐라! 약혼자가 자신을 만나기 전에는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있었는가? 그가 그대의 아름다운 눈을 보고 회두했는가? 아니면 천주님 때문에 회두했는가? 둘 다 조과와 만과, 매일 묵주의 기도, 열렬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주 영성체하기 그리고 매달 고해성사를 받고 있는가? 가톨릭다운 소신이 확고한가? 가정이 예수성심께 봉헌되고, 텔레비젼이 없으며, 매일 가족끼리 드리는 묵주의 기도를 할 것인가?


또 결혼하기 전에 수도성소가 없음이 틀림없는지 알기 위해 그리고 예비 배우자의 영혼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도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 5일 피정을 받도록 적극 권장하는 바이다. 또 데이트하는 동안에는 반드시 기도와 보속을 더욱 많이 바쳐야 한다. 비록 정당한 데이트라지만, 그것은 여전히 강력한 죄의 기회임에 틀림없다.
 
규범 3. 곧 결혼하게 될 사람들끼리의 행동은 자신의 형제자매지간에 허용되는 범위까지로 제한되어야 한다.

'절대로 손대지 말라!!!' 결혼하기 전에는 상대방이 자신을 만지지 못하게 함은 물론 접촉하지도 말라. 거듭 당부하건대, '손대지 말라'. 이는 결혼하기 전에 온전히 정결하게 남아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다. 착한 약혼자라면, 부정의 유혹에 맞서 싸우도록 도와주리라. 반대로 결혼하기 전에 천주님의 법을 지킬 수 없다면, 결혼한 후에도 똑같은 문제가 생길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규범 4. 결혼에 대비하여 이성교제를 할 때에는 가톨릭인다운 정숙함을 온전하게 실천하라.

데이트하는 젊은 여자가 데이트 상대의 정결과 성화를 보존 및 보증하기 위해서는, 주의를 다해 정숙함을 온전하게 실천해야 한다. 반드시, 그가 그대를 사랑하기 전에, 육체의 아름다움(그런 아름다움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도 못한다) 때문이 아니라, 영혼의 아름다움(이런 아름다움만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 때문에 사랑하게 하라.


데이트하는 동안에 정결과 정숙의 덕을 보호하는 최상책은 늘 가족이다. 집에서 데이트할 것인즉, 여자편의 집에서 또 남자편의 집에서, 다시 말해서 부모가 보호하고 경계하는 가운데 자연스러운 환경과 분위기에서 데이트해야 한다. 데이트 상대를 선택하기 전 및 데이트하는 동안에 그들의 조언을 구할지니, 그들에게는 결혼한 상태에서 생활한 경험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데이트 상대하고만 단 둘이 오랜 시간을 지내는 것은 결코 좋지 않다. 세속적이고 피상적인 데이트를 피하라. 예쁜 여자와 결혼하는 경우라면 그 전에 상식을 이용하여 확인해 볼 것인즉, 반드시 억수 같이 내리는 빗속에서 그녀와 함께 걸음으로써 화장하지 않은 상태로는 어떤 모습인지 알아보라!
 
규범 5. 판단할 즈음에는 신중해야 한다.

감정이나 느낌에 이끌리지 말고 이성을 따라라. 약물, 알코올, 나이트클럽, 음란 서적,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게 성생활을 하는 습성이 있는 사람과는 데이트하지 말라. 혹여 그가 과거에 그런 생활을 한 적이 있다면, 그 회두가 진실하고 지속성이 있는지 꼭 확인하라.


이미 결혼한 적이 있는 사람의 경우, 공의회 이후의 교회로부터 '결혼무효 선언'을 받은 사람과는 데이트하지 말라. 대부분의 경우, 그런 결혼무효 선언은 유효하지 않음은 물론 믿을 만하지도 못한 것으로, '신중함의 부족'(미성숙)이 원인이 되어서 그같은 '결혼무효 선언'을 받았으면 특히 더 그렇다.


데이트 상대가 너무 어리거나(결혼하기에는 너무 미숙할 것임), 너무 예쁘거나(유혹에 너무 많이 노출되었을 것임), 너무 부유해서는(보속의 정신이 없을 것임) 아니 된다. 상식과 의견의 덕에 비추어 몇 가지 예외를 허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 경력을 쌓고자 하는 여성과는 결혼하지 말라. 아내 및 어머니의 의무는 가정에 남아서 집안 일을 돌보는 것이다.


소위 '세속적인 기본 필수품'이라고 하는 것들은 결혼 초기에 그리 긴요한 것이 결코 아니다. 신종 차, 새로 지은 집, 극초단파 기기, 기타 등등이 없어도 완전하게 결혼할 수 있다. 청빈과 보속의 정신이야말로 혼인이라는 모험에서 살아남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천주님과 교회 앞에서 '공식 데이트'의 시발점인 '약혼 미사'를 공식적으로 드리던 옛 풍습으로 돌아갈 것을 적극 권장한다.


사랑에 빠지고 나서야 겨우 그 결혼이 과연 천주께 의합한지 어떤지 생각하게 되도록 지체하지 말지니, 그렇게 되면 이미 때는 늦으리. 사랑에 빠지게 되면 보통 사람들은 눈이 머는 까닭에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어지고 만다! 물론 완전한 성 요셉을 찾았다 해도, 최소한 조금이라도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혼하지 말라! 가톨릭 신앙의 빛 안에서 분별과 상식을 이용하라.
 
결론

자, 황금률이 있다. 천주를 중심에 두지 않는다면 결단코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성총지위를 함께 누리지 못하리라. 사람들이 그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말하는 지를 신 경쓰지 말고 우리 구세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보시는 지를 걱정하라. 인간적인 성공이나 실패를 걱정하지 말지니, 대부분의 경우에 인간적으로 성공하는 것은 천주대전에서는 실패한 것이고 인간적으로 실패한 것이 도리어 천주께 의합한 성공일 수 있다.
 
1945년에 발행된 로버트 에프 그륀 에스 제이(Robert. F. Grewen, S.J.) 신부의 <그대의 왕을 알라(Know your King)>라는 책에 들어있는 아름다운 장을 인용하면서 본 서한을 끝맺고자 한다.


"사람들은 성공과 실패에 관한 얘기를 너무 많이 듣는 한 편으로, 성공이라는 것을 얻고자 땀을 흘리고, 수고하며, 자기 영혼을 팔아넘기기까지 한다. 인생에서 성공하는 때는 언제이며 실패하는 때는 언제인가? 1년 혹은 30년 동안의 성공이라든가 의약품이나 법률이나 정치적인 성공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일생에서 성공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하면서도 다른 식의 질문 속에 들어있다. 어떤 도구가 성공작일 때는 언제이며, 실패작일 때는 언제인가? 인간에게는 타자기, 자동차, 만년필 혹은 어떤 도구이든지 간에 판단기준은 그저 하나뿐이다. 기준은 다음과 같으니, 문제되는 도구가 본디 만들어진 의도대로 잘 움직이는가? 아니면 그렇지 못한가?


같은 기준이 인간에게도 적용된다. 하나의 도구는 다른 무언가가 목적을 가지고 만든 어떤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인간도 그 같은 정의를 따른다. 인간이 스스로를 만들지 않았거나 그 존재의 목적을 스스로 세우지 않았음이 분명하지 않은가 말이다. 천주께서 그 두 가지를 다 하셨다. 따라서 인간은 두 가지, 즉 존재의 목적과 그 목적을 이루는 수단을 추구해야 한다. 그것 말고는, 인생에서 그가 이루는 것이란 어느 것을 막론하고 다른 종류의 도구에 비견하건대, 본래의 의도대로 행한 것이 아니면 그는 실패작에 해당된다. 위대한 의사나 법률가나 사업가가 될 수 있을지언정 본질을 따져 볼진대, 그중 어느 것을 위해서도 만들어진 것이 아닌 연고이다. 본질적으로 그는 천주를 찬미하고, 흠숭하며, 섬기도록, 그렇게 함으로써 불멸하는 자기 영혼을 구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밖에 아무 것도 하지 않더라도 그는 완전한 성공작인 반면,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밖에 어느 것을 한다 해도 영원한 실패작이다.


위에서 제기된 질문은 참다운 의미의 위대한 평등주의자에 의한 것이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사람인 것이다. 현세에서 인생을 마감하는 인간이 부유한 자건 가난한 자건, 젊은이이건 노인이건 간에 그리스도의 앞에 서면 오직 한 가지 질문에만 대답해야 할진저. "아들아, 너는 해야 할 것 혹은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을 너에게 붙여 주었으되, 그대로 했느냐?"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무엇인지에 따라 인간의 운명은 영원히 달라진다.


선량한 사람들, 천주님 혹은 그 법을 조금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로 온통 둘러싸인 세상을 생활하는 중에 외적인 행복에 있어서 적어도 물질적으로나마 고통을 겪은 저 선남선녀들은 성공했다는 표시를 얻는다. 그런데도 세상은 극히 하찮은 현세만을 생각한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천주대전에서 당신의 질문에 답해야 하는 즉, 자기들이 실패한 도구-그저 불길 속에 던져져야 마땅한 도구에 지나지 않음을 드러내야 할지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당신의 티 없으신 모친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