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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피임이 일반화된 풍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2-04




피임이 일반화된 풍조


 

예화 1가지 
 어느 독실한 성가정에서 17세 된 소녀가 장학금을 받으면서 대학에 진학하고자 했으나, 그녀의 아버지는 집에 있으면서 어머니를 도와야 한다고 했다. 그 가정에는 9명의 자녀가 있었던 것이다. 10개월 전에 태어난 두 명의 아기 말고도 열 번째 아기를 임신한 지 이미 5개월이나 되었노라고 어머니는 알려주었다. 딸이 어머니에게 아이가 너무 많은 것 같다고 투덜대자, 그녀의 어머니는 "천주님은 돌볼 수 있을 만큼의 아기를 허락해 주신단다! 다시는 그렇게 무서운 얘길랑은 아예 하지도 말아라, 얘야"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이려는가? 현대주의자, 개신교인들이 "소녀의 말이 맞다. 그녀는 노예처럼 취급당하고 있다. 관청에서 자녀 학대라는 명목으로 그 부모를 호출해야 마땅하다"고들 하는 것처럼 반응하겠는가? 아니면 훌륭한 가톨릭 신자들이 "어머니 말이 맞다. 우리는 자녀를 낳고 키우기 위해서 결혼하는 것이다. 낳을 수 있는 자녀의 숫자가 얼마인지 천주님보다도 그대가 더 잘 알고 있어서, 천주께서 허락하시는 숫자만큼의 자녀를 원치 않을 양이면 결혼이란 것 아예 하지도 말라. 천주께서는 혼배성사를 통하여, 자녀를 낳아 기를 수 있을 정도의 특별한 성총을 주신다. 천주께서 보내주시는 자녀는 거부하면서, 결혼생활만을 하려 한다면, 그대의 가족 및 영혼은 죄에 떨어져 지옥을 향한 지름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처럼 반응하겠는가?


신앙의 부족으로 인하여, 참된 보속의 정신이 부족함으로 인하여, 이기심 때문에, 교만 때문에 우리 신자들 중 많은 이가 출산조절에 관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게 되고 말았다. 서서히, 조금씩, '피임이 일반화된 풍조'를 수단으로 해서 프로테스탄트(개신교), 이교도의 정신이 가톨릭 신자의 정신에 스며드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많은 성가정에서 '진정한 기쁨'이라 일컫는 천주님의 뜻, 예컨대 천주께서 보내 주시는 자녀의 숫자와 같은 생활환경을 통하여 드러내시는 천주님의 뜻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사실, 천주께서는 대체로 가정을 단단히 결속된 상태로 보존하시는 방법으로 자녀를 이용하신다. 대학교, 그릇 세척기와 새 차가 자녀를 낳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까닭에 여러 해 동안 '통상적인 가족계획(Natural Family Plan-주기법에 의한)' 혼인 생활을 하고 있는 젊은 가톨릭 부부들을 본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모르겠다!
 
혼배성사의 목적 
 천주께서는 세 가지 목적 때문에 혼배성사를 세우셨다고 가톨릭교회는 가르치고 있다.

- 주된 목적 하나는 자녀출산 및 자녀교육이요,

- 부차적인 목적 둘은 배우자 상호간의 사랑과 색욕을 이기기 위한 구제책인즉, 부차적인 목적 두 가지는 분명히 주요 목적에 종속되어 있고 또 종속되어야 한다. 이 법은 신성한 것인즉, 자연법으로써 우리의 본성에 새겨져 있음은 물론 바뀌어서도 아니 된다.


혼배성사의 주요 목적이 자녀출산이라면, 그 목적에 반하는 어떤 행위(피임, 낙태)도 중대한 대죄에 해당된다. 그와 반대로 혼배성사의 주요 목적이 배우자 상호간의 사랑이라면서 질서를 뒤바꾼다면, 피임 및 낙태가 배우자 상호간의 사랑에 직접 반하지 않으므로 본질적으로는 비윤리적이지 않다고 결론지을 게 뻔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법(Canon Law)에 관한 새 법전에서 출산과 배우자 상호간의 사랑을 똑같은 차원에 둠으로써 윤리상의 변화를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1951년 10월 29일에 있었던 조산원에 관한 교황담화에서 교황 비오 12세는 그 주제에 관하여 단호하게 천명했다. "창조주의 뜻에 의해 자연계의 제도로 세워진 혼배성사에 있어서, 일차적이고도 직접적인 목적은 결혼한 부부의 개별적인 인격 완성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출산과 양육이다. 본래 의도한 것이 아닌 다른 목적들은, 그와 동등하게 일차적이지 못하며 일차적인 목적보다 훨씬 열등함은 물론 본질적으로 그것에 종속되어 있다... 교황청은 결혼의 일차적인 목적이 자녀출산 및 양육이라는 것을 거부하거나, 부차적인 목적들이 본질적으로 일차적인 목적에 종속되어 있지 않고 대등한 기반 위에 있다거나, 혹은 일차적인 목적에서 독립된 것이라고 가르치는 최근 저자들의 의견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 바이다."


졸랑게 헤르쯔(Solange Hertz)는 '제국의 검사관(Searcher of Majesty)'이라는 그녀의 저서에서 아름답게도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고지식하게도 출산조절이 현대의 발명품이라고 하는 가설은 적절한 표현임에 틀림없다. 통상적인 여성의 생리 주기를 근거로 하여 발행된 여러 '리듬 요법(Rhythm Method)'은 이미 고대의 유데아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다. 성경에서 통상적으로 거론되는 것은 인간의 방법과는 반대인 것으로 보이는 까닭에 성경에서 언급되는 것이 주의를 끌지 못하는 것이다.


여성에게 불임기가 있다는 것을 잘 알았던 헤브레아인의 법을 보면, 반드시 임신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에만 부부가 동침해도 된다고 허락했었다. 혼인 생활로 말미암은 가장 큰 축복이 아기였으니, 다산(多産)한다는 것은 극복해야 할 핸디캡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해야 할 조건이었다. 자연적으로나 영신적으로, 자녀야말로 여성이 사회에 특별하게 기여하는 실질적인 방법이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가 진복자'라고들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오늘날의 여자들은 아무도 원치 않는 생산품과 함께 지내고 있는 셈이다.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그런 여자들을 남성의 영역에서 생활하는 남성과 똑같은 부류로 취급하는 것이 이상한가? 자연적으로나 영신적으로나, 복중에서 잉태하지 못하면 가슴으로도 양육하지 못한다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인 것을 어쩌하리요. 불임 여성에게는 세상을 먹여 기를 만한 것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


위대한 종도 성 바오로도 똑같이 말씀하신다. "그러나 만일 신앙과 사랑과 성화와 단정함에 머물러 있으면 자녀를 낳음으로써 구원함을 받으리라."(디모데오 전, 2:14-15)
 
피임이 일반화된 풍조는 비윤리적인 풍조다
 
천주께서 묶어 놓으신 것을 흩뜨리지 말라. 혼인, 부부의 동침과 출산은 천주께서 묶어 놓으신 것으로, 그렇듯 신성한 법을 뜯어고치려 함은 죄에 해당된다. 착한 의향만 있다면, 문제가 될 만한 일은 어느 것도 바꾸려 들지 않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서 죄는 죄인즉,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키지 못한다! 출산조절 및 피임이 일반화된 풍조는 무수한 영혼, 가족 그리고 결혼을 파괴한다. 그런 정신 때문에 대부분의 남자들이 여성을 노리개 및 순전한 쾌락의 도구로 여기는 것이다.

 

천주님의 법을 사취하고 천주님의 성총을 무시하기 때문에 겨울에 떨어지는 눈송이처럼 많은 영혼들이 지옥에 떨어진다. 천주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만한 십자가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를 잘 아시는 까닭에 적당한 수의 자녀를 보내 주신다. "이때까지 너희는 인력에 지나치는 유혹은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천주는 성실하신지라, 너희 힘에 지나치게 유감을 당하게 아니하실 것이요 오히려 그(=유감)를 감당케 하시기 위하야 유감과 한가지로 그를 처이길 은혜도 또한 너희에게 주시리라."(고린도전, 10,13)


주기법에 의한 통상적인 출산조절이 언제나 옳다고 하는 것은, 50년대와 60년대에 수많은 자유주의 사제들에게서 나온 크나큰 거짓이다. 그것은 사실과 다른즉, 교황 비오 12세는 다음과 같이 정반대로 말한다.
 
교황들의 전통적인 가르침: 가톨릭 교우라면 교회의 교정권에 따른 법령 두 가지를 알아야 한다.

- 1930년 12월 31일자의 가톨릭 혼배 '카스티 코누비이(Casti Connubii)'에 관한 교황 비오 11세의 회칙 서한으로, 교황이 '엑스 카테라(Ex Cathera)'를 선언했으므로 이 문헌은 무류하다.
- 1951년 10월 29일자의 교황 비오 12세의 조산원에 대한 교황담화

 
우선 'Casti Connubii'에서 비오 11세의 무류한 가르침을 보자.

"지지자들이 다 어떻게 해 볼 수도 없을 정도로 육욕이 극심해서 이 새로운 교리를 따르는 것이 아닌즉, 말하자면 이 시대에는 애써 중용을 지키려 하면서도 천주법과 자연법의 명확한 가르침에 대해 용인되어야 하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는 다소 의도적이기까지 한 것으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뿌리려고 애쓰는 원수의 막강한 사자다. 따라서 성부께서 당신의 밭을 가꾸라고 임명해 주신 우리, 좋은 씨앗이 잡초 때문에 질식하지 않게 돌보는 거룩한 임무를 맡은 우리는 종도 성 바오로께서 사랑하는 디모데오를 고무시키려는 뜻에서 이용하신 성신의 말씀을 우리 자신에게도 제대로 적용해야 한다고 믿는 바이다. '그대는 모든 일에 근신하고... 그대의 직무를 완전하게 채울지니라... 그대는 말씀을 전파하며 기회의 좋고 나쁨을 막론하고 항구히 그를 보호할지니라.

'

"많은 이가 말하기를, 기혼자들이 덕이 되는 절제(가톨릭 법상으로, 양측이 만족할 때 혼배성사에서 허용하는)를 통해서가 아니라 혼인 행위를 파괴시킴으로써 주의를 다해 자녀를 피해야 한다고 한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을 인용하면, '자녀가 잉태되는 것을 막는다면, 합법적인 아내와 동침한다 해도 그것은 불의 불법한 동시에 사악한 짓이다. 유다의 아들 오난이 그렇게 했다 해서 주님이 그를 죽이시지 않았던가... 과감하게 말하건대, 그렇게 하는 것은 여자가 스스로를 자기 남편의 첩이 되는 것이거나, 남편 스스로가 자기 아내의 순전한 정부(情夫)가 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한다.


"그러나 본디부터 있던 본질에 반하는 것으로써, 본질 및 윤리선에 합당한 것을 파괴시켜도 된다고 하는 것은 도대체가 어불성설이다. 따라서 자녀를 출산하기 위함이라는 본질로 말미암아 부부의 동침이 우선 허용되므로, 본래의 힘과 목적을 은연중에 파괴시키면서 동침하는 부부는 자연을 거스르는 죄를 범하는 것이 분명하며, 수치스러운 동시에 본질적으로 사악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에 계속 이어져 내려오는 가톨릭 전통으로부터 공식적으로 벗어나려 함은, 이 같은 주제에 관하여 다른 식의 교리를 선포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천주께서는 가톨릭교회에 온통 윤리적인 파멸로 둘러싸인 중에서도 꼿꼿하게 자리를 지키면서 완전한 도덕성과 순결함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겨주시어, 그렇듯 불결한 오류 속에서도 혼인에 의한 결합이 정결하게 유지되게 하셨으니, 교회의 신성한 대리자라는 증거에 의지하여 우리의 입을 통해 새로이 선언하는 것인즉, 생명이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행위를 은연중에 파괴한다면 어떤 혼인이건 그것은 천주님의 법과 자연법을 거스르는 범죄이며, 그런 데에 빠진 자는 대죄를 면치 못함을 소리높이 외치노라."
 
비오 12세도 강력하게 훈계한다.

"참된 도덕 질서를 이루기 위한 필수조건 중 하나는, 어머니 됨의 기능과 의무를 내적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 혼배권을 올바로 사용하는 것이다... 부부가 동침하되 그 본질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하면서 남편이나 아내가 새 생명이 생성되는 것을 막으려는 시도는 모두 다 비윤리적이다. 어떤 '지침' 혹은 욕구도 본질적으로 비윤리적인 행위를 윤리적이거나 합법적인 행위가 되게 하지는 못한다.


"과거에 그랬듯이 오늘날에도 온 힘을 다해 이를 가르치는 바이며, 앞으로도 역시 그럴 것이고 항상 그럴 것인즉, 이는 인간의 일시적인 생각이 아니라 자연법 및 천주법을 표현한 것인 까닭이니라...


"남편과 아내가 주의를 다해 행위의 본질을 거스르지 않으려 함은 물론 아기가 태어난다면 그런 사실을 받아들여 양육할 준비까지 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는, 그들 의향의 동기가 올바르고 흠잡을 데 없이 윤리적이라고 보증하기에는 충분치 못하다... 따라서 혼인상의 지위를 받아들이는 것, 그런 지위에 맞갖은 능력과 그 부분에서만 합법적인 권한을 계속 사용하는 동시에 중대한 이유 없이 우선적인 의무를 피하는 것은 혼인 생활의 본질을 거스르는 죄가 될지니.


"중대한 동기, 소위 의학적인, 우생학적인, 경제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지침'에서 비롯된 것과 같은 동기는 오랜 기간 혹은 혼인생활 기간 전체에 대해서도 남편과 아내의 의무를 면제시킬 수 있다.


"그러나 만일 타당하고도 정당한 판단에 따른 개인적 혹은 외적인 처지에서 비롯된 중대한 이유가 없다면, 육욕은 육욕대로 완전히 충족시키기를 계속하되 결합으로 인한 생식을 피하려는 의지는, 생명을 잘못 이해한 결과 및 도덕적 원칙에 위배되는 동기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천주께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불가능한 것을 하라고 강요하시지 않으며, 남편과 아내의 결합이 자연의 법에 따라 완성될 수 없다면 금욕하라고 명하신다... 천주님은 불가능한 것을 하라고 명하시지는 않으나, 할 수 있는 것은 행하고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성총을 청하라고 명하시고, 경고하시며,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이 중요한 문제에 관해서 몇 가지만 말해야겠다.

1. 중대한 이유, 통제할 수 없는 이유가 있으면, 남편과 아내는 통상적인 가족계획('리듬' 요법과 같은)을 이용할 수 있다.

- 의학적인 지침, 즉 모친의 건강이나 생명이 심각한 위험에 처할 경우,

- 우생학적인 지침, 즉 출생할 아기에게 외견상 심각한 선천적인 결함이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는 경우,

- 경제적 및 사회적인 지침, 생활환경으로 인해 다른 아기를 가질 수 없는 경우(그 아기를 키울 만한 재정을 제공해 줄 직장이 없거나, 돈이 전혀 없거나, 남편이 늘 술에 취해 있다든지, 기타 등등의 경우).

2. 주기법에 의한 가족계획을 행할 만하다 해도,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더 완전하다.

3. 대단히 중대한 이유가 없는 한, 주기법에 의한 가족계획을 행할 권한이 없다. 중대한 이유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은 중대한 대죄에 속한다.
 
많은 사제들이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주기법에 의한 통상적인 가족계획을 활용해도 좋다고 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교황 비오 11세의 경고가 있다. "천주께서 금하신 바, 영혼을 맡은 자로서 자기를 신뢰하는 신자들을 잘못 인도하여 이러한 오류에 빠지게 하든지, 적어도 허가하거나 묵인하는 죄로써 신자들을 내버려두는 자는 최고의 판관이신 천주께, 신성한 책임을 배반한 것에 대하여 낱낱이 해명해야 할 것임을 기억할진저. 또 그리스도의 말씀을 되새겨 주나니, '그들은 소경된 자들이요 소경을 인도하는 자들이라. 그리하여 만일 소경된 자가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결론
 
신앙이 굳건하다면, 틀림없이 신앙에 대하여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통 교정권에 의한 가르침을 받아들이리라. 그렇게 하는 것이 간혹 무거운 짐일 수도 있겠으나, 그 짐은 천국의 문을 열 수 있는 훌륭한 작은 십자가와도 같다. 아기를 출산한 후 어머니 되는 이를 강복해 주는, 전례에 들어 있는 아름다운 기도문으로써 끝을 맺으련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천주여,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해산으로써 출산한 신자의 고통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시여, 즐거이 그 기쁨을 드리러 당신 성전에 부복한 여종을 자비로이 굽어보소서. 더불어 복되신 마리아의 공덕과 중재하심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살다가 그 자손과 한가지로 영원한 복락의 기쁨을 얻기에 맞갖은 자 되기를 허락하여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당신의 티 없으신 모친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