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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장을 단정하게 합시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1-27



복장을 단정하게 합시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가르침을 특히 소중히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애덕을 거스르는 행위, 즉 신자인 형제자매, 또 사제나 수도자(특히 현 교회에서 새미사를 드리는 신부나 주교 등)에 대해 인격을 손상시키는 욕이나 비난, 푸념, 불평불만을 삼가합시다.


형제자매 여러분, 복장을 단정하게 갖춥시다. 미사성제에 참례할 때는 물론, 평상시에도 남자건 여자건 단정한 옷차림을 합시다.


여자는 천주의 성모 마리아를 본받아서 언제나, 적어도 무릎이 보이지 않는 치마(교황의 가르침에 의하면 의자에 앉았을 때에도 무릎이 보이지 않아야 함), 소매가 있는 옷을 입어 주시고, 목둘레선이 너무 깊게 파이지 않은 복장, 즉 가슴 언저리를 가리는 복장을 합시다.


체형이 드러나는 식의 꼭 끼는 복장이나, 몸이 비쳐 보이는 옷, 민소매에 어깨나 겨드랑이가 드러나는 옷, 무릎이 보이는 미니스커트, 절개선이 깊이 들어가 걸을 때 다리가 보이는 스커트, 바지나 판탈롱, 배꼽 부분이 노출되는 의상 등, 조신하지 않은 것은 피합시다.


"영혼들을 지옥으로 제일 많이 이끄는 죄는 육(肉)의 죄다"(파티마의 성모께서 히야친따에게 하신 말씀).
 

'정숙성'이란 무엇인가?
 
정숙성이라는 덕은 절제의 덕목 중 하나로, 인간이 외적인 행위 및 내적인 행위에 대해 '모드(mode)'라는 관습을 지키도록, 즉 절제하도록 도와주는 윤리덕에 속한다(정숙성이 그 이름을 어디서 취하는지 생각해 보라). 이 덕은 인간이 바른 이성의 통제를 받는 상태에서 행동하도록 도와준다(성 토마스, Ⅱa Ⅱæ, 160).


현대적인 의미에 보면 정숙성이란 대중 앞에서 벗은 모습인 것을 부끄러워함으로 인한 덕목이다. 그래서 정숙성은 순결한 육체, 순결한 마음과 영혼의 보호막인 금욕과 정결이라는 덕목으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정숙성이라는 덕이 없으면, 불순함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아 가며 영혼, 특히 어린이의 영혼 및 장차 가정에서 어머니가 될 사람의 영혼을 파괴시키기 위해 어디서든지 어슬렁거리게 된다.


젊은 가톨릭 신자로서 모친이 될 사람의 영혼을 불순함이 지배하면서부터 그 가정에서는, 수도성소가 파괴되는 동시에 가톨릭교회가 곧 무너지리라는 것을 마귀는 잘 안다. 그러므로 마귀에게 있어서 가톨릭교회를 파괴시키는 최상의 방법은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의 마음 안에 불순함이라는 것을 들여놓는 것이며, 가톨릭 신자의 마음을 타락시키는 최상의 방법은 정숙성이라는 덕을 파괴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혼이 없는 육체는 아무 것도 아닌즉, 영혼이 육체를 지배하게 해야 한다. 육체는 우리에게 속해 있지 않고 창조주께 속한 것으로, 성신의 궁전이다. 성 토마스는 Ⅱa Ⅱæ 중, 질문 169에서 외적인 의상의 정숙성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자가 다른 이에게 육욕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꾸민다면(혹은 옷 입는 방법이 다른 이에게 육욕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꾸민다면), 대죄를 범하는 것이다... 육체는 솔직함과 필요함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부족함이 전혀 없게 해야 하는 한편으로 그 아름답게 꾸민다는 명목으로 무엇인가를 덧붙이지 말지니, 자연스럽게, 꾸밈없이, 단순하게, 섬세하고 평범한 옷으로 치장해야 한다."
 
몇 가지 고찰
 
애석하게도 오늘날 정숙성이라는 덕은 우리 교구민 대부분의 마음속에서 거의 다 사라지고 말았는데, 평일에는 이교도들, 프로테스탄트 혹은 새미사에 다니는 가톨릭 신자들이 입는 것과 별 다름없이 단정하지 않은 차림을 한다! 겨우 몇몇 신자들만이 이 가공할 스캔들을 일으키는 죄의 중요성을 납득할 수 있고 또 이해하려 할뿐이다. 물론 수도복을 입는다 하여 그것만으로 수도자가 되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도복을 입으면 수도자가 수도자답게 행동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기는 한다! 천주의 모친께서 파티마에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유행이 도입될 터인데 그것은 나의 아들을 몹시도 거스르는 것이 될 것이다"라고 하셨다.
 
몇 해 전에 한 여인이 있어, 자기 영혼의 아름다움을 이용해서 사랑을 받고 소망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다 하자. 한 청년이 그녀에게서 매력을 느낀다면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리라.


"인생을 그녀와 함께 보내자, 틀림없이 나를 도와 착하게 살 수 있도록 할 것이 아닌가." 오늘날 젊은 여자들 대부분은 이제 자기 영혼의 아름다움을 이용하여 자신을 매력적이게 함으로써 남자의 눈에 띄어 사랑 받게 할 수 없게 되었으니, 왜냐하면 그들의 영혼은 오랫동안 죽은 시체와 같아서 자기에게 있는 오직 한 가지, 즉 육체만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청년이 그녀와 사귀고 싶어하는 경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리라. "인생을 그녀와 인생을 함께 보내자, 그러면 그녀는 나에게 있어서 훌륭한 노리개, 훌륭한 쾌락의 도구 역할을 하여 나를 재미나게 할 터인즉!"


사오십 년 전 전에는 여자들이 옷을 입는 방식을 보고 매춘부인지 아닌지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젊은 여자들이 매춘부처럼 옷을 입고 다니는 까닭에 그들 스스로가 마음과 원의로써 매춘부로 인식되도록 남자들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게 된다! 모름지기 생각하는 바에 따라서 행동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행동하는 방식대로 생각하게 되는 법이다! 젊은 여자가 생각하기를, 자신이 가톨릭 신자라고 하면서도 매춘부처럼 옷을 입는다면 언젠가는 자기가 매춘부인 것으로 인식하게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젊은 남자의 마음속에서뿐만 아니라 젊은 여자들 스스로의 마음속에 여성의 진정한 품위를 되찾아 놓지 않는 한, 우리나라(미국)에서는 가톨릭 문명이 결코 성립되지 못할 게 뻔하다. 남자들 대부분이 여자를 그저 노리개로만 보는 경우를 보면, 그것은 대부분의 여성이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들 스스로도 놀이의 도구로 보고 즐기기 때문에 그렇다.


정숙성은 여성만을 위한 덕이 아니고 남성에게도 해당되는 덕이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그렇듯 죄가 되는 부정함의 물결에 맞서 싸워야 할 책임이 막중하게 지워져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10대의 마음 안에 가톨릭인 다운 정숙성을 되찾아주지 않는다면, 모든 혼인은 파괴되고야 말리라! 실제로 각 청년들의 마음속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여성상이 있다. 잠시 동안 함께 즐기기만 할 '노리개'로서의 여성상과, 언젠가는 자기 자녀의 어머니가 될 훌륭한 여성상이 그것이다! 여자가 옷을 입은 모습을 보고도 어떤 여자인지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면, 청년에게 첫 모습을 보이는 아름다운 소녀가 어떤 유형의 여자인지 안다는 게 어찌 가능하겠는가! 육체는 영혼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단정치 못한 품행
 
옷을 입되, 우리를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 안에 육욕이 생기게 하는 것은 틀림없이 죄가 된다. 정숙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야기되는 생각이나 행동이 대죄라면, 정숙하지 못하다는 것 자체는 더 중한 죄가 되는 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음란한 마음을 두고 이웃의 아내를 쳐다보았으면 이미 제 마음 속에 그 여인을 간음하였나니라."라고 하셨으며, 성 바오로는 "간음 및 사음을 행하는 자는 천주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하리라"고 하셨다..

 

젊고 예쁜 여인이 비키니나 짧은 치마, 짧은 바지를 입음으로 해서 주변 남자들의 영혼 안에 심히 죄가 되는 불순한 생각을 불러일으킨다면, 그녀는 스캔들이라는 대죄를 범함에 해당된다! 그리고 그런 종류의 행동을 그냥 내버려두는 그 예쁜 소녀의 부모는 간접 스캔들이라는 대죄를 범함에 해당된다!


교황 베네딕토 15세의 경고를 들어보라. "현대 사회에 범람하는 가공할 악덕의 급류는, 작금의 음란한 복식 스타일로 인해 이미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 또 그런 스타일은 어머니 되는 이와 가족의 태만 내지는 더 악한 것으로 인한 허영심이라는 죄로 말미암아, 불행하게도 가장 어린 소녀들에게까지도 확산되는 바람에 그들의 순진성과 결백함이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우리 주님이 경고하신다. "소경이 어찌 능히 소경을 인도하며 어찌 둘이 다 구렁에 빠지지 아니하겠나냐?"(루가 6:39) 오늘에 이르러서는 단정치 못한 정도가 너무 심하여 수많은 영혼들, 그 중에서도 너무 나약해서 혼배성사로써 받은 성총을 따르는 의무마저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부모들의 영혼은 물론이고 젊은이들의 영혼을 틀림없이 지옥으로 끌어당긴다.


마음이 깨끗하지 않으면 구원될 수 없다. "마음이 깨끗한 자는 진복자니, 그들이 천주를 뵈올 것이다." 순수하고 정결한 자는 오히려 강한 까닭에 유혹이 오더라도 얼마든지 맞서 싸울 수 있는 반면('정결-chastity'이라는 말은 '군인 캠프'를 의미하는 '카스트라-castra'라는 라틴어에서 비롯되었다), 불순한 자는 나약하다.
 
가톨릭 신자를 위한 복장 규정
 
두 가지 점에 주목해야 한다.
 
- 오늘날에는 복장 규정이 남녀 모두에게 필요하다. 오직 여성만이 복장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의견이다.
 
- 가톨릭의 복장 규정은 연중 매일 어디서든지 지켜져야 한다. 우리는 가톨릭 신자이니 교회 건물 밖에서도, 외부 기온이 100°F까지 올라가는 때에도 가톨릭 신자로서 행동해야 한다. 우리 교구민들 중 많은 이가 교회 내에서는 복장을 제대로 갖추어 입으면서도 평일에는 반은 벗은 상태로 지낸다. 동시에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가톨릭 신자를 위한 일반적인 복장 규정은 1931년 1월 21일에 발행된 비오 11세의 문헌에서 읽을 수 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해서 썼다지만 그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세세한 부분을 조금만 손질하면 남성에게도 온전하게 적용시킬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목의 움푹 패인 곳 아래로 손가락 두개의 넓이보다 더 깊이 파인 옷, 소매는 최소한 팔꿈치를 덮지 않는 옷, 무릎까지 겨우 닿는 옷을 품위 있다고 일컫지 못하리라. 게다가 비치는 소재로 된 옷도 부적합하기는 마찬가지니라."
 
그리하여 교황은 4가지 규범을 제시한다.
 
1. 목둘레선이 목의 움푹 패인 곳 아래로 손가락 두개의 넓이보다 더 깊이 내려가서는 아니 된다(여자에게 있어서 바지는 언제나 정숙한 옷차림이 아니다. 비키니는 분명한 이유가 있음으로 해서 항상 정숙하지 못한 축에 끼인다).


2. 앉았을 때에는 무릎을 덮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길어야 한다(스커트의 뒤나 옆에 있는 트임이 무릎 위까지 올라가야 한다면, 그것은 그 스커트가 너무 꼭 끼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3. 소매는 적어도 팔꿈치 정도의 길이는 돼야 한다(실제로는 소매길이가 손목까지 닿는 것이 가톨릭다운 정숙성에 더 부합된다).


4. 비치는 소재는 어느 것도 아니 된다(상식 내지는 가톨릭다운 정숙성에 따를진대, 여자는 브래지어 위에 캐미솔을 갖추어 입어야 한다).
 
부모는 이상과 같은 규범을 자녀에게 설명해 주는 동시에(그들이 유아기에 해당될 때부터 벌써 시작해야 한다) 잘 익혀 기꺼이 실천해야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좋은 표양을 볼 수 없으면, 이루어지는 것이 도통 없으리라. 일상생활에서 신앙 및 신앙에 의거한 결과를 부끄러워하지 말진저. 
  
자녀의 마음 안에 정숙함에 대한 사랑을 보존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정숙성이라는 덕은 무너지기 쉬운 덕목이다. 그것을 파괴시키거나 잃을 위험에 노출시키지 말라. 그대 및 가족을 위하여 나체 혹은 반나체의 육체가 노출되는 장소, 즉 해변, 수영장, 텔레비전, 극장, 영화를 피하라.
2. 자녀를 공립학교나 규율이 붕괴된 새 가톨릭 학교에 다니게 해서는 아니 된다.

3. 자녀가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성교제를 허락하지 말라.

4. 가정에서 영신 생활을 잘 하라. 매일 묵주 기도, 조과 및 만과, 잦은 성사 참례, 교리공부(성세성사를 받은 후에도 원죄 및 그 결과를 부인하는 자연주의로 말미암아 정숙하지 못한 것을 받아들이기 쉬운 연고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사랑에 푹 빠져라.

5. 유혹, 나태와 태만을 거슬러 싸우려는 희생정신을 보존하라.

6. 추잡하고 세속적인 물건들을 가정에서 싹 치워라.
 
몇 가지 반론
 
나약함은 신앙의 부족에서 초래된다. 성 야고버는 행함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 행동함으로써 그 신앙을 보여주고 또 증거해야 한다. 옷을 타당하게 입겠다는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조금도 희생할 수가 없다면, 육신으로써 우리 주님의 고통을 기워 갚고자 할 경우 그것을 어떻게 채워드릴 수가 있겠으며 또 어떻게 십자가를 질 수가 있겠는가? 이 십자가는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와도 같아서, 십자가 없이는 구원이 있을 수 없다.
 
반론1: 남편감이나 아내감을 물색하기 위해서는 단정하지 않게 옷을 입을 필요가 있다.
답변1:그렇게 해서 어쩌면 연인을 만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가톨릭인 다운 배우자는 결단코 얻지 못하리라.
 
반론2: 모두들 그런 식으로 옷을 입는 걸 어쩌란 말인가!
답변2: 인본주의 관점에 맞서 싸워라. 모두가 지옥을 향해 내달리는 경우, 그래도 그 무리를 따라가려는가.
 
반론3: 죄가 도처에 깔려있다!
답변3: 나는 어디서든지 죄를 목격하는 것은 아니지만 원죄는 가지고 있다. "깨어 기구하야 써 유감에 들지 아니케 하라. 영신은 과연 날래나 육신은 연약하도다." 허영심, 불결함, 음란함과 육욕의 온갖 죄를 보상해 주시기 위해 석주에 매여 채찍질을 당하시고 옷 벗김을 당하셨던 우리 주님의 고통을 묵상하라.
 
반론4: 당신은 다른 나라사람이므로 이해하지 못한다. 미국에서는 방식이 다르다(웃을 일이 아니다. 이런 반론을 자주 접한다).
답변4: 똑같은 천주님의 법에 따라서 미국인이건 프랑스인이건 가리지 않고 심판하실 분은 하나이신 천주이시다.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 마리아께서 그대들을 도와주셔서 이상과 같은 방침을 깨닫게 해 주시기를 바란다. 성모님의 순결은 그 동정성으로 인하여 도무지 티가 없으시다. 각자가 육체라는 그릇을 삼가 조심하여 성화 보존하도록 성모께서 도와주시기를 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당신의 티 없으신 모친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