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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톨릭 진리와 타 종교에서 말하는 진리의 차이는?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0-05


가톨릭 진리와 타 종교에서 말하는 진리의 차이는?

질문 1) 일부 종교다원주의 신학자들과 일부 신자들은 타 종교에도 공통 진리와 자유사상이 있다고 합니다. 불교(번뇌에서 해탈하는 과정)에도, 중국 사상가 장자에게도 그런 사상(곤이라는 물고기가 붕이라는 새가 되어 만리를 날아가는)이 있으니, 모든 종교는 일맥상통한다고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그런지는 모르나 일부 사제나 신자들이 절에 가서 템플 스테이도 하고 불교도 배우며 미사를 드리는 기사가 신문에 나와 있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8:23) 성경의 말하는 진정한 ”진리“와 “자유”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2) 종교의 "근본주의"란  무엇이며, 내가 믿는 종교만이 참이다라고 주장하면 종교 독선주의로 비난받게 됩니다.


 답변  1) 가톨릭의 진리와 신화 이를테면 많은 이교도 종교(그리스 신화, 로마 신화, 불교 신화, 장자 철학에서 나오는, 물고기(곤)가 붕이 되어 우주로 만리를 날아간다는....또는 비쉬누의 힌두 신화 등등)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직접, 간접으로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수준에서 우리가 직접적으로는 이러한 진리를 거의 모릅니다. 보고, 듣는 사물 또는 모든 이가 지성을 사용하는 지적인 첫 번째 원리는 (각론이라기보다는 총론 측면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직접적으로 알려진 이들 진리로부터, 또는 다른 이(예를 들어 목격자)로부터, 우리가 배우는 진리로부터 그리고 추론(적절한 논리적 이성을 통해)을 통하여 이 진리들을 간접적으로 압니다. 과학(참된 과학)은 첫 번째 종류(논리적 추론과 추상적으로 알려진)를 다루고 있습니다.: 과학적 진리가 객관적이라는 것은 꽤나 분명합니다. 과학적 진리는 우리와는 독립적이고 모두에게도 동일합니다. 과학적 진리의 전형적인 예가 수학입니다.


 신앙은 다른 이로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진리를 다룹니다. 그래서 내가 우리 가족의 과거 사건을 말하면, 여러분은 과거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여러분은 나의 증거로서 그 사건을 알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믿음으로서 그 사건을 압니다.


 인간의 믿음이란 그 자체가 가장 약한 주장입니다. 그러나 천주님에 관한 신앙(천주께서 그 분의 말씀에 주신 목격자 안에서의 신앙)은 가장 강력한 주장입니다. 말씀하신 분이 참으로 천주님이시다 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천주님의 표시로서 분명해집니다. 즉 천주 홀로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과 예언입니다. 한 두 개가 아닌 수많은 사실들이 우리가 건물을 보듯이 절대적으로 분명한 확실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1971년에 일어난 파티마의 기적을 예로 들어봅니다. 세 명의 어린이들이 복되신 동정 마리라를 목격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어린이들이 자랑하려고 그런 말을 한다면서 (잊고) 멀리하였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목격 당시 (성모님은 아이들에게 매달 13일 날 여섯 번 오겠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성모님께 사람들이 자기를 불신한다고 불평하면서 기적을 요구하였습니다. 성모님은 말씀하시길, “10월에 모든 이들이 볼 수 있게 될 기적을 보여 주겠다”하였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내게 “어디서 기적을 볼 수 있을까요? 말한다면, 나는 장소나 날짜도 알려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곳 파티마라는 기적의 회합장소가 있습니다! 이 예언을 기반으로 약 7000명의 사람들이 1917년 10월 13일에 파티마에 와서 대부분은 기적을 보기로 갈망하였으나, 참석한 그 중 일부는 이에 속은 신자들의 실망을 볼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며 참석했습니다.

 

 루시 마르토가 ”태양를 보라“고 사람들에게 말했을 때, 신자들과 비신자들 모두는 온갖 종류의 빛을 발산하며 회전하는 태양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태양은 마치 지상으로 떨어지는 듯 했습니다. 공포가 확실히 일어난 후, 태양은 제자리로 돌아갔고 평상시처럼 그 누구도 그러한 태양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과 누구든지 그 자체 예언의 실현인 놀라운 기적을 본 수많은 증인들이 있다는 것을 그 당시의 신문 내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파티마의 발현이 진정으로 (그 분의 모친을 자녀들에게 보내신) 천주로부터 오고 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는, “천주님에게서 오는 신호”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구약으로 돌아가서 보면 히브리인들의 모세신앙과 약속된 메시아를 확인하기 위해 모세가 행한 기적을 보게 됩니다.


 구약에서는 소수만이 기적을 행했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예수 이전의 어느 사람보다도 더 많은 기적을 행합니다. 주님은 종도들에게도 기적의 권능을 주어 종도들이 천주님의 확고한 증인(證人)에 기반으로 해서 (가톨릭) 성 교회를 세울 수 있었고 신약시대의 성인들을 통하여 기적을 행하였습니다. (성인들이 몇 가지 기적을 행하지 않았다면 결코 성인품에 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비록, 때때로 개인의 사례를 구별해내는 것이 어렵지만, 전체적으로 (교리와 도덕성의 거룩함을) 고려해보면 참된 신앙, 가톨릭 신앙에 단단한 기반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시복식과 성인식에 몇 가지 기적 (여러 명의 증인들에 의해 목격된 기적)을 요구해왔으니 여기에는 이러한 천주님의 신호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이루어진 몇 가지 성인식은 이러한 엄격한 요구조항이 이완된 것은 추문인 것입니다: (역자 주: 요한 23세와 요한 바오로 2세)   
 
 그 어느 이교도 교리는 이와 비슷한 것이 없습니다. 이슬람교에도 비슷한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유대교에도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후 이와 비슷한 것이 없습니다. 개신교에도 기적을 행한 성인들이 없습니다. 설령 저들이 주님을 따르지만, 복음서에서는: “요한이 말씀하여 아뤼되,”스승이여 우리 등이 보오매, 어떤 사람이 스승의 이름을 의지하여 마귀를 쫓아내되 우리를 따르지 않는 고로 그를 금하였나이다.“ 예수 가라사대,”금(禁)하지 말라. 대저 너희를 거스르지 아니하는 자는 곧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루까9:49-50)


 다른 종교 그 어느 곳에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설립자는 없습니다. 주님이 오시기 전에 수백 수 천 년 간 예언되었기에 모든 이들이 그 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분이 오셔서 예언(비록 자기 백성들에게 거부당한 예언도 역시)을 성취하셨습니다!(다니엘9:26) 이는 종교의 역사에서 유일한 것이니 사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설립된 참된 종교, 천주께서 관여하신 목격자에 의거한 종교라는 것을 두려움 없이 안전하게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성 요한은 “천주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천주의) 증거하심을 가졌느니라. 천주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저(천주)를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대저 천주 당신 아들에게 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그들은) 믿지 아니하는 연고니라.”(요한1서 5:10)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종교 가운데, 유일한 참 종교란 주님으로부터 항상 이어져 왔느냐는 것이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신 후 1500년이 더 지나 설립된 개신교 종파는 그리스도께서 세운 종교라는 이름을 분명히 가질 수 없습니다! 주님은 친히 확실히 말씀 하십니다: “나 문득 세상 마칠 때까지 항상 너희와 한가지로 있노라.”(마테오28:20)


 어떤 이들은 사도(종도)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승하는데 실패하였고, 그래서 루터가 계승하였다고 하는데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끔찍한 신성모독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거스르는 것입니다.“너희가 나를 간선(揀選-가려 뽑다)치 아니하고 오직 내가 너희를 간선하여 세움은, 너희로 하여금 가서 실과를 맺어 너희 실과를 항상 보존하기 위함이요.”(요왕15:16)


 복음서를 열어보면 바로 그 첫 장이 그리스도의 계보도입니다. 실제로 메시아인척 하려는 사람은 그가 약속한 이들에게 자신이 “다윗의 아들, 아브라함의 아들”이었음을 보여줄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즉시 그럴 자격이 상실될 것입니다. 같은 방법으로, 계보를 보여줄 수 없는 교회, 즉 종도들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이어진 주교들의 계승을 보여주지 못하는 교회들은 바로 그 시작부터 자격이 없는 것이고, 그리스도 교회라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들 일부 교회 말고) 모든 이들은 (교회 시작이) 베드로부터 현재 프란치스코에 이르는 교황의 이름이 있음을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로부터 이루어지는 계보에 있어서 어떤 이들은 성인도 있었고 죄인도 있었으니, 그래서 교황 이름 목록에서 죄인인 교황들 역시 현재도 양쪽으로(그리스도의 계보와 성인이냐 죄인이냐)다 연계되어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진리”는 어느 사람이 주관적으로 말하는 (추상적인) 사물이 아니라 – 이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 “천주님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확고하고도 객관적인 것을 말함이니, 이것이 바로 가톨릭 신앙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자유”가 이 같은 진리를 가져오는가요?


 첫째, 오직 신앙만으로는 진리로서는 부족하다는 것을 꼭 알아야합니다. 사람이 진리를 사랑할 때 진정으로 그가 자유가 됩니다. 실제로 성 바오로께서 말씀하시길: “나 설령 산을 옮길만한 완전한 신앙이 있다할지라도, 사랑이 없을진대 아무것도 아니로다.”(코린토 전 13:2)


 진리로 살아갈 때, 즉 실생활에서 진리를 실천할 때 그가 진정 진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계명을 가져 지키는 자는 나를 사랑하는 자요,”(요왕14:21) 성 어거스틴은 아름답게 이렇게 표현 합니다: 계명을 자유자제로 실천하는 이는 (사랑으로 인해) 자발적으로 계명을 행하는 사람이다. « Praeceptum quippe liber facit, qui libens facit – he does freely the Commandment, who does it willingly (out of love)» (De Gratia Christi et de Peccato Originali, I. 13. 14.)


 그가 천주님을 사랑할 때는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성신의 의지를 행하고자 그 분의 계명을 실현하고자 원합니다. 그렇게 하면, 자기의 의지를 반하여 외부에서 형성된 형태로서가 아닌 자발적으로, 사랑으로 이끌리어 행하거나 바오로 성인께서 말씀하신대로 하게 됩니다: “천주의 성신께 격려되는 이는 다 천주의 자녀인 연고이니라.”(로마8:14) 계명을 준수하지 않으면서 성신께로 인도되는 것처럼 거짓행세해서는 안됩니다. 바오로 성인이 표현하길 “성신의 열매란,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자애, 인자, 충실함, 유화, 공순, 절제, 정결함이니 이것들을 거스르는 법률은 없느니라.”(갈라타5:22-23)


 그러나 그 이후 바로 나오는 바오로 성인의 말씀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에게로 속한 자들은 자기의 육체를 그 정욕과 육욕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가 만일 성신으로써 성총을 생활을 받는다면 또한 성신을 모신 자에 합당하게 거닐을지로다.”(갈라타5:24-25) “성신을 모신 자에 합당하게 살라. 이에 너희는 육욕을 채우지 아니하리라. 대저 육체는 영신을 거슬러 욕구하고 영신은 육체를 거슬러 욕구하느니 그 서로 반대됨은 너희로 하여금 욕구하는 바를 행하지 말게 하기를 위함이라. 너희가 만일 영신으로 말미암아 격려되면, 이미 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갈라타5:16-18) “나 천주의 법률을 벗어나지 못하여 그리스도의 법률에 매여 있으되”(코린토 전 9:21)


 어거스틴 성인은 아름답게 설명 합니다: 계명 아래에서가 아니니, 왜냐하면 계명은 짐이 아니기 때문이다.(무겁지 않기 때문이다) 천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계명이 명령하는 것을 사랑으로 행하기 때문에, 그 계명이 그를 정죄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그를 시인(是認)하는 것이기 때문에 계명은 짐이 되질 않습니다. 그래서 계명은 사랑하는 이를 기쁘게 하는 올바른 길을 보여주면서 그에게 친구와 같은 존재입니다: “계명이 법이니라.”(잠언6:23) 그는 “그리스도의 계명 안에서” 바오로 성인처럼 살아갑니다. 사랑으로부터 우러나와 계명을 지키니, 이러한 계명들은 모든 사랑의 요구사항입니다.(갈라타 5:14)


 천주님이 명하시는 것을 사랑의 마음으로 행한다는 바로 그것은 그 자체가 천주님의 선물입니다. 이는 주님이 신앙으로 말미암아 요청하는 이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spiritus gratiae facit ut habeamus fidem, ut per fidem impetremus orando, ut possimus facere quae iubemur” – 은총의 정신은 우리가 신앙을 갖고 있는 점을 이루니, 그래서 신앙을 통하여 우리가 계명 받은 바를 해낼 수 있는 것은 기도로서 얻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De Gratia et Libero Arbitrio)


 모든 좋은 것은 천주님으로부터 옵니다.: 천주님은 우리가 행하는 모든 선한 것의 첫 번째 원인이니, 우리 자신의 의지를 우회해서가 아니라 좋은 일을 사랑으로, 의지로써 행하도록 우리 의지에 힘을 부어주는 원인입니다. 그래서 진정 자유케 되는 것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천주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천주님의 뜻을 거슬러 자신의 의지를 따르는 사람은 거짓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는 천주님의 정의에 대해 자기 자신에게 빚(debt)을 쌓고 있는 것이며 그러니 그는 원치 아니하는 고통을 짊어져야 될 것입니다! 만일 그가 회개하면 –저들이 회개하도록 죄인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 천주님의 정의에 대해 이 아래에서 보속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가 자발적으로 보속을 하지만 값을 치루는 것입니다! 악은 반드시 처벌 받아야 된다는 것이 천주님의 의지가 아닙니까?


 무한한 지혜와 선한 분이시기에 천주님은 악이 퍼져나가는 것을 허용하시질 않을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이것은 보속인데 죄를 자발적으로 배상합니다) 또는 비자발적으로(이것은 벌입니다) 선으로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죄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총으로 회개할 때, 천주님이 용서하시고 그리스도의 수난 속에서 우리가 배상에 참여하도록 요구하십니다.


 바오로 성인은 말씀 하십니다;“성신이 친히 우리가 천주의 의자(義子)임을 우리 정신과 한가지로 증언하시는도다. 의자면 또한 상속자라. 곧 천주의 상속자요, 또한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니라. 다만 우리는 저와 함께 고난을 당할지니, 이에 우리는 저와 더불어 또한 영화롭게 되리라.”(로마8:16-17)
 
 진리를 알고,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자유를 주는 것이니, 천주님의 영원한 진리와 선하심에 애착을 갖고, 그러면서 자나가는 세속적인 일에 무관심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치명자들이 박해하는 황제들의 위협에도 미동하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외부 압력에 벗어난 진정한 자유이니, 왜냐하면 저 치명자들은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저들에게 있어 치명이란 불행한 이 세속생활로부터 천국에서 천주님과 함께 영원한 복락으로 들어가는 통로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바라보는 다른 측면도 이를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천주님은 유형, 무형의 사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먼저, 보이는 피조물을 보세요. 가장 큰 것에서 가장 작은 것까지, 가장 먼 곳, 가장 커다란 은하계에서부터 우주의 가장 작은 입자에 이르기까지, 저들 모두가 천주님이 설정하신 자연의 법칙을 완벽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태양 주위를 돌고 있어. 이젠 나의 길을 갈 거야...”라고 말하는 단하나의 행성도 없습니다. 천주님이 설정해 놓으신 법칙을 따르지 않는 우주 전체의 단 하나의 입자는 없습니다. 이는 순명의 놀라운 교훈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요: 그것들은 자유가 없으니까 하고픈 대로의 장점이 없지요! 예,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천주님은 저들이 사랑으로 순명하고, 숙명으로 따라서는 안 되는 몇 가지 영적인 창조물, 천신들, 인간들(저들의 영혼과 마음이 영적입니다)을 만드신 이유입니다. 천주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사랑으로 따르도록 그리고 이 안에서 행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입니다. 천주님은 천주님의 계명을 거역하라고 자유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천주님의 법을 거역할 때, 그는 자기의 자유를 남용하는 것이며, 뭔가를 남용할 때, 그 자유를 잃는 것이 마땅합니다. 죄인들이 이전에 회개하지 않고 사랑으로 배상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지옥에서 저들의 자유를 잃게 될 것입니다. 


 불교 전문가는 아니지만 내가 아는 바로는 저들은 인격적인 신, 우리 개개인의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사랑하는, 그리고 그분 친히 그분이 가지고 있는 영원한 행복 안에서 우리를 불러 함께 나누고 채워주시는 인격적인 신을 믿지 않는 것으로 내게는 보여 집니다.


 해탈은 채우기 보다는 오히려 비우는 것처럼 보여 집니다. 이는 오히려 진정한 영성과는 반대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성부께로 가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 나를 말미암지 아니하고는 아무도 성부께로 나오지 못하느니라.”(요왕14:6)


2) 종교“근본주의”라는 말에 애매성이 있으니, 왜냐하면 무슬림의 근본주의 때문에 많은 “사람들”과 “신학자들”이 이러한 근본주의는 위험하다고 올바르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은 칼로써, 무력으로써 저들의 종교적 견해를 강요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들의 종교를 고요함과 진리의 다정한 힘 그리고 설득으로 옹호하지 못하는 거짓종교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이것은 3세기 이상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 이교도들이 갖고 있는 사례였고 이 사례는 아직도 특히 오늘날 무슬림들이 중동에서 행해지는 사례입니다.


 진정한 종교인 가톨릭은 오히려 치명자들, 즉 죽이기보다는 그리스도를 위해 양순하게 죽음으로써 퍼졌습니다! 교회가 십자가 운동을 요청했을 때, 이는 무슬림의 폭력에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우리 시대에도 많은 이들이 ISIS에 대항하여 군사적인 저항을 요청하는데, 이는 “합법적인 방어”입니다)


이 긴 답변에 자유에 대한 이 어려운 질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바랍니다.

 

Yours sincerely in Jesus and Mary,
Father François Lais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