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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으로서의 성신의 역할 - 예수승천 후 주일(2015.05.17)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5-18



 사랑으로서의 성신의 역할 - 예수승천 후 주일(2015-05-17)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승천 이후 성 교회는 성신강림을 고대(苦待)하니, 성신께서는 지극히 거룩하신 성 삼위의 제3위격으로서 참 천주이십니다. 실제로 사람은 오직 천주께만 성전을 지을 수 있습니다. 성  바오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천주의 성전이요, 천주 성신이 너희 안에 거처하심을 알지 못하느냐?“(코린토 전 3;16)


 잠깐 뒤 그 분은 더 명료하게 “너희 육신은 천주로부터 박은 너희 안에 거하시는 성신의 성전이며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지 못하느냐? 대저 너희는 비싼 값으로 구매(購買)되었느니, 그럼으로 너희는 육신(肉身)으로써 천주의 영광을 현양(顯揚)하여(저를 모실지니라)“(코린토 전 6:19-20)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 외에는 아무도 성자를 알지 못하고, 또 성자와 성자 즐겨 지시하여 주는 자 외에는 아무도 성부를 아는 자 없느니라.“(마테오11; 27)말씀하셨습니다. 성 바오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성신은 만사를 통달하시매, 천주성의 심오(深奧)함까지라도 통달하시느니라.“(코린토 전 2;10) 성신은 참 천주이시오, 성부와 성자와 동등하시기 때문에 천주님의 지식을 통하여 그 점을 알고 계십니다.

 성 교회의 일치된 가르침은 사랑으로, 불타는 사랑으로서 성부, 성자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성신은 성부와 성자의 영이십니다. 성신은 성부와 성자에 의해 보내집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성신의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성신의 과정에 대해 전하시길, “무엇이든지 성부(聖父) 가지신 바는 다 내 것이니, 이로 인(因)하여 나 이르되, ‘내 것을 받아 너희에게 보하시리라’하였노라.“(요왕16:15) 성신은 표현할 수 없는 방법으로 세 분을 묶어주시는 사랑이십니다.

 이러한 천주사랑은 그 분이 선하시고 사랑이시기에, 우리를 창조하신 모든 그 분의 업적의 원리, 그리고 그 분의 궁극적인 목적, 특히 모든 업적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은 성 육신이시며 구속사업인 것입니다. 그래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지상에서 예수의 생애가 시작될 적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신 것은 바로 성신에 의한 것이고, 또 마지막 때에 우리 주께서 십자가 상에 자신을 제헌하신 것도 바로 성신에 의해서 입니다. 바오로 성인은 “영원하신 성신의 힘으로 말미암아 당신 자신을 무구(無垢)한 희생으로 천주께 제헌하신 그리스도의 성혈이야 얼마나 더 우리로 하여금 생활하신 천주께 섬기도록 죽은 업적에서 우리 양심을 조촐케하리오?“(헤브레야9;14)말씀하십니다.

 성신은 거룩하게 하시는 영이시니, 그 분은 거룩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우리 마음을 태웁니다. 그리고 필수적으로 거룩함이란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너 온전한 마음과, 온전한 영신과, 모든 힘과, 모든 뜻으로 상주 네 천주를 사랑하고 또 네게 가까운 자를 네 몸같이 사랑하라.”(루까10:27)

 성신은 '진리의 영(靈'(요왕14:17, 15;26. 요한1서 4:6) 즉, 그 분은 우리에게 진리에 대한 사랑을 주시니 그래서 오류가 진리를 파괴하기 때문에 오류를 혐오합니다. 성신은 새로운 변화를 가르치지 않고 오히려 “성부 내 이름을 위하여 보내실 바라글리도 성신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요,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바 모든 것을 너희에게 깨우쳐주시리라“(요왕14:26)하십니다.


 그 분은 변혁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계시하시는 것을,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종도들과 그의 계승자들에 의해 전승된 것을, 그 전통을 기억하고 지키게 도와주십니다! 교황 비오9세께서 교황의 무류성을 정의하였을 적에 “성신은 베드로와 그의 계승자들에게 약속된 것으로서, 계시에 의해 새로운 진리가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성신의 조력으로 말미암아 종도를 통해 전달된 계시와 신앙의 유산을 신성하게 수호하고 충실히 전하는 것”(Dz 1836)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성신의 은총이 있으면, 진리에는 비통함이 없는지라, 우리는 내 이웃을 짓밟을 진리를 사용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이웃이 진리의 빛에 다가오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실제로 바오로 성인은 천주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함을 받고 진리를 완전히 인식하기를 원하시니라.”(티모테오 전 2:4)하시지만 실제로 모든 이가 진리에 오는 것은 아니고 몇몇은 “항상 성신을 거스르는”(종도행전7;51)바 입니다. 그러나 천주께서는 저들 모두를 진리로 오길 원하시며 성총을 통해 많이 이가 오도록 도와주십니다. 모든 곳에 성신의 불길을 피우게 하는 전교의 필요성이 있는 것입니다. 르페브로 대주교님은 공의회 이전에 가장 커다란 전교단체인 '성신회”' 일원이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성신께서 하시는 가장 커다란 일은 우리 영혼에게 천주님의 사랑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베퍼 주신 성신으로 말미암아 천주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주입되었느니라.”(로마5:5) 이 사랑은 영혼의 생명(生命)이니, 실제로 “신앙(信仰)으로 말미암는 의인(義人)은 살리라.”(로마1;17)이며 어떤 신앙이 아니라, “오직 사랑으로 말미암아 활동하는 신앙“(갈라타5:6)입니다. 정말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야고보2:20) 아닌가요? 그럼으로 성신은 우리가 영적으로 살고 계명을 실천하게 함으로써, 자비를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을 부여하시는 분'이십니다. 실제로 “그럼으로 사랑은 법을 온전히 준행함이니라.“(로마13:10)

 너무나 많은 사람들은 사랑이란 단지 사랑에 대한 어떤 좋은 감정, 혹은 기부금을 주는 행위이지 그 이상 없다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큰 오류(誤謬)입니다! 만일 성 요한이 “천주는 사랑이어라”(요한 1서4:8)했다면, 사랑은 우리가 느끼는 이러한 감정보다 훨씬 큰 어떤 것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사랑은 성신강림의 커다란 바람(風)과 같은 성신으로부터 오는 변화되는 에너지이며, 우리의 온 생애를 변화시킬 수 있게 영혼을 불태우게 하고, 우리를 순교자의 고난조차도 받을 수 있도록 하며,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놓게도 합니다.

 성신께서는 우리 모든 영적 생활을 통해서 우리와 동반하시니, 생명을 부여하시는 그 분은 그리스도의 생명 속으로 들어가는 참여를 우리에게 주셔서 '물과 성신으로부터'(요왕3;5)오는 새로운 출생과 함께 시작됩니다.

 우리 마음 안에서 사랑의 첫째 효능은 우리 마음 속에 천주님을 최우선으로 두는 것이고 모든 행동을 그러한 궁극적인 목적에 설정해놓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첫 단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거역하게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 마음을 정화시며,  '고행하는 생활(수도자의 생활)'속에 있으니, 죄와 악의 경향에 빠지는 것에 싸우는 것이 사랑의 요구조건입니다. 죄를 미워하지 않으면, 죄의 상황을 피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는 진정으로 천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아무도 능히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느니, 대개 하나는 미워하고 하나는 사랑하거나 혹 하나는 받들고 하나는 경만(輕慢)하리니, 너희도 능히 천주와 다못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리라.”(마테오6:24)

 우리는 성신의 자극에 대해 관대하게 반응해야만 합니다. 성신의 자극이 죄로부터 우리를 떼어내면(죄로부터 우리를 떼어내지 않는 자극은 분명 성신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성신의 자극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길, 특히 그 분의 덕행을 따라가게 한다면 성신의 자극에 어떻게 인식합니까?(세상은 겸손, 정결, 가난, 인내…..등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주께서 “저를 익히 보시고 사랑하여 이르시되, 너 한 가지가 부족하니, 가서 가진 바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 너 하늘에 보배를 얻으리니, 이에 와서 나를 따르라.”(말구10;21) 하시듯이, 이를 진정 이해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서슴없이 포기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성 교회는 종교적인 삶이 그리스도인의 완벽한 생활이다라고 가르칩니다.

 사랑의 두 번째 단계는 “빛을 비추는 생활”이니, 죄의 습관을 이미 끊고, 성총의 상태에서 습관적으로 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좀 더 잘 알고 사랑하며, 완벽한 덕행 가운데 그 분을 모방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원하시는 바 대로, 그 분께서 원하시므로, 그 원하시는 것을 우리가 행하는 것 입니다. 이 단계에서 우리가 “성신의 열매란,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자애, 인자, 충실함, 유화, 공순, 절제, 정결“(갈라타5:22-23)입니다.

 사랑의 세 번째 단계는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더 완벽하게 사랑하고, 모든 일을 통하여 특히 묵상(默想)속에서, 사랑을 강화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결합된 생활입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는 이 단계에서 사셨습니다. 바오로 성인이 말씀하신 그와 같은 묵상입니다: “가리우지 않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우러러 보는 우리들은 다 이 우러러봄으로써 항상 더욱 영화롭게 주와 동일한 모상으로 화(化)할 것이니, 이는 주의 성신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니라.“(코린토 후3:18) 성신은 우리를 위해 우리가 원하는 것 훨씬 이상으로 거룩함의 높이를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성신께 순명하도록 합시다!

 성신과 미사의 거룩한 희생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있습니다. 사랑은 실제로 두 가지 측면, 주는 것과 일치가 있습니다. 자신이 희생제물이라는 점에서 자신을 전부 천주께 드리는 것과 영원히 천주님과 함께 모두를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미사의 거룩한 희생 안에서, 희생이 제헌되는 곳에 축성이 있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 자신을 천주께 제헌하는 그 미사 안에서, 그리고 천주님과 우리의 영혼이 지극히 절친한 일치 속으로 변화되어 들어 가는 영성체는 영원히 그 절정을 이루어 완성될 것이라는  이 두 가지 측면을 보게 됩니다.

 마지막이지만 최소한, 성신과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매우 지극한 일치가 있습니다: “ 성신이 네게 강림하시고, 또 지존하신 자의 전능이 너를 덮어 그느르시리니,“(루까1:35) 그리고 실제로 성신은 성모님을 동반하십니다. 엘리사벳 집에 방문하여 인사를 할 적에 “문득 네 인사하시는 소리 내 귀에 들리매, 내 태중의 아이가 기뻐 용약하나이다. 그리고 엘리사벳이 성신을 충만히 받아….“(루까1:44,41)


 성모님이 주님을 바치려고 성전에 갔을 때, 성신은 성 시메온을 성모께로 인도하시어 만나게 했습니다.(루까2:27) 그래서 성신이 오실 것에 대비하여 자신들을 적절히 준비하기 위하여 종도들과 첫 제자들은 예수승천과 성신강림 사이 9일간 성모님 주변에 모였습니다.

 “영적인 그릇”, 아니, 오히려 “성신을 담는 그릇”이신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여, 우리가 성신을 더 잘 알고 그 분의 풍성한 은총을 얻게끔, 성신의 사랑으로 채울 수 있도록 그리하여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