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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을 거부하고 교회 밖에 있는 자들-성 목요일(2015-04-02)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4-03




교황을 거부하고 교회 밖에 있는 자들-성 목요일(2015-04-02)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면병을 가지사, 사례하신 후 저들에게 떼어 주시며 이르시되, 이는 내 몸이요, 너희를 위하여 주는 것이니, 너희는 나를 기억하기로 이 예를 행하라 하시고 저녁을 잡수신 후에 또한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릴 바 내 피로써 세운 신약이니라. 그러나 나를 잡아주는 자의 손이 지금 나와 한가지로 이 식상 위에 있도다. 인자는 과연 배정한 곳으로 돌아가거니와, 오직 인자를 잡아주는 그자는 앙화(殃禍)로다.“(루까22:19-22)

 성 루까 복음서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극히 거룩한 성체를 제정(制定)하실 때, 유다스가 만찬에 있었으며, 그가 성체를 독성적(瀆聖的)으로 받았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성 마두 다음으로 나오는 성 마테오는 성체 제정 이전에 유다스가 배반했음을 언급하고 있지만, 이는 사건을 순서대로 나열하기보다는 주제에 의해 그가 자주 요약(要約)하고, 무리들이 함께 한 사건의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쉽게 설명되어집니다.


 천주로서 모든 일을 아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슬프게도 성 교회 내에서 많은 독성적인 영성체가 있을 것이고, 심지어 많은 그럴 자격이 안 되는 사제들, 주교들, (몇몇 교황들도) 있을 것이라는 걸 아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성직자들이 미래에 이러한 모든 배반의 형태가 있을 것이라는 것과 저들을 강하게 경고하는 의미로서 자신을 배반할 종도 한 명을 막지 않으셨습니다.


 “인자를 배신하는 자에게는 앙화로다.“(루까22:22) 천주이신 구세주여, 우리가 당신을 배반하지 않게 도와주소서! 지극히 충실하신 성모여 우리를 보호하소서! 배반하지 않는 은총을 얻는 조건이란 겸손이며, 이는 천주께서 “천주 교오(驕傲)한 이를 싫어하시며, 겸손한 이들에게 은총을 주시도다.“(jac4:6)

 저들의 배반에 대한 선(善)한 성 교회 구성원(성직자)들과 신자들의 자세는 무엇인가요? 몇몇 늑대들이 교회 내부로 침투했으니, 양들은 주님의 울타리를 떠나야 합니까?(마테오7:15) 쭉정이 때문에 탈곡장(脫穀場)에서 좋은 알곡이 떠나야 되나요?(마테오3;12) 그들 가운데 가라지가 있으니, 주님의 밭에서 떠나야 하나요?(마테오13:26) 만약 그렇다면 주님의 곡간에는 아무것도 모을 것이 없게 됩니다.


 그와 반대로, 떠나는 사람들은 바람에 의해 날려 사라지는 쭉정이로서 생각된다는 사실입니다! 나쁜 물고기도 있으니, 주님의 그물 안에는 좋은 물고기가 반드시 남아 있어야지 않겠나요?(마테오13:47-48) 그렇지 않으면 주님의 배에는 좋은 물고기가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성  교회 역사를 통해서 보면, 주님의 그물 안에는 나쁜 물고기가 있었고, 좋은 주님의 탈곡장에서 알곡 가운데 쭉정이가 있었으며, 주님의 밭에서는 좋은 곡식 안에 가라지가 있었다는 바로 그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있어서 큰 시련이 되어왔습니다.


 그리고 사악한 사람과는 영성체를 거부했었던 몇몇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발견하게 되니, 저들은 노바티안, 도나티스트파, 카타리파 그리고 후일 이런 점에서 개신교인들이 성 교회를 공격하였습니다. 그러나 성 교회는 항상 이러한 자세, 즉 끈질기게 교회 가르침을 부인하려는 자세, 그리고 저들 주변에 포진한 자들의 교만에 찬 비난을 거부하였으니, 실제적으로는 저들은 교회 밖에 던져진 것이며, “성 교회 밖에서는 절대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즉 가톨릭교회를 빼고서는 그 누구도 그리스도 생명의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몸인 가톨릭교회만이 그리스도의 영신(靈神)으로 말미암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자비, 그럼으로 교회의 사랑과 “완전한 결합”이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성 교회와의 연대(連帶-일치)란 단지 교황을 인정하는 신학적 연대(일치)만이 아니고 매우 실제적인 결합으로서, 만일 누군가가 교황과의 교류를 거부한다면, 교황과 정상적인 교회법적 상황에 있고자 함을 거부하는 것은 교황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로마 가톨릭교회, 우리가 “유일하게 거룩하고 보편적(가톨릭)이며 종도로부터 내려온 교회”을, 또한 “가톨릭교회 밖에서는 절대 구원이 없다”는 그 신앙에 우리가 속한 것입니다. 교황 및 성 교회 성직자들과의 교류를 실제적으로 거부하겠다는 것은 막중한 죄인 것이며, 교회 초창기 때부터 대죄로서 견책을 받아온 것입니다.

 올바른 자세는 어거스틴의 가르침이니: 성 교회 내에서 사악한 자들과 교류하는 것은 저들이 사악한 의도에 동의하지 않는 한, 선에 해악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성 교회 내 교류가 본질적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황과 교류하는 것은, 설령 그가 알렉산더 6세 교황이거나 스캔들이 있는 교황(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조차 호르리우스나 죽을 때까지 지복직관을 거부했던 요한 22세)이더라도 교황과의 교류는 그 교황의 오류와 교류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의 교황과 교류하는 것입니다.


 교황을 인정한다는 것은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아무리 나쁜 교황이라 하더라도, 그가 합법적인 교황이라면, 교황과 교류하는 것은 교황의 현대주의와 교류하는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와 교류하는 것입니다. 교황이 현대주의자라는 핑계로 교황에게 실제적 교회법상의 복종을 거부한다면, 교황을 단지 신학상으로 인식한다 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와의 연대를 실제적으로는 절단(切斷)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 목요일, 매우 생생한 방법으로 어거스틴 성인의 가르침을 보게 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다스의 친구(親口–입맞춤)를 거부하셨습니다! 성 교회는 이 성 주간의 아침기도 응답으로서 노래를 부르는데, 이는 성 교회 내 악한 성직자들과 함께 해야만 하는 것이 얼마나 인내심이 요구되는 가를 보여줍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유다스의 악(惡)한 뜻에 조금도 동의하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만일 어느 종도가 유다스 때문에 종도 그룹에서 떠났다면,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떠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성 비오10세회의 위치는 올바른 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리적 타협 없이 적절한 교회법적 상황을 원하며 그리고 적절한 교회법적 상황이란 설령 교황이 현대주의자라 하더라도 타협 자체 그 안에 있는 것이 아님을 확언합니다. 이것이 성 어거스틴의 교리로서 성 교회의 교리이며 실제 곧바로 투입되는 교리입니다.


 그러나 로마에 있는 현대주의자들이 있는 한, 로마와의 어떠한 접촉도 거부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가톨릭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이는 도나타스트파나 카타리스파들이 취하는 자세의 변형(變形)입니다. 이는 신앙의 문제에 있어 오류로 이끌게 되고 성 교회의 거짓관념, 즉 가톨릭교회란 가견적(可見的) 교회의 오직 건강한 부분만을 주장하는(윌리암슨 주교; 키리에 엘레이숀, 2102년 12월 1일) 교회 내의 카타리스파의 관념으로 이끕니다. 이러한 잘못된 원리를 이행하고 잘못된 가르침에 의거하여 주교를 축성하게 될 때, 이는 극히 슬픈 일이 됩니다.


 만일 확대경으로써 저들이 바라본 사소한 일들을 무시하고서, 지난 주 윌리암슨 주교나 포르 주교에 의한 주교축성에 대해 무슨 이유인가를 찾는다면, 저들의 기본적인 이유란 “멜징겐은 더 이상 진리 안에 있지 않다”(르바롤 지와의 포르 주교 인터뷰)와 “왜 멜징겐이 더 이상 진리 속에 않있는가?” 라는 비난인 것입니다. 저들은 로마가 현대주의자들에 의해 점령되어있는 한, 로마와 어떠한 접촉도 해서는 안 되고, 로마에 현대주의가 있는 한, 어떠한 교회법적 정상화도 거부하는 있는 반면에, 우리는 르페브르 대주교께서 적절한 교회법상의 지위를 추구하셨던 노력을 계속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르페브르 대주교가 실제적인 교회법상의 정상화의 문제를 가지고 저들과의 토론을 위해서 로마가 현대주의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1년간 이를 얻기 위해 로마 당국과 협의를 하였으며, 아주 커다란 추문이었던 아씨시의 사건 이후, 곧 주교축성을 한 것입니다. 1988년 5월5일 의정서에 서명함으로써 다소 지나치게 멀리 나갔다고 말은 했으나, 실제적 교회법상의 정상화를 위해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았습니다. 결코 한 적이 없습니다! SSPX의 역사를 통하여 그 분이 반복했던 노력의 이 같은 결말은 잘 알려져 있고 문서화된 것입니다.


 심지어 그 분이 말씀하시길, 주교성성 이후 몇 년 지나면 이 같은 논의가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필레이 주교가 너무 지나치게 빨리 나갔다는 비난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첫 번째 협의서는 무려 14년이 지난 2000년에 작성된 것이었고, 당시 SSPX는 적절한 교회법상 정상화를 받아드리지 않았습니다. 이 연기(延期)는 우리가 어떠한 교리적 타협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어떠한 교리타협도 안 했다는 최고의 증거입니다!

 지난 주 있었던 윌리암슨 주교에 의한 주교성성에 대한 기본적인 이유를 고려해 본다면 이는 거짓이고, 이 같은 텅 빈 기초 위에 이루어진 저 주교축성 행위는 이에 온전히 곧바로 적용될 교회법의 인가(認可)를 받을 만한 합법성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성 교회 안에서 주교성성행위는 결코 가볍게 볼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 일치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 있습니다. 르페브르 대주교께서 주교축성을 했을 때에는 진정한 이유, 적절한 대의명분, 정당한 이유가 있었으며 그래서 교황을 온전히 그리고 실제적으로 인정하면서 주교성성을 한 것입니다. 윌리암슨 주교는 그러지 아니하였고, 진정한 이유도 없었으며, 적절한 대의명분(大義名分)도 없었고 교황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축성식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아마도 읽었을 “극명한 차이”라는 글에서, 이들의 주교성성에 대한 많은 다른 환경에 대해 기술(記述)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 문제의 가장 핵심을 다루고자 합니다. 성 교회 안에는 선한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이, 흔히 각 성직자들, 우리 신자들 안에서도 각각 그런 이들이 섞여있는 혼합체입니다. 이 사람과 저 사람을 떼어낸다는 것은 항상 가견적(可見的)인 것과는 멀리 떨어진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성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는 것이 신앙의 교리 입니다. 그래서 성 교회 안에 악한 이들이 있다는 핑계로 교회로부터 우리 자신을 잘라내서는 안됩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는 여러분을 위한 결론입니다. 저는 여러분 몇몇이 아직도 최근까지 저항(抵抗)하는 저 사제들의 미사에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참아야 할 사제들의 몇 가지 죄가 있고, 신자들을 감염시키지 않는 사제의 죄(사적인 죄; 물론 그런 죄도 사제가 피해야 할 죄입니다!)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이 미사를 참여하지 못하게 막는 사제의 죄가 있으니, 그러한 죄는 성 교회 일치에 저항하는 죄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성체성사가 성 교회의 일치성사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성 교회로부터 실제적으로 잘라낸 사제로부터, 자기 자신을 거룩한 성체로부터 잘라낸 주교와 합류하여 그러한 미사를 참여하여 일치를 이룬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성사가 일치(一致)의 성사(聖事)가 되어야 하는데, 반면에 저들의 미사는 일치 밖에서(교회 밖에서)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르침입니다! 그럼으로 신자가 이러한 미사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불법입니다. 저러한 사제들과 함께하는 미사에 참여함으로써 여러분들이 영혼 구령의 위험 속으로 빠지지 마십시오!


 교리를 기억하십시오. 저들은 교회 밖에 있으니 교회 밖에는 구원이 절대 없습니다! 교회는 카타리파, 즉 순수한 이들로만 구성된 교회가 아니라는 교리가 있습니다. 교회란 좋은 곡식(밀) 속에 가라지가 있는 주님의 밭, 좋은 알곡 속에 쭉정이가 있는 곳, 주님의 그물 안에는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가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성 비오 10세회에 대한 저들의 반란은 심히 악하지만 참을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성 교회에 대한 저들의 반란, 교황과의 교류를 거역하는 배반은 심히 지나친 것인지라 더 이상 저들과 미사를 함께 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품을 떠난 자들인 저들을 지지하는 것은 성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양 진영(陣營)에 같은 발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저들은 이미 너무 멀리 떠난 상태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 형제였고 친구였던 저 사제들이 멀리 떠난 것을 본다는 것은 진실로 지극히 슬픈 일입니다. 이는 르페브르 대주교께서 신학교 계실 때의 가르침이 아니었습니다. 저들이 돌아오길 기도해야 합니다. 바오로 성인께서 “천주께 대한 저들의 열심은 증거하나, 저들은 바른 인식이 없느리라.“(로마10:2) “걸려 넘어지는 돌“(로마 9:32)을 말씀하셨으니, 나쁜 교황들은 저들을  실제로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이었습니다.


 복되신 성모여 저들이 되돌아올 수 있는 은총을 얻게 하시고 우리 모두가 충실한 자로 남아 저들의 꾐에 속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 (성 비오 10세회 아시아 관구 소속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