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교리

Home > 신앙과 교리 > 미사강론

제목 사제의 사명과 성체성사의 중요성 - 장림 제 4주일 (2014-12-21)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12-22

 

 


사제의 사명과 성체성사의 중요성-장림 제 4주일 (2014-12-21)

 

 

바오로 성인은 오늘 모든 성직자, 사제, 주교, 심지어 교황이 지켜야 할 매우 중요한 원리를 말씀하십니다:“그러므로 사람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종, 천주의 신비의 관리자로 여길지니라. 관리자에게 대하여 요구되는 것은 충실함 그것이니라.“(코린토 전4:1-2) 성직자는 사명을 받았으며 그 사명을 충실하게 이행해야 합니다.

사제의 사명이란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사제는 신앙을 가르쳐야만 합니다:”그럼으로 너희는 가서 만민을 가르치라.“(마테오28:19) 그래서 사제는 가르칠 메시지를 받은 것이요, 이를 충실하게 가르쳐야만 합니다. 교리를 변화시켜서는 안되고 그가 받은 있는 그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우선 내가 너희들에게 전한 바는 나로써도 또한 받은 것이니, 이는 곧 그리스도 성경 말씀을 좇아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음과 묻히셨음과 성경 말씀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음이라…“(코린토 전15:3-4)


성 교회 교리에서 변혁을 가르치는 것은 오류와 이단의 분명한 신호입니다.“우리라든가 혹은 하늘로부터 내린 천신이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저 저주를 받을지로다.“(갈라타1:8)

 

교리에서 기존의 전통 가르침에 충실한가를 알아보는 게 필요합니다. 만약 그 누가 전통에 의해 전해진 교리를 전달하는데 소홀히 한다면, 그 자는 파문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럼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굳게 서 있어 우리가 혹은 말로나 혹은 서간으로써 너희들에게 전한 바 교리를 보전할지니라.“(테살로니까  후2:15)                                                                                                  

사제는 믿어야 할 교리뿐만 아니라 실천해야 할 도덕을 가르쳐야 하며, 우선 자기의 모범으로서 도덕을 가르쳐야만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제는 그 도덕률을 변화시켜서는 안되고 오히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선하고 거룩한 도덕을 전달해야 합니다.


성 바오로처럼 사제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너희는 천주의 사랑하시는 자식답게 저희를 모범할지어다. 또한 너희는 그리스도 너희를 사랑하사 당신을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으로 삼아 우리를 위하여 천주께 드리셨음과 같이 사랑 안에 거닐을지니라.“(에페소5:1-2) “나 너희를 훈유(가르치고 타이름)하노니 나 그리스도의 표양을 따른 것 같이 너희는 내 표양을 따를지니라.“(코린토 전 4;16)


대개 영어는 follow me “나를 따르라” 이지만 그리스어로는 “μιμηταί – mimetai”로서 사람의 모든 동작 하나 하나를 복제하고 그 사람의 성품과 모든 특성을 “닮아가는”의미입니다. 그의 서간에서 7번이나 자기가 그리스도를 모방한 것처럼 자기를 따를 필요성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여기서 다시 전통에 충실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나를 본받을지며, 또한 우리의 표양을 따라 거니는 자들을 살펴볼지어다. 대저 나 너희에게 말하였음과 같이 이제 다시 나 울며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원수되어 거니는 자 많으니라. 그들의 최후는 멸망이로다. 그들은 배를 신같이 위하고(자기 욕심만을 채우고) 수치스러운 일을 자랑으로 여기며 지상의 것만을 탐하느니라.“(필립피3:17-19)

마지막으로 사제는 성사에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세를 담당하는 일반적인 관리자이며 성체와 보속 성사, 종부성사(終傅聖事)를 주관하는 유일(唯一)한 관리자라는 점을 믿어야 합니다. 주교는 신품성사(神品聖事)와 견진성사를 관리(管理)하는 분입니다. 그리고 사제는 혼배성사의 공식적인 증인입니다. 이와 같은 성사는 거룩한 것으로서 거룩한 방식으로 다루어져야 합니다. 이 거룩한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성체성사이니, 왜냐하면 성체는 천주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바로 그 몸이요 성혈이기 때문입니다.

성체에 관한 성 저스틴의 지극히 아름다운 구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음식은 우리 사이에 Εὐχαριστία[성체]라 부르니, 그 어느 누구도 참여가 허용되지 않으나 우리가 가르친 것이 진리라 믿는 사람과 죄의 사면에 대해 닦아낼 것으로 깨끗이 닦아낸 사람, 그리고 갱생하여 그리스도께서 명하는 것 처럼 살아가는 사람은 이에 참여할 수 있다. 우리가 일상 받아드리는 보통 빵이나 포도주가 아니라 천주 말씀으로 인하여 몸이 되셨던 구세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와 같은 방법으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 몸과 피를 갖게 되셨으니, 그와 같은 방법으로 우리가 배운 것은 주님의 말씀의 기도로 인해 강복 받고, 변화로 인해 우리 몸과 피가 자양분을 받게 되는 그 음식은 육신이 되신 예수의 몸과 피라는 점이다. 종도들에게 있어서 저들이 만든 기억에서, 이를 복음서라하는데, 저기에 참여했던 것을 우리에게 전달한 것이다. 예수께서 빵을 잡고, 사례하시고 말씀하시되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루까22:19) 이는 내 몸이니라. 그리고 이들 종도들에게 나눠주신다”(1st Apologia, ch.66).


성 저스틴은 150년 경 즉 2세기때 사신 분입니다. 그래서 그 성인을 가르친 사람들은 종도들의 직계 제자들이 됩니다. 그래서 성체 안에 예수께서 실제로 계시다는 실제현존은 성 교회의 분명한 옛 교리입니다. 이를 성교회는 항상 지켜왔고 정의해왔습니다.

이것이 진실로 다른 모든 신비를 포함하는 신비인 “신앙의 신비”입니다. 왜냐하면 성체는 육화된 천주성자의 몸이며 우리 구원을 위해 희생제물로서 제헌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성삼위일체의 신비, 성 육신의 신비, (희생제로 말미암은)구원의 신비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신앙의 시험입니다. 사람이 예수께서 참 천주이심을 진실로 믿는다면 그 분은 이와 같은 (천주의 권능은 무한하심으로) 빵을 자신의 몸으로, 포도주를 자신의 피로 변화시키는 성 변화의 힘이 있음을 믿을 것이나, 사람이 이와 같은 신비를 거부한다면 어찌 그가 예수를 참 천주로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성 교회역사를 보면, 대부분의 이단들, 특히 개신교인들은 결국 성체를 부인하게 됩니다. 현대주의자들이 이 거룩한 성사를 소홀히 다루는 것은, 전례에서 이 같은 최근의 변화가 잘못되었다는 표시인 것입니다.  진실로 예수께는 가장 높은 영예(榮譽), 최고의 존경, 참 흠숭지례(欽崇之禮)를 드려야 됩니다.

성 바오로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셨듯이, 사제는 “그러므로 사람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종, 천주의 신비의 관리자로 여길지니라. 관리자에게 대하여 요구되는 것은 충실함 그것이니라 (코린토 전 4:1-2)”입니다. 전례에 관해 더 자세히 말하자면, 성 바오로께서 코린토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나 그리스도의 표양을 따른 것 같이 너희는 내 표양을 따르라.“(코린토 전 11:1)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받은 바를 그대로 전달해야 합니다. 같은 장에서 바오로 성인은 좀 더 언급하시길 “대저 나 너희에게 전한 바는 주께 받았으니 주 예수 붙임을 받으시던 날 밤에 면병을 가지사 사례하신 후 이를 떼시며 가라사대, 너희는 받아먹으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바칠 바 내 몸이니, 너희는 나를 기억하기로 이 예를 행하라.”(코린토 전 11:24)


그럼으로 전례에서도 우리가 새롭게 만들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받은 바를 오히려 더 충실히 전달하여 합니다. 같은 장에서 바오로 성인께서 쓰시길, “너희가 만사에 나를 기억하며 또한 나의 훈계를 나의 명한대로 지키는 것을 나 칭찬하노라.“(코린토 전 11:2)

전통에 대한 충성심은 교회의 위기 시작 때부터 르페브르 대주교께서 지키신 커다란 원리였으니, 초기 때부터 전통에 의해 우리에게 전해진 가톨릭신앙에 충실히 남아있고, 옛 가톨릭성인들이 지킨 가톨릭도덕에 충실히 남아있고, 고대 때부터 우리에게 전승된 가톨릭전례에 충실히 남아있는 것입니다.

성 교회의 현재 위기의 각본은 몇몇 현대주의자들이 교회가 저들에게 전해준 것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척하는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저들은 전례에 관해 개선을 원하고 전례를 더 잘 만들 수 있다고 하나 저들의 보잘것없는 인간의 생각으로 이 전례를 변화시켰으며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가 전했던 “천주의 신비”에 훨씬 못 미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필요한 것은 가톨릭신앙과 도덕 그리고 전례에 충성하여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완전한 충성이야말로 전통 로마가톨릭 미사 안에 구체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전통미사를 지키고 진흥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크리스마스의 신비와 성체의 신비 사이에 많은 연관이 있습니다. 성 저스틴이 위에 언급하신 것처럼, 천주의 말씀이 임하시고 크리스마스 때 탄생하신(그리고 “그 말씀이 사람이 되사”(요왕1:14)와 같은 똑 같은 몸입니다. 그리고 성체에 실제로 계십니다(“이는 나의 몸이라” 마테오26:26)


그리스도께서 “강보(포대기)에 싸였듯이”(루까2:7) 강보가 천주의 말씀 바로 그 몸을 포함하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성체 안에 숨어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구유 안에 누워계시듯이 (루까2:7) 그 분은 우리의 음식이 되기 위해 제대 위에 오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아기 예수의 이미지를 구유 안에서 바라보게 될 때, 크리스마스 구유 안에 있는 그걸 기억하시고 아기 예수 모습만을 갖는 게 아니라 성체(聖體)안에 계신 그 분을 알게 되시고 그 분의 실제현존(實際現存)을 더 잘 알게 됩니다.


이 성체는 주님입니다. 베들레헴에서 삼왕(三王)이 주님을 경배한 것처럼 여러분은 성체 안에 계신 주님을 경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목동(牧童)과 삼왕이 아기 예수를 자기들과 함께 할 수 있었으니 저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저들이 경배했던 같은 예수를 여러분도 받아드리고 있으니, 주님은 여러분과 현재 함께 하며여러분과같이머물고있는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이 과거와 같을 리 없습니다. 삼왕이 “다른 길로” 뒤돌아갔듯이, 여러분의 생활도 (이전의 것을 버리고) 천주님으로 채워진 생활, 신앙과 도덕에 충실하고 천주께 바치는 전례로 그 분께 완전히 충실한 생활로써 천국과 같은 생활이 되어야만 합니다.

지극히 충실하셨던 동정녀시여, 우리를 위해 우리가 저런 은총을 얻게 하소서.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 (성 비오 10세회 아시아 관구 소속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