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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난받는 이들에게 주시는 천국의 약속 - 저성첨례(2014-11-09)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11-12

 


고난받는 이들에게 주시는 천국의 약속 - 저성첨례(2014-11-9)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난 주 우리는 저성 첨례(모든 성인들의 축일)를 기념하였습니다. 이 축일은 아름다운 축일로서 아주 구체적으로 강조하는 점은, 우리에게 위안(慰安)을 주는 진리가 있으니, 덕행에 대한 놀랄만한 보상이 있으리라는 것 입니다. 천주님은 속이지 않습니다. 그 분께서는 성인들의 덕행, 사랑 그리고 충성에 대해 보상(報償)하실 것입니다.


바오로 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에 기인하는 것이니, 이 생명은 거짓이 없으신 천주께서 영원으로부터 언약하신 바이며…“(티토 1;2) 누구에게 이를 약속합니까? 성 야보고는 답하시길 “주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언약하신 생명의 월계관을 받게 될 것이니라.“(야고보1:12) 진실로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고 마음으로 한번도 생각지 못 한 것을 천주(天主)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예비하셨느니라.‘’ (코린토  전 2:9)


이미 복음서에서 우리 주님은 덕행을 실천하는 큰 기쁨이 있다라고 가르치십니다:”마음으로 가난한 이는 진복자(眞福者)로다 천국이 저들의 것 임이요, 양선(良善)한 이는 진복자로다, 저들이 땅을 차지할 것 임이요, 우는 이는 진복자로다, 저들이 위로(慰勞)함을 받을 것 임이요, 의덕(義德)을 주리고 목말라하는 이는 진복자로다, 저들이 배부를 것 임이요. 애긍하는 이는 진복자로다, 저들이 애긍함을 받을 것 임이요, 마음이 조촐한 이는 진복자로다. 저들이 천주를 뵈울 것 임이요, 화목한 이는 진복자로다, 저들이 천주의 아들이라 일컫을 것 임이요 의(義)를 위하여 군난을 받는 자는 진복자로다, 천국이 저들의 것이요, 사람이 나 때문에 너희에게 악담하고 너희를 핍박하고 모든 악한 것으로 너희를 거슬러 망증(妄證)하면 너희가 진복자 되리니, 즐거워하고 용약하라. 너희가 풍성한 상급(賞給)을 하늘에서 받을 것이니, 대개 너희보다 먼저 있던 선지자(先知者)들을 이와 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테오5:3-12)


저들이 악담(惡談)할 때에 이미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저들이 외부로부터 고통을 받고는 있지만, 내부로서는 천주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박해(迫害)가 더 이상 없게 될 적에 저들이 누리는 기쁨은 그 얼마나 크겠습니까? 천국에서 있을 희망과 기대가 박해 받을 적에도 이미 이렇게 무척 크다면, 저들이 천주님을 직접 뵐 때에 그 기쁨은 그 얼마나 클까요?


무엇이 있게 될까요? 성 요한은 그의 첫 서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부 우리에게 어떠한 사랑을 주셨는지를 너희는 볼지니, 곧 우리는 천주의 자식(子息)이라 일컫음을 받고 또한 사실로 그렇게 되었느니라. 이로 말미암아 세속은 우리를 모르느니, 대저 그는 천주를 모르는 연고니라. 친애하는 자들아, 우리는 이제 천주의 자식이로다. 우리가 장차 무엇이 될 것인지는 아직 명백하지 않으니라. 그러나 이것이 명백하여질 때에는 우리는 천주와 비슷할 것을 아노니, 대저 사실대로의 저를 뵈올 것 임이니라.“(요한 1서3;1-2)


그 분은 즉시 그 결론(結論)을 끌어냅니다. “무릇 이러한 희망을 저에게 대하여 가지고 있는 자는 저 거룩하심 바 같이 자기를 또한 거룩하게 하느니라.“(요한1서 3:3)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대저 죽은 자 부활 한 후는 시집도 가지 않고 장가도 들지 아니하며 오직 하늘에서 천신(天神)과 같으니라”   (말구12;25)  “하늘에서 저들의 천신이 하늘에 계신 내 성부의 얼굴을 항상 뵈옴이오… “(마테오18:10)


만일 묵상으로 인해 바오로 성인께서 “가리우지 않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우러러봄으로써 항상 더욱 영화롭게 주와 동일한 모상으로 화할 것이니, 이는 주의 성신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니라.“(코린토 후 3:18)라고 쓰셨다면, 만약 묵상의 진리가 이미 있다면, 천국에서의 지복직관(至福直觀)의 모습은 그 얼마나 놀랍겠습니까?


실제로 “지금에는 우리가 다만 거울을 통하여 어슴푸레하게 보나, 저 때에는 직접 대면할 것이며 지금에는 우리가 인식(認識)하는 것이 단편적(斷片的)이나, 저 때에는 내가 알려짐과 같이 나도 또한 알리라.”(코린도 전13:12)


토마스 성인은 설명하시길, 이 지복직관은 최고의 목표에 적용되는 인간의 능력과 지성의 가장 완벽한 행위가 될 것이라고 설명하십니다: 천주께서 친히 영광의 빛으로 말미암아 이 자체의 능력 위에 끌어 올리셨으니, 이 같은 완벽한 행위는 영원히 우리의 복락(福樂)이 될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영원히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성영의 저자(著者)는 이렇게 말합니다;”기뻐하라. 주 안에서 즐거워하라…“(성영31:11)  “기뻐하라.. “(성영96:12) 바오로 성인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언제나 주 안에 즐거워하라. 다시 말하노니 즐거워하라.“( 필립피4:4) 천주님의 빛으로 가득 차게 되고, 천주사랑의 불로 영원히 영원히 타오르게 합시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목표입니다. 이는 세속적인 행복이 아닙니다. 바오로 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만일,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희망이 단지 현세생활에만 그친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 중에 가장 불쌍한 자들일 것이다.“(코린도 전15:19) 이것이 천국으로 가고자 하는 망덕(望德)의 목표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세속적인 희망에 두고 것이 아니라, 천국에 희망을 두는 것 입니다.

우리의 희망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모든 것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천주이신 그 분은 우리가 그 분을 영원히 보고 소유하길 원하는 분이십니다. 그 분은 또한 우리 희망의 강력한 동기가 됩니다. 그 분은 천주성부의 말씀이요, 이 말씀 안에 이 같은 놀랄만한 약속(約束)이 이루어졌고 특히 그 분의 성혈(聖血)로써 이 약속들을 인증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천주께서는 우리가 구원되길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 유일한 당신의 독생성자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우리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 그 이상으로 우리가 구원되길 몹시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이 세상 종말 때에 우리의 부활에 대한 보증인으로서 그 분은 다시 부활 하신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주님께서 천국에서의 보상에 대해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다음 장에서 특히 그렇습니다:“천국이 저들의 것이라”…“저들은 위로 받을 것이라”..“저들은 배부를 것이라”…”저들은 자비를 받을 것이라”…’저들은 천주님을 뵐 것이며”…”저들은 천주님의 자녀들이라 부르게 것이며”…”너희들은 천국에서 보상이 매우 클 것이라.”


다른 구절에도 많이 있습니다. 주님은 천국을 많은 사물에 비유합니다. (‘천국’이란 표현은 마테오 성인의 전형적인 표현인 반면에, 말구 성인은 ‘천주님의 왕국’으로 표현합니다) 마테오 복음서에서 아홉 번 주께서 천국을 어떤 사물, 주로 지상에서 사용되는 가장 귀중한 물건 즉, 왕의 연희(延禧), 보물 등으로 비유하셨습니다.


이 천국의 기쁨은 지극히 크기에 천국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세속적인 것, 모든 것을 경시(輕視)해야 합니다. 다음의 강력한 경고를 기억하십시오:


“또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그 손을 베어 버리라. 너 병신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의 멸(滅)치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나으리니, 거기는 그 독충이 죽지 아니하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네 발이 만일 너를 범죄케 하거든 그 발을 베어 버리라. 절면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꺼지지 아니하는 불 지옥에 빠지는 것보다 더 나으리니, 거기는 그 독충이 죽지 아니하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또 네 눈이 만일 너를 범죄케 하거든 그 눈을 빼어 버리라. 한 눈을 가지고 천주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불 지옥에 빠지는 것보다 더 나으리니, 거기는 그 독충이 죽지 아니하고 불이 꺼지지도 아니하느니라.“(말구9:42-47)


사람들은 손과 발을 절단하거나 눈을 빼내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만약 저들이 천국에서의 지극히 큰 기쁨, 그 아름다움을 생각한다면, 주님의 말씀을 행하는 데에 있어서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 그와 동시에 사람으로서 지복직관을 누리셨기에 주님은 천국에 계시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천주로서 영원한 복락, 즉, 천주지복(天主至福)로서 최고의 복락을 누리십니다. 그 분께서 이 같은 중요한 진리로서 충만하셨기에 주님은 매우 분명하게 즉각 우리를 경고하십니다!


실제로, 어느 날 훨씬 듣기 좋은 아름다운 음성이 있을 것입니다:”좋다, 착하고 충직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직한 고로 나 네게 많은 일을 맡기리니, 너 주의 즐거움에 들어오라. “(마테오25;21) 또한 “내 성부의 강복하신 자들아, 세상 배포((排布)할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한 나라를 와서 차지하라. 대저 나 주릴 때에 너희가 내게 먹을 것을 주고, 나 목마를 때에 내게 마실 것을 주고, 나 나그네가 되었을 때에 나를 집에 데려 가고…“(마테오25:34-35) 또 말씀하시길, “의인(義人)들은 영생(永生)으로 가리라.. “(마테오 25:46)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음성을 듣기 원한다면,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에 서야만 합니다. (마테오25:33) 우리가 결혼 예복을 입은 모습으로 있어야만 합니다.(마테오22:11)


만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그 수족(手足)을 결박(結縛)하여 바깥 어두운 데 던지라. 거기 절치통곡(切齒痛哭)함이 있으리라.“(마테오22;23) 라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우리는 천주님의 계명을 반드시 지키고 우리가 죽을 때까지 순명 속에서 참아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생활에 있어서 두 가지 핵심적인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고 성세나 보속의 성사 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총으로 인해 죄의 생활을 덕행으로서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우리 주(主)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들이 죄로부터 죄인들을 구하고 보속(補贖)으로 이끌며… “( 마테오1:21, 루까5:32) 이를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성인께서 이렇게 쓰셨습니다. “모든 지경(地境)과 외교인(外敎人)들에게 강론하여 회개(悔改)하게 하고, 또 회개하는 합당(合當)한 공부를 행함으로써 천주께 회두(回頭)하게 하였더니“(종도행전26:20) 또한 쓰시길 천주 ”당신 언약하신 바를 미루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너희에게 대하여 인내로써 처리하심이니 이는 주 사람들의 멸망함을 원치 않으시고 오직 모든 사람의 개심하기를 원하심이니라.“(베드로 후3:9)


오늘날 보속하기 위해 저 요청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 사명에 있어서 필수적입니다. 현대의 많은 위기는 이 같은 중대한 문제를 무시하는 데에서 나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없어. 내게는 너무 어려워……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총(聖寵)을 주시니, 이 성총은 이 모든 것을 훨씬 쉽게 할 뿐만 아니라 즐겁게 만듭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의 생활에 관한 두 번째 핵심적인 것은 인내입니다: “신덕 안에서 지속적으로 안정되며(코린토..16;13)  망덕(望德) 안에서 동요(動搖)하지 않는”(콜로새 1:23) 자세입니다.“


그런즉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아, 부활에 대한 확고한 신앙을 가져 흔들리지 말며, 언제나 주를 위한 사업에 있어 열중할지어다. 대저 너희는 주 안에 겪은 그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앎이니라.“(코린토 전 15:58) 실제로 덕행에 대한 놀랄만한 보상이 있게 될 것이니, 이 덕행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총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저 “신앙 안에서의 안정성(확고성)”은 “완고함”이란 표현으로 경멸되어 나타납니다. (이는 시노드 마무리 회의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행한 권고 내용으로써) 즉 천주님의 계명을 지키라는 요구는 더 이상 분명하게 언급되지 않으며, 저들에게 계명에 대한 순명의 필요성에 대해 말하지 않고 마치 유일한 중요 사항이란, 모든 이에게 그저 ‘개방(開放)’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천국의 문이 “닫혀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준비하지 않은 어리석은 처녀들을 기억하십시오. “저들이 사러 갈새 신랑이 이르매, 예비하였던 자들은 신랑과 한가지로 혼인(婚姻) 잔치에 들어가고 이에 문을 잠근지라, 남은 동녀(童女)들이 나중에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하나, 그러나 신랑은 대답하여 이르되” 나 진실(眞實)히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 너희를 모르노라”(마테오 25:10-12)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사람들이 장차 들어가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리라. 집 주인이 이미 들어가서 문을 닫으면 너희는 밖에 서서 비로소 문을 두드리며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하고, 집 주인은 너희에게 대답하되,”너희는 어디서 왔는지 모르노라. 너희가 그때에 비로소 이르되, 우리가 주 앞에서 먹고 마셨사오며, 주 우리 길거리에서 교훈하셨나이다. 저 너희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디서 왔는지 나 모르니, 악(惡)을 행하는 너희 무리는 내게서 떠나가라.”(루까 13:24-27)


분명히 프란치스코 교황의 기준으로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전통주의자”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꽤나 “닫힌”분이시며, “적대감 있는 완고하신 분”이시며, “그 분이 알고 계신 확신성 안에서 닫힌”분이시며, 열의가 있으시고 지적(知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시노드 마무리 회의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행한 연설을 보면 그렇습니다)


교황의 같은 기준에 따르면 바오로 성인도 역시 전통주의자가 됩니다. 성인께서 “불의한 자 천주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을 너희는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스스로 속지 말지니라. 음행하는 자와, 우상 숭배자와, 간음하는 자와, 호색자(好色者)와, 남색자(男色者-동성애자)와, 도적과, 탐욕자와, 주정꾼과, 독성자(瀆聖者)와, 강도 등은 천주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하리라.“(코린토 전6:9-10)


“대저 모든 음탕한 자와 정결치 못한 자와 탐욕 많은 자는 이 우상을 숭배하는 자와 같은 자로서, 그리스도와 천주의 왕국에 있어 상속(相續)을 받지 못하는 것은 너희가 잘 알고 또한 깨닫는 바니라.“(에페소 5:5)라고 쓰셨으니 이는 매우 완고한 것이며 적대감이 있는 것이니, 성인 역시 “적대적인 완고함”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이는 천주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라든가 혹은 하늘로부터 내린 천신이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詛呪)를 받을지어다.“(갈라타1:8-9)라고 쓰셨을 때, 성인은 신자들로 하여금 ‘알고 있는 내용에 매우 닫힌’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 것이 아닙니까?


죄인들에게 마음은 열어야겠지만, 죄에 대해서는 닫아야 합니다. 보속의 길로 가는 죄인을 환영해야 하나, 죄(罪)는 미워해야 합니다. 죄를 미워해야 하는 거야 말로 천주님의 계명입니다; “너 주님을 사랑하고 죄를 멀리하라.”(성영96;10)


죄인들이 자신을 변화시키며 생활의 개선을 하지 않고 “너 있는 그대로, 그래 좋아, 괜찮아”라고 생각하게끔 죄인들을 속여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보속(補贖)을 행하지 않으면, 이처럼 멸망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루까13:3)


자, 먼저 우리에게 적용해봅시다. 먼저 우리의 죄에 대해 보속을 해야만 합니다. 설령 오직 작은 죄만 있더라도 이 죄에 대한 보속이 필요하며 성모님이 파티마에서 요청하신 대로, 파레이 레 모니알에서 마가렛 마리아에게 성심께서 요청하신 대로 다른 이들의 죄에 대해 배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십자가, 희생 그리고 보속 없이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의자(義子-옳은 행실을 하는 아들)이면 또한 상속자라, 곧 천주의 상속자요, 또한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니라. 다만 우리는 저와 함께 고난을 당할지니, 이에 우리는 저와 더불어 또한 영화(榮華)롭게 되리로다.“(로마8;17)


모든 성인들은 보속을 행하였는데, 때론 혹독한 고행하였으니, 우리가 보속도 하지 않고 천국에 가고 싶으신가요? 우리는 쉽게 자신을 속이며, 더 안 좋은 것은, 타인도 속인다는 점입니다. 성인들의 보상(報償)을 나누고 싶다면, 그 성인들의 노고(勞苦)도 두려워하지 말고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모든 성인의 축일은 용기 있는 자가 되도록 해주는 놀라운 격려를 주는 축일입니다: “누 만일 나를 따르고자 하거든, 자기를 끊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지니“(루까9:23) 십자가의 길이 천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럼으로 미사의 희생이야 말로 천국으로 가는 가장 큰 수단입니다.


우리 죄를 배상(賠償)하는 가운데 자신의 몸과 성혈로써 제헌(祭獻)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눈 앞에서 보게 될 때에 우리는 죄악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 곳 십자가 아래에서 성모님과 함께 우리가 울게 되니, 먼저 나 자신의 죄에 대해 울고 세상의 모든 죄에 대해 웁니다.


그 곳에서 “죄에 죽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로마6:11)회개의 은총을 얻습니다. 그 곳에서는 계명을 실천할 은총을 얻게 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一致)되어 살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 분이신 어린 양의 그 몸과 성혈(聖血)로 인하여 번성하는 일치를 보게 되며, “천신들의 빵”(성영77:25), 천국의 지복(至福)을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그 곳 제헌(祭獻)되는 미사 안에서 신앙을 통하여 천국에서 영원히 묵상(默想)할, 모든 덕행에 대한 보상(報償)을 보게 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천주 성부의 영광 속에 계시고 성신과 일치하여 계십니다.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여, 우리가 “죽도록 충성”할 수 있는 은총을 얻어서 묵시록(默示錄)에서 성 요한이 말씀하신 대로 “생명의 면류관(冕旒冠)”(묵시록2;10)을 얻게 해주소서.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성 비오10세회 아시아 관구 소속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