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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공로:- 성신강림 후 제7주일(2022-07-24)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7-24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공로- 성신강림 후 제7주(2022-07-24)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오늘 미사의 전체적인 주제는 구원을 얻기 위해 요구되는 열매, 즉, 공로입니다.

초입경과 알렐루야 양쪽에서 이르길:”오, 모든 민족들이여, 너희 손벽을 쳐라. 기쁨의 목소리로 천주께 찬미하라”(성영46:2) 왜 이리 기뻐하나요? 천국에서의 기쁨입니다. 저 기쁨은 아브라함처럼  “천주님과 동행”(창세기17:1) 하는 자들을 위한 분명히 약속된 보상입니다.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보상은 지극히 크도다”(창세기15;1) 

천주님 그분이 우리의 크나큰 위대한 보상입니다! 천주님을 직접 뵙는 것, 천주님과 함께하는 그 기쁨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저 보상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온 노력을 다하여 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저 보상은 심지어 어떠한 수난을 감내할 가치가 있습니다.

성 바오로 이르시길, “현시(現時)의 고난은 우리에게 나타날 장래의 영광에 비할 바 못 되는 것으로 나는 생각하노라.“(로마8:18) 저 천국은 천주님의 정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이들을 위한 보상이라고 말씀하신 분은 바로 우리 주님입니다. “사람이 나 때문에 너희에게 악담하고 너희를 핍박하고 모든 악(惡)한 것으로 너희를 거슬러 망증(妄證)하면 너희가 진복자(眞福者)되리니, 즐거워하고 용약(踊躍)하라. 너희가 풍성한 상급(賞給)을 하늘에서 받을 것이니, 대게 너희보다 먼저 있던 선지자들을 이와 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테오5:11-12)

경건한 옛 히브리인들에게 천주님 이르시길, “너의 일에 보상이 있을지어다”(2 Chr. 15:7)하시고, 또한 천주님은 예레미야가 참으로 많은 고난을 받은 후 그를 위로하시며 이르시길, “그래서 주 이르시되, 울부짖는 네 목소리는 그칠 것이요, 네 눈은 눈물을 그치리라.(예레미야31:16) 지혜서는 쓰여있기를, “의로운 자는 영원히 살 것요, 저들에 대한 보상은 주와 함께함이라”(Wis. 5:16) 하십니다.

개신교인들은 항의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보상들은 구약에서 단지 세속적인 보상이고, 신약에서 천국의 기쁨은 단지 선물로서 주어지는 것’이라고요. 개신교인들의 이런 반대들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수백 년 전에 해답을 제시한 것입니다! 

성 토마스는 분명하게 가르치시길, 천주님은 사람보다 무한히 위에 계시기 때문에, 천주께는 “교환적 정의”, 즉, 동등한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정의는 있을리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 바오로 이르시길, “네가 가진 바로서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받았으면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듯이 자랑하느냐?“(코린토 전 4:7) 그래서 동등함에서 기인하는 엄격한 의미에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공로를 세울 수 없습니다. 오늘 서간경에서 들은 대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천주성총의 선물입니다. “죄악의 보수는 죽음이로되, 천주의 은혜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받는) 영원한 생명이니라.“(로마6:23)

그러나,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계속하여 설명하시기를, 정의에 대한 두 가지 종류, 하급자에 관한 상급자의 정의, 예를 들어 신하에 대한 왕의 정의, 또는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정의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왕은 어떤 일정한 일에  확실한 보상이 있게 될 것이라고 진술하는 법을 잘 제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올림픽 경기를 예를 들어보면, 우승자에 대한 월계관과 다른 보상들은 그 경기를 주최한 자들에 의해 제정되나, 일단 이런 보상들이 제정되면, 이 보상들은 우승한 사람들에게 주어지게 됩니다. 이와 비슷하게, 천주께서 천국은 사랑의 행실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진다고 제정하셨기에, 즉, 사랑과 행실로 성총 안에서 죽은 이들에게 보상으로서 천국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만약 달리지 않은 여러분에게 월계관이 주어진다면, 기쁨을 망치는 어떤 (보람이 없는) 무가치한 느낌으로 인해 여러분은 어째든 뭉개진 느낌을 받을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달리고 우승한다면, 그리고서 보상으로서 받는 그 왕관은 훨씬 더 많은 성취감을 받을 겁니다. 이처럼, 성 바오로와 같은 모든 성인들이 “나는 옳은 싸움을 싸웠으며, 달릴 곳을 끝까지 달렸으며, 신앙을 보전하엿느니라.“(티모테오 후4:7)한 이후에, 그러면 진실로 그들은 “지금은 (오직)  정의의 화관(華冠)이 나를 기다리리니, 공의한 심판자이신 주 저 날에 이를 내게 주실 것이며, 다만 나 한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오직 당신의 재림(再臨)하심을 갈망하는 그들에게도 주시리라.”(티모테오 후4:8)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동등함 사이에서의 정의가 아니라, 우리 주님은 다른 구절에서 두 번 말씀하시듯이 “잘했다, 착하고 충직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직한고로 나 네게 많은 일을 맡기리니, 네 주의 즐거움에 들어오라.”(마테오. 25:21,23)하시듯이, 이것은 자기의 충직한 신하를 향한 왕의 정의이기 때문에 공의로운 심판관은 저 왕관을 부여합니다. 이는 천주께서는 우리에게 천국의 기쁨을 단지 선물로서가 아니라, 보상, 즉, 공로를 이룬 보상으로서 주시길 원하심을 가르칩니다.

이 모든 것에서 배우게 되는 위대한 진실은, 만약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길 원한다면, 우리는 선한 행실로써 공로를 쌓아야 한다는 겁니다. 자, 선행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천주님의 성총이 필요합니다. 선행은 분명히 성총의 영향 하에서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성 바오로 “우리에게 베퍼 주신 성신으로 말미암아 천주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주입(注入)되었느니라.“(로마5:5)하신 것처럼 선업을 행하는 그 능력은 바로 천주님이 주신 성총 때문입니다. 성신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주시고, 그리하여 우리가 공로를 세울 수 있으니, 왜냐하면 “오직 사랑으로 말미암아 활동하는 신앙(信仰)”(갈라타5:6)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많은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한 행실은 성세(聖洗) 때 받은 사랑을 앞설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 (천주) 사랑을 잃게 되면, 훌륭한 고해성사로 이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세로 인하여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선행을 위하여 조성함을 받은 천주의 조물이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그 선행 안에 거닐으기를 위하여 천주 미리 갖추어 놓으신 선행이니라.“(에페소2:10) 그리스도 “우리를 위하여 자헌(自獻)하심은 우리를 온갖 악에서 구하사, 당신의 뜻에 합하고 깨끗하고 선업에 힘쓰는 백성을 당신 소유로 삼고자 하심이었느니라.“(티토2:14)라고 성 바오로는 디모데에게 전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세로 깨끗함을 입은 후 선업에 힘쓰는 자 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는 단지 사랑의 요구(要求) 사항입니다. 만약 우리가 진정으로 천주를 사랑한다면, 천주님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뭔가를 하고자 할 것이고, 그러면 천주께서는 우리가 행하는 사랑의 행실로 인해 기뻐하십니다.   

무엇보다도, 죄로 인해 천주님을 불쾌하게 만드는 일을 우리가 피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한쪽에서 선행으로써 공로를 쌓으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저지른 죄로 인하여 그 공로를 파괴하게 됩니다. 이는 어리석은 짓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 바오로는 오늘 서간경에서 분명히 말합니다:”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서 해방되어 천주의 종(奴)이 되었으니, 그 결과는 성화(聖化)됨이며, 최종 결과는 영생이니라.“(로마6:22) 자, 여기서 다시 말해, 첫 성화인 “열매”는 즉, 영적 생활에서의 성장, 덕행과 천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가운데서의 성장인 영적 성장과 저 영적 성장의 궁극적인 “열매”는 바로 “영생”인 것입니다.

세상 끝 날에, 천주님은 “자기들의 행실에 따라 각자에게 주실”(성영61:13)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과 신약에서 많은 방법으로, 많이 반복된 아주 중요한 진리입니다. 그래서 성 바오로는 이르시길, 천주깨서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으시리라. 선행에 항구(恒久)하여 영광과 표창(表彰)과 불멸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영생으로써 갚으실 것이나, 다투는 자와 진리를 거슬러 불의(不義)에 복종하는 자들에게는 당신의 대노(大怒)로써 갚으시리라. 무릇 악(惡)을 행하는 사람의 영혼에는 유데아인을 비롯하여 외교인(外敎人)에게도 환란과 곤궁이 올 것이로되, 무릇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유데아인을 비롯하여 외교인에게도 영광과 표창과 평화가 있으리라.“(로마2:6-10) 

좋은 행실은  천주님의 계명에 순명하는 것 뿐만 아니라, 사랑의 일을 현저(顯著)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러한 선업에 대한 보상을 약속하시면서, 심판에 대하여 가르치셨을 때에 친히 분명히  주신 것이 있으니, 즉, 몸으로 실천하는 행실입니다: “내 성부의 강복하신 자들아, 세상 배포할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한 나라를 와서 차지하라. 대저 나 주릴 때에 너희가 내게 먹을 것을 주고, 나 목마를 때에 내게 마실 것을 주고, 나 나그네 되었을 때에 나를 집에 대접하고, 나 헐벗을 때에 나를 입히고, 나 병들었을 때에 내게 문병하고, 나 옥에 갇혔을 때에 나를 찾아 보았음이라.“(마테오25:34-36)  

여기서 나오는 “~했기 때문에” 라는 말이 필수적입니다: 이는 천국을 소유한다는 것은 저들의 선한 행실 때문에, 저들의 공로 때문에 성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천주께서는 질서 속에서 모든 사물을 조성하셨고,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이러한 선업으로써 천국을 소유할 공로를 쌓으라는 천주 섭리의 질서입니다. 몸으로 실천하는 마지막 선한 일은 토비아가 했던 것처럼 죽은 자를 묻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영적인 사랑의 일도 있으니, 훨씬 더 중요하기에 영적인 일은 필요한 이들에게 더 높은 좋은 것을 제공하여 저 영적인 사랑들이 승화(昇化)됩니다: 죄인들을 교화(敎化)하기, 무지한 자들을 가르치기, 의심하는 자들에게 조언하기, 슬퍼하는 자들에게 위로하기, 잘못된 것에 대해 인내심으로 견디기, 모든 부당한 것을 용서하기, 그리고 산 자와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기 등입니다. 

이러한 선행들은 죄인, 무지한 자, 그리고 의심하는 자들에 대해 동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죄, 무지, 그리고 의심을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연히 죄인이 되게 된 그 사람에 대한 바로 그 사랑 때문에, 저들의 죄, 가장 큰 악에서 저들이 빠져 나오게끔 우리가 도와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연히 (진리에 대해) 알지 못하게 된 그 사람을, 그들이 진리를 알게 끔 우리가 도와주기를 원하는 바로 그 사랑 때문입니다. 진리(眞理)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의심하게 된 그 사람을, 그들로 하여금 천주로부터 오는 평화와 확실성을 찾도록 도와주고자 하는 바로 그 사랑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 가운데, 그 동기는 분명 사랑입니다: “나 진실히 너희게 이르노니, 너희가 이 미소(微少)한 형제 중 하나에게 베풀 때마다 곧 내게 베푼 헴이니라.“(마테오25:40)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모든 성인들이여, 천주섭리라는 이 훌륭하고 매우 현명한 질서를 우리가 이해하도록 도와주사, 그리하여 천국으로 인도하는 천주님의 계명과 모든 선한 행실을 우리가 실천하도록 하게 하시어 전심전력을 다하여 천국에 들어가게 하소서.
아멘. 

Father François Lais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