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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미사가 불러 온 나쁜 열매 - 성신강림 제 6주일(2022-07-17)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7-18


[역자 주] 신부님께서 강론에서 언급하시는 최근의 교황 서한 ‘Desiderio desideravi’는 루가복음 22장 15절에 나옵니다. 교황은 이 서한에서 받아드려야 할 (새미사의) 미사전례에 대해 언급합니다.
“나 수난하기 전에 이 파스카를 너희와 한가지로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Desiderio desideravi hoc pascha manducare vobiscum, antequam patiar(Luke 22:15)

교황 서한 ‘원하고 원하였다’(Desiderio desideravi)를 반대하며; 새미사가 불러 온 나쁜 열매 - 성신강림 제 6주일 (2022-07-17)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오늘날 세계 정세를 돌아보면,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우리가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 즉 '서양 문명'의 종말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서양"은 배교 상태로 되어 있으니, 서양문명의 위대함의 원인이었던 가톨릭 신앙을 버리고 물질주의, 소비주의, 비굴한 부도덕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나 금융의 힘을 통해 돈의 권력을 손에 쥔 소수의 사람들(역자 주: 글로벌 엘리트)은 전 세계에 대한 세계적인 통제력을 행사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교회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습니다.

르페브르 대주교께서는 구세주는 오직 한 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계시다(Acts 4:12) 라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평화의 왕자(Is. 9:6)이며, 모든 위기의 해결책이며, 심지어 경제위기에서도 해결책입니다. 우리는 오주(吾主) 예수 그리스도로 전심전력으로 돌아와,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회두(回頭)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각 개인의 영혼뿐만 아니라, 가족, 도시, 국가, 모든 인간 조직에 통치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통치를 다시 세우는 것은 진정한 그리스도교 문명과 평화의 회복이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우리 주변을 통치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교회 구성원 모두의 의무이자 우리의 의무입니다.

이제 성교회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regnavit a ligno Deus – 주님은 나무(십자가)로 통치하셨습니다."
(참조: 성 유스틴이 인용한 Tertulian Adv. Judæos 10:6, 성 레오 대 교황의 부활절에 대한 Sermo 55, 및 많은 교부들이 인용한 성영95장 10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죄에 대한 승리는 십자가에서의 그분의 희생에 의한 것입니다. 그분의 통치는 이 희생에 의해 세워집니다. 성 바오로는 이르시길: "십자가상에서 (흘리신 바) 저의 성혈로써 만물을 화해(和解)케하사, 저로 인하여 땅에나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당신과 더불어 합치하게 하심이 천주의 성의(聖意)시었느니라."(콜로새1:20) 과거의 죄를 용서하지 않고는 평화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수가 복수를 낳습니다. 이 복수의 악순환은 오직 죄를 용서해야만 막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원수를 위해 기도하신 십자가에서 나온 죄의 용서(容恕)의 결실입니다. 천주께서 우리를 용서하셨다면, 우리는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너희가 만일 사람에게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성부도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으시리라.'(마테오6:15)라고 우리 주께서 가르치듯이 우리는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의 주님은 경제위기의 해결이시며, 사실 모든 경제위기의 근원에는 진정으로 모든 비율에서 벗어나는 많은 탐욕,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손에 수조 달러를 축적합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조차도 탐욕에 불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가진 것이 거의 없지만, 많은 것을 갈망합니다. 탐욕에 대한 치료책, 그리고 그에 따른 모든 경제위기의 치료책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에 있습니다. 그분은 구유에서 태어나 십자가에서 죽을 때까지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회복(回復)시키고'(에페소1:10) '그리스도 왕국(王國)'이 도래하도록(마테오6:10) 하기 위해서는 십자가에 계신 오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있으니, 이는 바로 미사의 거룩한 희생제사입니다! 그래서 이미 성 비오 10세 교황은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진정한 그리스도교 정신이 번성하고, 모든 신자들에 의해 보존되는 것을 보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으로 가득 차서, 우리는 신자들이 성전의 신성함과 존엄성을 얻기 위해 모이는 것 외에 다른 어떤 목적도 제공하지 않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그 정신이란 가장 중요하고 없어서는 안 될 글씨체(기본틀), 즉 교회의 가장 거룩한 신비와 대중적이고 엄숙한 기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성 비오10세 교황은 전통적인 미사전례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그레고리오 성가, 아름다운 제의(祭衣), 향, 잘 훈련된 복사 등으로 이루어진 모든 엄숙함이 있는 전통 전례미사는 그리스도교 정신의 "가장 중요하고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인 글씨체"입니다. (St. Pius X, Tra le Sollecitudini, 22nd Nov. 1903.)

같은 문서(자의교서)에서 성 비오 10세 교황은 "불경하고 연극적인 예술에 의한 신성한 예술에 실행되는 치명적인 영향"을 금지(禁止)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분은 이어 "지극히 높으신 분에 대한 우리의 경의(敬意)가 감미로운 향기로 올라가는 것 대신에, 옛날 천주께서 가치가 없는 신성 모독자들을 성전에서 몰아내신 재앙을 주님의 손에 넘겨주실 때, 하늘의 축복이 우리에게 풍성하게 내려오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일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는 성비오10세 교황이 (예언적으로) 새 미사를 언급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르페브르 대주교께서 공부했던 로마의 프랑스 신학교에서 전통 미사전례에 대한 이 사랑과 존경심이 길러졌습니다. 르페브르 대주교 그분 자신도 (미사의) 관리자들 중 한 명으로서 훈련받을 수 있는 기품이 있었고, 후에 (대주교께서 양성한) 사제들은 그가 항상 모든 교황들의 미사예식을 매우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감명(感銘)을 받았습니다. 르페브르 대주교께서는 항상 우리의 성비오10세회(SSPX)가 그 전통미사전례를 사랑하고 그 전통적인 보물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를 원했습니다.

전통미사전례의 보물은 아름다운 보석인 그레고리오 성가(聖歌)를 포함합니다. 성 비오 10세 교황은 이 그레고리안 성가를 "고대 교부들로부터 물려받은 유일한 성가, 로마교회에 전해진 고유(固有)의 성가, 수세기 동안 교회가 자신의 전례 규약으로서 방심하지 아니하고 수호했으며, 교회 고유한 성가로서 신자들에게 직접 실행하기를 제안했으며, 교회가 미사전례의 일부을 위해 독점적으로 규정(規定)했으며, 가장 최근의 연구[Dom Guéranger at Solesmes의 작품]는 전례미사의 고결함과 순수함을 아주 기쁘게 회복했다. 이러한 이유로 그레고리오 성가는 항상 신성한 음악의 최고의 모범로 여겨져 왔다."고 했습니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합창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 천주님의 성총으로 우리는 오사카(서울) 등에서 훌륭한 합창단을 가지고 있으니 - 신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성 비오 10세는 그래서 친히 이르시길, "신자들이 고대의 사례와 같이 다시 교회 성무(聖務)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사람들에 의한 그레고리오 성가의 사용을 회복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성 비오 10세 교황의 이 구절에서 현대주의자들이 종종 강조하는 주제인 (신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인지(認知)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문맥을 기억합시다. "가장 거룩한 신비와 교회의 대중적이고 엄숙한 기도에 적극적으로 참여입니다." 이것은 신앙과 경배, 교회의 엄숙한 기도에 대한 충성에 대한 문맥이며 그 뜻이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창조나, 모든 것의 (새롭게) 변화하게 하는 것이라든지, 성직자의 (주관적) 자기 표현이나, 세속화를 지향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성 비오 10세 교황의 저 구절이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적극적 참여’를 핑계로) 암묵적으로 인용(Sacrosanctum Concilium, n°14.)되고 있으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에 서한 ‘원하고 원하였다’(Desiderio Desideravi)에서 저 구절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주의자들에게 있어서의 ‘적극적인 참여’는 서간경이나 복음서의 낭독, 또는 훨씬 더 중요한 성체 분배와 같이 사제에게 주어진 신성한 성무기능을 일반 신자들이 차지하게 합니다; 그것은 많은 곳에서 침묵의 경배에 대한 큰 무지로 이끌고, 위에서 인용된 성 비오 10세 교황의 자의교서에 의해 제시된 원리들에 대한 큰 경시로 인하여 (세속적인) 많은 현대 음악이 도입되게 되었습니다.

저 서한에서 교황 프란치스코는 "전례에 대한 신학적 이해의 재발견과 생활과 교회에서 전례의 중요성"을 원합니다. 그가 행하는 말 중 일부는 전통전례에 적용이 된다고하면 사실이 되지만, 그러나 새미사의 전례에 적용하면 이는 왜곡이 되고 눈에 띄게 사실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리스도인 봉헌의 진리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기 위해서는 전통미사전례로 돌아가야 합니다. 신자들이 "전례의 신학적 의미에 대한 지식 속에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전통미사의 전례의식이 필요합니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전통 미사전문에는 25개의 성호(聖號)가 있습니다. 축성(Consecration) 직후 사제는 “hostiam puram, hostiam sanctam, hostiam immaculatam – 조찰하신 제물, 거룩하신 제물, 하자 없으신 제물”이라고 하면서, 매번 십자성호를 그으며 “hostia(제물)”를 표현합니다. 이것은 지금 제대(祭臺) 위에서 있는 것은 실제로 “십자가 위에서의 희생제물, 십자가에서의 거룩한 희생제물, 십자가의 흠 없는 희생제물”임이 분명합니다. 미사와 십자가 사이의 연대,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의 그 희생제물과 제대 위의 그리스도의 그 희생제물의 일치는 매우 명백(明白)합니다. 이 모든 것이 새미사(Novus Ordo)에서 사라집니다; 심지어 그 말씀을 보존한 최초의 "성체 기도" 조차도 십자 성호를 지키지 않았고, (적어도 얼마 전까지) 그들은 심지어 그 구절을 매우 나쁘게 번역했습니다. 전통적인 미사전문의 십자성호 25개 중 오직 하나만이 남아 있습니다: 95%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성호가 오직 “benedixit – he blessed-”(강복)에만 있습니다: 그것은 공동의 축복이 되었고, 미사와 십자가의 일치라는 신학적 의미의 깊이를 잃었습니다.

또 다른 예가 있습니다: 전통미사전례에는 열 번의 장궤(무릎꿇기)가 있지만 새미사에서는 단지 3개만 남아 있습니다. - 사제가 성체를 만질 때 마다 매번 전후로 장괘를 합니다. 이러한 장괘는 우리 주님께서 성체 안에 참으로 현존하시고 그리하여 그분께 흠숭드리는 우리의 신앙고백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신자들에게 행하는 영성체는 오직 혀로 받으며 무릎을 꿇습니다. 실제로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흠숭지례하지 않으면 주님의 몸인 성체를 그로 하여금 먹지 말게 할 것이고... 우리가 흠숭지례하면 죄를 짓지 않을 뿐만 아니라, 훔숭지례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이다”라고 합니다.(St Augustine, in Ps. 98:9) 이것은 전통 가톨릭 미사전례에 의해 분명히 드러난 우리 성교회의 신앙입니다. 새미사에서는 사제가 단지 3번 장괘합니다. - 사제에 의해 장괘가 완전히 생략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이는 종종 일어납니다. 여기서 다시 장궤는 70%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장괘없이 서서 손으로 영성체합니다. 새미사에서는 개혁자들이 신앙의 고백인 미사를 제거했는지 보십시오. 그리고 그들은 아직도 (전통적인 요소가) 몇 개가 남아 있다고 말함으로써, 전통미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자들에 주는 영적인 음식을 그렇게 줄이면, 비록 "조금"이 남아 있더라도, 많은 신자들이 영적인 기아로 인하여 실패하고 쓰러져도 놀라지 마십시오. 새미사에 조금 남아있는 정도의 전통요소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밖에도 신앙의 중요한 요소들을 너무 많이 빼앗기고, 드문 경우에 감추어지고, 빈말로 대체되는 사례들이 너무나 많을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예를 들자면, 성심께 드리는 영성체 이후 미사는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주 예수, 지극히 거룩하신 신비여, 당신의 지극히 온유하신 성심의 향내를 맛본 후 우리에게 이 열정을 주소서. 우리로 하여금 세속적인 사물을 멸시하고 천국의 것을 사랑하게끔 배우게 하소서,' 자, 세속적(世俗的)인 것을 멸시(蔑視)하는 것은 현대주의자들이, 그리고 세속적인 사람들이 싫어하는 주제입니다. 그래서 새 미사는 저 기도를 억압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현세적인 것을 경멸하라고 요구하지 않고, 동시에 더 이상 천상의 것을 사랑하라고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형제애(兄弟愛)인 자비를 요청하는 것으로 대체했습니다. (천주님께 대한) 수직적인 청원 대신에 어느 면에서 보면 (사람들에 대한) 수평적인 청원으로  대체했습니다. 이것은 전례 개혁에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례의 신학적 의미에 대한 지식 안에서 성장"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의 봉헌에 대한 진리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기 위해서는 필히 전통미사전례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우리에게 상기시켜주는 중요한 진리, 미사전례에서의 분명한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성체성사(聖體聖事)는 교회 일치의 성사(聖事)입니다: "오, 경건함의 신비여! 오, 일치의 표시여! 오, 자비의 연대여!(St Augustine, in Ioan. 26:13) 이것은 확실히 성교회의 끊임없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같은 강론(講論)에서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마음을 이들 사물 안에 계신 그분의 몸과 성혈에게로 가리키신다. 많은 것에서 하나로 줄어든다. 왜냐하면 일치는 많은 알갱이가 함께 맺어져서 형성되고, 또 다른 일치는 많은 열매가 함께 맺어져서 형성되기 때문이다.”(St Augustine, in Ioan. 26:17) 심지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신비는 수많은 밀알이 으깨어져서 반죽으로 되고, 많은 포도알이 으깨어져서 포도주로 된다는 사실로 인해 생생하게 분명해집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그분의 몸과 성혈로 변모하기 위해 택하신 것입니다. 그분의 교회는 십자가에 의해 그분 안에서 하나가 된 많은 충직한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면병(麪餠)은 하나이매, 우리 모든 이가 한 몸을 이루노니, 우리는 다 한 면병에서 (제 몫을) 받음(참여함)이니라.”(코린토 전10:17) 우리는 하나의 신비로운 그리스도의 몸이며, 우리 모두는 그분의 하나의 성체이신 그분 안에 참여하는 이들입니다.

분열을 볼 수 있는 오늘날의 교회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더 나은 일치를 회복하고자 하기 때문에 이것을 언급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잘못된 방식으로 합니다: 분열은 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한 새로운 개혁과 새로운 미사전례에 도입되었고, 이것은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 교회에서 전통 미사가 실현했던 아름다운 단결을 정말로 산산조각나게 하는 많은 혁신으로 이어졌습니다. 만약 전통 미사가 복원된다면 그 전통적인 교회의 일치는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황은 전통미사를 억압하고자 하며, 모든 이들에게 새미사를 받아드리라고 강요합니다. 저들의 열매로써 여러분은 저들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새미사가 도입된 이후 지난 50년 동안, 새미사의 열매는 분열과 파괴의 열매였습니다; 새미사는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오류라는 독(毒)을 전 세계에 퍼뜨렸습니다: 만일 그들이 전통미사전례에 손대지 않았다면, 이러한 2차 바티칸 공의회 오류들은 소수의 신학자들만 건드렸을 뿐, 전 세계의 모든 신자들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새미사 전례의식을 통해 그들의 독이 온 사방에 퍼졌고, 영혼들은 무기력하고 (물질주의, 진리의 상대주의, 쾌락주의, 무신론 등) 현대 세상의 공격에 저항할 힘이 없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방향잃은) 교회의 현재 상황이 세상에 미치는 비난을 자주 듣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총(聖寵)으로 인해 세상보다 더 강해지면 안되나요? 르페브르 대주교께서 말씀하신 대로, 신자들이 "위조(僞造)된 미사"로 먹고 양육되기 때문에 세상의 악덕이 교회에 침입했습니다. 교회와 세상과의 간통관계의 일치가 바로 새미사 전례입니다. 실제로 세상은 십자가를 거부하고, 새미사 전례는 제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많은 방면에서 십자가를 거부했습니다.

교황에 의해 부여된 동기는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주교들이 이 새미사를 원했고, 그것을 승인했기 때문이랍니다.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많은 면에서 새미사는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명백하게 언급된것과는 반대됩니다. 예를 들어 2차 바티칸 공의회는 라틴어를 표준언어로서 다시 고쳐 말했고, 그레고리안 성가(聖歌)는 제 1순위로 주어진 것 등등...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새미사전례의 초안(草案)이 1967년 주교회의(synod)에 제출했을 때, (대부분의) 주교들은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나 혁신자들은 2차 바티칸 공의회 본문에 몇 개의 시한폭탄을 넣었고, 그들은 나중에 이 시한폭탄을 전통미사전례를 무너뜨리기 위해 광범위하게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저들의 열매로 저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개혁이 교회에서 새로운 오순절을 가져오기를 희망했지만, 오히려 죽음의 망토(옷)는 멀리까지 퍼져나갔습니다: 사제들은 그들의 거룩한 성소(聖召)을 떠나고, 수도사들은 그들의 서원(誓願)을 버리고, 많은 신자들은 신앙을 떠나 온갖 종류의 개신교 교파(敎派)로 가고, 더 많은 사람들은 주일과 파공첨례일에 교회에 정기적인 참례를 포기하고, 더 많은 이들은 계명의 실천을 포기하며, 피임을 사용하고, 심지어 (동성애 등) 부자연스러운 악덕이 긍정적으로 용인되는 등등.... 그리고 이것은 (새미사 도입이라는) 개혁의 쓰라린 열매 목록의 시작일 뿐입니다!

그러나 천주님의 성총으로 전통적인 미사는 계속되었습니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이것을 위한 천주 섭리(攝理)의 도구였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젊은이들이 진정성을 찾고 있으며, 이 진정성을 전통에 충실하다는 것에서 정확하게 발견합니다. 전통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의 좋은 결실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현대주의자들은 전통미사의 발전으로 인해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 전통미사전례를 완전히 억압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생긴 전통 수호자들(Traditionis custodes)에 대한 자의교서와 최근의 교황 서한(書翰)  ‘원하고 원하였다’(Desiderio desideravi)는 죽어가는 현대주의자 세대에서 일어나는 투쟁의 일부입니다.

미래의 보장은 영원하신 천주님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 동일하십니다.(Heb. 13:8)" 만약 우리가 교회의 과거와 함께한다면, 교회의 미래와 함께하는 것이고, 우리는 심지어 오늘날에도 진정으로 교회에 충실합니다. 처음부터 참 신앙은 전통에 대한 충실함으로 특징지어졌습니다. "tradidi quod et accepi - 내가 너희에게 전한바는 나로서도 또한 받은 것이니." 성 바오로는 신앙(1 Cor. 15:3)과 미사전례(1 Cor. 11:23)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에 계신 모든 성인들, 특히 지극히 충실하신 동정녀이신 성모 마리아께 교회에 대한 충성과 거룩한 미사전례에 대한 충성의 은총을 부탁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성신의 일치안에서 성부와 함께 계시며  영원히 다스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결혼 잔치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Father François Lais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