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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신의 열매로 충만한 가톨릭인-성신강림주일 (2022-06-05)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6-05


성신의 열매로 충만한 가톨릭인- 성신강림주일(2022. 06. 05)

오늘,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신을 보내시겠다고 하신 약속의 이행을 기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보여주기 위해, 성부와 함께 성신을 보내신다는 것을 보여 드리려고 천국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나 너희게 실상으로 이르노니, 내가 가는 것이 너희게 유익한지라. 대저 나 가지 아니하면 바라글리도(성신) 너희게 오시지 않으실 것이요, 가면 나 저를 너희게 보내리라."(요왕 16:7). 성신은 '성부의 성신'(마테오 10:20)이자 '그리스도의 성신'(롬 8:9, 빌 1:19, 1 베드로 1:11)입니다. 성신을 보내는 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많은 증거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함의 거룩함'이시고, 그분의 영은 거룩하신 성신, 거룩하신 영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성신을 주시어 우리가 거룩해지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신은 우리에게 영적인 생명을 주는 "생명 주는 자"이시며, 성화(聖化)시키는 분입니다. 저 새로운 생명은 본질적으로 천주님의 생명, 천주님을 알고 사랑하는 생활, 즉 신앙이 사랑으로 불타오르고 천국에서의 지복직관 그 온전한 완성을 이루는 지상에서 시작하는 생명입니다.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 마리아로부터 성신으로 인하여 성육화(聖肉化)되신 것"(니케아 신경)처럼, 우리는 "성신으로 인해 태어나"(요 3:6)는 성세(세례)에서 새로운 생명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천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저 새로운 생명이 필요합니다. "나 진실히 진실히 네게 이르노니, 아무라도 만일 물과 성신으로 다시 나지 않으면 능히 천주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니라."(요왕 3:5 ) 왜냐하면 천주님의 성총이 없으면 우리는 "반칙과 죄로 죽었던"(에페소 2:1)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성세(세례)로 인하여, 여러분은 "성신에게서 태어났다"하였는데, 그 때 받은 새 생명을 가지고 여러분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우리가 "이생의 근심과 부와 쾌락"에 의해 그것을 덮어 누르고 결실되지 못하게 내버려 두었는가요?(행전 8:14) 우리가 정말로 "죄에 죽었지만, 천주를 위해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자인가요?"(로마 6:11) 성 바오로는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그 시험을 하여 육의 열매와 성신의 열매를 열거합니다.

"육체는 영신을 거슬러 욕구하고, 영신은 육체를 거슬러 욕구하느니, 그 서로 반대됨은 너희로 하여금 욕구하는 바를 행하지말게 위함이라."(갈라타 5:17) 바오로 성인은 여기서 우리 모두에게 형성되어있는 내적 전쟁을 보여주십니다. 적어도 우리가 선을 위해 싸우면, 죄의 상처 때문에, 즉, 이에 반항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 바오로는 계속합니다. "그러나 너희가 만일 성신으로 인도된다면, 너희는 법(율법) 아래 있지 않는 것이라."(갈라타 5:18) 즉, 성신의 은총으로 우리가 성인께서 아래에 열거하려는 올바른 일을 한다면 법(율법)에 (법 아래가 아니라) 짓눌리지 않고, 법은 빛이라(잠언 6:23) 한 것처럼 천주님의 법(계명)은 오히려 우리를 천국으로 가는 길을 인도하는 친구입니다. 
 
개신교인들은 종종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않다"는 성 바오로의 말을 잘못 해석합니다. (이에 대해 많은 언급이 있습니다: 로마서 6:14,15; 코린토 전 9:21; 갈라타 3:23;  4:5,21; 5:18.) 그들은 종종 이것을 마치 도덕률(데칼로그, 십계명)조차 신약에는 적용되지 않을 것처럼 해석하고, 그리하여 우리가 더 이상 도덕률에 복종할 의무가 없는 것처럼 해석합니다. (역자 주: 도덕(행위)를 부인하고 오직 믿음만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성 바오로께서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쓴 글에 크게 어긋납니다. “모든 음탕한 자와 정결치 못한 자와 탐욕 많은 자는 이 우상을 숭배하는 자와 같은 자로서, 그리스도와 천주의 왕국에 있어 상속을 받지 못하는 것은 너희가 잘 알고 또한 깨달는 것이라. 누구나 헛된 말로써 너희를 미혹케 하지 말지니, 대저 이와 같은 것으로 말미암아 천주의 의노하심이 불순함의 자식들 위에 내림일샘이니라. 이러므로 너희는 이러한 자들 중에 참여하는 자 되지 말지니라."(에페소5:5-7절) 이 말을 듣고서, 그 누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도 도덕률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정직하게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상세하게 설명을 잘하고 있는데, 코린토 전서 9장 21절에서 성 바오로께서 율법 아래 있는 것과 율법과 함께있는 것을 대조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그가 율법 아래에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의 계명과 함께 함을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의 성총으로 인하여 우리가 계명(誡命)을 따르는 것이고 그래서 그 계명은 우리를 견책하지 않고 우리를 지지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처럼) 계명이 우리를 짓누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계명은 우리와 함께 걷고 천국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lex lux, 계명은 빛이다.

그래서 우리가 설명하기 시작한 갈라디아의 서한(書翰) 구절에서, 성 바오로는 육신의 악한 행위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행실을 모르는 자는 없으리니, 음행, 부정, 파렴치, 음욕, 우상숭배, 마법, 원한, 쟁투, 질투, 분노, 당파심, 소란, 분열, 시기, 살인, 주정, 폭식 등이니라. 나 이미 말한 바를 다시 이르노니, 이런 일을 행한 자는 천주의 나라를 얻지 못하느니라.”(갈라타 5:19-21) 자, 그것은 매우 분명하고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그분은 이어 이르시길,  "그러나 성신의 열매는 사랑(자비), 기쁨, 평화, 인내, 자애, 인자함, 충실함, 유화, 온화함, 믿음, 겸손, 절제, 정결함이니, 이러한 것을 거스르는 법률은 없느니라."(갈라타 5:22-23) 이는 전에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성신으로 인도되는 자, 즉, 성신에게 순종하는 자는 율법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자애(慈愛), 기쁨, 평화, 인내, 인자, 선함, 충실함, 온화, 믿음, 겸손, 인내, 정결함"입니다. 이것들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성신의 열매라 부릅니다.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자들은 자기 육체를 그 정욕과 육욕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가 만일 성신으로써 성총의 생활을 받는다면 또한 성신을 모신 자에 합당하게 거닐을 지로다."(갈라타 5:24-25) 이러한 성신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육체와 그 악한 욕망에 맞서 싸우고 저항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신은 우리가 그런 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십니다. 먼저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선을 행하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성총은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풍성하게 주어집니다. “구하라, 너희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얻을 것이요, 두드리라, 너희게 열어 주리니, 무릇 구하는 자 받고, 찾는 자 얻고, 두드리는 자에게 열어 줌이니라.”(마테오7:7-8)

성신은 예언자 자카리에 의해 `은총와 기도의 영’이라 불리어집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의 주민들 위에, 은총의 영과 기도의 영을 쏟을 것이니, 그들이 찌른 나를 바라볼 것이다. 그들은 사람이 외아들을 위해 애통하는 것처럼 그를 애통해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를 슬퍼할 것이니, 이는 마치 맏아들의 죽음을 위하여 슬퍼함과 같느니라." (자카리아 12:10)

그분은 우리를 기도하도록 인도하시는 성신으로, 특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해 묵상하는 영신입니다: "그들이 찌른 분", 많은 형제 가운데서 "유일하신 독생 성자",  "맏아들"입니다. 참된 영적인 삶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기도의 생활입니다. "우리는 항상 기도해야 하며, 낙심하지 말아야 할지니라." (Lk. 18:1)

저 열렬한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사랑의 불로 타게 합니다.  "내 마음이 내 안에서 뜨거워졌으니, 내 명상 중에 불이 타올랐나이다."(성영 38:4) 저것은 바로 성신의 불이요, 우리 주님께서 온 땅에 불을 붙이시려고 하시는 불이니, 그러므로 이르시되, "나 세상에 불을 놓으러 왔으니, 불붙는 것 외에 나 원하는 것이 무엇이리요?”(Lk. 12:49). 천주 사랑의 불입니다.

천주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서도 이와 같은 똑같은 선물을 받게 하시려고 그분의 선물인 믿음, 사랑 등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나는 양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고 또한 더 풍성히 얻기를 위하여 왔노라.."(요왕 10:10) 그분은 생명 그 자체이십니다. 성 요한은 서한에서 아름답게 말합니다. “당초로부터 계신 바며, 우리가 들은 바며, 우리 눈으로 본 바며, 또한 우리 손으로 치다루던 바를 생명의 말씀(그리스도)에 대하여 나 너희들에게 전하노라. 생명은 나타나시니라. 성부께 계셨고 또한 우리에게 나타나신 영원한 생명을 우리는 보았으며, 이를 증거하여 또한 너희에게 전하는 바니라. 그러면 우리가 보고 또한 들은 바를 너희들에게 전함은 이 너로 하여금 우리와 더불어 합치하기를 위함이로다. 우리들의 이 합치는 성부와 및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더불어 이루어진 것이니라. 우리 이를 너희들에게 써 보냄은 너희들로 하여금 즐거워하기를 위함이며, 또한 우리들의 즐거움이 창일(漲溢)하여 지기를 위함이니라.”(요한 1서 1장 1~4) 그래서, 성 요한은 그 생명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기 위해 조심했습니다.

우리가 천주님의 선물을 감사할수록, 우리는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을 더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성 요한 크리소스톰은 우리가 그 선물을 더 많이 줄수록, 더 많이 갖게 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사랑에 불타는 참된 신앙을 전파할수록 우리 자신의 신앙은 더욱 굳건해지고 사랑이 불붙게 됩니다.

여러분이 보다시피, 큰 신비가 있습니다. 천주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게, 그리고 진리를 완전히 인식하기를 원하십니다."(1 티모디 2:4).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모르고 천주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많은 사람들을 봅니다. 천주님은 정말로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바란다면, 왜 그럴까요? 거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오늘날 우리가 성신강림절 축일에서 볼 수 있는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나 세상에 불을 놓으러 왔으니, 불 붙는 것 외에 나 원할 것이 무엇이리요?"(루까 12:49)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오늘 종도들에게 나타난 불길처럼 천주님의 사랑으로 땅을 불태우고, 성신의 거룩한 불로 불을 지르러 오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어떻게 했을까요? 삼손이 블레셋 사람의 들판으로 보낸 여우의 꼬리에 불을 붙인 것처럼, 종도(사도)들에게 열두 개의 횃불을 붙여서 그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그러자 모든 것이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을 밖으로 보내신 천주님의 사랑으로 세상에 불을 지피고, 저 천주님의 불로 불타게 하시고, 여러분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천주님의 사랑으로, 성신의 불로 불타게 하시고자 합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성신의 불로 타고 있을까요? 얼마나 열심으로 천주님의 사랑의 불꽃을 그들 주변에 퍼뜨리려고 하는가요? 그들은 그들의 선한 말과 함께 그들의 거룩한 삶과 선한 일을 본보기로 삼고 있는가요? 많은 사람들, 특히 성직자들 사이에서의 실패는 왜 아직도 무지한 사람들이 이리 많은지에 대한 첫 번째 설명입니다.

게다가, 여러분이 실제로 성신의 불 주위에 퍼지려고 할 때, 여러분은 많은 사람들이 왜 무지 속에 있는 두 번째 이유와 마주치게 됩니다. 그것은 매우 많은 사람들이 하늘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천주님과 영적인 삶과 고행하는 생활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우리는 천주님에 대해 알고 싶지 않다! 또 어떤 이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천주님을 원하지 않으며, 우리의 욕망에 따라, 우리의 악에 따르는 신을 원하거나, 적어도 (신은) 우리를 회개와 보속하라고 부르지 않고 (세속생활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장애물(障碍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인간의 반항, 우리 자신의 반항심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분은 자신을 십자가에서 속죄의 희생자로 바쳤습니다. 그러므로 성인들은 가르치기 전에 기도와 보속으로 자기들의 사명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사십 일 동안 기도와 금식을 하시면서 하시는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들인) 12 종도들이 세상을 바꾸기에는 너무나 적은 수입니다! “추수할 것은 과연 많으나 일군은 적으니, 이러므로 추수 주인에게 간구하여 하여금, 그 추수하는데 일군을 보내시게 하라."(10:2) 성신의 불로 가득 찬 일군, 성인들과 종도들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기를 열망하는 일꾼들입니다.

성신강림 전 이 시간에 방(Cenacle,만찬실)에서 성모님을 중심으로 모인 종도(사도)들과 함께 우리가 성신의 은총을 풍성하게 받도록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우리의 구원과 많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우리가 진정으로 저 영적인 생활로 살아가고 이를 우리 주변에  전하도록 합시다. 아멘!

Father François Lais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