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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정에서 아내의 역활-부활 후 제 1주일(사백주일 2022.04.24)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4-25


가정에서 아내의 역할-부활 후 제 1주일(사백주일, 2022. 04. 24)

 지난 2주 동안, 저는 (이 성당에) 많은 독실한 여성은 있으나 독실한 남성들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주 중에 뿐만 아니라 (물론 남자들은 주 중에 일을 해야 합니다만) 일요일에도 소수의 남성만이 교회를 찾습니다. 이것은 한 지역적인 문제가 아니라 훨씬 더 넓은 (지역에서의)  문제이며, 너무나 많은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세속적인 정신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신앙에 대한) 경건함이 오직 여성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천주님은 남성은 아니고 오직 여성만을 창조하셨단 말입니까? 천국에는 여성만을 위해 있고 남성은 없는 건가요? 그리스도는 오직 여성만을 위해 죽었고 남성을 위해선 죽지 않은 건가요? 신앙이 없는 불경함이 남자다움의 표시인가요? 그것은 모든 남성이 지옥에 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이런 세속적인 정신은 터무니 없습니다!
 
 진리는 성 바오로 말씀으로 아름답게 표현됩니다. "온갖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시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며, 그리스도의 머리는 천주이심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고린토 전 11:3) 즉, 그리스도께서 천주님을 완벽하게 따르는 만큼, 남자는 그리스도를 따라야 하고, 그러면 여자는 그 남자를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천직이요, 사명입니다: 선에서는 지도자가 되어야하고 악에는 추종자가 되지 않는 것이며, (그리하여) 악에는 훨씬 더 적은 지도자가 되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가톨릭 신자로서의 저런 입장은 대체될 수 없습니다.
 
 가족 기도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남편은 가족 기도의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그의 결정임에 틀림없고, 그 남편은 그것을 전적으로 지지해야 합니다. 그렇게 좋은 선도적 결정이 가정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분명합니다. 종종 소년들은 아버지를 따르고, 소녀들은 어머니를 모방합니다. 그러나 사실, 소년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가족 기도를 이끄는 좋은 예를 따를 뿐만 아니라, 소녀들도 가족 기도를 이끄는 것이 그들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가족 기도를 중요하게 여길 것입니다. 남자가 그리스도를 따르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를 따르게 되고, 그리하여 온 가족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서 뭉치게 됩니다. 그런 가정에서 미덕이 자라나고, 성소(聖召)가 꽃을 피울 것입니다. 남자가 선한 지도자로 있는 진정한 가정, 남자가 진정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가정, 그러한 가정들은 교회의 영광이요, 그들 이웃에 대한 교화(敎化)이고, 이 어둠의 세상에서 빛이 됩니다.

 저는 저의 할아버지께서 이끌어주신 그 가족 기도에 항상 충실하셨던 조부모님을 기억합니다. 부모님도 역시 아버지가 이끌어서 매일 가족 기도를 하셨습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이미 TV는 세속의 정신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집에 TV를 두지 않기로 결심한 분은 저의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런 좋은 결정을 내리지 않으셨더라면,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있어서 우리를 선으로 이끌지 아니하셨다면, 우리 부모님은 다섯 자녀 중에 세 명의 사제를 두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남자가 (자기 가족을) 선으로 인도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할 때, 그 엄마는 주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자녀들을 진정으로 교육하기가 매우 어려워집니다. 어떻게 자기 남편이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자녀가 두려워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아내는 자녀들을 교화시키려고 노력하지만, 아내가 지은 것을 남편이 파괴하게됩니다.  - 건설하는 것보다 파괴하는 것이 종종 더 쉬운 법입니다. 그 결과는 좋은 아내에게는 많은 슬픔이 되고, 자녀들에게는 많은 (비행을 저지르게 만드는) 추문이 됩니다. 그러면 세상의 유혹은 훨씬 더 강해집니다. 그러면 여성들은 남성들을 쓸모없는 존재로 보는 경향이 있게되고, 자기들을 더 나은 존재로 보는 경향이 있게됩니다. 그래서 여성들은 세상의 지도자 자리를 차지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더 이상 자연 질서를 존중하지 않는 전체 페미니스트(여성) 운동을 가지게 됩니다. 이 악의 근원에는 선을 행하지 못한 자들의 실패, 곧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의 잘못이 있습니다. “모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천주님이니라.” 이것은 천주님의 명령이고, 따라서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첫째, 좋은 남편을 둔 여성들, 남편은 진정으로 선한 지도자이니 여성들이 정성을 다하여 남편에 대해 천주님께 감사드리고, 그리고 남편에게 더욱 더 순종하여서 남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하십시오. 좋은 남편은 천주님의 선물입니다.
 
 남편이 신앙생활을 실천하지 않는 착한 여성들은 자기 남편을 위해 많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남편들에게 명령하거나 그들과 함께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라, 성 베드로께서 가르친 대로 "이와같이 아내된 자도 자기 장부(남편)에게 순종할지니, 이는 천주의 말씀을 불순하는 장부도 그 아내의 언행으로 말미암아 무언 중에, 경외함을 갖춘 너의 정절한 언행을 살펴봄으로 인하여 귀화하기를 위함이니라."(베드로 전 3장 1절) 여기서 "언행"은 "행동, 겸손, 모범, 좋은 생활"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성 베드로께서 계속 말씀하십니다; “이와같이 아내된 자도 또한 자기 장부에게 순종할 지니, 이는 (천주의) 말씀을 불손(不順)하는 장부도 그 아내의 언행으로 말미암아 무언 중에, 경외함을 갖춘 너의 정절한 언행을 살펴봄으로 인하여 귀화되기를 위함이니라. 너희는 몸을 치장함에 정묘(精妙)하게 지진 머리나 황금의 장신구(裝身具)나 사치한 의복 등의 피상적으로 하지 말것이요, 오직 항구히 평온하고 양순한 정신으로 꾸민 마음 속에 숨어 있는 내적 사람이어야 하느니라. 이것이야 말로 천주 대전에 귀중한 것이니라. 대저 천주께 바라며 자기 장부에게 순종한 거룩한 옛 부녀들도 이렇게 자기를 꾸몄느니라. 예건대 사라는 ( 그 장부) 아브라함을 주(주인)라 불러 저에게 순종하였나니, 너희가 만일 선을 행하며 또한 아무 위협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면 이에 저희 딸들이 되리로다."(벧전 3:1-6) 물론 사라에게는 아주 위대한 성인인 훌륭한 남편 아브라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 베드로는 모든 여성들의 모범으로서 사라의 예를 언급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종도(사도)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속도가 느리다는 것을 봅니다. 오직 복되신 성모 마리아만이 부활에 대한 믿음을 지켰는데, 이것이 성모님께서 무덤이 예수를 찾을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 무덤에 가지 않은 이유입니다. 그러나 성 마리아 막달레나조차도 천신(천사)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였으니, 믿었더라면 그녀가 동산지기라 생각했던 예수께, "당신이 만일 (시신을) 가져 가셨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말하시오, 내가 모셔가겠나이다."(요왕 20:15)라고 안했을 겁니다. 만약 마리아 막델레나가 천신이 자기에게 말한 것을 믿었다면, 그녀는 결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마리아 막델레나는 주님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도마(Thomas)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마는 믿으려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위해 기다렸습니다. 그점에 대해 종도(사도)들을 우리가 비난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믿는 것이 느리다며 그들을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천주님의 섭리는 그러한 느림을 막지 못함으로써 잘한 것입니다: 성 그레고리 대 교황께서 말씀했듯이, 도마가 부활하신 주님의 상처를 만진 바로 그 사실이 우리를 믿지 않는 상처를 치유했습니다. 종도들이 부활을 확정짓기 위해 취한 걱정이 우리의 믿음을 강화하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일단 그들이 천주님의 부활의 모든 증거를 얻자, 종도들은 세상에 가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설교했습니다. 종도들은 천주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하신 것처럼, 우리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게 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 아타나시우스가 성육신에 관한 논문(論文)에서 말하듯이, 그리스도는 부활로써 우리를 죽음의 공포로부터 구해주셨습니다. 그분의 수난으로써 우리 죄의 대가를 치르며 우리를 죄악으로부터 구하십니다. 그분의 부활로써 우리 주 예수께서 우리를 죽음의 공포로부터 구하십니다. 그러므로 치명자(순교자)들은 "충실한 말씀인: 우리 만일 (그리스도와 더불어) 함께 죽으면, 또한 한가지로 살 것이요.”(티모테오 후 2:11)라는 말씀을 알고. 그리스도를 위해 자기들의 생명을 주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부활과 영원한 삶에 대한 이 소망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가톨릭 생활의 가장 핵심에 있습니다. 지상에서의 우리의 삶은 저 영생을 향한 순례의 과정이며, 천국을 향한 순례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그리움이 항상 우리 안에 자라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합니다. 실제로 영생을 잃어서 영원한 고통으로 결말짓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없습니다. 저 영생은 지상에서의 죄를 피하기 위한 모든 노력, 심지어 순교까지도 기울일 가치가 있습니다. 영생에 대한 저 소망은 우리 영생 전체에 근본적 기쁨을 줍니다. "소망에서 기뻐하는 것"(롬 12:12)이라고 성 바오로는 말합니다.
 
 영생에 대한 저 희망은 가톨릭인의 생활이 단순한 자연적인 선함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초자연적인 영원한 생명의 시작, 천주님의 아들이 자신의 피를 흘려 구속하신 그분의 천주 자녀의 생명이라는 것을 만듭니다! 부활 이후 성모몽소승천 때까지 저 소망의 생활로 완벽하게 살아오신 성모 마리아여! 천국으로 가는 순례의 길로 우리가 갈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소서! 

아멘.

Father François Lais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