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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 죄없는 자가 고통을 당하는가?- 부활주일 (2020. 04.17)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4-17


왜 죄없는 자가 고통을 당하는가?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 성주간(聖週間)은 우리 신앙의 위대한 신비인 구원이라는 장엄한 방식으로 매년 행해지는 봉헌이였습니다. 매일 미사에서, 이 신비가 재연되고 새롭게 제헌됩니다. 하지만 성주간에는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는 이 신비에 대한 묵상을 깊게 합니다. 그러면, 십자가 위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희생이 어떻게 우리의 구원을 해결하는지 생각해 봅시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욥기로 돌아갑시다. 욥은 매우 거룩한 사람으로서 아브라함의 자손은 아니었으나 에즈키엘이 언급한 구약성경에서 가장 거룩한 세 명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에즈키엘 14:14,20). 천주님께서 친히 욥에게 증언하여 이르시되, ”땅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며, 천주님을 경외하며, 악을 피하는 자가 없느니라”.(욥기 1:8) 여기서 형용사 "온전한" 뜻이란 "죄가 없고, 교활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번제(燔祭)와 기도(욥기1:5)를 바치며, 천주님께 충실했습니다. 천주님은 구약성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땅에서 낙타와 당나귀와 양과 토지와 종(奴)이라는 풍성한 재산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욥은 이 모든 것을 이웃을 위해 사용하였습니다.
 
 내가 울부짖는 가난한 자와 도와줄 자 없는 아비 없는 고아를 건지셨음이니라. 망할 자의 복이 내게 임하고, 내가 과부의 마음을 위로하니라 내가 공의(公義)를 입고 정의를 입었으니, 이는 마치 겉옷과 관(冠)을 입은 것 같더라 나는 장님에게는 눈이었고, 절뚝거리는 사람에게는 발이었다. 나는 가난한 자의 아버지요, 내가 알지 못하는 대의(大義)를 가장 부지런히 찾았노라. 내가 악인의 턱을 부러뜨리고, 그 이빨에서 먹이를 빼앗았노라."(욥기 29:12-17)

 그리고 조금 후에(욥기 31:1) 다른 여자들에 대한 생각조차 피한 까닭에 이미 복음상의 완벽함을 실천하였고(마테오 5:28), 그는 겸손하여 낮은 신분의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경멸하지 않고 몸을 따뜻하게 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자신의 양모(羊毛)를 베푸는 것(욥기 31:20)도 설명합니다.
 
 그러나 악마는 욥이 세속적인 복을 받았기 때문에 흥미 있는 방법으로 천주님을 섬겼다고 비난하면서 그를 질투했습니다. 악마는 그를 해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헸습니다. 그러면 욥이 천주님께 화를 내고 저주할 것이라고 했습니다.(욥기 1:10). 가장 놀라운 방법으로 천주님은 욥을 해치려는 악마의 청원을 "좋아, 그럼 해봐라!"라고 허락하셨습니다. 그러자 악마는 가서 욥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하루 만에 잃게 합니다. 낙타와 양, 소와 당나귀, 하인, 심지어 열 명의 자식까지도 토네이도(폭풍우)에 의해 그의 집이 무너졌을 때 죽었습니다.
 
 “욥이 일어나 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벌거벗은 채로 모태에서 나왔고, 벌거벗은 채로 그리로 돌아가리니, 야훼께서 주셨으니 빼앗는 이도 야훼이시라. 이같이 행하신 대로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이 모든 일에 욥은 입술로 죄를 짓지 아니하고, 천주님께 대하여 우매한 말을 하지 아니하였느니라.”(욥기 1:20-22)
 
 욥은 악마를 비난하지 않지만, 그에게 일어난 모든 것을 허락한 천주 섭리 위에 있는 것을 보고, 어떤 반항도 없이 천주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그분을 축복합니다!
 
그러자 마귀가 다시 공격하여 천주님께 이르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꿀지라. 이제 주님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그가 면전에다 주를 욕하고 저주하리로다”(Job 2:4-5).” 그리고 두 번째로 천주님은 "좋아, 그럼 해봐라!"라고 말씀하시는데, 악마는 머리 꼭대기에서 발바닥까지 끔찍한 병으로 욥을 괴롭히니, 욥의 피부는 온통 곪았고 매우 고통스러웠습니다. 그의 아내가 그에게 등을 돌리며 말하길, “당신은 아직도 그대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주님을 저주하고 죽으라.” 이에 욥이 아내에게 이르되,.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들 가운데 하나의 말과 같도다. 우리가 주님께 복을 받았은즉 악(惡)도 어찌하여 받지 아니하겠느냐?” 이 모든 일에 욥은 입술로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욥기 2:9-10). 그가 어떤 반항도 없이 "악" 즉, 천주님의 손으로부터 오는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보세요. 그때 그의 친구 셋이 와서 그의 고통의 양에 충격을 받으니, 그들은 그에게 등을 돌리며 말하기를, “자네는 주님께 이리 큰 고통을 받건대, 큰 죄인임이 틀림없구려.” 왜냐하면 그들은 천주님의 정의가 만약 그가 무죄라면 그렇게 그가 괴로워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죄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고통을 겪을 때, 우리는 항상 "그것은 나의 과거 죄 때문이야!"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러나 욥은 결백했습니다. 그는 과거에 몇 가지 소죄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인정하지만, 하지만 그는 그의 고통이 과거의 소죄에 비교할 때 불균형적으로 컸다고 말합니다.
 
 욥은 천주님을 비난하지 않고 자신의 결백을 변호합니다. 그는 천주님이 정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그러나 그는 그 좋은 이유를 알지 못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왜 그러한가? 욥기 전체의 나머지가 이에 대한 것입니다. 왜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가? 이는 위대한 질문입니다"

 욥은 고난 속에서 인내하여 위대한 성인이 되었숩니다, 욥은 고난을 받으신 죄없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성 교회는 수난시기의 전례의식에서 욥의 구절을 사용합니다. 욥기 말미에, 천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땅의 기초를 쌓았을 때, 네가 어디에 있었느냐? 네가 명철(明哲)하면 내게 말하라'(욥기 38:4)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실로 나는 전능한 자요, 모든 지혜로 충만한 자이니, 그저 나를 믿으라!” 욥은 자신을 부당하게 대했던 세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천주님은 그에게 모든 것을 두 배로 돌려주십니다. 그러나, 욥의 위대한 질문, 그 왜라는 질문, 왜 죄 없는 자가 고난을 받는가에 질문에 여전히 답이 없습니다.
 
 나중에, 욥보다 더 거룩하고 그보다 훨씬 더 온전하고 결백한 사람이 있는데, 천주님의 행동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데, 하자없으신 동정 마리아 이분 역시 그 이유를 묻는습니다: 메시아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천신의 전언(傳言)을 받아들였을 때, 마리아는 이사야의 예언을 알았고, 그래서 자기에게 고난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헤롯으로부터 고난이 왔을 때, 어떤 면에서, 그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마리아와 요셉에게서 빠져 나와서 사흘 동안 발견되지 않은 어린 예수 자신으로부터 고난이 왔을 때, 성모님도 그 까닭을 묻습니다. "아들아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하였느냐? 보라. 네 부친과 내가 너를 애통하게 찾았노라"(루까 2:48) 예수님은 욥기처럼, 질문에 대답하시길,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이 있는 곳에 나 마땅히 있을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루까 2:49) 그리고 욥기처럼 ”그들은 그가 그들에게 한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노라”(루까2:50)
 
 성모님은 그 대답에 대해 20년 이상 묵상하고 있었는데, 다시 그분의 성자께서 성모님을 고통스럽게 했고, 그리고 처음보다 훨씬 더 많이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체포되시고, 심판을 받으시고, 채찍을 받으시고, 가시관을 받으시고, 사형선고를 받으시며, 십자가를 지시고 갈바리로 가는 길에 성모를 만났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때, 그리고 성모님은 십자가 아래에 서 계셨을 때, 그 이유를 다시는 묻지 않았습니다.
 
 성모님은 눈앞에 그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부의 일이요, 영혼의 구원이로다! (속전을 치루는) 구속(救贖)이구나. 
 
 실로 천주님은 정의로우시기에, 세상 구원이라는 어떤 압도할만한 보상을 주지 아니하고 무죄한 자들을 고통받게 하지는 않습니다. 확실한 방법으로, 무죄한 자들에게 고통을 허용함으로써, 천주님은 우리 주님께서 중재하시는 모든 자들을 폭넓게 용서해 주심으로써 보상할 의무를 지십니다. 우리 주님은 최고로 순결하신분이라, 그분은 홀로 무죄하십니다. 성모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총으로 인하여 죄가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천주님의 어린 양으로서 제헌하시는 사랑에서 오는 순명은 어떤 참회의 뛰어난 속죄보다 천주 공의(公義)에 대한 훨씬 더 나은 보상이므로, 공의와 자비는 이러한 십자가의 완벽한 희생에서 아름답게 합치하고 있습니다. 
성모님은 그를 돕는 조력자(창세기2:18)인 새로운 에와(the New Eve)같이 십자가 아래에 계시며, 그리고 성모님의 완벽한 무결함 또한 자신에 대한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위해 주님과 함께 고난을 받으신겁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구원을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의 구원을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를 거스르는 싸움에 있어서 아직 피를 흘리는 저항을 하지 않았습니다."(히 12:4) 그러므로 그분의 십자가는 엄청난 소망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각 미사는 마리아를 통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공로를 우리에게 적용합니다.

 예수성심과 마리아의 하자없으신 성심에 대한 더 깊은 지식, 그리고 천주께 대한, 더 많은 사랑에 관한 이 숭고한 신비의 묵상으로부터 성총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사랑이 우리 안에 퍼지는 불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모든 영혼들이 구원에 관한 이 큰 신비를 인식하고, 또한 천주 사랑으로 인하여 점화(點火)되기를 바랍니다: "천주께서는 우리들이 아직 죄인(罪人)으로 있을 때, 그리스도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우리에게 대한 당신 사랑을 증명하셨느니라. 저의 피로 말미암아 의화(義化)된 우리들은 저로 인하여 의노(義怒)에서 구원될 것은 확실하도다.“(롬5: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총으로, 우리가 이 천주 사랑에 충실하기를, 진정으로 "죄에 죽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천주님 속으로 살아가기를!"(롬 6:10) 바랍니다.

Amen.

Father François Lais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