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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주자비에 관하여 - 파티마 기적에 즈음하여(2014-10-12)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11-06

 

 


천주자비에 관하여-파티마 기적에 즈음하여(2014-10-12)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내일은 파티마 기적 97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 발현에서 성모님은 사람들에게 묵주기도를 하도록 요청하셨고 특히 우리 주님과 하자 없으신 성모님 마음을 거스린 죄에 대한 배상으로서 다섯 달간 첫 토요일을 지키라고 요청하셨습니다. 배상과 자비에 대한 밀접한 관계를 고찰해 보도록 합시다.

자비란 불쌍한 이들을 위한 사랑입니다. 라틴어로 misericordia = miseri+cordia 의미는 '불행한 이들에게 마음을 둔다' 즉 불쌍한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질병이나 가난과 같은 신체적 불행이 있고 영혼, 무죄, 죄에 대한 불행이 있습니다. 죄에 대한 이 마지막 불행은 가장 큰 것이니. 죄란 사랑과 반대되는 연고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이란 자비를 받을 자격이 없고 오히려 분개, 격노 그리고 벌 만이 있게 됩니다. 그러니 자비를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에게 베푸는 사랑이야 말로 가장 큰 자비이니 왜냐하면 저들은 사랑보다는 처벌과 분노만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비는 악을 악으로 갚지 않으시고 선으로서 악을 이기는 천주님의 무한하신 선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큰 문제는 자비에 대한 잘못된 끔직한 오해를 갖고 있으니, 이는 우리가 죄를 지으면 천주님이 우리를 싫어하실 것이라는 점과, 우리가 무슨 죄를 짓더라도 천주님의 사랑이 '무조건적인 사랑'이기에 –오늘날 말하듯이- 우리가 천주의 법을 따르는 것 요구하시지도 않으니 죄를 지어도 천주로부터 자비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은 천주자비에 대한 엄청난 왜곡이며 죄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음과, 그러면서 죄가 있으면서 천주님이 함께 자기들과 할 것이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심각한 오해입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거짓입니다. 천주님은 죄를 싫어 하시고 죄인이 죄의 상태로 있는 것도 원하시지 않습니다. 이혼한 후 재혼한 이들이 자기들의 생활을 버리지 않고 죄를 계속 짓고 있는 그 죄인들에게 영성체 주는 것을 주님은 바라지 않습니다.


회개 없는 죄인들에게 영성체를 주는 것은 천주 자비가 아닙니다. 이는 기만입니다! 생활의 교정이 없는 죄의 상태를 천주께서 용납하신다고 저들을 믿게 만드는 것은 자비가 아니고 기만이며 따라서 이는 죄인들이 죄를 더 맹목적으로 짓게 만드는 저 죄인들에게는 잔인한 짓입니다. 절대로 안됩니다. 분명히 천주님은 죄인을 사랑하지만 죄인이 계속 죄를 짓는 것 원치 않으십니다.


죄는 마음의 악이며 영혼의 죽음입니다. 죄는 죄인을 부패하게 합니다. 그래서 죄인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죄를 미워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사랑이란 죄로부터 영혼을 치료하는 것이며 죄인이 더 이상 죄의 상태로 있지 않도록 합니다.


좋은 의사는 환자를 사랑하기에 환자가 더 이상 병에 걸리지 않기를 원합니다. 훌륭한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듯이, 주님께서는 죄인의 회개를 원하십니다. 환자를 치료하지 않는 의사는 그가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없듯이, 죄인을 회개시키고 그가 진정으로 더 이상 죄짓지 않게 하고, 도덕적으로 정당하게, 더 나아가 덕행을 충실하게 실천하게 만들지 않는다면 주님은 자비로운 분이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은 죄로부터 죄인의 영혼을 깨끗이 해 줄 뿐만 아니라 죄인의 영혼을 치유하고 덕행을 충실하게 실천할 수 있도록 죄인에게 힘을 줍니다. 이것이 진정한 자비이니 왜냐하면 영혼에게 진정한 치유를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참 천주이자 참사람이십니다. 그 분은 영혼을 구령할 수 있는 일에 있어서 영혼을 치유하고 이를 끌어올려서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는 전능한 힘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와 같은 천주님의 사랑의 경이로움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천주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사 당신 독생 성자를 주시기까지 하사, 무릇 저를 믿는 자로 하여금 멸망치 아니하고 오직 영생을 얻게 하셨으니, 천주 당신 성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하여금 세상을 죄로 판단하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세상이 저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기를 위하심이니라. “(요왕 . 3:16-17) 우리 주님께선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천신이 성 요셉에게 전달하길,”이에 한 아들을 낳을 것이매, 그 이름을 예수라 부르라. 대개 저 자기 백성을 그 죄악에서 구속하시니라.“(마테오1;21) 

주님은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나요? “마치 인자가 복사(섬김)함을 받으러 오지 아니하고 오직 복사하러 오고 또 많은 사람을 구속하기 위하여 자기 생명을 버리러 옴같이 할지니라. “(Mt. 20:28). 그 분은 구원으로써 우리에게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redemption(상환, 구원)이란 값을 다시 치룬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우리의 죄값을 치루었습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가 받을 벌을 천주님의 정의에 대해 우리 죄값을 배상하시기 위하여 그 분께서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분명히 자비와 배상의 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천주 자비는 천주님의 정의를 누르지 않으며 오히려 성부께 우리 죄를 위하여 완벽한 배상을 하심으로써 이를 실현합니다. 진실로 “자비는 그 자체가 심판보다 우위에 있는“(Jac. 2:13)것입니다.

“저 당신을 우리를 위하여 제헌하심은 우리를 온갖 악에서 구하사 당신의 듯에 합하고 깨끗하고 선업에 힘쓰는 백성을 당신 소유로 삼으사 하심이니라.“(Tit. 2:14).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는 은총을 주고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주며, 깨끗한 사람이 되어 선업을 추구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완벽한 희생 제물로써 자신을 제헌하셨습니다. 성모님 또한 천주 성자와 함께 십자가 아래에서 자신을 제헌하셨습니다. 성모님 역시 죄가 없으시고 완벽한 무구이시며, 하자 없으신 잉태입니다. 지극히 정결하신 분이시기에, 고통을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성모님은 우리 죄인에게, 그 영혼에게 연민을 가지시고, 우리의 영혼 구령을 위하여 주님과 함께 자신을 제헌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공동 구속자이신 겁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자비를 받는다면, 우리도 차례가 되어 우리 자신이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 바오로께서 에페소 사람들에게 말씀하기를, “너희는 서로 친절하게 하고 긍련히 여길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 안에 너희를 용서하셨음과 같이 너희도 서로 용서할지니라.“(Eph. 4:32). 그리고 콜로새인들에게 말씀하시길, “너희는 천주의 간택하신 자와 사랑하옵는 자들로서 불쌍히 여길 줄 아는 마음과 관용과 겸손과 양순과 인내를 입을지어다. 서로 참을 것이며, 누 만일 다른 이에게 비난할 것이 있으면 서로 용서할지니, 주 너희를 용서하셨음과 같이 너희들도 또한 그렇게 할지라.“(Col. 3:12-13).

우리는 배상을 해야만 하는데, 첫째 우리 죄를 위하여 이것이 곧 보속입니다. 그렇지만 또한 우리는 다른 이들을 위해 배상을 해야만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이러한 의문을 갖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떨어져 나간 많은 사람들의 회개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렇게 물어봐야 합니다. 사람들의 회두를 위해 주님께서 무엇을 하셨나요? 주님은 속죄의 희생제물로써 자기 자신을 재헌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 이웃의 영혼 구령을 위하여 우리도 속죄의 희생제물로써 우리 자신을 바쳐야 합니다.


아기 예수 테레사 성녀는 세상 모든 곳에 가서 전교를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성녀는 다른 방법을 찾았으니, 이것은 예수님의 자비로운 사랑에 자신을 바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수 백만 인들의 영혼 구령을 위하여 홀로코스트 대학살의 희생제물이 되었습니다.

우리 이웃을 위해 우리가 고통을 받아야 될까요? 하는 이것은 사랑의 진정한 시험대이니 : “누가 그 벗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느니“(Jn. 15:13). “친애하는 자들아, 천주 우리를 사랑하심이 이와 같으신 즉, 우리도 마땅히 서로 사랑해야 하느니라.“(1 Jn. 4:11). “너희는 천주의 사랑하시는 자식답게 저를 모범할지어다. 또한 너희는 그리스도 너희를 사랑하사 당신을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으로 삼아 우리를 위하여 천주께 드리셨음과 같이 사랑 안에 거닐을 지니라.“(Eph. 5:1-2). 천주님을 모방한다는 의미는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며, 희생제물로써, 봉헌물로써 그 자신을 재헌하신 것입니다.

성 마테오가 기록하기를, “너희는 하늘에 계신 성부 완전하심과 같이 완전한 자 되어라.“(Mt. 5:48) 자비란 죄인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며 자비는 죄인을 인정해주는 것이 아니고, 자비는 죄인의 죄에 대해 배상으로써 자기 자신을 바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놀라운 효과를 갖게 됩니다. 우리가 죄인의 회개를 위해 기도할 때 만약 우리가 그들의 회개를 위해 희생제물로써 우리 자신을 주님에게 드린다면 어떻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기도를 안 들어주지 않겠나요?

그러면 많은 죄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에 감동을 받게 되고, 특히 진정한 크리스천들이 예수님을 닮은 것을 저들이 보게 될 때 감동을 받게 됩니다.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은 아우슈비츠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을 대신하여 자기 몸을 바쳤습니다.  그 신부님은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우리 주님을 모방한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그 신부님의 모범적인 행위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기 예수 테레사 성녀의 기도의 효과를 보십시오. 그러면 사람들은 주님의 은총을 얻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영원히 천주님의 자비를 받아 찬양하기 위해 주님께 다가갑니다. 


그와 반대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지 않는 마음이 굳은 죄인들은 심판의 날에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네가 나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 라고 하셨을 때 그들은 아무 말도 못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손과 옆구리에 있는 당신의 상처를 그에게 보이시며 말씀하시길 “내가 너를 위해 이런 고통을 받았다. 너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다. 그런데도 네가 죄를 떠나지 않고 나에게 더 고통을 주었구나.” “천주님은 우리가 죄지은 것을 싫어하시진 않잖아요.” 라고 말하는 죄인들에게 성부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십자가 위에 있는 내 아들을 보라. 그는 너의 죄를 보상하기 위해 고통을 받았다.  주님이 우리가 죄짓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어찌 네가 말할 수 있느냐?” 죄인은 죄를 배상하고 있는 십자가 상에 있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할 때에, 오직 그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저렇게 많은 고통을 받게 하는 원인에 대해 무척 잘못했습니다. 내 죄를 혐오합니다 제가 벌을 받아 마땅하기에 제가 십자가 위에 있어야 합니다. 제게 자비를 베푸십시오. 죄를 더 이상 짓지 않고 싶습니다. 충실한 사람이 되게 도와주세요. 이 세상에서 필요한 보속은 무엇이든지 달게 받겠습니다. 천국에 남게 해주세요 그리하여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고 고마움을 표하게 해주십시오.”

이혼한 다음 재혼한 사람들이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 바로 이점입니다. 저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십자가 위에서 못박힌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주님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의 가르침 즉 그 분 안에 구원이 있고 그 분 안에 천주 자비가 있는 가르침을 들어야 합니다.


바오로 성인은 말씀하시길 “천주께서는 우리들이 아직 죄인으로 있을 때 그리스도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우리에게 대한 당신 사랑을 증명하셨느니라. 저의 피로 말미암아 의화(義化)된 우리들은 저로 인하여 의노(義怒)에서 구원될 것은 더욱 확실하도다.“(로마 5;8-9)“지극히 자비하신 천주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죄로 말미암아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생활케 하셨으며, 너희는 성총으로 인하여 구원되었느니라. 또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저와 한가지로 우리를 부활케하시고 그리스도 예수와 더불어 천상에서 한가지로 자리를 차지하게 하여 주셨느니라.”(에페소2:4—6)

 모든 이들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서 흘러나오는 은총이 분명히 필요하기에, 모든 사람들이 제대 아래에 있을 때 그들이 십자가 아래에 있는 것처럼 될 수 있도록 주님은 미사의 거룩한 희생인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를 제정하셨습니다.


제대 위에 계신 분은 한때 십자가 상에서 자신을 제헌하셨던 같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니, 그 분은 날마다 미사 때 자기 희생을 계속 바치는 분입니다. 새롭게 바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상에서 한때 바쳤던 모든 고통을 바칩니다. 십자가 위에서 한때 드렸던 육신은 실제로 제대 위에 현재 계신 것이며, 우리와 많은 이들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흘리신 같은 성혈이 제대에 현재 흘리면서, 인류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하시면서 성부께 제헌하신 것입니다. 진실로  “Ecce Agnus Dei, 천주의 고양, 세상의 죄를 면하여 주시는 자를 보라”이십니다. 거룩한 미사의 희생제사는 진실로 천주자비의 성사입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십자가 아래에서 계셨듯이, 우리가 성모님과 함께 우리를 바치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도록, 영광이 되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도록(로마8:17) 성모님은 매 미사 때마다 십자가 아래에서 행하셨던 것처럼 아들 예수와 함께 자신을 제헌합니다. 그래서 성모님이 우리에게 그러한 배상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성모님께 우리를 도와달라고, 온 정성을 다하여 천주자비와 자기 희생을 이해하게 해달라고 간청합시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매우 첫 번째 단계, 이는 참된 희생이라 할 수 있으니 죄를 미워하는 것, 즉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었으나 천주를 위하여서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사는 자들로 여길지라. “(로마6:11) 


두 번째는 이 또한 필요한 것이니 죄의 기회를 엄격하게 피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세상적인 일, 지상의 물건의 애착에서 우리 자신을 떼어놓는 것, 세속적인 지나가는 쾌락이나 심지어 합법적인 쾌락도 떼어내는 것입니다.


진실로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보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천국에 있어야 합니다.(콜로새3:1/마테오6;21) 마지막 단계는 테레사 성녀의 그러한 단계이니, 천주님의 자비로운 사랑에게 예수님과 함께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는 거룩한 미사의 희생제사 안에서 날마다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천주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많은 영혼들의 구령을 위하여 이 제헌 안에서 우리가 관대해질 수 있도록 성모님께 간청합시다.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 (성비오 10세회 아시아 관구 소속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