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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으로 귀중한 성체성사의 열매-성 목요일(2022.4.14)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4-15


참으로 귀중한 성체성사의 열매- 성 목요일(2022- 4- 14)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최후의 만찬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성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성사인 성체성사를 제정하셨습니다. 행위로서, 거룩한 성체는 참되고, 적절한 희생제물이며, 갈바리 위의 그리스도의 희생제물이 있으니, 이는 같은 사제, 같은 희생자, 같은 희생제물입니다. 갈바리 위와 미사에는 사제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게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친히 행동하시고, 제대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를 통하여 행하시는 분입니다. 갈바리와 미사에서 희생되신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니, 즉, 십자가에서 성혈 흘리는 방식으로 바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성혈이요, 그분은 계속해서 (미사에서) 성혈를 흘리지 않는 방식으로 제헌하시는 것을 지속하시는 것 또한 그분의 몸과 성혈이니, 즉 성사의 빵과 포도주의 특성 아래에서 이루어집니다. 그 희생제물은 갈바리 위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성혈이 분리되었습니다. 비록 부활 이후 그리스도의 몸과 성혈는 분리될 수 없지만, 두 개의 분리된 축성에 의해 제대 위에서 똑같은 희생제물이 현존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의 특성 아래서 그리스도의 영혼과 신성과 함께 영성체가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몸과 성혈를 제공되는 이유입니다: 부활 후에 몸과 성혈은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두 개의 분리된 축성은 십자가 위의 희생제물제물을 의미하고 현존하게 합니다.
 
 그래서 성체는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는) 참되고 적절한 희생이니, 이는 찬미와 감사뿐만 아니라 진정한 화해의 희생이며, 우리가 필요로 하는 죄의 사면과 다른 모든 은총을 얻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의 공로에 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영혼과 우리의 모든 의도에 그것들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공로들이 우리의 영혼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아차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체성사 제정으로 인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이들에게, 세상 어디서든지, (생애) 끝까지,  우리가 그분의 희생제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그리하여 십자가 아래에 계신 성모님, 종도 성 요한, 그리고 거룩한 여성들처럼 같은 은총을 받게 하십니다. 참으로, 여러분이 미사 때의 희생제대 아래에 있을 때, 여러분은 십자가 아래에 계시는 마리아와 함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십자가 희생이 이루어지는 그곳에 있었다면, 여러분은 분심했었을까요? 아니면 우리의 구원을 위한 인류 역사의 최고 사건인 천주님의 아들의 희생재물로 (여러분의 마음은) 가득 채웠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성체성사의 바로 그 핵심에 매우 중요한 점을 건드립니다: 갈바리 위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부터 이익을 얻으려면,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체성사의 모든 목적은 우리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곳 아래 있는 예수님과 합치되여서, 영광을 받으시는 그분과 영원히 합일하기 위해서입니다. 성 바오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천주의 의자(義子)라. 의자면 또한 상속자라, 곧 천주의 상속자요, 또한 그리스도의 공동 상속자니라. 다만 우리는 저와 함께 고난을 당할지니, 이에 우리는 저와 더불어 또한 영화롭게 되리로다."(롬 8:16~17) 디모데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만일 감수 인내하여 항구하면 저와 한가지로 왕할 것이며,"(2 Tim. 2:12) 그리고 성 베드로 이르시길, “오직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할 수 있는 그만큼 기뻐할지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저의 영광이 나타나시는 때 또한 즐거워하며 용약하기를 위함이니라."(베드로 전 4:13)
 
 사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모두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실제로, 성 바오로는 로마인들에게 이르시길, "당신 친아들도 아끼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 모든 이를 위하여 붙여 주신 자이시니"(롬 8:32)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인들에게 이르기를, "그리스도 만민을 위하여 죽으셨음은 이 살아있는 자들로 하여금, 이제 더 자기를 위하여 살지 말고 오직 만민을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고자 하심이었도다."(고후 5:15) 디모데에게 이르시되, “[그리스도]는 모든 이를 위하여 구원의 값으로 자헌하셨도다.”(1 Tim. 2:6).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는데, 어찌 다 구원을 받지 못하나요? 실제로, 일부는 이미 지옥으로 갔고, 다른 이들 또한  지옥으로 갈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죽으셨는데 지옥으로 가는 이들이 생기는 것이 그게 어떻게 가능하나요? 그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과 일치하지 않고, 그리스도와 순응하기를 거부하며, 그리고 특히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필립보 3:18)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고통받으셨다. (그래서) 우리는 할 일이 없다. 그분은 모든 것들을 해주셨다"라고 말하는 개신교인들의 드라마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홀로 남겨둔 채 떠나며, 우리 성모님과 성 요한과 그리고 거룩한 여인들과 함께 참여하기를 거부합니다. 라틴어에서 온 "동정심(compassion)", 또는 그리스어에서 온 "공감하다"는 "고통을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개신교들의 오류의 핵심은 그들이 "오직 믿음"만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사랑의 행위이며, 자비의 행위이고, 그리고 이 목적은 분명하게 우리의 영혼에 자선을 베풀고 회복하는 것입니다. 자비는 일치하는 것입니다. 자비는 예수께서 (홀로) 십자가에 못 박힌 상태로, 따로 떨어져 있는 상태로 볼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십자가에 계신 그분을 묵상한다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 사랑하는 주여, 저는 죄인이요, 저 십자가에 마땅히 있어야 할 사람입니다. 최소한 제가 주님을 공감하고, 주님과 함께 고통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와의 일치는 성체성사에 의해 해결됩니다. 사실, 성 어거스틴은 우리가 빵을 먹을 때, 우리가 그 빵을 우리의 몸으로 변화시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체를 먹을 때, 주님은 우리를 주님의 몸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분 자신으로 변모시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갈 2:20).

 주님은 우리를 그분 자신으로 변모케 하시니, 이는 그분이 천주님을 아시는 것처럼 우리가 천주 성부를 알도록 함입니다: "성부 외에는 아무도 성자를 알지 못하고, 또 성자와 성자 즐겨 지시하여 주는 자 외에는 아무도 성부를 아는 자 없느니라."(마테오 11:27) 주님은 우리를 그분 자신으로 변모케 하시니, 우리 안에서 그분의 모든 미덕이 지속되게 하시고, (그리하여) 그분이 실천하신 자비, 겸손, 그리고 충성과 온유와 강용, 정결, 인내 등 그 모든 미덕을 우리가 실천하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유혹을 이겨내고 악에 저항할 수 있도록 내면에서 우리를 돕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러한 모든 미덕을 실천하도록 돕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왕도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걷도록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안에서 그분은 우리에게 자비의 열매인 천국을 미리 맛보게 하십니다. 성 프란치스코 사비에르와 같은 몇몇 성인에게 주님은 그 성인들이 “그만하세요, 오, 주여! (천국이라는 자비의 열매가) 너무 넘치나이다.” 말할 정도로 큰 위로를 주셨습니다.

 성모여, 우리를 도우사 우리가 성체성사를 인식하고, 이 희생제사에서 이루어지는 매우 크나큰 열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으로써 나오는 자비의 열매, 거룩함의 열매, 완벽한 순명의 열매를 얻도록 도와주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천국에 가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Amen.

Father François Lais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