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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자가의 신비와 우리의 자세- 성 십자가 현양 축일(2014-09-14 주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11-04





십자가의 신비와 우리의 자세-성 십자가 현양 축일(2014-09-14)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성 십자가 현양축일은 십자가의 기적을 기억나게 합니다. 히라클리우스 로마 황제가 전쟁에서 이긴 후 예수님의 이 성 십자가가 발견되었는데 그 황제는 직접 자기가 이 십자가를 어깨에 매고 갈보리산으로 운반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산 아래에서부터 이 십자가를 전혀 운반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예루살렘의 주교인 자카리는 황제에게 이르되 “조심하십시오. 황제 폐하. 보석과 황금으로 온통 치장된 황제의 옷을 입은 당신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과 겸손의 표양과는 동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아름답고 값비싼 옷을 벗어 던지고 가난한 이의 옷으로 갈아 입었으며, 그리고 나서야 그는 힘들이지 않고 갈보리산까지 이 십자가를 운반할 수 있었습니다. (갈보리는 산이라기보다는 언덕에 가까운 곳이 었습니다.)

진실로, 성 십자가의 신비는 신앙의 신비이며 참된 신앙의 핵심입니다. 천주 성자께서 하늘에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내려오신 것은 엄청난 진리였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그 분께서 우리를 구원(救援)하셨나요? 십자가 상에서 희생으로서, 자신을 제헌(祭獻)하심으로써, 성부께 드릴 영예(榮譽)를 회복시킴으로써, 우리 빚(debt)을 갚음으로써 이루어낸 것입니다.


이것은 진실로 우리의 일상적인 이해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이는 많은 영혼들에게는 걸림돌이 되는 장벽이었습니다. 무슬림들은 전능하신 천주께서 십자가 상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들은 우리 주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즉 이로써 죄를 극복하신 승리를 보지 못합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신의 아들이 보여주신 그 겸손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성 바오로께서: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그와 같은 정신을 가질지라. 천주의 형체 안에 계신 저는 천주와 더불어 같으심을 이기적으로 확보하여야 되는 것을 생각지 않으시고 오히려 종의 형체를 취하사, 사람과 같은 자 되심으로써 당신 자신을 낮추셨느니라.” 성 육신은 겸손의 커다란 행위로서 바오로 성인은 계속 말씀하시길, “당신을 낮추사 죽기까지 순명하셨느니라”(필리피. 2:5-8)

죄는 교만(驕慢)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나는 주를 섬기지 않겠다” 라는 섬김을 거부하는 악마의 교만입니다. 그리고 신(神)처럼 되고자 했던 아담과 이브의 교만은 “너희의 눈이 열리고, 너희가 천주와 같이 되어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창세기, 3:5),


이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무엇이 선(善)하고 무엇이 악(惡)한지를 스스로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즉 상위(上位)의 법을 거부하는 것이고, 그들의 위에 있는 천주의 지배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만의 엄중함을 이해해야 합니다. 미소(微小)한 피조물이 천주님께 거역하는 반란인 것입니다. 모든 죄의 뿌리에는 교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교만은 모든 죄의 시작이라. 죄 안에 있으면 저주로 채워질 것이며 결국 저를 멸망시키리라.” (Eccli. 10:16).

그러므로 천주성자(天主聖子)께서는 사람들을 구원(救援)하시려고, 사람을 치료(治療)하시려고 죄로 인하여 훼손된 질서를 회복하기 위하여 오신 것인데 그 분은 겸손(謙遜)을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시작부터 지극히 탁월(卓越)한 방법으로 이 겸손을 행하셨습니다. 천주성자의 “하늘에서 내려오신” 성육신(成肉身)이야 말로 겸손의 행위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하늘로 올라간 이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하늘에 계신 사람의 아들로서 천국에서 내려왔습니다“(요한 3:13)

그 분 생애의 절정은 겸손을 가장 위대한 모습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당신을 낮추사 십자가 상에서 죽기까지 순명하셨고..” (필립피, 2:8)  그 분이 회복하고자 했던 성부께 대한 사랑의 모습, 그 분이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행하셨던 사랑의 모습은 본질적(本質的)으로 겸손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몸과 피를 희생으로서 제헌(祭獻)하는 것은 우리가 천주의 탁월하심을 경하(敬賀)하는 신덕(信德)행위 모습인 것이었습니다. 천주로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희생을 바치시고, 인간으로서 예수그리스도는 지극히 높으신 천주성삼(天主聖三)의 영광께 드리는 희생제물(犧牲祭物)로서 그 자신을 제헌하신 것입니다.

우리 구원을 위한 숭고(崇高)한 사업으로부터 유익함을 얻기 위하여, 그 분의 희생(犧牲)의 행위 안에서, 우리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와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분처럼 우리들은 겸손해져야 합니다. 그 분처럼 우리 자신을 낮춰야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렇게 하긴 너무 힘듭니다. 나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본성만으로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총으로 말미암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그리스도와의 일치는 기쁨이 됩니다,


그리고 성인들에게 이런 기쁨은 십자가 없는 삶보다는 오히려 죽음을 택할 것이라는 점을 말해줍니다 (아벨라의 성녀 테레사). 이 기쁨은 십자가가 모든 은총의 근원이요, 특히 자비의 근원이라는 사실에서 나옵니다. 나무 없이는 불을 피울 수 없습니다. 사랑의 불이란 십자가의 나무로 피어 오르는 불인 것입니다.


일단 우리가 숨겨진 이 보물을 찾는다면 우리는 이 보물을 갖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팔아야 할 것입니다. (마테오. 13:44) 여러분은 어떻게 내가 그 보물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구하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얻을 것이요, 두드리라, 너희에게 열어 주리니, 무릇 구하는 자 받고, 찾는 자 얻고, 두드리는 자에게 열어 줌이니라.” (마테오. 7:7-8)

십자가의 가장 큰 기쁨의 열매는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입니다. 이 성체는 십자가 상에서 드렸던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몸과 피입니다. 거룩한 성체 안에서 우리 자신이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체는 십자가의 지극한 기쁨의 열매인 동시에, 우리가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힘을 가져다 주고 우리주변에 있는 천주님의 불길을 퍼트리게 해 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누 만일 나를 따르고 자 한다면, 자기를 끊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지니..”(루까. 9:2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한 것에 대해 그 베드로에게 수위권(首位權)을 약속하신 후 이렇게 종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예수 마땅히 예루살렘에 가서 두민(頭民)들과 학자들과 제관장(製管場)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아 죽고 제 삼 일에 부활할 줄을 비로소 제자들에게 가르쳐 보이시니, 베드로 조용히 예수를 이끌고 나가 비로소 간하여 이르되, 주여 마옵소서. 당신께서 이런 일이 당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 돌이키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네가 천주의 뜻을 맛들이지 아니하고 오직 사람의 뜻을 맛들이니, 너 나를 조당(나아가는 것이나 다가오는 것을 막는 것)하는도다.” (마테오. 16:21-23) 이러한 주님의 십자가를 거부하는 것은 세속의 정신입니다. 십자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정신입니다. 모든 성인들은 십자가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의 약함을 아시는 주께서는, 당신의 모친을 우리에게 주셨고, 그 모친께서는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십자가 아래로 인도하십니다. 심지어 가장 강한 종도들이 도망친 것을 보았을 때 오직 몇몇의 거룩한 여인들과 성 요한이 있었던 곳은 바로 십자가의 아래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들이 성모님을 따랐기 떄문인 것입니다.

특히 우리 삶에서 십자가는 우리 과거의 죄를 깨끗하게 해줍니다. 기꺼이 받아들인 십자가는 과거의 죄와 많은 이들의 죄에 대한 배상을 이루어냅니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권리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이들에게 진 빚(debt)만 아니라, 특히 천주를 향한 자신의 빚(debt)을 잊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주님의 제자는 천주께 진 빚을 어떻게 되갚을까 생각하고, 희생, 개인적인 희생, 그리고 지극히 거룩한 희생 미사를 통해 배상하기를 원합니다.

둘째로, 십자가는 우리 죄의 상처를 치유합니다. 십자가는 교만의 죄와는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겸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불순명에 반대하여 순명을 가르칩니다. 십자가는 욕정과는 상반되고 쾌락과는 완전한 분리를 가르칩니다. 가능한 한 모든 멸시와 고통을 끌어안으려고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증으로 인한 고통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많이 마시게 되는 술 취함과도 반대됩니다.

마지막으로, 십자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빛(light)을 가지고 오심으로써 우리의 어둠(darkness)을 치유(治癒)하십니다. 십자가는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빛을 발산(發散)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놓은 촛대입니다.

실제로 우리 자신은 보속(補贖)의 몇 가지 실천 행위를 받아드려야 하며, 우리 주 예수께서 부과하신 것, 특히 금요일 날 금육(禁肉)하는 보속을 행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십자가의 길로 가는 황금의 길, 천국의 왕국으로 가는 길을 걷게 됩니다. 이곳에서 십자가는 영광스러운 승리가 될 것이며, 십자가의 친구와 함께 영원히 통치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성비오10세회 아시아 관구 소속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