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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 교회는 부활절을 그 해의 가장 큰 첨례로 기념하는가?- 부활 대축일(2021.4.4)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4-18






왜,교회가 부활절을 그 해의 가장 큰 첨례로 기념하는가(2021.4.4)


서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대첨례인 부활절은 한 해 중 가장 중요합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은 우리가 십자가의 희생으로 속죄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활보다 성 금요일을 더 크게 기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 바오로는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덧없고 여러분 자신은 아직도 여러분이 지은 죄 안에 있을 것입니다.”(1 코린 15:14-17)  우리는 교회가 왜 한 해 중 부활을 가장 크게 기념하는지 알아봅시다.


그리스도교 신앙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창조하시고 그분의 신적 생명을 나누어 주시려고 부르시는 천주를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신적 생명에 다다를 수 있도록 천주께서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구세주로 세상의 죄를 없애시기 위해 오신 분임을 믿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라는 예수님 말씀의 의미는 “나는 네 영혼을 죄에서 자유롭게 하고 생명의 은총을 주어 새롭게 하겠다.”는 뜻입니다.


언제 예수님께서 세상의 죄를 걷어내시고 우리 영혼을 새롭게 하셨습니까? 그분께서 수천 군중에게 설교하시고 군중들이 그분을 왕으로 만들려 했을 때였습니까?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셨을 때였습니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동산의 고뇌로 시작하여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당신 수난으로 우리를 구하셨습니다. 인류의 위대한 구세주 예수께서는 게쎄마니에서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가장 비참한 사람처럼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에 대한 완전한 보상을 바치셨고, 악마의 권세를 무찌르셨으며, 가장 큰 영광을 천주께 드리셨으며 우리 생명의 근원과 영적 힘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그 어둡고 수치스러운 수난의 시간들이 구속의 영광스러운 시간들이 되었음을 믿습니다. 이는 바로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1코린 1:23)인 우리 가톨릭 신앙입니다.


성 금요일에 오직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만 이와 같은 신앙을 지니셨습니다. 오직 그녀만이 그 모든 고통중에서도 위대하시고 흔들리지 않으셨으며 구원사업이 그분 아드님의 십자가 죽음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믿으셨습니다. 구원받기 위해서 우리 또한 십자가의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든 죄를 속죄하셨음을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십자가의 예수께서 악마와 죄악 위에 세워진 그 권세를 무너뜨리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천주께서는 예수 승리의 강력한 표지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표지는 바로 돌아가신지 3일 후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육신의 죽음은 죄에 대한 벌의 결과이다


질문해봅시다. 왜 천주께서는 죄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의 표지로 부활을 선택하셨을까요? 그것은 죄와 죽음의 연관성 때문입니다. 성 바오로는 죄를 “죽음의 독침”(1코린 15:54)이라 불렀습니다. 성 바오로는 로마서에서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로마 5:12)라고 말합니다. 육신의 죽음은 죄의 벌이며 결과입니다. 천주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 천주께서는 그들과 그들의 자녀들에게 불멸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천주로부터 독립적으로 자신을 통제하고픈 욕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천주 계명을 어겼습니다. 아담은 금지된 열매를 먹었습니다. 그는 즉시 영적 죽음을 겪었습니다. 즉 죄의 쓰라림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는 천주님과의 친교를 잃었습니다. 그는 생명의 원천이신 천주님과 갈라졌습니다. 그는 그의 후손들과 함께 지옥으로 단죄되었습니다. 영의 죽음에 뒤따른 것은 예정된 육신의 죽음이었습니다.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 3:19) 육신의 죽음은 죄로 인한 영적 죽음의 표지가 되었습니다. 육신의 죽음은 죄에 대한 벌이자 결과였습니다.


육신의 부활은 죄사함의 표지다


구속은 인류의 죄에 대한 속죄와 보상을 의미합니다. 만일 육신의 죽음이 영적 죽음의 표지였다면 영적 부활을 보여주는 가장 적절한 표지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육신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몸의 부활은 그의 희생이 인류의 모든 죄를 보상하셨다는 표지입니다. 성 바오로는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덧없고 여러분 자신은 아직도 여러분이 지은 죄 안에 있을 것입니다.”(1코린 15:17) 다시 말해서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 죄를 갚았다는 보증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보증은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육신의 죽음은 죄의 벌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 벌이 해제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을 것이지만 우리 육신의 죽음은 순간일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끝 날에 육신이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성 바오로는 코린토인들에게 말했습니다.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하여 왔으므로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온 것입니다.”(1코린 15:21) 또한 주님께서는 친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 것이다.”(요한 11:25) 라고 말씀하셨으며, 또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요한 6:39)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결론
십자가의 희생으로 죄를 이긴 그리스도의 승리는 부활로 육신의 죽음을 이기신 승리보다 더 큽니다. 하지만 죄에 대한 승리는 온전히 영적, 비가시적, 신비적이었습니다. 그 승리는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가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의 희생인 성 금요일보다 커다란 장엄함으로 부활을 축하하는 이유입니다.
이제, 부활의 특별한 은총은 무엇일까요? 예수님 부활의 공로로 우리에게 어떤 은총을 주시고자 하시려는 걸까요? 종도(사도)들을 생각해봅시다. 주님의 수난 이후 부활 전까지 얼마나 두렵고 비통했을지 생각해봅시다. 그러나 예수님 부활의 순간부터 그들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순교를 할 때까지 정열적이고 쉼없이 세상 곳곳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부활의 기쁨, 그리스도 승리의 보증이 그들을 어떤 고통도 견디게 하고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으로 무슨 일이든 감당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부활절의 은총입니다.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예수께서 더 이상 죽지 않으시며 예수님께서 그분의 적들에 의하여 패배하신 것처럼 보이던 그 때 그들을 이기셨음을 아는 것입니다. 이 앎은 언제나 우리를 평화와 영적 기쁨으로 가득 채울 것입니다. “천주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로마 8:31)


복되신 어머니께서 우리 지상 생활의 끝까지 우리 마음을 평화와 기쁨으로 채워주시기를 바랍니다.


드모르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