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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담과 하와의 자손에 관하여- 육순절(2021.2.7)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07





아담과 하와의 자손에 관하여



서론


지난 주일 교회는 사순시기에 대한 준비로 칠순주간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주 미사와 성무일도의 독서를 통하여 교회는 아담과 하와의 창조, 원죄와 낙원의 상실 그리고 원죄 이후 천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거룩함과 영원한 구원에로 부르시는지 말했습니다. 비록 원죄 이전보다 더 어렵기는 해도 우리에게는 천국에 이를 수 있는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지난 주일 성 바오로는 우리 지상 삶을 올림픽 경주와 비교했습니다. 상을 받는 일은 오직 지상 삶 동안 영적 노력과 희생을 해야만 가능합니다.


최근의 성무일도 독서에서 교회는 아담과 하와의 자손들의 이야기를 읽게 합니다. 우리는 사순시기에 좋은 결심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는 이 성경 본문으로부터 영적 교훈을 받읍시다.



1. 두 진영


아담과 하와는 낙원에서 쫓겨난 이후 첫 아이들을 가졌습니다. 카인과 아벨입니다. 카인은 농부였고 아벨은 목자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천주께 희생제를 바치곤 했습니다. 카인은 농장의 수확을, 아벨은 양들 가운데 하나를 바쳤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주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꺼이 굽어보셨으나, 카인과 그의 제물은 굽어보지 않으셨다.”(창세 4:4) 우리가 천주께 희생을 바칠 때, 그분께서는 먼저 우리 마음속의 지향을 보십니다. 아벨의 지향이 훌륭했다면 카인은 아니었습니다. 카인은 동생을 질투한 나머지 아벨을 죽이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이것이 최초의 살인이었습니다. 카인은 자녀들을 낳았고, 성경에 보면 그들은 카인의 악함을 따랐습니다. 살인, 일부다처, 교만, 분노와 복수, 오직 지상 사물만을 추구함 등입니다. 성경은 천주를 떠나 살았던 그들을  “사람의 딸들”(창세 6:2)이라 일컫고 있습니다.


또 다른 쪽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말하길 하와가 “아들을 낳고는, ‘카인이 아벨을 죽여 버려, 천주께서 그 대신 다른 자식 하나를 나에게 세워 주셨구나.’ 하면서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다.’”(창세 4:25-26)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셋의 자녀들이 천주의 법을 따라 살려고 했는지 봅니다. 그들 중 하나인 에녹은 매우 거룩했고 천주께서는 그를 이 세상에서 뽑으시어 세상 끝날까지 지상 사명을 위해 어느 곳에 보호하셨습니다.  천주의 법을 따라 살려고 했던이들을 성경에서는 “천주의 아들들”이라 부릅니다.


이 본문에서 우리는 어떤 영적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첫 번째입니다. 카인과 셋의 상반성은 인류가 둘로 나뉘어진 형상입니다. 창조주이시며 다스리시는 주님이신 천주를 거부하는 자들과 천주께 기꺼이 스스로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두 사람들 사이의 상반성은 대홍수 이전에나 지금에나 같습니다. 인류는 완전히 반대되는 두 진영으로 나뉘었습니다. 천주의 계명을 지키는 진영과 그분을 떠나 마치 독립한 척 하며 살아가는 진영입니다. 우리는 동시에 두 진영 모두에 속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나와 함께하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마태 12:30) 따라서 우리가 천주의 아들들이 되고자 한다면, 인간의 자식들이 우리를 거스르고 마귀와 세속이 가톨릭 신앙과 도덕을 상실시키려고 애쓰는 것에 놀라지 맙시다. 세상과 역사를 아울러 신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톨릭을 탄압하고 있음에 놀라지 맙시다.


두 번째로, 사람의 자녀들과 천주의 아들들 사이의 상반성은 우리가 원죄 이후로 스스로 짊어지고 있는 내적 갈등의 형상입니다. 진실로, 우리 안에는 두 진영이 있습니다. 바오로 성인이 “육”이라 말한 뜻은 우리 모든 무질서한 경향들과 욕정들이 우리를 죄로 내몰고 있음을 의미하며, “영”이라 말한 뜻은 천주 계명을 따라 살고자 하는 우리 선한 의지를 말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서간경에서 어떻게 위대한 바오로 성인조차 내적 갈등에 매여 있었는지 들었습니다. “영”과 “육”은 타협 불가능합니다. 한 쪽이 다른 쪽에 복속되어야만 합니다. 육이 지배하면 결국 우리는 지옥에 가게 될 것이며, 천주의 도우심으로 영이 지배하면 우리는 천국에 가게 될 것입니다.


이는 첫째 교훈입니다. 우리의 내면에서, 그리고 외면에서 영적 전투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필연적으로 두 가지 모두에 좋든 싫든 연루되어 있습니다. 중립지대는 없습니다.



2. 우리의 절대적 내면의 약함
 

이어서 성경은 말합니다. “땅 위에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그들에게서 딸들이 태어났다. 천주의 아들들은 사람의 딸들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여자들을 골라 모두 아내로 삼았다.”(창세 6:2-3) 그리고 천주의 아들들은 결혼을 통한 사람의 딸들과의 가까운 관계로 인해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만큼 말입니다. “세상은 천주님 앞에 타락해 있었다.”(창세 6:11)


여기에 알아야 할 두 번째 실상이 있습니다. 우리는 원죄로 인하여 나약해져 악한 이들과 어울릴 때 결국 타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유사하게도 우리가 짊어지는 영과 육의 내적 싸움에 대해서도, 만일 우리 영이 육과의 싸움을 멈추고 평화롭게 공존하고자 한다면 우리의 육은 마침내는 영을 지배하게 됩니다. 이는 기억해야 할 요점입니다. 자신의 탓으로 우리는 크게 약합니다. 그리고 매일의 죄들은 우리 내면의 약함을 영원히 상기시켜 줄 뿐입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이 우리가 유혹에 저항할 수 없고 죄에 필연적으로 빠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합니까? 아닙니다. 스스로 사람의 자녀들과 어울린 천주의 아들들의 타락에 관한 언급 이후 성경은 모든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만이 의로웠다고 말합니다. “노아는 당대에 의롭고 흠 없는 사람이었다. 노아는 천주와 함께 살아갔다.”(창세 6:9) “노아는 주님 앞에 은총을 받았다.” 성신의 이 말씀은 마치 천주께서 지상의 모든 사람들을 주의 깊게 보신 후 갑자기 기쁘게도 노아가 주님의 계명을 지켰던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천주께서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그릇된 욕망에 따르며 점점 더 큰 죄로 빠지는 것을 내버려두시는 중에 그분의 은총으로 노아를 둘러싼 악의 영향으로부터, 그의 욕정의 악한 충동으로부터 보호하신 것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매우 악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가운데 노아는 “의롭고 완전한 사람… 천주와 함께 걸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마귀로부터 오는 악의 영향, 우리를 둘러싼 악한 사람들과 우리 자신의 욕정에 대한 승리는 다만 오직 천주님의 특별한 보호와 은총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3. 기도와 보속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천주의 보호와 은총을 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마태 26:41) 또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루카 13:3) 기도는 우리가 천주를 사랑하고 천주께 감사드리며 그분의 용서와 도움을 구하는 즉 그분과의 대화입니다. 그리고 보속은 우리 죄를 위하여 천주께 드리는 보상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는 우리가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천주께서 요구하시는 주요한 태도입니다.


여러분은 아마 종종 스스로 물으실 것입니다. 내가 죽고 나서 천국에 갈까? 지옥에 갈까? 실제로 여러분은 스스로 이 질문들에 답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매일 신앙과 천주를 기쁘시게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기도합니까?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십니까? 만일 “아니요”나 “그다지”이라고 말씀하신다면, 답은 명확합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시건 여러분은 지옥으로 가는 길에 있습니다. 알퐁소 리구오리 성인은 말씀하시길 “기도하는 사람은 구원받을 것이고 기도하지 않는 자는 단죄받을 것이다.” 여러분은 지은 죄에 대한 보속을 정기적으로 드리십니까? 여러분은 몇몇 음식을 포기하거나 금식 또는 교회와 어려운 이들을 위한 선행, 주중에 미사에 참례하는 등의 희생을 바치십니까? 정기적으로 고해성사 하십니까? 여러분은 인내하며 불평하지 않고 인생의 고난을 받아들이며 그것들을 여러분의 죄에 대한 보속으로 천주께 바치십니까? 만약 “아니요”라고 답하신다면, “내가 죽어서 지옥에 갈까?”에 대한 답은 “예”입니다. 보속을 하지 않는 경우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몇몇 이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주 타락했기 때문에 유혹에 저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쁜 핑계입니다…노아 때는 너무나도 타락하여 천주께서는 모두를 쓸어버리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하지만 노아는 그 타락한 사회에서 “의롭고 완전한 사람” 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스스로 너무나도 나약함을 느낀다. 나는 정욕의 그릇된 욕구에 저항할 수 없다.’ 역시 나쁜 핑계입니다… 천주께서 당신을 붙드시고 무질서한 정욕의 욕구들을 거슬러 노아처럼 당신을 보호해주시지 못하십니까? 노아도 여러분처럼 원죄를 지닌 인간이었지만 천주 성총으로 거룩하게 살았고 “의롭고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결론


교회는 사순을 준비시킵니다. 사순은 특별히 기도와 보속을 위한 시기입니다. 교회는 영적 싸움의 실상을 상기시킵니다. 마귀와 세속과 육신을 거스르는 싸움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보속한다면 천주께서는 그분의 은총으로 우리를 붙드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 은총으로 인하여 우리는 오늘 서간경에서 성 바오로에게  말씀하셨듯이 최후 승리를 거둘 것입니다.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2코린 12:9)


만일 여러분의 영적 전투가 너무도 힘들다면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보십시오. 여러분을 위하여, 영원한 구원을 위하여 성모님께서는 당신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바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수난 내내 따라갔으며 십자가 아래 세 시간을 서 계셨습니다. 그것이 성모님께 쉬운 일이었을까요? 분명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먼저 천주께 대한 사랑으로, 또 여러분에 대한 사랑으로 하셨습니다. 낙담의 시기에는 그러므로 성모님을 보고 그분과 이야기하고 여러분 자신을 의탁하십시오. 그러면 성모님께서는 필요한 힘을 주시고 영원한 복락에로 이끄실 것입니다. 아멘.


드모르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