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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어거스틴의 생애와 망덕/On St. Augustine(2014-08-29)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10-22

 

 


성 어거스틴의 생애와 망덕(2014-08-29)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어제 우리는 주교이자, 고해신부이며 교회박사이신 성 어거스틴의 축일을 지냈습니다. 그 분의 가르침은 전 중세시대를 비추었으며 오늘날에도 가톨릭 교리에 많은 빛을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시겠지만, 그 분은 이교도인 아버지와 거룩한 가톨릭신자인 어머니 모니카 사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어린 시절에 성세를 받지 아니하였고 후일 마니교라는 이단에 빠졌습니다. 진리를 추구했지만 그는 교만 속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고자 했으며 신앙이란 그가 이해하지 못한 것을 보여준다는 계시 앞에 겸손히 머리를 숙이지 않았습니다.


 마니교도들은 어거스틴을 모두 이해해줄 것이라고 충동질하면서 그를 속였기에 그는 저들의 포로가 된 것 입니다. 그러나 몇 년 후 저들은 자신들의 약속을 충족시킬 능력이 못되었고 저들이 갖고 있는 생각의 오류들이 어거스틴에겐 갈수록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그 분은 “진리란 그 누구도 얻을 수 없구나” 하는 회의론 같은 것에 빠지게 되었고 그리하여 그와 동시에 그의 도덕성은 추락하게 되었는데, 여자와 동거하게 되어 그 분의 생활은 더욱 혐오스런 생활이 되었습니다.

삶에서 선한 것을 추구했던 자세는 그를 밀라노의 황제 법정으로 이끌게 되었는데–여기서 천주님의 섭리는 그 분을 그 당시 밀라노 주교였던 성 암브로시오 주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끔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와 성 암브로시오의 강론을 통하여 신앙에 문을 열게 되었고 어느 날 천주님의 자비는 그의 온몸을 휩싸이게 하여 그를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그날 이후, 이 성인은 온 겸손과 온 정성을 다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려 노력하였습니다. 더 이상 이 성인은 결혼하고자 하지 않았으며 청빈에 따라 완벽한 삶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387년4월24일 부활절 전야에 성 암브로시오로 부터 성세를 받았으며 그 후 아프리카로 돌아가 튜가스트 원주민 마을로 갔는데 이곳은 튜니지와 카르타고에서 멀지 않은 곳입니다. 그 곳에서 수도원을 세웠고391년 사제가 되어395년에는 주교가 되었습니다.

그 분은 먼저 마니교에 대항하였고 그리고 나서 도나두스파(역자주: 세례나 안수 등을 부정)와 최종적으로는 펄라지안파(역자주:원죄를 부정하고 자유의지를 믿음)와 대적하여 가톨릭신앙을 지켰습니다. 그 분은 성서, 특히 성영(시편)과 요왕복음에 대해 주해서를 많이 썼습니다. 철학 및 더 많은 부분을 신학에 대한 글을 썼고 특히 성 삼위에 관한 개념이론으로 유명합니다. “고백론”을 써서 그의 회두에 대한 천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진술로써 이 아름다운 작품을 시작합니다. “오 주님이시어, 천주 당신께옵서는 당신을 위해 우리를 조성하셨으며, 우리의 심성은 당신 품 안에 있기 전까지는 불안하였나이다”  (“Fecistinos ad te et inquietumestcor nostrum, donecrequiescat in te.” Confessions, 1.1.)


자,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진리이니, 이 진리를 제가 설명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천주로 인하여 조성되었으며 천주께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우리는 천주님 안에서, 없는 것이 도무지 없는 완벽한 곳 에서 우리의 행복을 찾게끔 조성되어 있습니다. 천주님은 우리의 궁극적인 끝이자, 우리 삶의 최종목적입니다. 이주 전, 성모몽소승천축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모님의 생애의 궁극적인 목적, 영원히 천주님과 함께 하는 지극히 숭고한 행복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성모님의 육신은 영혼의 행복을 나누기 위해 천국으로 들어올리어졌습니다. 교회가 시작될 당시에 그리스도께서 성모님을 위해 무엇을 하셨나요? 주님은 세상 끝 날에 모든 성인들을 위해 하실 것 인즉 이것이 바로 우리의 희망인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만든 것이 아니며, 심지어 부모가 우리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부모들은 그 분들이 전달받은 것을 우리에게 전달하신 전달자입니다. 부모들이 우리의 두 눈, 두 귀 등 이런 것을 갖게 끔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 분들이 우리의 몸을 설계한 것이 아니며 영혼을 설계한 것은 더 더욱 아닙니다. 부모들은 우리에게 생명을 전달한 단순한 전달자이지 우리 생명의 저작자는 우리 천주님이십니다! 그 분은 위대한 설계자, 모든 사물, 특히 우리 생명에 명령을 내리는 최고의 지적 존재자, 모든 사물, 즉 보이는 사물(우리의 몸)과 보이지 않는 사물(우리의 영혼)의 창조자이십니다.  

 

어느 한 사람이 물건을 만들 때. 눈에 보이는 물건이 있다면, 그가 조성한 물건의 목적이 있기 마련입니다. 기술자는 보기에 좋고 안전한 자동차를 만듭니다. 건축가는 전망이 뛰어나고 실용적이면서 안락한 집을 짓는 사람이듯이 천주께서 우리를 만드실 적에, 그 분은 놀랄 만한 목적, 자연적인 수준 뿐만 아니라 그 분 자신의 소유한 축복 속에 참여하는 초자연적인 멋진 목적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천주님은 우리가 천국에서 그 분과 함께 영원히 함께 하시길 원하십니다.


“좋다, 착하고 충직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직한 고로 나 네게 많은 일을 맡기리니, 네 주의 즐거움에 들어오라.“(마테오25:21) 이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끝)이요, 끊임없이 생각해보고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지상의 즐거움을 위해 조성된 것이 아니라 천국을 누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그와 같은 진리를 아름답게 표현하였습니다. “천주 당신께옵서는 당신을 위해 우리를 조성하셨으며, 우리의 심성은 당신 품 안에 있기 전까지는 불안하였나이다”

“천주 당신께옵서는 당신을 위해 우리를 조성하셨으며, 우리의 심성은 당신 품 안에 있기 전까지는 불안하였나이다”라고 분명히 했기에 천주님 안에서 찾기보다 다른 곳에서 찾는다면 진정한 행복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세속적인 것에서 행복을 추구하며 찾질 못하고 자살까지 합니다. 이는 특히 젊은이나 혹은 노인들에게 해당됩니다. 이들 둘 다 같은 각본 “저들에겐 희망이 없도다”(데살로니카 전 4:13)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저들은 오직 세속적인 목적을 갖고 있으니, 돈, 쾌락, 권력인 것입니다. 저들이 이러한 것을 더 이상 얻지 못할 때, 특히 노인들이 질병, 특히 치료하기 어려운 불치의 병이 왔을 때 자살을 합니다.  

 

고통은 그것으로도 안 좋은 것이나, 절망은 이를 더 악화시킵니다. 자살은 최종의 죄악으로 천주 없이 삶의 종지부를 찍으니, 고의로 자살하는 모든 이들은 범죄자로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저들이 자살하기 전에 이미 범죄자인 것이며, 혹은 저들이 무죄한자라면 무죄한 저들 자신을 죽임으로써 범죄자가 되는 것입니다. 고통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저들 자신을 영원한 고통으로 던지는 행위입니다!


자살은 지극히 나쁜 것이니, 저들 자신을 죽임으로써 회개할 시간과, 타인을 못하게끔 만류하는 것과, 교회가 매장하는 관습을 부인함으로써 자살행위를 처벌하였던 것마저도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자살유혹에 빠진 모든 이들을 위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기도하여 천주님의 은총에 감동받아 저들이 이러한 끔찍한 범죄를 피해야만 합니다. 저들은 희망이 필요하며 천주님이 우리 모두 각각에게 놀랄만한 목적을 갖고 있다는 것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에 반응하고 신앙을 소중히 여기며 죄에 대해 회개를 해야 합니다.

자살은 매우 나쁜 것이기에, 안락사에 의한 자살을 돕는 행위는 또한 지극히 나쁜 것입니다. 이는 노인들에게 더 많은 압력을 가하고 불치환자들에게 자살을 하게끔 함으로써 훨씬 더 사악한 것입니다. 불치환자들은 흔히 가족과 친구들에게 짐이 될 수 있으니, 나이 든 부모나 친척을 돌보는 행위는 어려운 일이며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만약 안락사가 법으로 허용이 된다면, 그 환자들이 자살하게끔 압력이 가해지기 마련이며 영원히 저들의 영혼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람들은 세속법이 허용하는 것을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너무나 많은 이들이 점점 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범죄로 삶을 마감하며 많은 이들이 이러한 자살을 실행합니다. 자살은 현대생활에서 매우 위협 주는 악입니다. 저들은 먼저 생명을 파괴하는 끔찍한 범죄인 낙태를 받아드립니다. 종국에는 생명을 파괴하는 끔찍한 안락사를 받아드리고 있습니다. 이 모습이 진정한 사망의 문화입니다. 진실로”죄의 삯은 사망이라.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천주의 성총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노라”(로마 6:23)

그리스도인의 희망, 가톨릭인의 희망은 세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천국에 있는 것이라는 점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일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희망이 다만 현세생활에만 그친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들 중에 가장 불쌍한 자일 것이니라.“(코린토 전 15:19) 그러나 우리의 희망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이며, 숭고한 행복에 대한 희망이며, 천주님을 직접 뵐 수 있는 지복직관에 대한 희망입니다. “성부 우리에게 어떠한 사랑을 주셨는지를 너희는 볼지니, 우리는 천주의 자식이라 일컬음을 받고 또한 사실로 그렇게 되었느니라.  

 

이로 말미암아 세속은 우리를 모르리니, 대저 그는 천주를 모르는 연고니라. 친애하는 자들아 우리는 이제 천주의 자식이로다. 우리가 장차 무엇이 될 것인지는 아직 명백하지 않으니라. 그러나 이것이 명백하여 질 때에는 우리는 천주와 비슷하여질 것을 아노니, 대저 사실대로의 저를 뵈올 것이라. 무릇 이러한 희망을 저에게 대하여 가지고 있는 자는 저 거룩하심과 같이 자기 또한 거룩하게 함이라.“(요한 1서 3:1-3)

오늘날 - 특히 현재의 교황 이후 - 일부 가톨릭인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의 목적이 “사회복지”이다 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성 교회가 과거에도 행하였고 현재도 행하는 육신을 돕는 사회적 자선행위가 탁월하고 훌륭한 행위임에도 교회의 주된 임무는 그것이 아니라 영혼을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저들로 하여금 “천주님의 자녀와 천국의 상속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성인이 말씀하시듯이 “성신이 친히 우리가 천주의 의자임을 우리 정신과 한가지로 증언하시는도다. 의자(義子)라면 또한 상속자라. 곧 천주의 상속자요, 또한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니라. 다만 우리는 저와 함께 고난을 당할지니, 이에 우리는 저와 더불어 또한 영화롭게 되리라.“(로마8:16-17) 이 같은 희망은 생명 뿐만 아니라 고통 그 자체에도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망덕(望德)은 위대한 덕행입니다. 세 가지 ‘신학적 덕행’ 인 신덕, 망덕, 애덕 중의 한 가지입니다. 이 세가지 덕행은 목표로서 천주님을 소유하는 바, 천주님을 믿고, 천주님에게 소망을 두고 천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신앙으로써 천주님, 지극히 거룩하신 천주 성삼위와 우리를 구령하고 자 하는 천주님의 일을 아는 것이요, 천주께 희망을 둔다는 것은 천주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며, 우리가 천주를 사랑하는 목적은 천주님이 지극히 놀라운 친교를 가진 분이시니, 이 세 가지 덕행의 동기가 천주님 그 자신인 즉, 천주님을 믿고 천주 말씀에 의지하며, 천주님과 천주님의 흔적(기적과 예언)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천주께 희망을 두고 천주님의 도움에 의지합니다. 우리 자신만의 힘으로 어떻게 영원한 축복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영원한 축복이 있는 곳, 천주님을 면전에 뵐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총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천주님의 그 자체 무한하신 선으로 인하여 우리가 천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가르치시길, 망덕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으니 천주께 대한 무한한 소망이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총을 통하여 천주님께서 우리가 그곳, 즉 천국, 영원한 축복에 도달하는데 도움을 주시리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 망덕은 현 시대에 너무나 흔한 절망에 대한 치료책입니다. 고통 속에서 커다란 용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희망은 물질계 위에 우리를 올려놓습니다. 세상의 물건을 업신여기게 끔 만들며 영원한 선을 갈망하게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목적이 단지 사회봉사활동이라는 그러한 생각을 뒤집게 하는 치료책입니다.

이주 전 우리가 기념했던 승천하신 성모께, 우리들이 천국을 진실로 갈망하게끔, 그리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총을 통하여 그곳에 도달하게끔,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모친으로서의 우리를 위해 중재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성비오10세회 아시아 관구 소속 사제) 


 On St. Augustine(2014-08-29)


Yesterday, we had the feast of St. Augustine, Bishop, confessor and doctor of the Church. His teaching enlightened the whole middle Ages, and still today gives much light to the Catholic Doctrine. 


As you may know, he was born of a pagan father and a holy Catholic mother, St Monica. He was not baptised as a child, and later fell into the Manichean heresy. He searched for the truth, but in his pride he wanted to understand everything, and was not ready to bow in humility before the Revelation, giving Faith to something he did not understand. The Manicheans deceived him by promising to give him understanding, so he was caught by them. But after a few years, they were incapable to fulfil their promise, and the errors of their thinking were more and more evident to him. He then fell in some kind of scepticism, thinking that no one could ever attain the truth. His own moral life at the time had fallen low; he was living in concubinage, and was very much disgusted by his state.

 

His search for a good position in life led him to the emperor’s court in Milan – and Divine Providence used this to bring him to listen to the Bishop of Milan at that time, who was St Ambrose. Through the prayers of his mother and the preaching of St Ambrose, he was opening to the faith, and one day the Mercy of God overwhelmed him and changed him completely. From that day on, he strove to serve our Lord Jesus Christ with all the generosity of his heart; he no longer wanted to marry, but chose a life of perfection according to the evangelical counsels of poverty, chastity and obedience. He was baptised by St Ambrose on the Easter vigil, 24th April 387. He then returned to Africa and to his native village of Tagaste, not too far from Tunis and Carthage. He founded a monastery there, and became a priest in 391 and a bishop in 395. 


He defended the Catholic faith first against the Manicheans, then against the Donatists and finally against the Pelagians. He commented many passages of the Scriptures, especially the Psalms and St John’s Gospel. He wrote on philosophy and even more on theology; he is famous for his treaty on the most Holy Trinity. He wrote his “Confessions” to give glory to God for his conversion. He started this beautiful work by this beautiful statement: “Thou hast made us for Thee, o Lord, and our heart is restless until it can rest in Thee!”


Now this is a very important truth, which I would like to explain. We are created by God, and we ought to return to God: we are made to find our happiness in God, and in nothing less! God is our ultimate END, the ultimate goal of our life. We had a couple weeks ago the feast of the Assumption of our Lady: then we contemplated the ultimate goal of her life: this supreme happiness to be with God forever! Then the body of our Lady was lifted up into Heaven to share the happiness of the soul. What Christ did for her at the beginning of the life of the Church, He will do for all his Saints at the end of the world. This is our hope!


We did not make ourselves; not even our parents made us: they transmitted to us a life which they themselves had received; they did not decide that we would have two eyes, two ears, etc.; they did not design our body and much less our soul. They simply were the instruments through whom life was transmitted to us. But the Author of life is God! He is the great designer, the Supreme Intelligence who ordered all things and especially our life, the Creator of all things visible (such as our body) and invisible (such as our soul). Now when someone makes something, he has something in view, a purpose for which he made such thing. An engineer who makes a car has in view good and safe driving; an architect who makes a house has in view a practical and pleasant residence in that house, etc. And so God had a purpose when He made us, a marvellous purpose, a purpose which is not merely at our natural level but a supernatural purpose: participation in His own beatitude. He wanted us to be blessed for ever with Him in Heaven: “Well done, good and faithful servant, because thou hast been faithful over a few things, I will place thee over many things: enter thou into the joy of thy lord”!  This is our ultimate end, and we need to keep it constantly in view: we are not made for earthly joys, but for a heavenly joy. As said before, St Augustine beautifully exposes that truth: “Thou hast made us for Thee, o Lord, and our heart is restless until it can rest in Thee!”


Anyone who searches for happiness elsewhere than in God will not find it, precisely because “Thou hast made us for Thee, o Lord, and our heart is restless until it can rest in Thee!” Many people today search for happiness in earthly things, and not finding it, commit suicide. This is particularly true either of young people, or of elderly people. Both share the same drama: “they have no hope!” (1 Thess. 4:13) The goal of their life is only on earth: money, pleasures, power. When they see themselves no longer able to get it, especially when old age with its sufferings comes, especially in terminal illness, then they commit suicide. Suffering is bad enough; despair makes it worse! And suicide crowns a life without God by a final crime. All those who deliberately commit suicide die as criminals: either they were already criminals before they committed it, or if they were innocent they became criminal by killing an innocent (themselves)! Far from avoiding suffering, they throw themselves into everlasting torment! So it is really bad, and by killing themselves they destroy the time needed to repent; to deter people from this great sin, the Church punished it by denying ecclesiastical burial. We must pray to our Lord Jesus Christ for all those who are tempted with such suicide, that they may be touched by the grace of God before, and avoid such final crime. They need HOPE; they need to be told that God has a marvellous purpose for each of us; let us respond to His love, embracing the Faith and repenting for our sins.


Since suicide is bad, very bad, it is quite clear that helping suicide by euthanasia is also bad, very bad. It is so much the more evil that it further puts pressure on elderly and terminally ill patients to commit suicide; such person can often be burdens on their family and friends (it is not easy to care for elderly parents or relatives, and can be costly): if euthanasia is permitted by laws, then there will be pressures put on them to commit suicide, and thus to lose their souls forever. People think that what the civil law permits is OK: and so many more people would end up their life with the terrible crime of suicide and many would become accomplices in such crime. This is a very threatening evil in our modern world: they first accepted the horrible crime of abortion destroying life at its beginning, and they are now accepting the horrible crime of euthanasia destroying life at its end. This is truly a culture of death: truly “the wages of sin is death. But the grace of God, life everlasting, in Christ Jesus our Lord” (Rom. 6:23).


It is important to point out that the true Christian hope, the Catholic hope, is not on earth, but in Heaven: “If in this life only we have hope in Christ, we are of all men most miserable” (1 Cor. 15:19). But our hope is hope of everlasting life, hope of sublime happiness, hope of seeing God face to face: “Behold what manner of charity the Father hath bestowed upon us, that we should be called, and should be the sons of God. Therefore the world knoweth not us, because it knew not him. Dearly beloved, we are now the sons of God; and it hath not yet appeared what we shall be. We know, that, when he shall appear, we shall be like to him: because we shall see him as he is. And every one that hath this hope in him, sanctifieth himself, as he also is holy” (1 Jn. 3:1-3).


Today – especially with the present pope – some Catholics would make people think that the purpose of the Church is “social welfare”. Though the works of corporal mercy that the Church has done in the past and still in the present are outstanding and really marvellous, yet these are not the main work: the main work of the Church is to beget souls to eternal life, to make of them “children of God, and heirs of Heaven”. And such hope gives a meaning not only to life, but to suffering itself, as St Paul says: “we are the sons of God. And if sons, heirs also; heirs indeed of God, and joint heirs with Christ: yet so, if we suffer with him, that we may be also glorified with him” (Rom. 8:16-17).

So the virtue of Hope is truly a very great virtue. It is one of the three “theological virtues”: Faith, Hope and Charity. These virtues have God as their object: we believe God, we hope God, and we love God; indeed the object that we know by Faith is God himself, the most Holy Trinity and God’s work for our salvation; the object that we hope is God himself: we hope nothing less from God than God himself. And the object that we love is God himself, with a marvellous love of friendship. Also the motive of these three virtues is God Himself: we believe God, relying on the Word of God, on the testimony of God, on the signature of God (by miracles and prophecies). Similarly we hope God, relying on God’s help: how could we ever reach such eternal beatitude by our own strength? It is simply impossible. It is relying on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that we can expect to reach that vision of God face to face in which consists eternal beatitude. And lastly we love God because of His own infinite Goodness in Himself.


Thus St Thomas Aquinas teaches that the virtue of hope has these two aspects: an immense desire for God, with great trust in God’s help that we will reach there, reach Heaven, reach eternal beatitude, through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This hope is thus the remedy for despair, so common in the modern world. It is also a great encouragement in suffering. And this heavenly desire lifts ourselves above material things, and makes us despise the things of this world and long for the eternal good. Thus it is a remedy against thinking that the Church’s purpose is merely social work.


Let us pray to our Lady, whose Assumption we celebrated two weeks ago, that we may truly long for Heaven, and reach this Kingdom through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and the maternal intercess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Amen.  

 

Fr. Lainey (sspx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