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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보배(2018- 06-22)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7-10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보배(2018-06-22)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사랑하올 형제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보배’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보배가 있는 곳에 너희 마음이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주시고 싶은 보배에 대해 자주 말씀하십니다. 또한 진주에 관해서도 자주 말씀하십니다. 감추어져 있는 진주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팔아서라도 얻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왕국이 보배라고 하십니다. 하늘의 왕국, 천주의 왕국은 우리의 영원한 진복입니다.


그렇다면 하늘의 왕국, 영원한 진복은 무엇일까요? 요리문답에서 이렇게 답합니다. “하늘의 진복은 천주자신이시다.” 왜냐하면 천주께서는 영원한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행복은, 천주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은 당신자신입니다.


교부들과 교회박사들에 따르면 천주의 사랑은 “천주께서 가지신 사랑이요,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행복이요, 생명이요, 당신이 가지신 모든 것”라고 합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형제 여러분에게 세상에 있는 모든 돈을 준다고 해도, 또한 모든 왕국, 모든 나라를 다 준다고 해도 천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그것을 무한히 초월합니다.


왜냐하면 만약에 누군가가 우리에게 대우주를  준다 해도 천주께서 주신 것에 비교한다면 대양의 물중에서 한 방울의 물에 불과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는 ‘진주,’  ‘보배’,  ‘재산’은 천신들도, 성인들도 이해할 못할 만큼 무한한 선물입니다. 즉 천주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무한한 사랑을 잘 이해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어디에 사랑이 있을까요? 우리가 만약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발껏'. '발로부터'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마음껏, 마음으로부터 당신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누군가를 너무나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당신이 내 마음속에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주께서 당신의 사랑을 상징하고 표현하기 위하여 인간의 심장을 사용하십니다. 육체적인 심장은 정신의  깊은 움직임의 상징입니다. 만약에 제가 ‘당신을 마음껏 사랑합니다.’ 라고 한다면 이것은 가장 중요한 것을 당신에게 준다는 뜻입니다.


누구에게나 이것이 ‘나다’라고 할 수 있는 특징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이는 ‘지성적이다.’ 어떤 이는 ‘의지가 강하다’ 어떤 이는 ‘감성적이다’ 어떤 이는 ‘운동신경이 뛰어나다.’ 어떤 이는 ‘기억력이 좋다.’  어떤 이는 '상상력이 풍부하다.’ 등등, 여러분은 여러 재능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다 합하면 형제 여러분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의 샘으로부터 내려온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의 마음이요, 심장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고귀하게 영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당신을 마음껏 사랑한다.’고 해도 진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에는 나쁜 생각도 있고, 나쁜 감정도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이 몸을 나쁘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예수님, 성모님의 성심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주께서 무한한 사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이시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외아들이 우리를 위하여 사람이 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사람의 심장을 가지신 인간이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의 삶을 살기 시작하신 순간부터 예수님의 인간심장이 고동쳤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묵상할 때, 2단계로 묵상 합니다. 하나는 신비자신을 볼 수 있고요.  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크리스마스에 탄생하셨다는 신비를 생각합시다. 우리는 위대하신 천주께서 작은 아기가 되셨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부유한 천주께서 가난한 아이가 되셨다. 그렇게 시작하여 모든 신비를 묵상합니다.


그리고 다음은  왜, 무엇 때문에, 어디로부터 그런 신비가 왔느냐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그렇게 하시는가. 그 신비의 원인은 사랑이십니다. 천주께서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사람이 되셨습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기가 되어 말구유에 누워계십니다. 그냥 아기일 뿐만 천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인간의 심장으로써 고동친다는 것을 생각합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활하신 33년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릅니다. 다만 모든 것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다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활, 그 신비 뒤에는 우리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작은 아이, 아기 예수 그리스도 몸에 있는 심장이 우리를 위하여 고동하십니다.


예수께서 성 요셉을 도와주시고, 집을 짓고 노동하실 때 천주 성부께 대한 사랑과 우리에 대한 사랑으로써 하셨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예수님의 심장이 움직이는가를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천주성부를 위하여, 둘째는 성모님을 위하여, 마지막에는 그리스도 신비체가 될 우리를 위하여 움직이십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발견해야 할 진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그렇게 하시는지 그 이유를 우리는 늘 발견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시고 모든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하나 하나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 말씀을 묵상할 때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묵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께서 각각 하신 말씀들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하셨다는 것을 종종 잊어버립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말씀하셨다면 당신이 행하신 기적과 모든 일들도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적인 사실만 생각하고 이유는 자주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기적으로써 빵을 만드셨다.' '아픈 사람을 치유하셨다.' '장님의 눈을 뜨게 하셨다.' '죽은 사람을 살리셨다' 그런 천주님의 힘을 생각하지만 왜 그렇게 하시는지는 잊어버립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신다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그런데, 때가 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심장을, 당신의 마음을 우리에게 보이시는 때가 왔습니다. 언제인가요? 바로 예수님의 수난, 고통 받으실 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끝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랑을 우리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상처를 보십시오. 모든 상처가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편태의 괴로움을 받으신 것, 가시관을 받으신 것,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신 것, 모든 고통을 받으시면서 당신 심장이 계속 움직이신 것은 상상도 못하는 큰 고통이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계속 움직이신 심장의 마지막은 갈바리아의 십자가입니다.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끝까지 움직이셨지만 마지막에  죽으신 그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보이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온 몸이 상처받았습니다. '나의 몸에 상처받지 않은 곳이 어디 있을까.' '나의 몸에서 너희를 위해 움직이지 않은 부분이 있을까.' '보라. 나의 말, 나의 행동, 나의 생각들이 너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한 것이 있을까' '보라. 나의 천만의 상처를, 나의 피를, 모두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에 한 것이다.'


여러분은 '예수님, 그래도 약간의 피는 남아 있지 않습니까?' 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끝까지 한 방울의 성혈도 다 흘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로마 군인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직후에 심장을 열어서 피와 물이 나왔습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피를 예수 그리스도게서 우리를 위해 다 흘리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도 토마스는  아무것도 없는 예수님의 심장에 손가락을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은 마지막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마음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심장은 단지 성상에 있는 아름다운 심장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상은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기 예수 그리스도께서 움직이기 시작한 작은 심장과 론지누스가 마지막에 열은 심장과 똑같은 예수 성심은 이 감실 속에 있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마지막 날까지 이 감실 안에 참으로 계십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우리의 묵상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성녀 말가리다 알라코코에게 예수님이 발현하셔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그냥 '생각한다. 아름답다.' 라고 머리속으로 기억하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가 마음으로써 더욱 더 예수성심에 가까이 가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하나의 심장 밖에 없습니다. 그 심장은 예수 그리스도께 가장 가까이 가서 예수님 심장과 하나가 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심까지 가는 길은 다른 심장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어머니, 성모성심입니다. 우리가 예수 성심을 발견하기 위하여 성모성심까지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성심을 잘 이해하기 위해  하자 없으신 성모성심께 갑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심과 하자 없으신 성모성심이 일치하고 결합하는 것을 묵상합시다. 그렇다면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보배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묵상회의 목적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칼 슈텔린 신부

(아시아 관구장. 성모기사회 지도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