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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리스도의 위대성- 성 목요일 성체건립 첨례(2014-04-17)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9-17

 


그리스도의 위대성-성 목요일 성체건립 첨례(2014-04-17)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밤 우리 주님의 수난이 시작됩니다. 이 곳에서 보는 그 분의 겸손성은 지극히 놀랄만한 것입니다. ”또한 겉으로는 사람같이 보이시고 당신을 낮추사 죽기까지 순명하였으며, 더구나 십자가 상에 죽기까지라도 순명하심으로써 당신을 낮추셨느니라.“(필립피2:8). 그렇지만 우리는 흔히 주님의 위대함을 잊는 경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바오로 성인은 다음 말씀으로써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천주의 형체(形體 )안에 계신 저는 천주와 더불어 같으심을 이기적으로 확보하여야 되는 것을 생각지 않으시고.“(필립피2:6)


여기서 형체는 본성을 의미하는 철학적 용어입니다: 천주님의 본성을 가지신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 분은 새로운 법을 주시면서, 빵을 몸으로 변화시키고 포도주를 그 분의 성혈로 변화시키는 모든 것의 주인이신 천주로서 행하십니다:“너희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노니, 곧 너희들은 서로 사랑하라.“(요왕 13:34) 주께서는 굴욕 속에서 조차 주인으로서 계십니다.

천주님의 이러한 위대하심은 바오로 성인이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서간에서 아름답게 발전되어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 서간은 다른 서간과는 다른 형태를 띠고 있는데 아마도 이교도 출신의 개종자들 보다는 구약을 훨씬 잘 아는 동료 히브리인들에게 말한다는 사실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가말리엘의 학생이었던 랍비 사울(종도행전22:3)이 나오는데, 그는 “내 족속 중의 많은 연배(年輩) 중에서 유대아교에 대한 열정에 있어 뛰어나고 내 조상의 전통을 위하여 광적(狂的)이었던 것으로 뛰어났었던 것을 들었으리라.“(갈라타 1:14) 그는 이전의 다른 서간 내용보다 여기에 나오는 그가 주는 훨씬 풍부한 모든 인용문의 문맥을 독자들이 알고 있다고 추정합니다.

성인께서는 구약보다는 신약의 우월성을 모두 증명하면서 길이가 다른 내용을 세 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첫째, 성인께서는 예수님과 구약에서 매개자로 일했던 천신들과 비교하며 말씀하시길, “천주 언제 어떤 천신에게 ‘너는 나의 아들이니, 나 오늘 너를 낳았노라. 나는 저에게 아버지 될 것이며, 저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헤브레아 1:5)라고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성인께서는 성영(시편)2장과 88장을 인용합니다. 이 두 곳은 메시아가 천주님의 아들이 될 것이라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곳입니다!


그 분은 본성으로서 천주의 아들이신 성자이시므로 성부와 같은 신성을 가지시는데 이는 모든 아버지가 그가 갖는 같은 본성의 아들을 낳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들은 괴물이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모든 천신들 조차 메시아가 더 위에 있는 것입니다.

바오로 성인은 계속 말씀하시길: “또 첫째로 나신 이를 다시 세상에 들여 보내실 때에 말씀하시되, 천주의 모든 천신들은 저를 흠숭(欽崇)할지니라“(헤브레야1:6). 성인은 성영96장을 인용하십니다: 만약 모든 천신들이 메시아를 섬겨야 한다면 메시아인 그 분은 모든 천신들 위에 계신 것이며, 그럼으로 그 분은 조성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이 창조주이시니, 천신들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피조물인 것입니다. 이것이 천신들을 시험한 것입니다: 천주께서는 천신들을 창조한 이후 성 육신에 대한 그분의 계획을 곧바로 천신들에게 알립니다:선한 천신들은 매우 빠르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도록 자기자신을 봉헌하는데, 우리는 복음서에서 가브리엘 천신의 모습과, 혹은 후에 주께서 광야에서의 유혹 받으실 때나 고통 당하실 때의 이러한 천신들의 섬기려는 실천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선한 천신들은 메시아가 참 천주이시며 참 사람이심을 믿었기에 섬김과 경배로써, 자신을 봉헌함으로써 즉각적인 상을 받습니다. 그리하여 곧장 천국으로 들어가지만 악한 천신들은 그리스도를 경배하라는 천주님의 계명을 거부하면서 악마와 함께하면서 말했습니다:”non serviam”–나는 섬기지 않겠다-“(예레미야2:20)라고 했기에 그리하여 악한 천신들인 저들은 곧장 지옥으로 떨어지는 벌을 받았습니다.

바오로 성인께서는 성영44장을 인용하시면서 계속 말씀하십니다. 이곳은 왕과 왕비, 신랑과 신부, 그리스도와 성 교회 여왕/여왕이신 마리아를 묘사하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메시아를 기다리는 유대인들에 의해 보편적으로 널리 인식된 가장 아름다운 시편입니다. 이에 대해 바로 이렇게 묘사합니다:“천주여 네 어좌(御座)는 영원토록 계시며 네 나라의 왕홀(王笏)은 정의의 왕홀이로다.”(헤브레야 1:8) 성영의 저자는 왕을 표현하면서 그 분이 바로 천주라 부릅니다.

이교도들이 그리스도의 천주성을 부인할 때, 이는 무지의 소산인지라, 저들이 진리의 지식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여호와 증인 같은 그리스도 교인들이라 불리는 이들이 그리스도께서 천주임을 부인할 때, 이는 정말 슬프고 통탄할 일이요, 우리가 본 바대로 성서가 매우 분명하게 그리스도의 천주성과 참 천주이시며 참 사람이심을 증언하였기에, 저들이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저들의 행위는 독성죄(瀆聖罪)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참 천주이시고 그 분의 아들이시며, 가장 높은 천신들 보다 무한히 높으신 분입니다. 그리고 바오로 성인은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그의 서간 다음 장에서 즉각적인 결론을 내립니다. 천신들이 관여했던 구약이 매우 속박되었기에 반란이 즉각적으로 처벌되었다고 한다면, 참 천주이시며 참 사람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지배되는 신약의 법규를 훨씬 더 우리가 준행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성인께서는 그리스도와 히브리인들에게 구약율법을 준 모세를 비교합니다. 모세는 천주님 집안, 즉,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며, 오늘날 가톨릭 교회의 “충직한 종”이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집안의 아들로서 계신 것이요, 더욱이 그 집을 지으신 창조자이신 것입니다.


바오로 성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며 실제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만물이 다 저로 말미암아 조성함을 받았으니, 조성함을 받은 것이 저 말씀을 말미암지 않고 된 것은 도무지 없느니라.“(요왕1:3) 성인께서는 친히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서간 첫 머리에서 말씀하시길:”최근에 이르러서는 성자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말씀하여주셨으니, 저 성자를 이미 만물의 상속자로 정하셨으며, 또한 저로 말미암아 세상을 창조하셨느니라. 성자는 천주 영광의 반영이요, 그 본질의 초상(肖像)이시며 또한 저는 당신 전능하신 말씀으로써 만물을 지지(支持)하시느니라. 저 사람의 죄를 속량하신 후에 높은 데에서 지엄하신 천주 우편에 좌정(坐定)하시느니라.“(히브레야1:2-3)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집을 지은 자로서, 집안의 하인(下人)인 모세보다 더 우위에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이 서간경의 나머지 부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구약의 최초 고위 사제인 아아론과 비교합니다. 성인인 사제에 대한 정의를 내리면서 예수께서 사제이심을 먼저 보여줍니다:


“무릇 어떠한 대사제를 물론하고 그들은 다 사람들 중에서 간택되며, 또한 천주 대전에 저들의 사전에 있어 사람들을 위하여 저들의 대표자로 선정되었느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사람의 죄악을 위하여 예물과 희생을 봉헌하기 위함이니라. 자기도 또한 약점이 있는 자이매, 몽매한 자들과 또한 방황하는 자들을 친히 동정할 수 있어야 하리로다. 이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하는 것과 같이 자기를 위하여서도 죄를 위하여 제헌하여야 하리로다. 또한 아무도 이러한 고상한 지위를 자기를 위하여 스스로 취할 바가 아니요, 오직 아아론과 같이 천주께 성소를 받아야 할지라.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대사제의 지위를 스스로 자진(自進)하여 취하시지 않으시고, 오직 저에게 ‘너는 내 아들이니, 나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신 이가 저를 대사제로 세우셨느니라. 그는 다른 곳에 또 ‘너 멜기세덱의 제도를 따라 영원토록 사제로다’ 말씀하시니라.“(헤브레아 5:1-6)


이는 성영(시편)109장을 인용한 것인데 주일과 모든 만과(晩課)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멜기세덱은 구약에서 오직 두 번 언급됩니다! 한 번은 아브라함이 승리한 후에 아브라함으로부터 십일조를 받아서 감사의 희생제사를 봉헌하고 아브라함을 축복했을 때이며, 두 번째는 다윗이 메시아가 사제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한 시편, 즉 ” 멜리세덱의 순서에 따라”에서 나옵니다. 이 두 작은 구절로부터 바오로 성인께서는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서간이라는 점에서 매우 놀랄만한 교훈을 끌어냅니다!.

인류가 출현한 초창기에, 모세가 아닌 맏아들이 그의 아버지로부터 두 가지 몫 유산인 왕권과 사제직을 이어받습니다. 모세의 구약이 정한 율법은 사제직이 왕권과 분리되는 데, 왕들은 다윗처럼 유대 족속으로부터 나오며, 사제들은 아아론처럼 레위족속으로부터 나옵니다. 다윗 왕은 메시아가 최고위직 왕 뿐만 아니라 최고위(最高位)사제직이 결합되는 속성을 다시 겸하리라는 예언적 빛 안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리고 그로부터 강복을 받았을 때, 아아론과 모든 레위 족속들이 “아브라함의 등 안에서”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아아론 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바오로 성인은 보여줍니다. 십일조를 받는 그 사람은 십일조를 주는 사람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며, 복을 주는 자는 복을 받는 자 보다 우위에 있는 것입니다.(7장)


구약에서 사제의 의무가 있기 때문에 사제직의 변화가 있다면 전례법과 치리법(治理法)도 바뀔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약의 전례와 치리는 신약에 더 이상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만 십계명이나 다른 도덕법규는 적용되며, 이 도덕상의 법규는 구약보다 신약에서 더 거룩하게 지켜져야 합니다.


옛 율법과 연계된 구약은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써 끝납니다. 새로운 영원한 계약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것입니다. 다가오는 새롭고 그림자에 불과한 형상이 결코 아니라 훨씬 더 완벽한 것으로써, 용서와 구원의 실체 모습이라는 것을 바오로 성인은 보여줍니다.

토마스 성인은 성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실제 현존을 입증하기 위하여 이 같은 주장을 사용합니다: 성인께서 말씀하시길 미사는 단지 형체에 불과한 구약보다 그리스도의 몸과 성혈인 실제 희생제사로서 신약의 완벽한 제사에 속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개신교인들은 구약으로 되돌아가서 성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실제현존을 거부하는 것이니, 이는 실제적으로 신약도 거부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오로 성인은 만약 그리스도께서 사제라면 무엇인가를 드릴 것이라는 점을 설명함으로써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그의 서간에서 계속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무엇을 드리십니까? 그 분의 바로 몸과 성혈(9장과 10장)입니다. 그리고 결론 내리시길: “대저 숫염소와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뿌려서 더럽혀진 자를 외면적으로 거룩하게 한다면, 하물며 영원하신 신(神)의 힘으로 말미암아 당신 자신을 무구(無垢)한 희생으로 천주께 제헌하신 그리스도의 성혈이야 얼마나 더 우리로 하여금 생활하신 천주께 섬기도록 죽은 업적에서 우리 양심을 조촐케 하리요?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신약의 중재자 되시니, 이는 이전 계약 밑에 범한 죄과를 속량하시기로 당하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부름을 받은 자로 하여금 약속한 영원한 상속을 받게 하시기 위하심이니라.“(헤브레아 9:13-15)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는 완벽합니다. 다른 것이 필요 없습니다. 단 하나이며 그것으로 완벽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 희생제사가 필요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극히 거룩한 성체를 세우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분의 희생제사가 신약의 모든 제대(祭臺) 위에 드려지고 제헌되도록 말입니다. 그 분께서는 그분의 성교회에 그 분의 희생제사를 주시고, 또한 최후의 선별된 자들이 미사를 통하여 구원이 될 때까지 사제직을 통하여 그 분의 유일한 희생제사를 계속해서 주십니다.
 
성 바오로께서는 일요일 흠숭지례(欽崇之禮)에 대해 –이것이 미사입니다- 10장에서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희망을 고백함에 확고한 태도를 취할 것이니, 대저 언약하신 이는 충실하심이니라. 또한 우리는 서로 유의하여 써 사랑과 선업에 대하여 격려할 지니라.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흔히 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집합을 결(缺)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날(예수 재림의 날)이 가까움을 보는 그만큼 더욱 서로 격려할 지니라. 대저 우리가 이미 진리를 완전히 인식한 후에 만일에도 고의로 죄를 범한다면, 이는 우리에게는 죄를 위한 희생이 다시 없을 것이요, 오직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다만 공포 중에 심판을 기다림과 반역한 자들을 살라 버릴 치열한 불 뿐이리라.“(헤브레야 10:23-27)


성인께서 ‘우리의 집합을 결(缺)하지 말고’ 라고 쓸 때는 신자들에게 의무적인 주일 미사 참여를 상기시킵니다. ‘어떤 사람이 흔히 하는 것’ 이란 의무적인 주일 미사에 참여하지 않음을 말하는데, 이는 ‘진리를 완전히 인식한 후에 만일에도 고의로 죄를 범한’ 것이며 그들에게는 ‘죄를 위한 희생이 다시 없을 것’입니다. –저들이 버리는 희생제사 보다 더 큰 희생제사는 없습니다.-


실제로 성인께서는 그리스도의 이 성혈을 경시하는 자들을 뒤에 설명하십니다. “하물며 천주의 아들을 짓밟으며 자기가 그로 말미암아 거룩하여진 바, 저 계약의 피를 경멸히 여기며, 또한 성총을 베푸시는 성신을 능욕한 자의 받을 형벌이야 얼마나 더 엄할 것인가를 생각할 지니라. 대저 ‘복수함은 나의 일이니, 나 또한 보복하리라.’하시며, 또 다시 ‘주 당신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헤브레아:29-31) 비록 이 구절이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미사의 희생본질과 그 곳에 그리스도의 성혈이 실제 현존하심을 가르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고는 무척이나 분명합니다. 이 복된 성사를 경시하는 것을 포함한 죄는 끔찍한 것이며 처절한 징벌을 불러들인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서간 끝부분에서 --많은 또 다른 매우 중요한 가르침 뒤에 언급할 수 밖에 없는데-- 바오로 성인은 미사가 희생제사라는 것을 매우 분명하게 설명하십니다: “우리는 제단(祭壇)을 가졌도다. 장막을 섬기는 자(구약의 유데아인)들은 능히 이 제단으로부터 먹지 못하느니라.“(헤브레아13:10)


제단(제대)가 무엇이냐면 바로 희생제사가 드려지는 곳 아닙니까? 그리고 구약시대 장막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희생제사가 드려진 것입니다. 우리는 제대(祭臺)를 갖고 있으니, 이는 교회의 핵심입니다. 개신교인들은 제대가 없습니다. 저들은 그리스도에게 충직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현대주의자들이 미사의 그 희생적인 특성을 숨기고 때때로 부인함으로써 성 교회의 핵심인 이 미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 미사의 핵심이 이토록 많이 공격받아왔으니, 오늘날 성 교회에 수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며 당연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깊이 생각해보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즉 참 천주이시며, 성부의 유일하신 독생 성자이시며, 참 천주이시자 참 사람이시며, 중개자이시고 구세주이시며, 고위사제이시자 최고의 왕이신 그 분의 위대하심에 깊은 존경심을 갖도록 합시다.

그 분의 겸손을 묵상할 때에, 그 분의 장엄하심을 알게 될 때에 우리는 더욱 더 놀라게 됩니다. 누가 이 고위사제이며 하자 없으신 희생제물인가를 알게 될 때, 우리는 십자가 및 미사의 희생제사의 가치를 더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위엄과 겸손하심을 알고 계시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시여, 우리가 항상 그리스도를 더 알고 사랑하고 섬길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그리하여 영원무궁토록 성부와 성신과 함께 통치하시는 그 분을 우리가 천국에서 대면(對面)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아멘. 

 

프랑소아 레네신부(성 비오 10세회 아시아 관구 소속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