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교리

Home > 신앙과 교리 > 미사강론

제목 천주의 사람은 천주의 말씀을 듣느니 - 고난주일(2018- 3- 18)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4-06




천주의 사람은 천주의 말씀을 듣느니 - 고난주일(2018. 3. 18)


성비오10세회 성무무염시태 성당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2018년 3월 18일 고난주일 미사입니다.


미사 직후에 감사기도를 바치고 난 뒤 이어서 성체강복을 합시다. 2가지 지향이 있습니다. 하나는 호주 신학교에 있는 한국 신학생들과 필리핀에 있는 한국의 예비신학생들을 위해 그리고 한국에서 더 많은 거룩한 사제, 수도자들이 나오도록 기도합시다. 둘째는 대한민국에 항상 평화가 유지되도록 그리고 결코 전쟁이나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수 성심께 무릎을 꿇고 간절히 구합시다.


그리고 19일 월요일은 성 요셉 참례 날이요. 아침 7시에 미사가 있습니다. 성주간은 월요일부터 부활주일까지 미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화요일 미사가 오전 7시이고 목요일은 오후 7시입니다. 성주간만 그렇습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천주의 사람은 천주의 말씀을 듣느니.” 오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좀 어려운 말씀을 유대인들에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아, 나는  평상시 천주의 말씀을 듣고 있으니깐 천주의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정말 그렇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천주의 말씀을 잘 듣고 있는지 생각합시다.


왜냐하면 천주교회는 우리에게 오늘부터 특히, 전통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라고 초대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뿐만 아니라 행실로써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특히 고난으로써 가르치십니다. 그래서 종도 성 요안은 말씀합니다. “나의 제자들아 우리는 말과 혀로써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실과 진리로써 사랑할지니라.”(요안1서 3:18)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며, 어떻게 행동하시는 묵상하고 마지막에 좋은 결심을 세웁시다.


그렇다면 첫째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참된 사랑입니다. 참된 사랑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상대방에 참된 선을 바라는 것입니다. 참된 선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완전한 행복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영원 구령입니다. 우리가 천당까지 가는 것입니다. 그것 외에는 참된 사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근래에 지인 한 분이 저에게 어떤 사람을 소개했습니다. 그 분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분으로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신앙적인 이야기를 하면 놀랄 것 같아 먼저 우정부터 쌓으려고 일반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소개한 지인이 말씀하길 “중요한 것은 영혼구령이니 핵심으로 가서, 신부님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됐는지? 어떻게 개종했는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매우 감동받았습니다.  예. 맞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우정을 쌓아도 영혼을 구령하지 못한다면 다 쓸데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영혼을 구령하는 데  써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핵심은 영혼 구령입니다. 만약에 영혼을 구령할 수 없다면 우리 인생은 실패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큰 기업체의 사장이라도, 훌륭한 학자의 명예가 있다해도, 얼마나 행복한 가정이라 해도 우리가 주님을 떠난다면, 주님과 영원히 분리되고 지옥으로 간다면 우리 영혼에 어떤 이익이 있을까요?


주님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손실인지 인간의 이성으로써, 인간의 말로써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우리의 가진 것을 도둑당해도, 우리의 집이 다 불타버렸다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난다해도, 우리가 지옥으로 가는 것과 비교한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떠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손실일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구령을 주시기 위하여 참된 사랑을 말씀하셨습니다.


만약에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가치도 없을 것입니다. 부활때 우리는 부활 찬미가(Praeconium Paschale)를 합니다. 불을 축성하면서 하는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오 기묘하다 우리에게 보내신 네 자비여, 오 초월하다 우리에게 보이신 네 사랑이여. 너는 종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네 아들을 팔아 넘기셨도다(O mira circa nos tuæ pietátis dignátio! O inæstimábilis diléctio caritátis: ut servum redímeres, Fílium tradidísti! )." 저는 이것을 라틴어로써 이해하고 있었지만, 새삼 다시 너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둘째, 그렇다면 말씀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행실로써 우리에게 참된 사랑을 보이셨을까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천주교회는 이 세 가지 중 남은 2주일 동안 특별히 두 번째를 묵상 하라고 초대합니다. 하나는 베들레헴입니다. 천주성자께서 우리를 구속하기 위하여 가난하게 탄생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자 중의 왕자시오. 모든 것을 창조하신 자로써 황금침대에서 많은 종들을 거느리고 태어나셔도 부족합니다. 그런데 말구유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가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에서 30년 동안 매우 가난하고 겸손하게 생활하셨습니다.


두 번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그보다 더 큰 사랑을 갈바리아의 십자가 위에서 보이십니다. 천주이신,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십니다. 그 십자가 위에서 많은 욕을 받으십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대한민국을 위하여, 국민들을 위하여 모두 일했다. 열심히 노력하여 노벨상을 받았다.’ 그렇게 했는데 국민들이 사형에 처하라고 한다면 얼마나 슬플까요?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사랑하시고, 기적을 하시고, 가르치시는데 그 들에게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라” 라고 욕을 받았습니다. 그 제자들도 다 도망갔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은 성모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시는 어머니께 그렇게 슬픈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고통을 받으셨을까요?


셋째는 우리가 자세히 볼 수 없지만 성체성사입니다. 베들레헴에
서도 천주성은 볼 수 없었지만 사람은 볼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위에서도 모습은 바뀌었지만 사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감실에서는 성체성사에서는 빵의 모습으로 모든 것을 우리에게 다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하나가 되고 우리를 천당으로 이끌고자 합니다.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종도 성 요한에 따르면 “바스가 첨례날 전에 예수 이 세상을 떠나 성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을 알으시고, 세상에 있는 그 제자들을 이미 사랑하시고 또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그래서 성체성사를 세우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런 천주의 말씀을 듣고, 사랑의 말씀을 듣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천상행복을 주시고자 하는데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왜 듣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일상에서 우리의 영혼구령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영혼구령, 이웃사람의 영혼구령에 무관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죄를 범하고 있을까요?  주님에 대한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신 것을 생각할 때가 있었나요? 그 보다 세상적인 쓸데없는 곳에 낭비하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그러므로 겸손되이 구합시다. ‘예수님 지금까지 나는 예수님 말씀을 잘 듣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 이제부터 천주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도록, 천주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성모님 이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사랑의 말씀과 수난에서 끝까지 보이신 사랑을 잘 이해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천주의 사람은 천주의 말씀을 듣느니.”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 아멘.


오노다 토마스 신부

한국성비오10세회 주임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