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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속에 관하여/On Penance (2014-03-12)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9-10


보속에 관하여(2014-03-12)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은 전통적으로 단식하는 사계재일(四季齋日) 중 하나인 수요일입니다. 과거에는 봉재 온 기간(주일을 뺀 재의 수요일부터 성 토요일까지 거의40일간)동안 대 소재를 지냈습니다. 오늘날 대죄를 초래하는 단식에 관한 성 교회 법규는 오직 재(灾)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더 단식을 하도록 노력합시다. 성 비오10세회, 수도회 그리고 제3회원들은 반드시 봉재 기간 중 매주 금요일과 사계 재일 기간 동안 대 소재를 지켜야 합니다. 나머지 다른 날들은 단식한다든지 보속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개인의 헌신에 딸려 있습니다.

 

보속을 왜 해야 하나요? 첫째는 우리의 과거 죄 때문입니다. 우리의 과거 죄들은 천주님을 공격한 것이요, 그 중 어떤 것들은 심하든, 덜하든 모두가 천주님을 거역한 것입니다. 그 결과 이러한 죄를 갚기 위해 천주께 보상해야 합니다; 만약 어떤 이가 물건을 훔쳤다면 갚아야 되고, 파괴했다면 다시 세워야 됩니다.

 

보속은 특히 죄에 대한 배상입니다. 천주님의 의지보다는 나 자신의 의지대로 행한 죄, 천주님의 의지를 행하기 위해서는 보속으로 우리의 의지를 비난해야 합니다. 자신을 더 지나치게 아낀 죄, 이는 우리 자신을 책망하는 보속으로써 해야 하며,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 선호한 죄는 창조주를 위하여 피조물을 업신여기는 보속으로써 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미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갚으셨잖아요? 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희생을 성부께 드림으로써 아담 때부터 세상종말 때까지 모든 인간의 죄의 값을 치루셨습니다. 예수님의 완벽한 희생은 천주님의 마음을 상하게 한 인간의 모든 죄보다 더 천주성부를 기쁘게 했습니다.

 

그러나 보속을 행하여 우리 죄를 없애는 것과는 별도로 주님의 희생은 우리들의 보속에 대해 값진 보물을 주십니다. 그 분의 희생이 없다면, 우리의 보속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며 우리의 죄를 보상하는 것이 무능해집니다. 주님의 희생과 일치되어, 우리의 보속이 천주성부를 기쁘게 하고 죄의 사면을 얻게 됩니다. 

 

이것은 보속 성사에 있어서 분명한 핵심입니다. 회개하는 자는 자신의 역할을 하게 되는데: 과거 죄에 대한 통회(강렬한 내적 슬픔)와 사제를 통한 그리스도께 대한 이들 죄에 대한 자기 자책 그리고 보상행위(이를 만족시키는 보속)가 결합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제를 통하여 사면을 주시게 됩니다.

 

보속 성사 안에서 죄에 대한 자책과 이를 충족시키는 보속 행위는 천주님의 관대하심으로 인해 오직 성세(聖洗)이후 범한 죄에 대해서만 적용됩니다. 한 영혼이 주님께 다가갈 때, 주님은 모든 벌, 심지어 모든 현재의 잠정적인 벌마저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만약 성세 이후, 죄에 다시 떨어질 정도로 천주께 사면에 대해 감사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고해성사를 통하여 현재의 잠정적인 벌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회는 과거의 죄, 심지어 성세 이전의 모든 죄에 적용됩니다. 만약 과거의 죄 일부를 사랑한다면, 실제로 인간은 온전할 수 없는(그럼으로 정당화될 수 없으니)것입니다. 정의의 상태는 과거의 모든 죄를 혐오(嫌惡)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죄를 아주 싫어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신 성신으로(로마5:5)인하여 우리 영혼에 부어지는 천주자비의 필요 결과물인 것입니다. 사람이 천주님을 공격한 것에 대한 회개가 없다면 진실로 천주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보속을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미래의 죄를 예방하는 치료책입니다. 실제로 죄(원죄와 과거의 죄)로 인하여 우리의 본질이 상처를 받았습니다. 죄의 상처는 확실히 깨지기 쉬운 것이며 죄로 다시 떨어지는 경향을 말합니다. 특히 과거에 죄를 지었다면 그렇습니다. 이 같은 악한 경향에 맞서서 “맞서 싸우려는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싸울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술에 취했더라면, 알코올에 지나치게 빠지려는 경향으로 인하여 다시 술에 취합니다. 적게 마심으로써, 심지어 술의 허용범위를 비난함으로써, 그런 경향과 싸워야 합니다. 허용범위보다 적게 마심으로써, 허용범위보다 더 마실 수 있는 음주의 죄에 빠지는 것을 예방합니다. 이는 다른 죄에 빠지는 경향에도 똑같이 적용 됩니다.

 

나쁜 인터넷 싸이트에 빠져 있다면, 인터넷 접근을 제한함으로써, 자신이 나쁜 싸이트에 접근하는 경향을 엄격하게 제한함으로써, 또한 합법적인 싸이트도 덜 봄으로써 (덜 유용한 것들, 뉴스, 스포츠 등, 이런 것들 없어도 쉽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이런 경향과 싸워야 합니다. 비교해보세요. 벼랑 길 있는 산길에서 가능한 한 그 벼랑길로 가지 않아요. 너무 위험하니까요! 항상 죄에서 떨어져야 합니다. 이처럼, 인간은 대죄를 비난해야 할 뿐만 아니라, 소죄 역시 피해야 하며 위험과는 반대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유감(유혹)을 받으면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흔히 기도 하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유혹 속에서 기도와 보속은 죄를 피하는 데 있어서 아주 강력한 수단입니다. 그러니 유혹 받을 때에는 반드시 기도하세요! 또한 보속도 행하세요! 이것은 유혹 속에서 이루어지는 보속 행위는 우리의 기도를 강화시킵니다. 이것은 죄를 정말로 원하지 않는다는 저항의 표시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사탄과 맞서 싸워 승리하기 바라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을 어떻게 이겨내셨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기도와 단식을 하셨습니다!

 

보속을 하는 세 번째 이유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매우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비입니다! 그 분과의 고통을 함께 나누길 원하지 않고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어떻게 묵상할 수가 있습니까?

 

주님께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주님, 저도 저 십자가 위에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무결(無缺)하십니다. 저는 마땅히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저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당신이 십자가를 지었으면, 저도 당신을 사랑하므로 십자가를 지게 허락해주세요!

 

십자가의 친구가 아니면서 “그리스도 십자가의  적”(필립피3:18)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분의 탄원을 사랑스럽게 충족시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 없는 것 입니다: “만일 나를 따르려고 한다면,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루까9:23)

 

첫 두 가지 이유는 정화 생활, 즉 연옥생활에 대응하는 것입니다. 죄에 죽음으로써 이루어지는 첫 번째 영적 생활의 단계는 죄를 피하고 죄를 보상하려고 노력하는 것 입니다. 우리는 죄와 싸워야 합니다. 세 번째 이유는 빛의 생활에 대응하는 것입니다. 덕행이 성장함으로써, 우리가 천주님의 신비를 배우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것입니다.

 

그리고 보속을 행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구속(救贖)의 신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면 할수록 주님의 마음을 더 더욱 공유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성인이 그 모범이며, 말씀하시길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고통을 즐거워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이신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콜로새1:24)

 

교회의 머리로서 그리스도의 고통에 부족한 것이 없지만 그 구성원들은 머리에 적합해야만 합니다. 부드럽고 좋은 옷을 입은 사람은 주님의 못 박힌 머리와는 안 맞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 주변의 많은 악을 보게 될 때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해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 분은 천주님의 어린 양으로서 속죄의 희생제물로 그 자신을 바쳤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고자 하는 열렬한 영혼은 영혼의 구령을 위해 그리스도 희생과 함께 희생자로서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께 드리고자 합니다. 이것이 아기 예수 데레사 성녀께서 하신 일이요, 이것은 영적 생활의3단계인 결합의 삶인데 사람의 커다란 의도가 점점 더 일치될수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됩니다.

 

어떻게 보속을 합니까? 첫 단계이자 필요한 보속 행위는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실행하는 것입니다. 죄를 피하려는 엄격한 의무, 천주께 대한 의무(기도생활, 주일준수 등), 이웃에 대한의무 (집에서 자녀에 대한 의무와 자녀들은 부모에 대한 의무, 직장에서의 의무, 타인이 네게 해주리라 생각하기 보다는 우리가 저들에게 도와주려는 일 등), 우리 자신에 대한 의무(성신이 거하는 성전으로서 몸과 영혼을 정결하게 유지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두 번째이자 필요한 보속은 모든 불편한 점과 일상생활의 고통, 특히 천주섭리에 의해 어떤 커다란 문제가 우리에게 주어졌다면, 즉 질병이나 경제적 불운 이런 것들을 기쁘게, 사랑스럽게 받아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아픈 사람이 병을 예방하러 의사에 가기보다는 오히려 사람의 태도는 반드시 제일 먼저 십자가를 받아드리고 감당하는 자세여야 합니다. 그러면 평화롭게 의사한테 갑니다– 미리 결과를 받아드리는 것(그리고 이것이 항상 즉각적인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니고….. 언젠가는 되겠지만 죽음으로써 끝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성인께서 위에 언급하셨듯, 이 치유에 관한 염려, 근심, 걱정은 고통을 주고 받는 보속의 정신에 반대되는 것입니다. 불만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고통을 받는다고 해서 여러분 주변의 사람들에게 고통주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감사하다고 해야 하며 저들이 여러분과 함께 기뻐할 수 있도록 고통을 참아야 합니다. 저들이 나를 도와주어야 한다 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오히려 나같이 미소한 사람에게 저들이 관심을 가져주니 얼마나 사랑스런 사람들인가 하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매우 유익한 세 번째 보속은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부여한, 예를 들면, 단식과 고행, 금욕 등이 모두 첨가되는 보속 안에 존재합니다. 때때로 교회 혹은 종교상 계율은 교우들에게 보속 행위를 부과하는 데 어떤 이들은 자발적으로 이를 감당합니다.

 

사순절 이 봉재 기간은 이러한 부여된 보속 행위를 할 수 있는 최상의 기간입니다. 위에서 밝힌 대로 이러한 보속 행위들은 “보속의 정신”을 새롭게 하고 유지하기에 매우 유익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어떤 합법적인 것을 부인하거나 혹은 어떤 작은 고통을 부여하거나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일치시켜 이를 건네는 데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보속 행위들은 커다란 겸손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결코 자랑하고자 하면 안됩니다. 오히려 우리 자신의 죄에 대해 더 많은 벌을 받을 만 하다 하면서 강렬한 양심을 가지고 보속 행위를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봉재 기간 성 교회는 특히 어려운 이들에게 의연금을 주도록 권장합니다. 여러분이 음식 등을 삼가하여 생기는 돈 등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유익이 돌아가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을 덜 살피고 가난한 이들에게 더 베푸십시오. 여러분에게 가까이 있는 가난한 저들에게 먼저 주도록 하십시오. “가난한 이들에게 자비(慈悲)를 베푸는 자는 주(主)께 드리는 것이라. 주께서 그를 갚아주시리라.”(pro19:17) “내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의 보잘 것 없는 형제에게 너희가 베푼다면 너희는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테오25:40)라는 말씀을 인식하고 관대함을 가지고 주십시오.

 

더 관대함을 베푸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그리스도의 완벽한 생애를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다른 방법이 아직도 있으니, 가난, 정결 그리고 순명이라는 세 가지 복음적 조언인 세가지 서원으로 자기의 생애를 그리스도께 봉헌한 이들 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보다 가까이 따름으로써 온 생애를 보속으로 받아 드립니다.

 

혼인의 끈으로 묶이지 아니한 사람들은 예수께서 그들이 혼인하길 원하지 않는 것에 놀랍다 라고 하게끔 만듭시다. 그리고 혼인의 끈으로 묶인 자들이 우리 주님께서 저들의 자녀 가운데 성소의 부름을 받을 수 있도록 좋으신 주님께 기도하도록 합시다.

 

알칸타라의 성 베드로는 선종하기 전에 수 많은 보속을 행하신 분인데 사후 놀라운 영광 가운데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에게 나타나 말씀하시길; ”오 행복한 보속이여, 보속이 나를 이 같은 커다란 영광을 받게끔 하였도다!” 실제로 “우리는 천주의 아들이니 아들 역시 상속자면 천주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라. 우리가 그와 함께 고난을 받는다면 우리 또한 그와 함께 영광을 받을 것이니라”(로마16-17)

이 사순절 기간 관대해지도록 합시다. 보속을 행하고 천국에서 이 모든 보속에 대해 커다란 재보상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십자가 아래에 계시는 성모님과 함께 십자가의 신비에 동참 합시다. 아멘!
 

프랑소아 레네 신부(성 비오 10세회 아시아 간구 소속 사제)


On Penance



My dear brethren, Today we have the ember Wednesday, traditionally a day of fast. Already the whole of Lent used to be a time of fast and abstinence (except Sundays: from Ash Wednesday to Holy Saturday there are exactly 40 weekdays without counting the Sundays). Today the law of fast obliges under mortal sin only on Ash Wednesday and Good Friday, but we are all encouraged to do more. In the Society of St Pius X, the members of the order and of the Third Order must also follow the fast and abstinence every Friday of Lent and the ember days (and the four vigils). On the other days, it is left up to our personal devotion to do some fasting and/or other penances.


Why to do penance? First because of our past sins. Our past sins have offended God, some more grievously, some less, but all of them have offended God. As a consequence, we owe to God reparation for these: if someone steals, he must repay; if someone destroys he must rebuild. Penance is first of all a reparation for sin: by sin we did our will rather than the Will of God; by penance we renounce our own will in order to do the Will of God. By sin we take too much for self; by penance we renounce to self. By sin we prefer the creature rather than the Creator; by penance we renounce the creature for the sake of the Creator.


But one may say: but did not Christ already pay for all our sins? Yes, our Lord Jesus Christ offered to His Father His Sacrifice on the Cross, by which He made reparation for all the sins of all men from Adam till the end of the world. His perfect Sacrifice pleases the Father more than all sins together displease Him. But far from dispensing us from doing penance, His Sacrifice gives value to our penance: without His Sacrifice, our penances would be absolutely insufficient, incapable to make up for our sins; united with His Sacrifice they are pleasing to God and do obtain remission of sin. This is precisely the heart of the Sacrament of Penance: the penitent does his part: contrition (=intense interior sorrow) for his past sins + accusation of these sins to Christ through his minister the priest + reparation (satisfaction=penances) and our Lord Jesus Christ then gives the absolution through the priest.


The accusation and satisfaction in the Sacrament of Penance only apply to sins committed after Baptism because of God’s generosity: when a soul first comes to Him, He forgives all punishment, even all temporal punishment. However if one is so ungrateful as to fall back into sin after Baptism, then one ought to take part in the temporal punishment through the Sacrament of Penance.


However, contrition applies to all our past sins, even before Baptism. Indeed one would not be just (and thus not justified) if one would still love some of his past sins! The state of justice necessarily requires that one detest all past sins. That detestation of sin is a necessary consequence of the Charity of God that is poured into our souls by the Holy Ghost Who is given to us (Rom. 5:5): indeed one would not love God truly if he would not be sorry for having offended Him.
 
A second reason to do penance is as a remedy to prevent future sins. Indeed by sin (both the original and our past sins) our nature has been wounded: the wound of sin is a certain frailty and inclination to fall again into sin, especially those who had done. We need to fight against such an evil inclination, by “agree contra–acting against” such inclination. For instance, if one had been drunk, he would feel an inclination to drink again alcohol to excess: he fights against it by drinking LESS, even renouncing that which would be otherwise permitted. Thus by drinking less than permitted, he prevents to fall into the sin of drinking more than permitted. The same is true for all other evil inclination: if one has seen by looking at evil internet sites, he fights against this by restricting his internet access, strictly forbidding himself any evil site, but also renouncing even legitimate sites (typically the less useful ones, such as news, sports, etc. one can very easily live without such!) To take a comparison: in a mountain path, with a precipice on the side, one does not go as far as he can near the precipice: it becomes too dangerous! One stays away from it. Similarly, one should not only renounce mortal sins, but also even venial sins and go into the opposite direction of the danger.


In temptation one must pray; but often prayer alone in temptation is not sufficient: prayer and penance in temptation is very much stronger mean to avoid sin. So in temptation do pray! But also do penance! Such penance in temptation reinforces our prayer: it is a kind of protestation that we really do not want to sin, begging our Lord Jesus Christ to give us the victory over the Tempter. See how our Lord Jesus Christ in the desert overcame the temptation of the Devil: not by prayer alone, but by prayer and fasting!


A third reason to do penance is the very love for our Lord Jesus Christ, charity! Indeed how can we contemplate our Lord Jesus Christ suffering for us on the Cross without desiring to share with Him? We ought to say to Him: I should be on that cross; Thou art innocent; I deserved it! If Thou hast taken it for love of me, allow me to take it for love of Thee! We cannot be a friend of Jesus Christ without being a friend of the Cross, not an “enemy of the Cross of Christ” (Phil. 3:18). We cannot love Jesus Christ without lovingly fulfilling His entreaty: “If any man will come after me, let him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daily, and follow me” (Lk. 9:23).


The first two reasons correspond to the purgative life, the first degree of spiritual life by which we die to sin, we strive to avoid and repair sin, we fight against sin. The third reason corresponds to the illuminative life, by which we grow in virtue, we learn the mysteries of God, we “follow Christ”.


And the ultimate reason to do penance is to participate in the mystery of Redemption: the more one loves our Lord Jesus Christ, the more one shares His mind-set. St Paul is a model and says: “I now rejoice in my sufferings for you, and fill up those things that are wanting of the sufferings of Christ, in my flesh, for his body, which is the church:” (Col. 1:24). Not that there be anything wanting to the sufferings of Christ as the Head of the Church, but the members must be fitting to the Head; a member is soft clothing does not fit a crucified head! Sometimes we wonder when we see the amount of evil around us: what can we do? What did our Lord Jesus Christ do? He offered Himself as a victim of expiation, as the Lamb of God. So the fervent soul who want to be one with Christ will offer oneself as a victim in union with Christ-victim for the salvation of souls, this is what St Thérèse of the Child Jesus did; this is the third degree of the spiritual life, unitive live, when one’s great intent is to be more and more united with, one with our Lord Jesus Christ.


How to do penance? A first and necessary penance is the faithful fulfilment of one’s duties. Strict duty to avoid sin; duties towards God (prayer life, Sunday observance, etc), duties towards one’s neighbour (in one’s home: parents towards the children and children towards the parents; at one’s job: not so much considering what others owe us, but rather what we owe them…), duties towards ourselves (to keep our body and soul pure, as temples of the Holy Ghost…)


A second – and also necessary – penance is to accept joyfully and lovingly all the inconveniences and sufferings of every day, especially if some bigger ones are sent to us by Divine Providence: sicknesses, reverses of fortune, etc. That does not prevent to see a doctor is one is sick, but one’s attitude must first be that of accepting the cross and offering it, and then with peace go to the doctor – accepting in advance the outcome (and it will not always be immediate healing… one day even it will end by death!) The solicitude, worry, anxiety about healing is against that spirit of penance that accepts and offers the suffering, as St Paul above. Complaints should be absolutely avoided. And don’t make those who surround you suffer because you suffer: rather be so grateful to them and patient with them that they find it a joy to be with you. I should not consider that they should help me; rather I should consider how charitable they are to take care of such a little unimportant person as me.


A third penance, very useful, consists in all those additional penances that one imposes upon oneself, such as fast, mortification, etc. Sometimes the Church (or a religious rule) imposes some upon her members; others are willingly taken upon self. Lent is a prime time for such additional penances. These are very useful to renew and keep the “spirit of penance” as exposed above. All of them consist is renouncing certain legitimate things (or imposing certain small pains) and offering this in union with the sacrifice of our Lord Jesus Christ. They ought to be done with great humility – never, ever, boasting for such, but rather doing them with the intense consciousness that we deserved much more punishment for our sins.


Lastly in Lent the Church especially recommends almsgiving: let the poor benefit of what you abstain from (food, etc.). You take less for yourself, give more to the poor. Give first to those who are closer to you. Give with generosity, knowing that “He that hath mercy on the poor, lendeth to the Lord: and He will repay him” (Pro 19:17). “Amen I say to you, as long as you did it to one of these my least brethren, you did it to me” (Mt. 25:40).


For the more generous ones, who want the perfection of the Christian life, there is still another way: by consecrating one’s life to Christ, with the three vowsof to the three evangelical counsels of poverty, chastity and obedience. Thus one embraces a whole life of penance here below, following Christ crucified more closely. Let those who are not in the bonds of marriage wonder whether Jesus would not want that for them; and let those who are in the bonds of marriage pray that the Good Lord may choose such vocations from among their children.

St Peter of Alcantara, who had done so much penance before his death, appeared to St Theresa of Avila after his death in a marvellous glory, telling her: “O happy penance, which has deserved for me such great glory!” Indeed “we are sons of God, and if sons heirs also; heirs indeed of God, and joint heirs with Christ: yet so, if we suffer with him, that we may be also glorified with him” (Rom. 8:16-17).


So let us be generous in this Lent, doing penance and participating in the mystery of the Cross with Our Lady at the foot of the Cross, knowing that there will be a great recompense for all this in Heaven! Amen.


Fr. F. Laisney